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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백조 여전사

방안에서 주현호는 아직도 분에 겨워 씩씩대고 있었다.

“이선우 내가 죽여버릴 거야. 5년 전 그때 죽였어야 했어.”

“감히 돈을 돌려달라고 해? 딱 기다려. 내가 어떻게 하나.”

부잣집 도련님으로 살아온 주현호는 이런 모욕감을 견디지 못했다. 양지은도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아까 맞은 얼굴은 이미 멍들어 있었다.

양지은네도 그다지 잘 사는 편이 아니었었다. 하지만 주현호와 만나고 난 뒤 사업도 굉장히 잘 풀리기 시작하면서 발전속도가 굉장히 빨라지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니 그녀는 한 푼도 이선우에게 줄 수 없었다.

“자기야 안심해, 저런 놈 하나 죽이는 건 일도 아니야. 죽이지 못하더라도 다시 감옥에 집어넣으면 그만이야. 이선우 엄마가 교외 쪽에 산다고 했지? 우리 부하들이 관리하는 곳이니까 일단 걔네한테 연락해서 엄마부터 장애인으로 만들어 버려야겠어.”

주현호가 전화를 걸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주현호 아버지로부터 온 전화였다. 전화를 끊고 난 주현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양지은에게 말했다.

“아빠한테서 온 전화야. 둘째 삼촌이 곧 올 거라고 했어. 둘째 삼촌이 말하기를 부대에서 백조라고 불리는 새로 임명된 전쟁여신이 양성으로 오고 있대. 그래서 내일 아침 일찍 집에 가봐야 할 것 같아.”

“둘째 삼촌이랑 그 전쟁여신님을 만나러 가야 하거든. 우리 삼촌도 전쟁 영웅이셔. 이건 우리 가문이 일떠설 기회야. 전쟁여신이라 불리는 그분의 도움을 받을 수만 있다면 이제 우리도 귀족가문으로 거듭날지도 몰라”

“아, 그리고 삼촌이 허락하셨어. 직접 백조님한테 우리 결혼식 주례 좀 봐달라고 부탁해 주실 거래.”

양지은은 그 말을 듣자 너무 기뻐하며 주현호에게 입을 맞췄다.

“진짜? 오빠가 최고야. 근데 그 백조님 신분이 삼촌분보다 높은 거야?”

“당연하지, 우리 삼촌이 영웅이라면 그분은 신이야. 그것도 별을 7개나 단 신이시라고. 같은 레벨이 아니야.”

양지은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 굉장히 짜릿하고 흥분되는 기분이었다. 주현호를 선택하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 너무 좋아. 이제 우리 오빠랑 똑 닮은 아이 하나 가질까?”

양지은은 기뻐하며 주현호를 와락 끌어안았다.

술집에 도착한 이선우는 방을 하나 잡고 테이블을 가득 채울 만큼 술을 많이 시켰다. 음악을 들으며 한두 잔 마시던 그는 어느새 취했고 금방 잠에 들어버렸다. 잠에 들자마자 웬 여자 두 명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드디어 잡았네. 장군님, 이분이 정말 한 번도 보지 못했다던 그 약혼남이에요? 주정뱅인데요?”

“조용히 해, 이설.”

장군이라고 불리는 여성은 뛰어난 미모에 꼿꼿한 자태를 가지고 있었다. 머리는 높이 올리 묶었는데 차가운 위엄도 느껴졌다. 큰 눈은 그윽하면서도 반짝였고 창백하리만치 혈색이 없는 갸름한 얼굴이 언제든지 죽을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처럼 서늘했다. 이 여인의 이름은 최은영이었다.

새로 임명된 전쟁의 여신, 코드네임 백조였다. 최은영은 가볍게 기침을 한번 하고는 깨어날 생각이 없어 보이는 이선우를 바라봤다.

“4년 전에 집에 돌아갔을 때 아빠가 공항까지 마중 온 적이 있어. 그날 길에 잠복해 있던 원수들한테 습격을 당해서 아빠가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로 크게 다치셨었어. 만약 그때 은인이 나타나서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나랑 우리 아빠는 그 자리에서 죽었을 거야.

