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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더 이상 부부사이가 아니에요

하연은 서준의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그리고 그의 복근을 따라 내려가며 입을 맞추었다. 오랫동안 감춰온 서준의 대한 갈망 탓인지 귀밑까지 붉어졌다.

그녀는 손놀림을 멈추지 않은 채 쉰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어떻게 이 집의 작은 안주인이 되었는지 잊었냐고요?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요. 제 임무는 당신의 아이를 낳는 거예요. 지금 나는 내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거고요.

“어떻게 그런 말을?!”

화를 내는 서준의 탄탄한 복근이 울룩불룩 움직였다.

“방 안에 최음제를 좀 뿌렸어요. 조금만 참으면 곧 괜찮아질 거예요. 저는 제 임무를 위해 아이를 가지려는 것뿐이에요.”

그녀는 더 대담하고 과감하게 행동했다. 전에는 한번도 보여준 적 없는 요염한 모습이었다.

하연의 적극적인 도발에 그의 몸이 본능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했고 호흡도 거칠어졌다.

그는 이것이 최음제 때문인 것을 알고는 이성을 되찾았다. 그리고는 하연의 거침없는 손을 꽉 움켜 잡았다.

“최하연, 너 정말 역겨워.”

서준의 말에 그녀의 끓어오르던 욕망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하연은 눈에 눈물이 고인채로 마지막으로 물었다.

“나를 안는 게 그렇게 구역질나요?”

“그래!”

서준은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녀를 밀쳐냈다.

더는 그녀와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았다. 서준은 하연이 벗긴 옷을 집어 들고 다시 입기 시작했다.

그는 단추도 잠그지 않은 채 성큼성큼 걸어 나가버렸다.

방문이 ‘쾅’하고 닫히면서 주위가 다시 조용해졌다.

하연은 그가 나가자 긴장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눈에는 서준을 원망하는 눈빛이 가득했다.

서준은 방을 나서며 생각했다.

‘이 정도로 했으면 있던 마음도 없어지겠지...’

...

다음날 아침, 하연은 아직 성치 않은 다친 다리를 절뚝거리며 짐을 싼 여행가방을 끌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집안 살림을 돕는 가정부가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강영숙 여사는 새벽기도를 드리러 가느라 집을 비운 상태였다.

“어머, 새언니! 죽다 살아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짐 끌고 어딜 가려는 거예요? 혹시 여행 가요?”

한서준의 친동생 한서영이 빈정거리며 말했다. 그녀는 현재 B대학교 2학년에 재학중이다.

서영은 하연과 이렇게 가족으로 만나는 것이 여전히 익숙하지 않고 불편하기만 했다.

“나가기 전에 나 머리 하는 거 좀 도와주고 가요.”

하연은 손재주가 좋은 편이라 서영의 머리를 곧잘 손질해주었다. 스타일이 좋아서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오늘 하연은 그녀의 말에 전혀 대꾸도 하지 않고 짐을 끌고 내려왔다. 마침 귀부인처럼 치장한 한씨 집안의 안주인 이수애 여사와 마주쳤다.

그녀는 HT그룹 한태규 회장의 두번째 아내이자 서준의 친어머니였다.

이수애는 처음부터 하연의 옷차림과 가정배경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함부로 말하기 일쑤였다.

“아침 댓바람부터 여행가방을 끌고 다니며 뭐하는 짓이야? 당장 내려놓고 청소중인 이모님이나 도와라. 곧 새로 사람이 들어와서 지내게 될 거니까.”

하연의 눈꺼풀이 떨려왔다. 자신이 모르고 있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한서영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새로? 누가요?”

“니가 좋아 죽는 혜경이 말고 누가 더 있겠니?”

“네? 혜경언니 귀국했어요?”

“돌아오기만 한 게 아니고, 네 오빠 아이를 가졌잖아. 우리집 터가 좋아서 잠깐 자기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여기서 몸을 추스를 거야.”

그녀는 이야기하면서 하연을 한번 힐끗 쳐다보았다. 민혜경이야 말로 자신이 생각해온 이상적인 며느릿감이었다. 애초에 그 일이 아니었으면 서준은 혜경과 결혼했을 것이다.

그녀가 하연을 내려다보면서 무시하는 투로 말했다.

“너 아직도 거기 서서 멍하니 뭐하고 있니? 청소하러 가지 않고?”

예전 같았으면 하연은 틀림없이 시어머니의 비위를 맞추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자신을 멸시하는 그녀의 뜻대로 하고 싶지 않았다.

하연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지만 침착하게 냉정한 태도를 잃지 않고 말했다.

“오늘부터 저와 서준 씨는 더 이상 부부사이가 아니에요. 서영이 머리 하는 거나 방 청소 같은 허드렛일은 이제 다른 사람에게 시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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