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는 무대 위였다.유진우는 검을 들고 서 있었다. 유진우는 홀로 모든 사람을 기세로 제압했다. 수천만 명의 무사들이 전전긍긍하며 무서워했고 서로에게 싸움을 미루기 시작했다.누구도 감히 먼저 앞서가지 못했다.오연호는 이 광경을 보면서 무척 화났고 분노로 가득찼다.“당신들! 뭘 무서워하는 거지? 유진우가 아무리 대단해도 그의 옆에는 누구도 없어. 당신들이 같이 한꺼번에 몰려가기만 하면 얼마든지 저놈을 죽일 수 있다고!”모든 무사가 감히 나서지 못하자 오연호는 다시 여러 파벌의 장교들에게 눈을 돌리며 일일이 지명했다.“장 마스터, 천 부맹주, 격심 대사, 로 수장, 풍 장교... 당신들은 무림 고수로서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으십니까! 당장 제자들을 데리고 저놈을 죽이세요!”“이...”그 말을 들은 장수현 일행은 난처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구호를 외치는 일은 아무런 곤란도 없었다.하지만 정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라면 심히 잘 헤아려 봐야 했다.송만규를 죽일 수 있는 실력이라면 그들의 생명과 안전도 위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일단 상대방을 궁지에 몰아넣게 된다면 자신의 생명까지도 잃을 수 있었다.지금의 상황은 좀 애매했다.보통 무사들의 실력은 유진우를 위협할 수 없었고 여러 파벌의 고수들은 또 목숨을 매우 아꼈기 때문에 앞장서서 죽이려 하지 않았다.문득 현장의 형세는 얼음처럼 얼어붙어 있었다.“정말 쓸모없는 녀석들이구먼!”그 장면을 본 오연호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얼굴이 빨개졌다.무림의 사람들은 역시 잡으면 흘러내리는 모래와도 같아 전혀 믿을 수 없었다. 만약 진무사의 집법팀이라면 적이 아무리 강해도 주저하지 않고 명령을 집행할 것이다.지금의 상황으로 보면 오연호가 직접 나서야만 비로소 이 국면을 바꾸게 할 수 있었다.많은 생각에 잠겨있던 오연호는 차가운 눈빛으로 다시 활을 잡아당겼다.주석으로 만들어진 화살촉은 유진우의 심장을 겨누었다.“찌이익!”오연호는 천천히 힘을 가하기 시작했고 궁은 조금씩 구부러져 변형
오연호뿐만 아니라 장수현 일행도 애꾸눈 노인을 보며 깜짝 놀랐다.그들은 모두 무도의 마스터였기 때문에 감지력이 매우 뛰어났다. 어떤 바람이 불어도 마스터의 눈과 귀를 속일 수 없었다.그러나 애꾸눈 노인이 나타났을 때 이상하게도 마스터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눈에는 애꾸눈 노인 기운의 파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너무 평범해 보여서 다른 늙은이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그런데 이 평범한 늙은이가 오연호의 화살을 받을 수 있었다.그럴 리가 없었다!마스터들이 애꾸눈 노인의 내공을 알아보지 못할 가능성은 단 하나뿐이었다.그것은 바로 앞에 서 있는 애꾸눈 노인 실력이 그들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이었다.“누구야? 진무사의 일에 관여하다니!”오연호는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유진우 한 사람도 상대하기에 충분히 힘든데 또 최고의 강자가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진무사가 그렇게 대단해? 내가 그날 들락날락할 때도 너희들이 내게 감히 아무 짓도 못 하던데?”애꾸눈 노인은 콧구멍을 후비며 느른한 표정으로 말했다.“건방진 노인네!”오연호는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웬 미친 늙은이가 여기서 이러고 있어? 감히 아무 소리나 막 해대다니! 죽고 싶어?”“아무 소리나 막 한다고?”애꾸눈 노인은 눈썹을 살짝 올리더니 손가락으로 콧구멍에서 시커먼 코딱지를 파내어 오연호를 향해 튕겨 보냈다.휙!코딱지는 총알처럼 뿜어져 나와 순식간에 100미터 거리를 가르며 오연호를 향해 날아갔다.펑!폭발 소리가 울려 퍼졌다.오연호는 마치 기차에 부딪힌 듯 십여 미터나 날아가 그대로 땅에 떨어졌다.순간 입과 코에 피가 뿜어져 나왔고 오연호는 비명을 질렀다.“어?”이 광경을 본 현장의 사람들은 들끓기 시작했다.진무사의 당주가 되려면 최소한 무도 마스터 실력이어야 했다.그런데 뜻밖에도 눈앞의 노인은 코딱지로 무도 마스터에게 중상을 입혔다. 누가 봐도 믿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어디서 나타난 늙은 괴
