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혁 교수가 협조를 거부했기 때문에 애스릭은 더 심하게 때렸다. 거의 몇 시간마다 가서 괴롭혔는데 매번 때리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말로 욕했지만 고승혁 교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강윤아는 고승혁 교수가 돌아올 때마다 얼굴에 약간의 상처가 생기는 것을 보고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사실, 애스릭이 매번 고승혁 교수를 데려갈 때마다 그가 입을 열어 경험을 전수해주도록 했을 뿐 매번 그를 때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승혁 교수는 돌아올 때마다 애스릭의 부하들에게 얻어맞았다.고승혁 교수는 베티를 치료해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배신하기까지 했기 때문에 그들은 매우 원망스러웠다.“고승혁 교수님, 저 때문에 교수님이 억울한 일을 당했으니 협조하고 절 그냥 내버려 둬요.”“괜찮아요, 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욕하고 싶으면 하라고 해요. 나는 견딜 수 있어요. 나는 오히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어디까지인 보고 싶어요. 언젠가 내가 정말 견딜 수 없게 되면 자연히 그들에게 항복할 거예요. 그때 가서 윤아 씨가 나를 원망하지 말아주세요.”고승혁 교수는 손을 내저으며 개의치 않는 듯 윤아를 향해 농담까지 했다.“교수님은 이미 내 목숨을 구해줬고 내 아이를 지켜줬어요. 이것만으로도 저는 이미 교수님에게 감사해요. 교수님이 앞으로 나를 어떻게 대하든 나는 받아들일 수 있어요.”윤아는 고승혁 교수의 이런 모습을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정말 내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이건 내 인생 경험의 일부일 뿐이에요.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밑지는 장사는 아니에요. 굴복해 연명할 수 있지만 내 양심에 어긋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고승혁 교수는 윤아가 미안한 표정을 짓자 그녀를 안심시켰다.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우리가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교수님의 연구원에 많이 투자할게요.”“그럼 먼저 윤아 씨에게 감사해야겠어요.”“고승혁 교수님, 우리는 함께 목숨 걸고 싸운 사이이니 그냥 저를 윤아라고 부르세요, 윤아 씨는 너무 서먹서먹해요.”윤아가 고승혁을
권재민은 강윤아의 움직임을 추적한 뒤 곧바로 현진성과 합류해 구출 계획을 논의하고 애스릭이 숨어 있는 곳으로 쳐들어가려 했다.하지만 이번에도 그들은 변장하고 다가갔다. 애스릭은 분명 그들을 경계할 것이고, 외딴 섬에서의 일을 겪었으니 애스릭의 경계와 의심이 더 강해지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들은 반드시 만반의 계획을 세워야만 윤아를 구해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같은 시간, 국내에 있던 김소혜와 서만옥은 출국할 예정이었다.그날 기슭에 도착한 후 재민은 아이를 안배하고 나서 소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혜는 발신자가 실종된 지 오래된 자기 아들이라는 것을 보고 매우 흥분했다.“재민아, 드디어 엄마한테 전화했구나. 그동안 네가 나한테 전화 안 해서 우리도 방해할 엄두가 안 났는데 너는 지금 어때? 윤아는 행방불명이야? 윤아를 구해낸 거 아니었어?”소혜는 재민의 전화가 희소식을 전하러 걸려온 것으로 생각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재민은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민의 전화를 받은 후 마음이 매우 흥분되고 기뻤기 때문이기도 했다.재민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소혜의 이렇게 흥분한 말투를 들으며 차마 그녀에게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급박해서 아이를 돌볼 가족이 있어야 했다. 비록 의사가 있지만 그는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다.그는 이를 악물고 실정을 소혜에게 말했다.“엄마, 내 말 좀 들어봐요. 마음을 다잡고 들어요, 일이 이렇게 됐어요…… 엄마가얘기한 거랑 상황이 좀 달라요. 윤아가 처음에 구출되긴 했는데 다시 잡혀갔어요. 그동안 연락이 없었던 건 내가 계속 그 사람의 경계에 잠복해있었기 때문이에요.”재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혜가 말을 끊었다.“뭐? 구출되긴 했는데 또 잡혀갔다는 건 뭐야?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엄마, 내 말끝까지 들어봐요.”재민이 이마를 어루만졌다.“이 일은 당분간 자세히 말하기 어려워요. 제가 윤아를 데려가고 나서 자세히 말해줄게요.”
