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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당신 그거 무슨 뜻이야?”

심유진은 더 이상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했다.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모습에 음료수를 가져온 직원이 화들짝 놀랐다.

“주, 주문하신 레몬티입니다.”

직원이 레몬티를 테이블 위에 올놓더니 조심스럽게 두 사람을 힐끔거렸다. 그는 돌아서면서도 몇 번이나 두 사람을 힐끔거리다가 그제야 자리를 떠났다.

그의 어설픈 방해에 심유진은 그제야 자신이 현재 공공장소에 있다는 것을 기억했다. 그녀는 흥분을 조금 가라앉혔다.

“계약금 내가 냈어. 매 달마다 대출금을 갚고있는 것도 나였고. 그런 집이 나랑 상관이 없으면 대체 누구랑 상관있다는 거야?”

그녀는 겨우 화를 참으며 두 사람만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조건웅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그가 가방에서 또 다른 서류를 꺼냈다.

“확인해 봐.”

서류 첫 페이지의 맨 꼭대기에 검은색 글자가 또렷하게 적혀 있었다. 《주택 증여 계약서》심유진의 시선이 그 단어에서 2초가량 머무르다가 빠른 속도로 아래 내용을 확인했다.

증여인: 심유진 (이하 “갑”이라 칭함)

수증인: 조건웅 (이하 “을”이라 칭함)

증여하는 주택은 결혼 후 두 사람이 함께 살았던 바로 그 집이었다.

“이걸 나한테 왜 보여주는데? 나더러 지금 여기에 사인하라고?”

심유진이 계약서를 던지며 싸늘하게 웃었다.

“똑똑히 들어 조건웅. 꿈도 꾸지 마!”

조건웅의 얼굴에서 좌절이나 분노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승리의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가 계약서의 마지막 페이지를 펼쳐 심유진에게 건넸다. 그리고 검지로 맨 마지막에 있는 서명란을 가리키며 말했다.

“똑똑히 봐.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지 아닌지 말이야.”

증여인이라는 세 글자 뒤에 있는 서명란에는 멋들어지게 쓴 세 글자가 적혀있었다. 심유진 세 글자가.

그녀가 가장 익숙한 필체였다. 전혀 위조된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사인 위에는 붉은색 지장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마침 그녀의 오른손 엄지손가락과 딱 들어맞았다.

계약서에 적힌 날짜는 무려 3개월 전이었다.

날짜를 계산해 보니 우정아가 임신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작성한 것이었다.

알고 보니…… 알고 보니 그들은 진작 그녀를 음해할 꿍꿍이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 혼자만 아무것도 모른 채 그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난 것이었다!

심유진은 온몸이 떨려났다. 그러다 겨우 한마디 말을 내뱉을 수 있었다.

“난 이런 계약서에 사인한 기억이 없어.”

그녀는 조건웅이 무슨 수로 자신의 사인을 받아냈는지 전혀 짐작 가지 않았다. 다만 확실한 건 그녀는 이와 같은 《주택 증여 계약서》를 본 기억이 없었다.

“네가 기억하든 말든 여기 적혀있는 이름은 네가 직접 사인한 거야. 지장 역시 너 스스로 찍은 거고. 이미 공증도 마친 계약서지.”

조건웅은 아무런 해명도 없이 그저 결과만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 집은 네가 나한테 증여했으니까 이제 나 혼자만의 집이야. 법률상 난 그 집을 너와 나눌 의무가 전혀 없어.”

“참 그리고……”

조건웅은 자신의 휴대폰을 한참 뒤적거리더니 사진 한 장을 심유진한테 보여줬다.

“명의 이전 수속이라면 이미 마쳤어. 이건 새로 나온 집문서야.”

집문서에는 오직 조건웅이라는 이름만 달랑 적혀있었다.

심유진은 멍하니 그 사진을 바라보았다.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조건웅이 테이블을 툭툭 두드리며 그녀를 불렀다.

“빨리 여기 ‘이혼 협의서’에 사인해. 나도 다시 병원에 들어가서 정아를 보살펴야 돼. 여기서 너랑 계속 낭비할 시간 없어.”

“사인 안 해.”

심유진이 말했다.

가녀린 그녀의 목소리에서 확고함이 느껴졌다.

그녀가 처한 이 기가 막힌 상황을 똑똑히 이해하기 전까진 절대 조건웅의 뜻대로 되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다고 무슨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조건웅이 짜증 난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네가 사인하지 않아도 이 집은 이미 내 명의야. 너한테 다시 돌려주지 않아.”

