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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결혼은 없던 일로 하자고?” 유진은 두 귀를 의심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제일 화려한 결혼식을 약속하고 그녀를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주겠다던 사람이었다.

그 맹세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했다.

7년을 바쳐 사랑한 사람이었는데!

유진의 얼굴에 흐르는 피를 향한 한빈의 눈빛에서 혐오감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너랑 강지찬 사이의 일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빈의 엄마가 다리를 내려치며 곡소리를 했다.

“아이고 망신이야. 넌 강지찬이랑 얼굴도 못 들 일을 저질러놓고 무슨 낯짝으로 우리 집에 들어선 거니?”

유진은 한 대 맞은 듯 어안이 벙벙했다.

“그게 아니라, 저는...”

한빈 엄마의 육중한 몸이 그녀에게 덮쳐오더니 단번에 유진의 목덜미를 움켜쥐고는 옷깃을 찢으려 했다.

“변명할 생각 마. 내가 확인해야겠어.”

유진은 어젯밤 이미 한바탕 당한 뒤라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

옷이 찢어지고 엉망진창이 된 백옥같이 뽀얀 피부가 드러났다.

한빈의 엄마는 분노에 찬 채 소리 질렀다.

“이 천한 년. 내 아들을 두고 바람을 피워?”

손을 높게 쳐들며 한 대 칠 기세였다.

유진은 이미 이마가 찢어진 상태라 얼굴까지 때리는 건 참을 수가 없었다.

한빈의 엄마가 그녀를 탐탁지 않게 여긴 건 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한 손으로 옷깃을 움켜쥐고 한빈의 엄마를 밀어내고는 그의 앞으로 달려가 말했다.

“한빈아, 네가 가라고 했잖아. 난 널 살리기 위해 그랬어!”

“그렇다고 몸까지 내주란 소리는 안 했잖아!”

한빈이 벌레 씹은 표정으로 버럭 소리질렀다.

“나도 남자야! 내 약혼녀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외간 남자한테 안겨 나갔는데. 너랑 강지찬 사이의 일은 이미 모두가 알게 됐어. 정유진 네가 직접 말해 봐. 넌 내 감정에 미안하지도 않니?”

유진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를 구하기 위해 견뎌낸 치욕이었다. 약혼자가 되어서 마음 아파하지도, 부드럽게 위로해주지도 않은 채 오히려 그녀를 창피하다고 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옆에 있던 소희가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유진아, 너도 한빈이 탓하지마. 너랑 강지찬 사이의 일이 워낙... 너도 한빈이 널 얼마나 사랑하고 존중해줬단 건 잘 알고 있잖아. 나한테도 너희 신혼 첫날밤만을 기대하고 있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네가 너무 가볍게 행동했어, 한빈이 진심도 몰라주고.”

유진은 이 어이없는 헛소리에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 애초에 이 모든 게 내 탓이란 말인 거지?

그녀는 주먹을 움켜쥐고 소희에게 대꾸하지 않은 채 눈앞의 남자만 바라봤다.

“한빈아,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 내가 없으면 넌 아직 구치소에 있었을 거잖아.”

눈이 새빨갛게 충혈된 채 몸을 부르르 떨어대는 모습이 유난히 처량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이런 경국지색을 자신은 손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단 걸 생각하니 또다시 분노가 차올랐지만, 겉으로는 당당한 듯 소리 질렀다.

“차라리 감방에 가더라도, 차라리 평생 거기서 갇혀 살더라도 누군가가 먹다 버린 애인을 갖고 싶진 않아!”

자신의 귀한 아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자 엄마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 천한 년, 당장 꺼져!” 또다시 유진을 잡고 난리를 피웠다.

그때 밖에서 대기하던 도우미가 난감하단 듯 말을 올렸다.

“대표님, 밖에서 최의현이라는 선생님이 찾으십니다.”

“최의현?”

한빈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낯빛이 확 바뀐 채 물었다.

“여긴 왜 온 거야? 지금 어디 있어?”

소희 역시 황급히 한빈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강 씨 가문에서 그만하기로 했잖아. 최의현은 왜 온 건데?”

“내가 어떻게 알아?”

한빈은 불쾌함에 사로잡힌 데다 엉망이 된 유진을 보더니 더욱 증오심이 치밀어 소리 질렀다.

“당장 위층으로 못 꺼져?”

유진은 심장이 찢겨나갈 듯 아파왔다. 이곳에서 더 있지 못하겠다는 걸 알아채고 간신히 테이블을 붙들고 일어섰다.

그녀가 미처 올라가기 전에 최의현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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