오연호는 너무 놀란 나머지 그대로 얼어붙었다.온몸을 벌벌 떨었고 심한 공포에 휩싸였다.술광이 나타난 후로 오연호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의 공포가 드러났기 때문이다.10년 전 오연호는 진무사에서 하찮은 존재였다.그날 밤 포위 임무를 받은 오연호는 투지와 열정이 넘쳤고 매우 흥분했다. 자신의 명성을 떨칠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그러나 막상 싸움터에 나가보니 현실이 얼마나 가혹한지 알게 되었다.오연호는 동료들이 도영검에 의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그는 자신의 당주가 단칼에 목이 잘리는 것도 직접 보았다.오연호는 과거 우러러보며 존경심으로 높이 보았던 강자들이 연약한 토끼처럼 다치기만 하면 죽는 광경을 목격했다.그 피비린내 나고 무서운 장면은 오연호의 평생 잊지 못할 악몽이 되었다!매번 생각날 때마다 참을 수 없이 떨렸다.그날 밤 사실 오연호가 운이 좋지 않았다면, 갑자기 죽은 척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까지 살 수 없었을 것이다.그날 밤의 임무 이후로 오연호는 승진했지만 겁도 많이 먹었다.웅대한 포부고 뭐고 모두 없어졌다.오연호는 악몽이 이미 사라져서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줄 알았다.그러나 오늘 이곳에서 그 당시의 죽음의 신을 보게 된 것이다.과거의 끔찍한 기억들이 오연호의 몸에 숨겨져 있던 두려움을 다시 일깨워줬다.“뭐? 술광이라고? 이 늙은이가 술광이라니! 말도 안 돼! 이미 죽었다고 하지 않았어?”“어머! 술광이 살아있다니. 그것도 강남에 나타나다니! 만약 이 소식이 전해진다면 전체 용국이 흔들릴지도 몰라!”“술광이 누군데요? 그렇게 대단해요?”“쓸데없는 소리! 술광은 대 마스터이고 천하 10대 강자 중의 한 명이야. 게다가 세계 정상에 서 있는 인물인데 당연히 대단하지!”“와! 이렇게 대단하다고요? 천하 10대 강자라니! 천하무적 같은 존재네요!”“...”지금 이 순간 오연호만 놀란 것이 아니다.대 마스터 술광의 정체를 알게 된 여러 파벌의 고수들은 존경스러운 표정을 드러냈다.아무리 오만하고 거만한
무심한 듯한 동작이지만 보이지 않는 위엄이 느껴졌다.술광의 이 코딱지가 무도의 마스터를 한 방에 날려버린 것을 잊을 수가 없었다.“술광 선배님, 조금 전의 일은 순전히 오해입니다.”질풍당의 오너는 재빨리 두 주먹을 가슴 앞으로 맞대면서 예의를 갖추며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맞습니다! 우리는 모두 진무사의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 저희도 어쩔 수 없었어요. 술광 선배님께서 너그럽게 양해해 주세요.”성라문 수장도 바로 나서서 사과했다.“이봐! 뭐 하는 거야? 빨리 무기를 내려놓지 못해! 유형제를 다치게 한다면 그 결과는 너희들이 책임질 줄 알아!”청양종 종주는 더 머리를 굴렸다. 그는 애써 유진우를 보호하는 시늉을 하며 주위의 무사들에게 노발대발했다.모두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무기를 거두어들였다.칼을 빼내면서 흥분했던 긴장감도 순식간에 풀렸다.진무사의 당주조차도 도망친 이 상황에서 그 누구도 술광 앞에서 건방지게 굴지 못했다.“술광 선배님, 오늘 일은 정말 뜻밖의 사고였어요. 저는 부맹주로서 정말 면목 없어요.”이때 진원효이 나서서 크게 말했다.“사과의 뜻으로 유 마스터를 새로운 무림 맹주로 추천하겠습니다!”그 말이 떨어지게 무섭게 현장은 떠들썩했다.“뭐? 유진우를 맹주 자리에 올린다고?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무도계는 항상 실력으로 맹주 자리에 올랐어요. 유진우가 송만규를 제치고 새 맹주 자리로 올라서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봐요.”“유진우가 실력은 강하지만 경력이 너무 짧아요. 어린 나이에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라고 봐요.”“네, 맞아요. 유진우는 악랄하고 인정이 모자라기 때문에 그가 맹주로 된다면 강남 무림 전체가 봉변 당할지도 몰라요!”“...”진원효의 제안에 많은 사람이 수군수군했다.지지하는 사람도 있었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특히 일부 큰 파벌의 고위층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무림계는 단지 사람과 싸우는 일이 아니라 세상 물정도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실력이 막강하다 해도 무