“사인 안 한다고.”

심유진이 다시 한번 말했다.

“까짓것 이대로 살지 뭐. 누가 더 오래 버티나 보자고.”

“너!”

화가 난 조건웅이 이를 악물었다.

심유진은 그런 그를 무시했다. 그리고 삼천 원을 꺼내 테이블 위에 두고 자신의 가방을 챙겨서 일어났다.

그녀가 채 두 걸음도 옮기지 못했는데 조건웅이 쫓아 나와 그녀를 붙잡았다.

“잘 생각해.”

그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그의 얼굴이 흉악하게 이그러져있었다.

“너도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어떤 분들이신지 알잖아. 그분들이 네가 일하는 호텔로 찾아가서 깽판 칠게 두렵지 않아?”

심유진도 당연히 두려웠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 절대 그녀의 두려움을 그에게 들켜 꼬투리를 잡혀서는 안됐다.

“돌아가서 네 아버지 어머니한테 물어봐.”

그녀가 씩 입꼬리를 올리며 조롱 섞인 미소를 지었다.

“본인들 목숨 값으로 4억 원을 받을 준비가 되었는지 말이야.”

조건웅의 얼굴빛이 미묘하게 변했다.

“살인은 범죄야!”

그가 낮은 목소리로 지적했다. 그의 눈빛에 황당함이 스쳤다.

“그러면 그분들더러 가서 한번 시험해 보라고 해보든가.”

심유진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그 한마디를 남긴 채 조건웅이 얼이 빠진 틈을 타 빠르게 카페를 벗어났다.

**

심유진은 정말로 조건웅과 끝까지 살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다른 걸 떠나서 그녀는 이제 일분일초도 그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주택 증여 계약서》에 적힌 서명이 신경 쓰였다.

그녀는 자신이 그런 계약서에 사인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비록 필체와 지장은 영락없는 그녀의 것이었지만.

그리고 이미 명의가 바뀌어 버린 집문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가 현장에 있지도 않았는데 조건웅은 어떻게 집문서 명의를 바꿀 수 있었을까?

모든 것이 불합리하기 짝이 없었다.

심유진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차를 몰고 호텔로 향했다.

로비에 들어선 그녀는 바로 프런트로 달려갔다.

“소미 씨 허 대표님과 함께 투숙한 여형민 씨 있잖아요. 몇 호에 머무르는지 찾아봐 줄 수 있어요?”

호텔에 머무는 손님들의 모든 개인 정보는 외부인한테 절대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칠성급 고급 호텔인 로열 호텔도 이 방면을 특히 더 중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심유진은 ‘외부인’이 아니었다. 거기다 그녀는 ‘객실 매니저’라는 특수 신분까지 있지 않는가.

소미는 그녀가 일 때문에 그러는 줄 알고 곧바로 컴퓨터로 여형민의 방 번호를 찾아내 알려줬다.

심유진이 여형민이 머무는 층에 도착했다. 그녀가 막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귀를 찌르는 욕설이 들려왔다.

“이미 방값도 다 지불했는데 무슨 권리로 나보고 나가라는 거야? 너희들 내가 누군지 몰라? 내 몸에 손끝 하나라도 대봐. 내가 너희들이랑 이 호텔 아주 곤란하게 만들어 버릴 테니까!”

누가 봐도 호텔 투숙객과 직원 간에 모순이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비록 그녀는 현재 휴가 중이었지만 이런 상황을 맞닥뜨렸으니 당연히 가만히 지켜볼 수만 없었다.

그녀가 빠른 걸음으로 소리가 나는 쪽으로 향했다. 모퉁이를 돌자 곧바로 보안 요원들과 청소부가 방문 앞에서 누군가와 대치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방안에 있는 사람은 인기 스타 서우연이었다.

심유진은 서우연과 제작진들이 모두 한 층에 투숙하고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심 매니저!”

청소부들이 그녀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마치 구세주라도 본 듯이 두 눈을 반짝였다.

서우연의 목소리가 방 안에서 울려 퍼졌다.

그녀는 과하게 흥분한 상태였다. 심유진이 미처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다짜고짜 욕설을 퍼부었다.

“당신이 매니저야? 그럼 설명해 봐. 왜 갑자기 나더러 퇴실하라는 거야? 이 호텔 더 이상 경영하고 싶지 않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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