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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화

무대 위, 하유룡이 고개를 젖힌 채 강책을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이렇게 사람을 자신의 발 아래에 두는 듯한 기분을 매우 좋아했다.

하지만, 강책의 안색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하유룡은 강책이 겁에 질려 말을 꺼내지 못하는 줄 착각하곤 도발하듯 말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이렇게 직설적입니다. 내가 약한 자존심에 상처를 줬다면 정말 미안하네요.”

“사실은, 오늘 네가 왜 왔는지 진작에 알고 있었지. 네 죽은 동생을 빌미로 돈 좀 뜯어내려고 했나 본데, 내가 너 같은 인간을 많이 겪어봐서 잘 알아.”

하유룡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너한테 돈을 줄 수 없는 건 아니야. 네가 사람들 앞에서 ‘강모는 죽어도 싸다’라고 삼창만 하면 내가 너한테……음……백만원을 줄게, 어때?”

치욕스럽다.

무대 아래에선 폭소가 터져 나왔다. 사람들은 모두 웃느라 정신이 나간 듯했고, 어떤 사람은 입 안에 머금고 있던 술마저 내뿜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치욕스러운 상황에서 강책의 얼굴에 분노한 기색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가 매우 철두철미한 폐물이든지, 아니면 설설 기며 감히 말을 하지 못하고 있는건지 둘 중 하나였다.

아니면, 그가 천하를 멸시하고 산처럼 미동도 하지 않는 기질을 가졌던지.

하유룡은 강책을 꿰뚫어 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웃음을 멈추자, 강책은 마이크 앞으로 다가갔다.

“이제 제가 말할 차례군요.”

그의 담담하고 낮은 목소리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순간 입을 다물고 쳐다보게 만드는 장엄함이 있었다.

“제가 오늘 이 곳에 온 이유는, 여러분들께 한 가지 소식을 전해주기 위해서입니다. 7일 동안, 여러분들은 각자 내 동생의 무덤에 가서 하루 다섯 시간씩 무릎을 꿇고 사죄하십시오.”

강책이 말했다.

그러자 무대 아래에서 사람들이 서로 쳐다보며 강책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저 사람 미친거 아니야?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우리더러 그 무능한 인간한테 무릎을 꿇으란 말이야?”

“안 되겠다, 어디서 굴러들어온 머저리야?”

강책은 사람들의 비난을 무시한 채 말을 이어갔다.

“7일 후에, 내 말 대로 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모두……”

그가 파란 공책을 꺼내 들고 말을 이어갔다.

“……모두 내 블랙리스트에 기록될 겁니다.”

그러자, 현장에서 한바탕 폭소가 터져 나왔다.

“블랙리스트? 하하하, 무서워 죽겠네.”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역시 그 동생의 형 답게 머저리로구먼.”

강책의 ‘협박’에 그 누구도 동요하지 않았고, 그저 그를 비웃을 뿐이었다.

하지만 누군가 강책의 과거를 알고, 전장에서의 강책을 보았다면 이렇진 않았을 것이다. 누구든지강책의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적히는 순간, 관을 준비하고 있어야 했다.

강책은 파란 공책을 다시 집어놓고는 말했다.

“기억하세요, 당신들은 모두 7일이라는 시간밖에 없는 겁니다.”

말을 마치자, 그는 무대를 내려갔고 로비 문을 향해 걸어갔다.

“거기 서, 누가 가라고 했어?”

하유룡이 덤덤하게 한 마디를 하자, 곧바로 경호원들이 문을 막아 강책이 나갈 수 있는 기회조차 막아버렸다.

하유룡은 싸늘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여기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곳인지 알았니?"

"내 땅은 아무나 와서 설치고 갈 수 있는데가 아니란 말이다."

"강책, 목숨을 내걸고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해준 네 잘난 동생을 봐서라도 기회를 한 번 주지. 지금, 네가 무릎 꿇고 잘못을 인정하면 내가 널...음......이 문 밖으로 기어 나가게 해주마."

하가명은 경호원들을 데리고 몰려와 전기봉을 하나 둘씩 꺼내들었다.

그는 방금까지만 해도 강책 때문에 기분이 언짢았는데, 지금은 마침내 공명정대하게 그에게 본 때를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무릎 꿇어."

"사과하고, 개처럼 기어서 나가란 말이야!"

침몽 하이테크의 직원들은 빨리 강책의 공연을 보고 싶어 아우성을 쳤다.

하가명은 전기봉으로 강책을 가리키며 말했다.

