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3화 약혼하는 강주환

대표님의 수석 비서로서 윤성아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사모님, 오셨어요?”

“그래.”

고은희가 대답하며 여자의 손을 잡고 윤성아에게 소개했다.

“이쪽은 재민 그룹의 큰 아가씨 송유미야. 주환이 약혼녀이기도 하지.”

“유미는 이제 막 대학 졸업했어. 주환이 비서로 인턴 과정을 밟았으면 해. 마침 둘이 더 가까워질 수도 있잖아. 윤 비서, 주환이 수석 비서인데 앞으로 일에서나 생활에서나 주환이 돌보던 것처럼 유미도 잘 보살펴줘.”

윤성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모님.”

그녀는 항상 공손한 태도에 예의 바랐고 언제나 그랬듯이 약간 차가웠다.

고은희는 뒤에 서 있는 여자를 향해 말했다.

“유미야, 이분은 윤 비서야. 사 년 전에 주환이 비서로 일하기 시작했어. 주환이에 관해 아주 잘 알고 있을 거야. 앞으로 넌 윤 비서 잘 따라다녀.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 윤 비서한테 연락하고.”

그러자 송유미가 단순하고 착한 얼굴로 활짝 웃었다. “네, 어머님 시름 놓으세요. 저 꼭 윤 비서님께 잘 배울게요.”

하지만 고은희가 떠나자 송유미는 바로 표정을 싹 바꿨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치켜들고 있는 집안 아가씨의 기세를 잔뜩 뿜어냈다. 도도한 얼굴로 윤성아를 보며 그녀가 말했다.

“앞으로 다른 곳을 찾아 앉아요. 오늘부턴 내가 당신 자리에 앉을 거니까!”

“네.”

윤성아가 답했다. 그녀는 송유미에게 자리를 내어주기 위해 자신의 물건을 챙겼다.

“잠시만요.”

수납함을 들고 떠나려는 윤성아를 불러세우며 송유미가 명령조로 말했다.

“물건 다 챙기면 커피 좀 내려줘요. 핸드 드립 커피에 설탕은 넣지 말아 주세요.”

“아, 그리고 베리 디저트 가게의 마카롱이 먹고 싶네요. 내려가서 사 오세요.”

“네.”

윤성아가 짧게 대답하곤 대표님 사무실에서 나와 자신의 물건을 비어있는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곧이어 대표님 사무실의 막내 비서가 쪼르르 달려와 말했다.

“언니, 언니가 수석 비서인데 왜 자리를 내어줘야 해요? 그리고 왜 언니한테 이래라저래라하는 거죠?”

“괜찮아.”

윤성아는 신속하게 송유미의 요구대로 커피를 내렸다.

“유미 씨, 커피 드세요.”

“네.”

“그럼 마카롱 사러 가볼게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송유미가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커피가 맛이 이래?”

그녀는 윤성아를 흘긋 보며 말했다.

“마카롱 사고 나서 스타 로드 쪽에 있는 카페에 가서 새로 커피 한 잔 사 오세요.”

“알겠습니다.”

베리 디저트와 스타 로드의 카페는 반대 방향으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거기에 대기하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거의 퇴근 때가 되어야 다시 회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송유미는 지금 일부러 그녀를 난처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대표님 사무실의 비서들이 다들 송유미를 보며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그녀의 성격이 어떤지 확신할 수 없었기에 그저 지켜만 볼뿐, 아무도 그녀에게 다가가 먼저 얘기를 나누지 못했다.

“이곳으로 모여봐요.”

그녀는 도도하고 당당하게 서서 말했다. “인사부터 나누죠. 전 재민 그룹의 딸 송유미예요. 당신들 대표님의 약혼녀죠.”

신분을 밝히자 바로 누군가가 아부하기 시작했고 송유미는 그런 아첨을 즐겼다.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하긴 했으나 그녀는 직장의 시비 도리에 꽤 밝은 편이었고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첫 출근이니까 퇴근하고 제가 한턱 내겠습니다. 식사할 곳은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골라요. 물론 비쌀수록 좋아요.”

그날 퇴근 후, 송유미는 대표님 사무실의 모든 사람을 데리고 회식했다. 그리고 또 근사한 바에 가서 2차를 즐겼다.

