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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사과

그녀가 올린 사진은 바로 서민영과 박수혁이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함께 잠든 모습만 봐도 두 사람의 사이가 보통 사이가 아님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보낸 사진이 오히려 그녀를 보호하는 무기가 되다니.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맞는 모양이다.

“박수혁 씨:

고가의 목걸이 “아름다운 꿈”이 절도 당했다는 소식에 저도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밤새 제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탐정분께 목걸이의 행방 조사에 대해 의뢰했고 그 결과 지금 목걸이는 대서양 J국 태한 그룹 장녀 박예리 씨한테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박예리 씨는 해외 카지노에서 게임 도중 자금 부족으로 인해 몰래 목걸이를 훔쳐 간 것으로 추측됩니다. 해명글과 함께 제 탐정님께서 보낸 사진을 첨부합니다. J국 카지노 게임 테이블 위, “아름다운 꿈”, 박예리 씨의 모습을 모두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소은정이 사진을 업로드한 뒤 사건은 또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약자의 위치였던 소은정이 단 하룻밤 사이에 태한 그룹의 입장을 완벽하게 반박할 수 있는 증거를 가지고 나타나다니.

그리고 별다른 언급은 없었지만 따로 첨부한 박수혁과 서민영의 사진을 통해 사람들은 두 사람의 파경 원인이 박수혁의 외도 때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도대체 누가 나쁜 사람이란 말인가?

군더더기 하나 없는 해명글과 완벽한 증거에 네티즌들의 여론은 또 달라지기 시작했다. 소은정은 누명을 완벽하게 벗을 수 있었고 유튜버들도 재벌가 갑질이라는 자극적인 주제로 태한 그룹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한편, 박수혁은 심란한 마음에 친구들과 함께 술이나 한 잔하고 있었다. 그런데 밤새 이렇게 많은 일이 벌여졌을 줄이야. 태한 그룹의 주가 또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이른 아침, 박수혁은 잔뜩 굳은 표정으로 사무실에 도착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비서 이한석은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

“누가 감히 회사 공식 계정으로 그딴 루머를 퍼트리라고 한 거지?”

무시무시한 표정을 짓던 박수혁이 이를 악물고 물었다.

“큰 사모님이 분부하신 일입니다. 대표님께서도 이미 알고 계신다고...”

“쾅!”

책상 위의 물건들이 모두 바닥에 떨어지며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남자는 여전히 날카로운 시선으로 비서를 바라보았다.

“언제부터 큰 사모님이 회사 사안에 관여하기 시작한 거지? 홍보팀 사람들 전부 해고해!”

전부 해고라는 말에 이한석은 흠칫했지만 결국 대답했다.

“네.”

“그리고 인터넷에 업로드한 글도 당장 내리고!”

남자의 새카만 눈동자는 곧 휘몰아칠 폭풍을 담고 있었다.

이한석도 그 포스에 눌렸지만 할 말은 해야 했다.

“이글 엔터테인먼트의 도 대표님께서 무조건 24시간 동안 게재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기사들은 전부 지우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국내 최고의 엔터 그룹, 각 언론사에서도 그 대표의 말을 거스르는 건 힘들 것이다. 이에 박수혁의 얼굴은 더 일그러졌다.

소은정에게 이런 능력이 있었나? 뭐? 박수혁 씨께? 설마 이 모든 게 그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박수혁이 잔뜩 굳은 얼굴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벨 소리가 울렸다. 발신인은 이민혜였다. 박수혁은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수신 거부를 클릭했다. 신고를 하지 말라고 했더니 이런 사고를 치다니. 아무리 어머니라고 해도 용서하긴 힘들었다. 소은정이 직접 나서서 해명하지 않았다면 영낙없이 도둑으로 낙인찍혔을 것이다.

상황이 그의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자 박수혁은 더 짜증이 치밀었다. 이때, 또다시 벨 소리가 울리고 발신인을 확인한 박수혁은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아버지.”

“은정이한테 연락해서 어서 지우라고 해. 넌 쪽팔리지도 않아?”

박봉원도 화가 단단히 난 듯 호통쳤다.

“수혁아, 그 계집애 당장 내 앞으로 데리고 와. 사과하라고 하라고! 감히 네가 외도를 저질렀다고 모함해?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옆에서 듣고 있던 이민혜가 휴대폰을 가로채 고래고래 소리쳤다. 귀를 찌르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박수혁은 눈을 질끈 감더니 차갑게 되받아쳤다.

“은정이가 뭘 잘못했다고 사과를 합니까? 목걸이를 훔친 건 예리였어요. 그러니까 제가 가만히 있으라고 했잖아요. 왜 굳이 나서셔서 일을 크게 만드세요?”

사실 박수혁의 신경을 가장 건드리는 포인트는 떨어진 주가도, 회사 이미지도 아니었다.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형식적인 해명글, 그 글을 읽는 순간 박수혁은 직감했다. 정말 그녀와의 관계를 다시 되돌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소은정이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가 먼저 나서서 어떻게든 수습했을 것이다. 소은정은 그가 가만히 보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건가? 3년 동안 부부로 지냈는데 그 정도 신뢰도 없는 걸까?

그리고 소은정을 모함한 장본인이 그의 어머니라는 것도 어이가 없었다. 딱 봐도 한두 번이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차가운 아들의 태도에 이민혜는 흠칫 놀랐지만 지지 않고 변명했다.

“난들 예리가 가지고 간 걸 알았겠니? 그 목걸이는 항상 금고에 보관해 뒀잖아. 당연히 소은정을 의심할 수밖에.”

“지금이라도 은정이한테 사과하세요.”

논란이 일어났을 때 해명이 통하는 골든타임은 6시간, 아직 기회는 있었다.

“뭐? 사과? 내가 왜 사과를 해? 그 계집애가 지금 복수하는 거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전 남편 회사를 이런 식으로 매도해? 당장 데리고 오라니까! 내가 다시는 이런 일 없게 단단히 혼내줄 거니까!”

“엄마, 말씀드렸잖아요. 우리 이미 이혼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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