“그 후에도 그분이 우리 집안을 많이 도와주셨는데 아무런 보답도 바라지 않으셨어. 그래서 우리 아빠가 그 집안에 나를 시집보내겠다고 하셨는데 자식은 없고 제자가 한 명 있다고 하시더라.”

“그게 바로 이선우, 이 사람이야. 저 사람 손에 나랑 똑같은 반지가 있으니까 틀림없을 거야.”

최은영은 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내 손에 꼈다. 방금 한숨에 말을 많이 했더니 낯빛이 창백해지고 숨 쉬기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 이설은 이선우를 보며 비웃었다.

“장군님, 지금이 무슨 시댄데 삼촌은 아직도 그렇게 봉건적인 사상을 가지고 계시는 거예요? 이건 그냥 장군님 인생 가지고 장난치는 거나 다름없잖아요. 이 사람 좀 봐요. 전혀 내세울 거 없는 평범한 남자잖아요. 게다가 감옥까지 갔다 오고 방금 여자한테 바람 맞히기까지 했는걸요. 만약에 그 은인이라는 분이 지금 이 모습을 보면 당장 때려죽이려고 들걸요. 이런 형편없는 제자가 어디 있냐고 그러시면서.”

“장군님, 이제 장군님은 전쟁여신이라는 타이틀도 붙은 사람이에요. 3개월 전에 그 전쟁에서 혼자 적군의 장군을 세명이나 무찔렀잖아요. 하지만 그만큼 본인도 많이 다치셨어요. 명의들이 줄을 서서 어떤 대가를 치르던지 장군님 병을 고쳐드리겠다고 그러는데 왜 부대의 명령에 따르지 않으시고 양성까지 와서 이선우를 찾는 건데요.”

“아 장군님, 그냥 돌아가서 치료받아요 우리. 네?”

“부탁드려요 제발.”

이설은 아예 꿇어앉아서 눈물까지 흘렸다. 최은영은 기침을 하면서도 이설의 등을 토닥여줬다.

“이설, 다 소용없어. 그들의 의술이 높긴 하지만 내 병은 못 고쳐. 오직 은인님만이 고칠 수 있어. 근데 그 은인을 지금 찾을 수가 없어. 그동안 빚을 그렇게 많이 졌는데 무슨 낯짝으로 또 민폐를 끼치겠니.”

“나한테 남은 날이 많지 않아. 그리고 난 제국에도 가족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공을 세웠어. 그리고 은인님이랑 시집을 가겠다고 약속까지 했는데 이제 와서 어떻게 취소해.”

“난 이제 그냥 일반 여인으로 지내면서 이선우 씨 곁에 있고 싶어. 내세울 데 없는 사람이라도 이 사람 인생에 잠깐 머물다 가는 그런 사람이 될게. 그리고 어느 날에 조용히 떠나려고.”

“이설, 이 남자를 데리고 떠나자.”

말을 마치고 최은영은 옆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부드러운 미소였다.

다음날 아침, 이선우는 목이 말라 잠에서 깼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여기가 어디지?”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 어제 자신이 잠들었던 술집이 아니었다. 그는 당황해서 주변을 둘러봤다. 낯선 여성의 방, 그리고 그 방 침대에 자신이 누워있었다. 이때 문이 열리고 최은영이 물을 한 컵 가지고 들어왔다.

“깼어요? 물부터 마셔요.”

이선우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구세요? 여긴 어디고요?”

“지금이 몇 시죠? 어제 전 분명 술집에서…”

이선우가 말을 멈췄다. 그제야 눈앞의 이 여인이 얇다 못해 속살이 다 비치는 잠옷을 입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몸선이 살짝살짝 비치는 모습이 굉장히 매혹적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눈에 띄는 건 꽤나 깊은 상처를 입은듯한 모습이었다. 이 여인은 도대체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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