술광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현장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다.조금 전까지 무림의 공공의 적이었던 유진우는 곧바로 무림 맹주로 추천받았고 사람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다. 지금 이 순간 그의 위엄을 뛰어넘을 자가 아무도 없었다.무대 아래에서 깍듯하게 인사 올리는 무인들을 내려다보는 유진우의 표정은 한없이 무뚝뚝했고 눈빛도 매우 싸늘했다. 흥분한 기색이라곤 눈곱만치도 없었고 그저 이 상황이 어이없기만 했다.정의감이 넘치는 무인들 말고는 대부분 사람들은 줏대 없이 쉽게 흔들리는 사람들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이라고 난리였는데 지금은 친절하기 그지없었다. 180도 바뀐 태도에 유진우는 가소롭기만 했고 무림 맹주 자리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송만규에게 도전한 건 단순히 복수하기 위해서였다.“내 능력에 한계가 있어서 강남의 무림 맹주 자리 감당할 자신이 없어요. 다른 사람으로 바꿔요.”유진우는 단칼에 거절했다.“네?”그의 말에 사람들은 저마다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유진우가 거절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지금 장난해?’무림 맹주는 수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명예였고 모든 무인들의 최고 목표였다. 무림 맹주 자리에 앉으면 신분과 지위가 상승하는 건 물론이고 엄청난 권력도 손에 쥘 수 있었다.무림 전체에 얼마나 많은 파벌의 오너와 강자들이 맹주 자리에 앉으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지 모른다. 그런데 유진우는 굴러들어온 복이 귀한 줄 모르고 단칼에 거절했다. 머리가 잘못된 거 아닌가?“마스터님, 강남 전체에서 무림 맹주 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마스터님밖에 없어요.”진원효의 얼굴에 경악한 기색이 역력했다.‘송만규한테 공개적으로 도전한 게 명예와 권력 때문이 아니었어? 무림 맹주만 되면 뭐든지 다 가질 수 있는데 왜 거절해?’“맞아요, 마스터님. 마스터님은 우리 젊은 세대의 리더예요. 마스터님이 무림 맹주가 된다면 모두 진심으로 굴복할 겁니다.”태소원도 나서서 설득했다. 유진우를 진심으로 숭배하기에 그가 최고의 자리에 앉기를 바랐다.맹주 자리에
“영감님, 가요. 술 마시러.”천영 구슬을 챙긴 후 유진우는 사람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창공보검을 들고 링 아래로 내려왔다. 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알아서 길을 터주었다.오늘 유진우가 보여준 실력은 모든 사람들을 굴복하게 했다. 유진우가 왜 무림 맹주 자리를 거절했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으로선 적어도 좋은 일이었다.특히 각 파벌의 오너들은 맹주 자리를 빼앗으려고 혈안이 되어있었다. 무림에 새로운 바람이 곧 불어닥칠 것 같았다.“아 참...”그때 유진우는 문득 뭔가 떠올랐는지 발걸음을 멈추고 송천수를 보았다.“화근이 하나 더 있다는 걸 깜빡할 뻔했네.”“뭐... 뭐 하려고?”송천수의 표정이 급변하더니 두 눈에 당황함이 스쳤다.“내가 들어올 때부터 죽이겠다느니 어쩌겠다느니 난리 쳤잖아. 오늘 널 없애지 않으면 편히 못 잘 것 같아서 그래.”유진우의 표정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양측 모두 목적을 이루지 못하면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기에 송천수의 목숨을 남겨두면 나중에 화를 초래할지도 모른다.“너... 너... 함부로 하지 마. 난 무도 연맹의 장로야!”당황한 송천수는 연신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조금 전 찍소리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던 건 몰래 빠져나가기 위해서였는데 결국에는 들키고 말았다.“무림 맹주도 죽였는데 한낱 장로를 두려워하겠어?”유진우가 코웃음을 치며 손가락을 튕기자 은침 하나가 순식간에 날아갔다. 그러고는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송천수의 미간을 찔렀다.“너...”송천수가 입을 벌리면서 뭐라 얘기하려던 그때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더니 그대로 굳어버렸다. 곧이어 시뻘건 피 한 방울이 미간에서 흘러내렸다.송천수는 숨이 멎은 채 그대로 바닥에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얼굴에는 두려움과 경악이 가득했다.그 광경에 송천수의 몇몇 부하들은 혼비백산한 나머지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손이야 발이야 빌었다.유진우는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시선을 장수현 일행에게 돌렸다. 두 눈에 짙은 살기가 가득했다.“
