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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그녀의 마지노선

임씨 아주머니는 얼른 입구 쪽으로 나가 유준을 맞이했다.

“사장님, 오셨어요!!.”

정유준은 입었던 외투를 건네주며 물었다.

“그 사람은?”

“아가씨…… 막 올라갔어요. 입맛이 없는지 두세 입도 안 먹었어요. 그리고 기분이 안 좋아 보였어요.”

정유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방귀 낀 놈이 성낸다고…… 아직 왜 양다인을 밀었는지 따져 묻지도 않았는데, 오히려 지가 먼저 화를 내다니…….’

식탁 위의 거의 먹지 않는 음식들을 힐끗 보고는, 화난 얼굴로 위층으로 올라가 탕, 탕, 탕, 방문을 두드렸다.

곧 하영이 문을 열었다.

문 앞에서 차가운 냉기를 풍기는 남자를 보면서도 하영은 무심하게 말을 했다.

“무슨 볼일 있으신가요? 할 말 있으면 하세요.”

자신과 거리를 두는 듯한 하영의 모습에 정유준은 되려 짜증이 밀려왔다.

“나한테 뭐라고 변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아?”

남자가 물었다.

하영은 눈도 깜짝 않고 고개를 들어 대답했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는데요.”

정유준은 실눈을 뜨고 일갈했다.

“강하영, 너 자꾸 내 인내심의 한계를 테스트하지 마!”

하영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들어 정유준을 똑바로 쳐다봤다.

“제가 어떻게 감히 도발할 수 있겠어요? 내가 말한다고 믿을 수 있겠어요?”

정유준의 짜증 섞인 목소리.

“그래서 해명조차도 하지 않겠다? 그쪽은 너 때문에 발목 삐었어!”

하영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봐봐, 이미 유죄 판결을 내렸는데 뭘 더 물어봐?’

하영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러니까 지금 나한테, 내가 양다인 씨를 밀었다는 걸 인정하라는 말, 아닌가요?

네 맞아요. 이제 됐어요? 그래요, 난 이렇게 악랄한 여자예요.”

하영에 대해선 의심하고…… 첫사랑에 대해선 안쓰러워하고…….

그렇게 눈에 거슬리면, 내쫓으면 그만이다.

잘못을 하고도 당당한 하영의 모습을 본 유준의 분노가 순간 폭발했다.

그는 하영을 자신의 품으로 힘껏 당겨 안았다.

고개를 숙여 하영에게 강제로 키스를 하며 입술을 힘껏 물었다.

살이 찢어지는 고통과 함께 피비린내가 두 사람 입안에 가득 찼다.

하영은 무의식적으로 정유준을 밀었지만 그의 품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처음으로 농락당하는 게 어떤 느낌인지 느꼈다!

그녀는 애처롭게 눈물을 흘리며, 경직된 몸을 풀고 가만히 있었다.

눈물의 촉촉함을 느꼈는지 유준은 이내 팔을 풀었다.

칠흑 같은 유준의 눈동자속엔 하영의 눈에 맺힌 눈물이 보였다.

유준은 아차 싶은 순간, 무언가가 손에서 빠져나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런 생각도 잠시, 유준의 눈에는 다시 노기가 어렸다.

그는 감정을 누르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왜? 나랑 키스하는 게 그렇게 싫어?”

하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녀가 다시 고집을 부리는 것을 본 유준은 짜증이나 몸을 돌려 나갔다.

곧 차의 엔진 소리가 아래층에서 들려왔다.

하영은 그저 멍하니 창밖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꺼이 대체품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체품이 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게 마지노선이다.

……

몬스터 나이트클럽.

정유준이 들어오자, 룸에 있던 두 남자는 체념한 듯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어색한 분위기 속 침묵을 깨기 위해 배현욱이 먼저 말을 꺼냈다.

배현욱은 정유준 옆으로 옮겨왔다.

“또 헛물켠거야? 그 여자 아니야?”

유준은 눈총을 주며 비아냥거렸다.

“말도 참 더럽게 할 줄 모르네…….”

배현욱은 얼른 입을 다물고, 육기범에게 시선을 던졌다.

육기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준아, 그 강 비서, 오늘 왜 같이 안 왔어?”

정유준은 얼굴이 험악해졌다.

“그 여자 이야기, 한 번만 더 꺼내 봐…… 한동안 여자 곁에는 얼씬도 못 할 줄 알아…….”

육기범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얼른 일어나 정유준한테서 멀리 떨어져 앉았다.

배현욱은 유준이 강 비서 때문에 화났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래서 곧 화제를 돌렸다.

“정유준, 너의 그 생명의 은인인가 뭔가 하는 여자는 언제 우리에게 보여 줄거야?”

육기범도 배현욱의 장단에 맞춰 맞장구를 쳤다.

“맞아, 네가 그렇게 찾아 헤매던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보기나 하자…….”

정유준은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불쑥 상관없는 질문을 해댔다.

“혹시 사람들은…… 어떤 일을 겪었을 때 갑자기 성격이 변하지?”

배현욱과 육기범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분명 뭔가가 있다.

배현욱이 말했다.

“삶의 고달픔과 사랑 아닐까…….”

정유준은 그를 잠시 바라보다 생각에 잠겼다.

……

새벽.

가까스로 잠든 하영은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깼다.

핸드폰을 들고 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배현욱이었다. 바로 통화 연결했다.

[강 비서님? 자?]

배현욱이 물었다.

하영은 일어나서 답했다.

“배사장님 무슨 일이세요?”

배현욱은 술에 취한 정유준을 바라보며 힘겨운 듯 얘기를 이어 나갔다.

[유준이…… 오늘 술을 많이 마셨는데, 데리러 올 수 있어?]

“…….”

배현욱이 있는 곳에는 필시 육기범도 있을 것이다. 그들 두 사람은 정유준의 가장 친한 친구이다. 유준에게 술을 먹이고 속마음을 떠보는 장면을 한두 번 본 것도 아니다.

지금 그들이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스스로 덫에 걸려들고 싶지 않았다.

그냥 시원하게 거절했다.

“배 사장님, 허 비서님께 연락하세요. 제가 지금 상황이 여의찮아서요. 별다른 일이 없으면 먼저 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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