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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집으로 가서 살아 주세요

다음 날 깨어난 강무진의 안색은 평소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무진의 곁에 선 비서 손건호가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그대로 말해줬다.

무진은 길고 늘씬한 몸을 곧게 세우고 뒷짐을 진 채 창 앞에 섰다. 그의 눈동자에 미미한 놀람이 담긴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향낭이 자신에게 효과 있다는 걸 그 역시 짐작하지 못한 듯했다.

보고를 들은 강무진의 입에서 지체없이 담담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렇군.”

……

지난 밤을 무척 바쁘게 보낸 성연은 호텔의 침대에서 단잠을 자고 있었다.

쾅쾅쾅…….

지축을 흔드는 듯한 소리에 성연이 놀라 잠에서 깼다.

이를 빠드득 갈며 솟구치는 화를 꾹 누른 채 침대에서 내려와 문을 열었다.

매섭게 치켜 뜬 성연의 눈에 냉기가 흘렀다. 송씨 집안 세 사람은 자신들도 모르게 주춤거리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아니, 이게 시골 계집애 기운이야?’

송씨 일가 세 사람을 본 성연이 눈살을 찌푸리며 팔짱을 끼고 섰다. 예의 그 나른한 자세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방금 전의 기세는 순전히 착각라는 듯이.

“무슨 일?”

문 앞에는 송종철과 임수정이 서 있었고, 두 사람 뒤에 숨듯이 선 송아연이 보였다.

“네가 말한 대로 아연일 데려왔어.”

송종철은 올라오는 화를 참으며 뒤에 서 있던 송아연을 앞으로 끌어당겼다.

시선을 송아연에게 보낸 성연이 나른하게 쳐다보았다.

앞으로 떠밀려 나온 송아연은 웃음기가 다분한 성연의 눈을 마주 대하는 순간, 다시 화가 나 노려보았다.

송성연이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이 저런 촌뜨기에게 사과해야 하다니, 이런 치욕이 없었다.

송아연은 아무 말도 없이 노려보기만 했다. 성연 역시 느긋이 편한 자세로 문 가에 기대어 서서 기다렸다.

성질을 참지 못한 송종철이 송아연을 재촉했다.

“아연아, 어서.”

송아연이 도와 달란 듯이 임수정 쪽을 쳐다보았지만, 역시 못 본 척 슬쩍 고개를 돌리는 임수정이었다.

더 이상 기댈 곳이 없어지자, 입술을 깨문 채 내키지 않는 듯 재빨리 말했다.

“언니, 그땐 내가 철이 좀 없었어요. 언니 제가 사과할게요. 부탁해요. 집으로 가서 같이 살아요.”

‘앵앵’모기가 우는 듯 가느다란 목소리에, 말하는 속도도 너무 빨랐다. 귀를 기울여 자세히 듣지 않으면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성연이 귓불을 만지작거리며 느릿느릿 말했다.

“사과에 성의가 없어.”

송아연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송성연에게 한 마디 하려는데, 누가 등뒤를 콕콕 찔러댔다.

‘됐어, 송성연과는 나중에 결판 내!’

한 차례 심호흡을 한 그녀는 눈 딱 감고 송성연 앞에 허리를 굽혔다.

“언니, 미안해요. 집으로 가서 우리와 같이 살아 주세요.”

사과를 하는 순간에도 송성연에 대한 미움으로 이가 갈렸다.

송성연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듯이 송종철이 쐐기를 박았다.

“방은 네 마음껏 고르면 된다.”

아무런 반응 없이 가만히 서 있던 성연은 송종철의 인내심이 바닥을 보일 즈음해서야 마지못한 듯이 받아들였다.

“짐 싸는 동안 기다리세요.”

송씨 저택에 도착해서 복도 끝의 방을 선택한 성연은 자신의 뒤에 선 세 사람에게 선언했다.

“제 방은, 제 허락 없이는 누구도 출입할 수 없어요. 방해하지 마세요.”

송성연의 말투를 들으면, 자신이 주인인 것 같다. 반대로 그들 세 사람은 지 마음대로 부려먹는 노예이고.

송아연은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 시골에서 온 계집애가 뭘 믿고 이렇게 기고만장인 거냐고?

성연의 턱짓에 화가 치민 임수정이 방으로 돌아와 송종철에게 따졌다.

“도대체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데?”

송재훈이 임수정을 보듬어 안고서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

“곧 강씨 집안에 연락해서 혼약을 맺을 거야. 그럼 바로 내보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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