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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내가 약혼하지 말길 바라?

“...”

침묵하던 윤성아가 입술을 살짝 깨물며 말했다. “돈을 원하는 게 아니에요.”

“그래?”

강주환은 약간 의외였다. 함께 한 4년 동안 매번 할 때마다 돈을 원했던 건 그녀였다.

“대표님, 이제 약혼녀도 있는데 우리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녀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살짝 미간을 추켜세운 강주환이 입에서 하얀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왜, 질투하는 거야? 내가 약혼하지 말길 바라?”

“아뇨.”

윤성아가 대답했다. 그녀는 질투할 자격이 없었고 한 번도 이 남자에게 약혼녀가 없길 바란다고 생각해본 적 없었다.

다만...

“계속 이럴 순 없어요.”

예전엔 돈을 받고 그의 애인이 되어주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이제 약혼녀가 생겨 모든 것이 너무 복잡해졌다.

“대표님, 저도 자꾸 피곤해지기 싫어요. 만약 유미 씨가 우리 사이를 알게 되면 날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그녀는 사실을 얘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강주환이 담배를 비벼끄며 한층 무거워진 눈빛으로 물었다.

“무서워? 그래서 나랑 끝내려고? 앞으로 돈 필요 없는 거야?”

“...”

윤성아는 그에 대해 아주 잘 알았다. 싸늘해진 분위기와 무거운 눈빛, 그가 곧 화를 낼 거라는 직감이 왔다. 그녀는 화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고개를 저었다.

“아뇨.”

“흥.”

강주환이 차갑게 웃으며 윤성아의 턱을 들어 올렸다.

“나를 떠나면 언제든지 네가 원하는 대로 돈을 줘서 만족시켜주는 ‘지갑’을 또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러니까 윤성아,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마. 내가 끝났다고 하기 전엔 모든 게 그대로야.”

“...”

더는 할 말이 없어진 윤성아. 강주환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하얗고 예쁜 얼굴이 맞아서 부어올라 완벽한 아름다움에 금이 가버렸다.

그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아파?”

윤성아가 고개를 저었다. 다시 옷을 입고 떠나기 전, 강주환이 4천만 원짜리 수표를 던져주며 말했다. “이건 보상.”

그녀가 맞아서 주는 보상인 걸까?

“내일 너를 다시 데려올 거야.”

한마디 보태고 강주환이 떠났다. 4년 동안 그는 한 번도 남아서 함께 밤을 보낸 적이 없었다.

4천만 원짜리 수표를 손에 든 윤성아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그저 현실을 받아들이고 돈을 가지는 수밖에 없다.

그녀는 돈이 필요하니까. 그것도 아주 많이!

다음날.

출근하기 바쁘게 송유미가 윤성아를 사무실로 불러들였다.

“윤성아, 이게 네가 한 짓이야?”

날카롭게 따져 물으며 송유미는 손에 들린 보고서를 높게 쳐들어 힘껏 윤성아를 향해 던졌다.

묵직한 보고서는 그대로 윤성아의 이마에 내리꽂혔다.

“하!”

송유미가 차갑게 웃으며 피부가 벗겨져 피가 새어 나오는 윤성아의 이마를 바라봤다.

“약해 빠졌어. 진짜!”

몇 걸음 걸어 윤성아 앞으로 다가온 송유미가 그녀의 턱을 확 잡았다.

“이렇게 불쌍하고 가엾은 얼굴을 하다니. 강주환이 보면 마음이 찢어지겠다. 그렇지?”

흠칫 놀란 윤성아는 자신을 찢어 죽일 듯이 바라보는 송유미를 쳐다봤다.

“솔직히 말해. 너랑 강주환 대체 무슨 사이야?”

여전히 차가운 윤성아의 눈.

맞아도 변함없이 담담하고 차가운 모습으로 그녀는 송유미를 향해 천천히 얘기했다.

“전 그저 대표님의 비서일 뿐입니다.”

“내가 믿을 것 같아?”