“유 대표님, 이건 이 대표님께서 준비한 이혼 합의서입니다. 사인 부탁드려요.”청성 그룹 대표 사무실 안.OL유니폼을 입은 장 비서가 A4용지 한 장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그녀의 맞은편엔 수수한 옷차림에 준수한 외모를 지닌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이혼이라니? 무슨 뜻이지?”유진우가 흠칫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아직도 모르시겠어요? 대표님과 이 대표님의 결혼생활은 이젠 끝이에요. 두 분은 더 이상 같은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요. 대표님의 존재가 이 대표님에겐 걸림돌만 될 뿐이에요!”장 비서가 가차 없이 쏘아붙였다.“걸림돌?”유진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러니까 청아가 날 걸림돌이라고 생각한다는 거야?”두 사람이 결혼할 때 이씨 일가는 한창 저조기에 처해있어 빚더미가 산을 이뤘다.유진우가 그런 이씨 일가를 도와 난관을 극복해 주었다.그런데 인제 와서 부귀영화를 누리더니 이청아가 그를 발로 뻥 차버리다니.“그렇게 생각하셔도 좋습니다.”장 비서는 턱을 치켜세우고 책상 위의 잡지를 가리켰다. 잡지 표지 화면에 절세미인과도 같은 한 여자의 사진이 찍혀 있었다.“유 대표님, 이 타이틀 좀 보세요. 짧디짧은 3년 안에 이 대표님의 가치가 무려 2천억 원을 돌파했다고요. 기적을 창조할 뿐만 아니라 강능 전체에서 가장 핫한 미녀 대표가 되었어요! 이 대표님은 뛰어난 미모와 실력으로 구름 위를 걸으며 만인의 존경을 받고 있어요! 그런데 정작 유 대표님은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 이 대표님께 전혀 어울리지 않아요. 부디 저 자신을 알고 눈치껏 물러서세요!”유진우가 아무 말 없자 장 비서는 미간을 확 찌푸리며 계속 말을 이었다.“썩 내키지 않는다는 거 잘 알아요. 하지만 현실이 이런 걸 어쩌겠어요? 전에 이 대표님을 도와준 건 사실이지만 이 3년 동안 대표님은 그 신세를 전부 다 갚았어요. 이젠 유 대표님이야말로 우리 대표님께 신세를 지고 있다고요!”“이 결혼이 한 차례 거래였어?”유진우가 숨을 깊게 들이쉬며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만약
엘리베이터 안.유진우는 낙담한 눈길로 가슴팍의 옥 펜던트를 내려다보았다.진작 예상은 했으나 막상 이혼하니 좀처럼 기분이 후련하지 못했다.그가 바라던 행복은 아주 단순했다. 하루 세끼를 함께하고 소소하고 행복하게 보내는 것뿐이었다.다만 이제야 알게 됐다.소소함도 죄라는 것을.소소한 행복에 흠뻑 빠진 3년이란 세월, 이젠 그만 깨어날 때가 되었다.“띠리링...”한창 넋 놓고 있을 때 휴대폰 벨 소리가 갑자기 울렸다.전화를 받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유진우 씨, 안녕하세요. 저는 강능 상회의 안병서예요. 오늘이 진우 씨와 청아 씨의 결혼기념일이라면서요. 제가 특별히 두 분께 선물을 준비했는데 언제 시간이 되실지 모르겠네요.”“고마워요, 병서 씨 마음만 잘 받을게요. 앞으론 이런 거 준비하실 필요 없어요.”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네?”안병서는 흠칫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그는 문득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회장님, 또 다른 용건 남으셨나요?”유진우가 화제를 돌렸다.“그게 사실... 대표님께 부탁드릴 사연이 하나 있어서요.”안병서가 어색한 듯 마른기침을 해가며 말을 이었다.“다름이 아니라 제 친구가 요즘 이상한 병에 걸려서 온갖 명의를 수소문해 봐도 치료가 잘 안돼서요. 실례지만 진우 씨가 한번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회장님도 제 룰을 잘 알고 계실 텐데요.”“물론이죠! 빈손으로 감히 부탁을 청하겠나요. 제 친구 집에 마침 진우 씨가 원하던 용심초가 하나 있어요. 도와만 주신다면 이 희귀한 약재를 보상으로 드리겠습니다.”안병서가 대답했다.“진짜예요?”유진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렇다니까요!”“좋아요, 그럼 직접 한번 찾아뵙겠습니다.”유진우가 바로 허락했다.그는 돈과 보석 따위에 아무런 흥미가 없지만 일부 희귀한 약재는 꿈에도 오매불망 그릴 정도였다.왜냐하면 그것으로 목숨을 구해야 하니까!“고마워요, 진우 씨. 지금 바로 분부해서 진우 씨 모시러 가겠습니다!”안병서가 한시름 놓인 듯 웃으며 말했다.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