"뭘 꾸물거려, 귀가 먹었니?"

하지만 강책은 여전히 평정심을 유지했다.

사람들이 뭐라하던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의 심기에 변화를 끼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하유룡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말을 꺼냈다.

"보아하니 약육강식이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것 같은데, 하기 싫다면 억지로 시키는 수밖에!"

"맞습니다!"

하가명은 경호원을 데리고 강책을 향해 걸어갔다.

3미터, 2미터, 1미터.

경호원들이 강책 곁으로 1미터쯤 들어가자, 강책은 아무런 모션도 취하지 않는 듯했고, 그 순간 경호원 2명아 순식간에 날아갔다.

퍽, 퍽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경호원 2명이 바닥에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이게......도대체 뭐지?

현장은 순간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예요?"

"모르겠어요, 순식간에 두 사람이 날아가 기절했어요."

"마, 마술을 부린건가?"

하가명은 침을 한 번 삼키고, 공포감이 엄습해왔다.

"괴물인가......?"

"너희들, 한꺼번에 달려들어!"

경호원 몇 명이 서로 눈빛을 교환을 하더니 동시에 달려들어 전기봉으로 강책의 머리를 내려치려 했다.

강책이 그 순간 손을 흔들자 한바탕 강풍이 휘몰아치듯 사람들이 동시에 흔들렸다.

그러다 그가 발을 번쩍 올려들어 잔상이 스쳐지나가면서 경호원들의 배를 한 발씩 걷어찼다. 퍽퍽, 연이은 소리가 들렸고, 눈 깜짝할 사이에 경호원들 모두가 바닥에 누워 피을 토했다.

몇몇운 갈비뼈 몇 개가 부러져 고통스러운듯 누워 몸부림쳤다.

이제 더 이상 아무도 웃지 않았고, 이런 사람의 블랙리스트에 찍히는 결과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기 시작한 것이다.

강책은 하가명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고, 하가명이 놀라 두 다리를 떨며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형, 내가 잘못했어, 제발 때리지 말아줘."

"내가 강모랑 얼마나 친했는데, 자주 술도 같이 마시고 말이야. 그러니까 강책형, 한 번만 용서해주라."

그러자 강책은 살며시 미소를 띄우며 하가명의 어깨를 툭툭쳤다. 그가 툭 칠때마다 하가명은 놀라서 벌벌 떨고 있었다.

"네 목숨 좀 소중히 해."

강책은 몸을 돌려 문을 향해 걸어갔고, 모두 그의 앞을 비키며 아무도 그를 막을 엄두조차 하지 않았다.

강책이 떠나자 하가명은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곤 자리에서 일어나 음험하게 웃으며 말했다.

"강책, 오늘 네가 날 죽이지 않은 건 네 인생 최대의 잘못일거다, 두 번 다시 이런 기회는 오지 않을거니까."

강책이 문에서 나오자, 정해가 곧장 그의 뒤를 따랐다.

"큰 도련님, 무사하시죠?"

강책이 살짝 웃어보이며 대답했다.

"당연히 괜찮죠, 이렇게 멀쩡하게 나오지 않았나요?"

"그럼 됐습니다, 그럼 됐어요."

"정 아저씨, 여긴 오래 있을 곳이 못되니 먼저 들어가세요. 제가 시간나면 찾아뵐게요."

"그래요,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큰 도련님 몸 조심하시구요."

정해가 떠난 뒤 홀로 길을 나선 강책의 앞에 검은색 쿠페가 멈춰 섰다.

차 문이 열리고, 강책이 차에 탔다.

목양일은 차 뒷자석에 탄 강책을 보자마자 그에게 물었다.

"형님, 왜 그 자들에게 7일이나 주신거죠? 형님이라면 그 자식들을 오늘 안에 다 끝장 낼 수 있을텐데."

그러자 강책은 되려 반문했다.

"너는 왜 고양이가 쥐를 잡는지 아니?"

"잡아먹으려고요?"

"아니, 고양이는 쥐를 먹지 않아. 그냥 쥐를 잡는 과정을 즐기는 거야. 쥐는 자신이 반드시 죽을 걸 알면서도 고양이 발톱 아래에서 도망치지 못하고 허우적거릴 뿐이지."

"인간은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고 어떻게든 살려고 노력하다가 도무지 살 길이 없다는 걸 알게 될 때 절망이 배가 되거든."

"너무 쉽게 죽이면, 처벌이 안 되지."

"난 그들을 절망에 빠트릴거야. 이름은 '박'이고, 방 번호는1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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