윤성아는 그곳에 없었다. 모두가 퇴근했을 때도 그녀는 송유미가 사 오라고 한 마카롱과 커피를 사 오지 못했으니까. 게다가 그녀는 이런 회식에 참여해본 적도 없었다.

한 번의 식사와 술자리로 송유미는 모두의 찬사를 받았고 대표님 사무실의 조수와 어린 비서들과 굉장히 친해지게 되었다.

“성아 씨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거 싫어한다면서요? 회식에도 절대 안 온다고 하던데... 성아 씨 집안은 어떤 상황이에요? 남자친구는 있어요?”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한 비서가 입을 열었다.

“제가 듣기론 성아 언니 학력이 별로라고 했어요. 고졸인 것 같아요. 하지만 업무 능력이 뛰어나서 대표님께서 아끼시는 편이죠.”

“아, 하지만 유미 씨, 오해하진 마세요. 성아 언니 평소에 엄청나게 차가워요. 대표님과는 일과 관련된 사이일 뿐이에요. 성아 언니랑 대표님 사이에 뭔가 있다는 느낌은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어요.”

바로 이때,

“쳇.”

줄곧 윤성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한 비서가 입을 열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으면 고졸이 어떻게 대표님 비서로 4년이나 일할 수 있어요? 게다가 수석 비서로 되었잖아요.”

“대표님 사무실의 직원 중에 엘리트 출신이 아닌 사람이 있나요? 인서울에 대학원 학력이 기본이잖아요? 이 정도 스펙으로도 호진 그룹에 입사할까 말까 한데...”

...

송유미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윤성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처음 윤성아를 본 순간부터, 윤성아의 그 차갑지만 너무나 깔끔하고 예뻤던 자그마한 얼굴을 본 순간부터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윤성아가 아주 위험한 존재라는 것을 여자의 육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다음날 출근하자 송유미가 윤성아를 찾아와 따지듯이 물었다.

“윤 비서, 어제 퇴근할 때가 돼도 마카롱이랑 커피는 보이지 않던데요? 일 설렁설렁하는 거예요? 아니면 아예 사러 가지도 않은 거예요?”

윤성아는 어젯밤 산 디저트와 커피를 가져오며 말했다.

“유미 씨, 베리 디저트랑 스타 로드 카페는 거리가 너무 멀었어요. 게다가 다 인스타 맛집이라 대기 줄이 엄청나게 길어요. 어제 사 왔을 때, 유미 씨는 이미 퇴근했더라고요.”

“그래서요?”

송유미가 차갑게 윤성아를 보며 말했다.

“그건 당신 능력이 부족한 것 같은데? 지금 나더러 하루 지난 마카롱이랑 차갑게 식은 커피를 마시라는 거예요?”

그녀는 디저트와 커피를 집어 들어 망설임 없이 윤성아에게 던졌다.

온몸이 흥건하게 젖은 윤성아는 꼴이 말이 아니었다.

“이런 하찮은 일도 제대로 못 하면서 평소에 내 약혼자 강주환의 비서 일은 어떻게 해왔던 거죠?”

“뭐, 이젠 상관없어요! 앞으로 이런 일, 당신이 할 필요 없어요. 당신 손에 있는 모든 업무를 나에게 인수인계하고 사직서 쓰세요.”

강주환의 약혼녀 신분인 송유미 앞에서 윤성아는 고개를 떨군 채 말없이 떠날 수밖에 없었다. 송유미는 그녀를 지배하고 떠나보낼 ‘권력’이 있었다.

출장 3일 차에 강주환이 돌아왔다.

다시 회사에 돌아와 한눈에 윤성아의 자리에앉아있는는 송유미를 보게 된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송유미? 네가 왜 여기에 있어?”

가문끼리 하는 혼약이라 조만간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그래서 강주환도 송유미가 그의 약혼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흐드러지게 웃으며 송유미가 다가와 그의 팔짱을 다정하게 끼며 말했다.

“여기에 있는 게 어때서? 주환아, 이젠 내가 너의 수석 비서야.”

관련 챕터

최신 챕터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