거만한 표정으로 윤성아를 지켜보며 송유미가 말했다. “잘 들어. 너랑 강주환 사이에 뭔가 있다고 해도 넌 그저 언제든지 버려질 수 있는 ‘걸레’일 뿐이야. 미천한 신분으로 주제도 모르고...”

주제 파악이 되면 지금 바로 사직서 쓰고 떠나라고 송유미가 말했다. 그리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1억을 더 줄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윤성아는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전에 송유미가 줬던 4천만 원도 돌려줬다.

“전 호진 그룹에서 사퇴할 생각이 없어요. 그러니까 이 4천만 원은 당연히 유미 씨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너...!”

송유미가 씩씩거리며 윤성아를 노려봤다.

“지금의 넌 나의 어시야! 아직도 주제 파악이 안 돼? 돈 들고 꺼져.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러지 않으면 내가 너 지독하게 괴롭힐 거야. 네가 떠날 수밖에 없게 만들 거라고.”

윤성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떠날 자격이 없었으니까. 송유미에게 맞든 아니면 괴롭힘을 당하든 그저 감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 같았다.

이때,

“똑똑.”

대표님 사무실의 비서 한 명이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바닥에 흩어진 보고서와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뺨에 선명한 손가락 자국이 남아있는 윤성아를 번갈아 보던 비서의 입가에 고소하다는 듯한 미소가 스치듯이 지나갔다.

“유미 씨, 성아 언니.”

그녀는 의례적으로 인사를 건넨 후, 윤성아를 향해 말했다.

“성아 언니, 대표님께서 비서실로 돌아오라고 하셨어요.”

“지금 뭐라고 했어요?”

송유미가 물었다. 그녀의 기세에 놀랐는지 비서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답했다.

“이건 대표님 뜻이에요. 아마도 성아 언니랑 더 오래 일해서...”

여기서 물러날 송유미가 아니었다.

“넌 네가 해야 할 일이나 잘해. 어제 얘기했던 보고서 다시 정리해서 가져와. 다시 돌아가는 일은 없으니까 생각도 하지 마. 내가 찾아가서 직접 말할 거야.”

대표님 사무실로 온 송유미가 물었다.

“주환아, 아무 문제 없는데 왜 다시 윤성아를 데려가려는 거야? 디자인 팀에서 잘 적응하고 있어. 게다가 너 비서가 이렇게 많은데 그녀가 꼭 필요한 건 아니잖아?”

“비서가 많은 건 사실인데 내 요구에 딱 맞는 수석 비서는 그녀 하나뿐이라서.”

이 일은 이미 결정된 일이었다. 송유미가 뭐라 하든 강주환의 생각을 바꿀 수 없었고 윤성아는 결국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게 되었다.

또다시 강주환 곁으로 돌아간 윤성아를 떠올리면 송유미는 화가 나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네가 이겼다고 생각하지 마, 윤성아. 내가 너 반드시 데려와 내 밑에서 일하게 만들 테니까.”

윤성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강주환의 수석 비서로 일하든 송유미의 어시로 일하든 다 그녀가 결정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태도는 송유미가 보기엔 도발적이었다.

윤성아가 떠난 후, 송유미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각, 다시 대표님 사무실의 비서 자리로 오게 된 윤성아의 이마에 난 상처와 뺨의 붉은 자국을 보며 사무실의 다른 비서들이 작은 소리로 귓속말을 남겼다.

“내가 말했지? 대표님과 뭔가 있다니까. 아니면 유미 씨가 왜 저러겠어?”

“그러니까. 맞아도 싸.”

“애인 노릇이나 하는데 당연히 맞아야지.”

누군가 얘기하고 있는 비서의 옆구리를 쿡 찔렸다.

“목소리 좀 낮춰.”

“뭘 낮춰? 이게 뭐 못 할 말이야?”

“우리 미래의 사모님 유미 씨가 이곳에 있는데 윤성아가 나댈 수나 있겠어?”

윤성아는 모든 것을 듣고 씁쓸하게 웃었다. 그녀는 그저 못들은 척 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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