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11화

저녁 식사 후, 그들은 시간을 더 지체하지 않았다.

육현경은 먼저 육민을 집으로 보내 메이드에게 맡긴 뒤 다시 차로 소이연을 데려다주려고 했다.

"번거롭게 데려다주지 않아도 돼요. 혼자 택시 타고 가면 되는데."

소이연이 사양했다.

"번거롭지 않아요. 내가 운전하는 것도 아니고."

육현경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기사는 어색했다.

이 상황에 껴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소이연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들은 조용히 노스타운에 도착했다.

소이연이 차 문을 열었다.

그녀는 목발을 짚고 있어서 거동이 불편하고 행동이 느렸다. 그녀가 차에서 내리려고 했을 때 육현경은 이미 차 문 앞에서 신사답게 그녀를 부축했다.

소이연은 불편했지만 감사의 인사를 했다.

"고마워요."

"아니에요."

육현경은 그녀를 부축해 차에서 내렸다.

소이연은 목발을 짚고 걷다가 갑자기 멈춰 섰다.

"대표님."

소이연은 그를 바라봤다.

"네?"

"아까 그 말들 다 진짜예요."

소이연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열여덟에 원나잇으로 미혼모가 되었어요... 읍."

소이연은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

육현경은 갑자기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예상치 못 한 상황에 소이연은 반항할 것조차 잊었다.

두 입술 사이의 낯선 촉감은 점점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러다 갑자기,

소이연은 육현경을 밀쳐버렸다.

그제야 육현경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 알아차린 그녀는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녀는 이게 부끄러워서인지 아니면 화나서인지 구분이 안 됐다.

"깨끗한 사람이라 했잖아요!"

소이연이 육현경에게 따졌다.

"행동으로 소이연 씨한테 대답하는 거예요. 나 신경 안 써요."

담담하게 말하는 육현경에게서 미안함이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누가 행동으로 하라고 했어요! 입 없어요?"

소이연은 급하게 말을 꺼낸 뒤에야 자기가 단어를 잘못 쓴 것을 발견하고는 다급히 다시 말을 바꾸었다.

"말로 하면 되잖아요!"

육현경이 웃었다.

가로등 불빛이 육현경의 얼굴을 비추었다. 육현경의 미소에 소이연은 마음이 저도 몰래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육현경이 말했다.

"당신이 내 말을 믿지 않을까 봐서요."

"안 믿는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러면 됐어요."

육현경이 받아쳤다.

소이연은 눈을 크게 떴다.

뭔가 육현경의 작업에 걸려든 것 같았다.

"날 믿는다면 앞으로 그 핑계로 날 거절하지 말아요."

소이연은 육현경을 바라보았다.

‘내가 말한 게 핑계라고?’

어떤 남자든 신경 쓸 것이다.

문서인도 그랬다.

"늦었어요. 잘 자요."

육현경은 신사답게 인사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차로 돌아갔다.

그가 탄 마이바흐 세단이 그녀 앞을 지나갔다.

뭐랄까, 왠지 전쟁에서 이겼다는 듯 말이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입술에 아직도 그의 촉감이 남아 있었다.

소이연은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그냥... 지나가던 개한테 물렸다고 생각하자.’

...

차에서.

육현경은 전화를 받았다.

"육현경, 너 나랑 한 약속은 안 지키더니 나만 두고 우리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었어? 손님까지 쫓아줬는데 나한테 미안하지도 않아?"

하도경의 원한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고맙다."

육현경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누가 고맙다고 인사하래? 그나저나 매니저가 네가 여자랑 같이 와서 밥 먹었다던데?"

"맞아."

"너 웬일이야?"

하도경은 깜짝 놀랐다.

"나 민이 땅에서 나왔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

"그래서 언제 보여 줄 거야? 어떤 신성한 여자기에 이런 얼음 왕자를 녹였나 궁금하네."

"아직 만나는 거 아니야."

"아직 만나는 게 아니라고?"

하도경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니까 더 궁금한걸?"

"끊을게. 업무 전화가 들어와서"

"야 이씨..."

하도경은 조용히 욕을 뱉었다.

육현경은 전화를 끊고 다른 전화를 받았다.

"대표님."

이명진이 말했다.

"육씨 계열사의 풍향 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한 드라마가 있는데 여주인공은 문서아이고 다음 달부터 촬영에 들어간다고 해요."

"여주인공 교체해."

육현경이 명령했다.

"그건 좀…… 곤란하지 않을까요?"

이명진은 난처한 말투로 말했다.

"뭐?!"

"네, 그렇게 할게요."

이명진은 감히 대꾸하지 못했다.

문씨 가문이 그의 대표님을 건드렸다는 건 정말 재수가 없는 일이다.

...

문씨 가문 별장.

문서아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성질을 냈다.

그녀는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문씨네 귀한 딸이자 유명 연예인인 내가 레스토랑에서 쫓겨나다니. 누가 알기라도 하면 나 진짜 창피해서 못 살아!’

"왜 그래?"

소파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문서인이 문서아에게 물었다.

문서인의 아빠 문덕수와 엄마 임지효도 문서아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문서아는 오늘 당했던 일과 소이연이 남자와 함께 식사하던 그 모습을 더욱 과장해서 말했다.

문서인의 얼굴색이 점점 나빠졌다.

"내가 얘기했지. 소이연은 좋은 계집애가 아니라고. 하마터면 네가 그년한테 당할뻔했네."

임지효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그들은 이미 소이연이 망해가는 문씨 그룹을 도와줬던 일을 다 잊은 것 같다.

"그 레스토랑이 '더 청담'이라고?"

문덕수가 물었다.

"맞아요. 거기가 분위기도 럭셔리하고 파파라치도 없어서 나은이랑 약속 잡고 갔어요."

"거기 하씨 가문 레스토랑 아니야?"

문덕수가 이상하게 생각했다.

"우리 문씨 가문과 하씨 가문은 껄끄러울 게 없는데?"

"하씨 가문? 하도경 레스토랑이에요?"

문서아는 갑자기 떠올랐다.

"예전에 나 학교 다닐 때 하도경의 고백을 거절했다고 괜히 날 난처하게 하는 것 같아요. 하도경, 그렇게 안 봤는데 엄청 유치하네요!"

문덕수도 이 일을 젊은 친구들의 사적인 일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에 두지 않았다.

문서아도 이유를 찾고 나니 기분이 한결 편해졌다.

‘보나 마나 날 잊지 못해서 그랬겠지? 나와 대화할 기회를 만들려고? 하도경의 수법은 늘었는데, 내 눈에 차지 않으면 아무리 발악해도 난 안 봐.’

이때 문서아의 전화가 울렸다.

매니저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확인하고 그녀는 귀찮은 듯한 말투로 전화를 받았다.

"맨날 전화해서 보채지 좀 마. 나도 대본 보면서 공부하고 있어."

사실 그녀는 대본을 받은 지 보름이 지났지만 단 한 페이지도 읽어보지 않았다.

"서아야, 너 혹시 누구 건드렸어?"

상대방이 다급하게 물어봤다.

"방금 감독님한테서 들었는데 여주인공 교체한대."

관련 챕터

최신 챕터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