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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 부자 맞아
그래, 나 부자 맞아
작가: 노혜아

제1화

“우리 헤어지자. 넌 더 이상 내가 원하는 걸 줄 수 없어.”

23살 생일날, 케이크 앞에서 올해 천강이랑 결혼하게 해주세요라는 소원을 빌고난 지 5분도 지나지 않은 강유리가 받은 문자메시지 내용이다.

휴대폰을 바라보던 강유리가 미간을 찌푸렸다.

‘얘가 갑자기 왜 이러지? 3년 동안 롱디라서 많이 섭섭했나? 그게 미안해서 금전적으로 어떻게든 뒷바라지 해줬던 건데. 그리고 그 동안 한 번도 이런 말 한 적 없었잖아.’

일방적인 이별 통보였지만 그녀는 그저 오랜 롱디에 지친 남자친구의 귀여운 투정 정도라고 생각했기에 가장 빠른 항공편으로 귀국했다.

당일 밤 11시.

‘내가 자길 위해서 특별히 귀국했다는 걸 알면 아마 깜짝 놀라겠지?’

서프라이즈를 제대로 해주기 위해 강유리는 기나긴 채팅기록을 뒤져 언젠가 그가 알려주었던 도어락 비밀번호를 알아냈다.

“삑삑, 삐리릭.”

문이 열리고...

트렁크를 살며시 내려둔 채 살금살금 2층으로 올라가던 강유리는 방 안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첫사랑 절대 못 잊는다던데. 이렇게 쉽게 헤어지는 거야?”

“뭐래. 내 첫사랑은 너야. 강유리 걔는... 어디까지나 돈 때문에 좋아하는 척 하는 거였다고. 우리가 애도 아니고. 플라토닉 연애라니. 하여간 더럽게 비싸게 굴어요.”

“뭐야. 그럼 스킨십하려고 나랑 만난다는 거야?”

“자기도 즐겨놓고 왜 이래. 응?”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점점 야릇하게 변하고...

밖에서 이 모든 걸 듣고 있던 강유리는 주먹을 꽉 쥔 채 천천히 방으로 다가갔다.

역시나 살짝 열린 문틈으로 서로 뒤엉킨 남녀의 모습이 보이고... 강유리는 침착하게 휴대폰을 꺼냈다.

“찰칵.”

휴대폰 카메라의 셔터소리에 방금 전까지 서로에게만 빠져있던 임천강, 성신영이 화들짝 놀란다.

방 앞에 서 있는 강유리를 발견한 임천강이 일단 급한대로 이불로 비루한 몸뚱어리를 가려본다.

“강유리? 네... 네가 어떻게 여길...”

떨리는 목소리에서 당황스러움이 그대로 묻어났다.

“그냥... 네가 원하는 게 어떤 건지 궁금해서. 직접 물어보려고 왔지. 그런데 이런 걸 줄은 몰랐네?”

방문에 살짝 기댄 채 여유롭게 말을 내뱉는 강유리는 마치 저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과 아무 관련도 없는 듯한, 완벽한 제3자의 모습이다.

“유, 유리야. 그게 아니라... 나랑 신영인...”

“하, 저기요. 저딴 몸이 좋아요?”

임천강의 몸을 쭉 훑던 강유리가 피식 웃었다.

성신영이 미처 반응하기 전, 임천강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었다.

“야, 뚫린 입이라고 말 함부로 하지 마.”

“뭘 잘했다고 목소리를 높여!”

두 사람이 목소리를 높이던 그때, 성신영이 불쑥 끼어들었다.

“언니, 다 내 잘못이야. 내가 천강 오빠를 좋아하게 돼서... 그래서... 욕해도 좋고 때려도 좋은데 그 사진은... 제발 좀 지워줘. 아니, 제발 유출만 하지 말아줘. 어쨌든 우린 피가 섞인 사이잖아. 우리 집안 명예도 좀 생각해야지.”

하지만 성신영의 말에 강유리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하, 너랑 너희 그 천박한 엄마가 우리 집안 얼굴에 먹칠이란 먹칠은 다 했는데 뭐? 이제 와서 가문의 명예가 뭐 어쩌고 어째? 기가 막혀서.”

이에 임천강이 잔뜩 불쌍한 표정을 짓는 성신영을 끌어안았다.

“신영아, 쟤한테 비굴하게 빌지 마. 내가 너 지켜줄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너뿐이니까.”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든 임천강의 눈동자에선 더 이상 방금 전 같은 당황스러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 강유리! 어차피 너도 다 알았으니까 우리 솔직하게 얘기하자. 너, 어차피 사랑받고 싶은 거 아니잖아. 그냥 남자친구, 남편 역할을 해줄 남자가 필요할 뿐이지. 좋아, 그 역할 내가 해줄게.”

성신영의 초조한 눈빛을 읽은 건지 임천강이 그녀의 어깨를 살짝 껴안으며 무언의 위로를 건넸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신영이야. 결혼, 해도 되는데 난 신영이 계속 만날 거야. 물론 너도 다른 남자 만나도 돼. 서로 사생활은 지켜주는 걸로 어때?”

바람 핀 걸 들킨 주제에 자비를 베푸는 듯한 임천강의 말투에 강유리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포장팩에서 음식들을 꺼냈다.

“우리가 좋아하는 한식당이 보여서 포장해 왔어. 같이 먹으면 좋을 것 같아서.”

포장 용기에 담긴 김치찌개를 보며 임천강은 한숨을 내쉬었다.

“유리야, 이러지 마. 우린 이미 끝...”

하지만 곧이어 김치찌개를 뒤집어 쓴 그는 결국 본색을 드러냈다.

“야, 너 미쳤어?”

“언니,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빨간 국물이 새하얀 침대 시트에 흩뿌려지며 섬뜩한 색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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