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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여보... 아니, 반 대표님

욕조 옆에 선 반승제의 정장 바지는 물에 흠뻑 젖었고, 따라서 그의 몸도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그날 밤의 기억 파편도 반복적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반승제 본인도 그녀의 여보라는 말 한마디에 자신의 몸이 이렇게까지 반응할 줄은 몰랐다.

말을 하는 목소리마저 갈라졌다.

“정신 차렸으면 알아서 나와.”

성혜인의 옷이 물에 젖은 바람에 그녀의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녀의 긴 생머리는 뺨에 달라붙어 마치 물에서 갓 나온 요정같이 사람을 홀리고 있었다.

몸의 열기가 또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반승제를 보고 싱긋 웃더니 그녀는 그대로 욕조에서 나오려고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반승제의 잘난 얼굴에서는 한치의 표정도 읽을 수 없었고 그녀를 그대로 다시 욕조로 밀어 넣어 그녀의 머리 위로 샤워기를 틀었다.

남자의 행동은 부드러움은 고사하고 거칠기까지 하였다.

성혜인은 할 수 없이 눈을 감았다. 그녀는 정신이 몽롱할 때 딱 한 번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약 효과 때문에 이러는 자신 때문에 그녀도 괴로워 미칠 지경이었다.

반승제는 힘을 풀었고 그녀 혼자 정신이 돌아오게 놔둘 생각으로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그는 그녀에게 옷깃을 잡히는 바람에 그의 몸은 그만 앞으로 기울어졌다.

그렇게 두 얼굴이 서로 마주하고 입술까지 부딪치는 불상사가 일어나고 말았다. 한 명은 뜨겁고, 다른 한 명은 차가운 채 말이다.

콰당.

손에 쥐여 있던 샤워기는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고, 반승제의 목젖은 심하게 위아래로 요동치고 있었다.

그의 몸이 다시 반응하려는 그 순간, 그는 몸을 일으켰다. 욕조 안의 사람은 신경 쓰지 않은 채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쾅!

욕실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반승제의 심정을 대변해 주는 것만 같았다.

거실로 나온 그는 여전히 침묵을 지켰고 차가운 눈빛은 창가에 고정한 채 소파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심인우가 들어왔을 때, 방 안의 공기가 그 어느 때보다 차가운 것은 눈치로 느낄 수가 있었다. 마치 얼음장 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그는 반승제의 바지가 반쯤 젖어있는 걸 보고는 눈썹을 찡그렸지만 무슨 일인지 묻지는 않았다.

“대표님, 이건 내일 사용 할 자료입니다. 온라인 미팅은 반 시간 후에 시작될 예정입니다.”

반승제는 고개만 가볍게 끄덕였고 욕실에서는 둔탁한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신경은 쓰지 않았다.

하지만 심인우는 의심 가득한 눈빛은 이미 욕실 쪽을 향하고 있었다.

설마 환청이라도 들렸단 소리인가? 안에서 누군가의 움직임이 있는 것만 같았다.

일정에 관한 보고를 마친 그가 자리를 뜨려고 하자 반승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여자 옷 한 벌만 갖고 와줘요.”

심인우는 당혹한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런 일이 자신의 대표에게 발생하였다니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욕조 안에 사람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사이즈는요?”

반승제는 머릿속으로 그녀의 실루엣을 생각하였다.

“프리사이즈면 되겠네요.”

심인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를 떴다.

반승제는 몸을 일으켜 욕실 안의 상황을 볼 수도 있었지만, 자료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방금 그녀를 내다 버리지 않은 것은 다 자신의 온화한 성품 덕분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방금 가져온 서류를 검토한 후 그는 노트북을 켜 온라인 회의 준비를 하였다.

“장황한 보고는 다 빼고 중점만 간략하게 보고해요.”

그의 기분을 눈치챈 사람들은 감히 입조차 벌리지 못하고 있었다.

욕실에서는 성혜인이 한 시간째 차가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겨우 정신이 돌아온 것만 같았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고, 창백해진 얼굴로 자신의 몸을 위아래로 살폈다.

다행히 외출 전의 차림 그대로였다.

‘이곳은 호텔인가?’

그녀는 벽을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고 정신을 차리려고 자신의 입술을 깨물었다.

‘두 남자가 나를 차에 실은 거 같은데, 그다음은...?’

아직도 볼이 발그레한 채로 있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확인한 그녀는 눈살을 찌푸렸다. 순간순간의 기억들이 그녀의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고 있었다.

반승제를 본 것 같은데, 그리고...

성혜인은 갑자기 뭔가가 생각난 듯싶었다. 특히 자신이 그를 붙잡고 여보라고 한 순간 말이다.

그는 창피함에 몸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 그녀가 조심스레 욕실 문을 열자, 그가 소파에 앉아있었다.

반승제는 미팅 보고를 듣고 있었던 덕분에 그녀가 욕실에서 나온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문제점을 지적하려고 입을 떼려고 하는 순간 어디선가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아니, 반 대표님.”

너무 긴장한 탓에 계속 신경 쓰였던 그 말이 결국 입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그녀의 손바닥은 손톱에 찔릴 것만 같았다.

“죄송해요, 아까는 그냥...”

반승제의 미간은 구길 대로 구겨졌고 회의에 참가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상함을 느꼈다. 마이크만이 야속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죽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회의 중단 버튼을 눌렀다. 그러고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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