회의가 끝난 후, 권재아는 권현우가 그녀를 쉽게 보지 못하게 하려고 여전히 당당하게 걸어 나갔지만, 사무실로 돌아온 후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초조하고 어쩔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재아는 매우 낭패한 모습이었다.재아는 권재민에게 이 일을 알리려 문자를 보냈지만, 그쪽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재아는 윤기태에게도 이 일을 말했다. 기태도 분노했지만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재아가 풀이 죽은 모습을 보며 화가 났지만 재아를 먼저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대표님, 이런 결과는 대표님도 원하지 않겠지만, 정말 방법이 없잖아요. 자책하지 마세요, 권재민 대표님이 돌아오시면 분명히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재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기태의 위로가 전혀 소용이 없었고 재아는 여전히 괴로웠다.재아의 이런 모습을 본 기태는 더는 방해하지 않고 그녀에게 인사한 후 자리를 떴다.늦은 시간, 재아는 여전히 회사에서 일을 처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무실 문이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권재아는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만 했다.갑자기 넓은 손이 재아 앞에 다가오더니 그녀의 머리를 강제로 들어 올렸다.재아는 화를 내려다가 윌임을 발견했다. 순간 화가 난 얼굴이 미리 설정된 듯 활짝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아, 윌, 여긴 어쩐 일이에요? 귀국하지 않았어요? 돌아왔으면 나한테 말해주지 그랬어요. 그랬으면 내가 공항으로 데리러 갔을 텐데.”윌은 재아의 머리를 받치고 있던 손을 풀고 책상을 돌아 재아의 앞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러는 내내 눈빛은 재아에게서 떠나지 않았다.“보고 싶어서 돌아왔어요. 알려줬으면 어떻게 서프라이즈를 해줬겠어요. 왜 이렇게 피곤한 얼굴이죠? 날 봤을 땐 화가 잔뜩 난 얼굴이었어요.”윌이 그녀 앞에 서자 재아는 윌의 허리를 끌어안고 머리를 살짝 윌의 몸에 기대며 풀이 죽은 듯 한숨을 내쉬었다.윌은 그녀가 말하고 싶지 않은 듯해 보여 더는 강요하지 않고 빨리 나가자고 재촉했다.“주차장에서 오래 기다렸는데도 안 내려와서 야근하는 거 아닌가
강윤아라는 말에 권재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윤아가 우리 집에 온 이후로 힘든 일을 많이 겪었고 늘 다른 사람의 타깃이 되었어요. 재민이가 너무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사 그녀를 연루시킨 거죠.”“재아 씨가 지금 걱정해도 소용없어요, 재아 씨부터 잘 챙겨요.”윌은 재아의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자, 재아 씨 기분 전환하러 갔다가 나중에 우리 집에 가요.”그 말을 들은 권재아는 얼굴이 빨개졌다.“얼굴이 왜 빨개지는 거예요? 내가 옆에 있었으면 재아 씨가 좀 더 편하게 잠들 거예요.”윌은 웃으며 농담했다.재아는 얼굴이 빨갛게 상기 된 채 그를 한 대 때렸지만 거절하지 않았다.날이 저물자 바다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고 이따금 파도가 아련하게 일기도 했다. 해변의 모래사장에는 간간이 등불이 있는데, 등불은 그다지 밝지 않고 군데군데 있어서 밤하늘의 별과 서로 잘 어울렸다.재아는 부드러운 모래를 밟으며 앞으로 한 걸음씩 폴짝폴짝 뛰어갔다. 귓가에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아득하고도 고요했다.윌은 재아의 뒤에서 몇 걸음 걷다가 재아가 전혀 알아채지 못하자 성큼성큼 몇 걸음 앞으로 나가 그녀의 손을 잡고 손바닥으로 감쌌다.재아는 어리둥절해 하더니 이내 두 눈이 반달 모양으로 변했다.“손잡고 싶은 거면 얘기하지 그랬어요.”재아의 표정이 너무 도도해서 윌은 눈살을 찌푸리고 손가락으로 그녀의 코끝을 긁었다.“그러게 누가 재아 씨더러 아무것도 모르래요?”술도 밥도 배불리 먹었으나 그 뒤로 딴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재아는 윌 덕분에 배불리 먹었고 지금은 기분이 너무 좋았다. 윌의 손을 잡고 있자니 따뜻한 손바닥에서 전해오는 힘에 말할 수 없는 안정감을 느꼈다.백사장을 따라 한참을 걸은 후에야 마침내 윌이 말한 그 ‘재미있는 곳’에 이르렀다.재아는 어두컴컴한 불빛 속 나무 밑에 숨어 있는 해먹에 하마터면 눈살을 찌푸릴 뻔했다.“여기가 재밌는 곳이에요?”“재미있는 곳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올 거잖아요?”윌은 미소를 지으며 먼저 올라탄
S 시티, 청계 마을.야심한 밤.대낮의 소란스러움은 사라지고, 마을에도 안정과 평화가 찾아왔다.고급스럽게 꾸며진 마을에서 강윤아는 침대에 누워 한동안 엎치락뒤치락하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오늘 밤, 그녀는 이 좁은 방에서 낯선 사람과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그건••••••마침 요즘이 여행 성수기이기 때문에 근처에 있는 십 여 개의 마을은 이미 먼저 다른 관광객들로 예약이 꽉 차있었다. 그녀가 오늘 이 마을로 도착했을 때는 마지막 방 한 개만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마지막 방조차 그녀보다 한발 앞서 온 여행객이 차지해 버렸었다. 날은 이미 어두워진 상태라 다른 숙소를 구하는 것도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때마침 숙소 주인이 조금 전 그녀보다 한발 앞서 온 여행객과 하룻밤을 같이 보내는 건 어떠냐는 제안에 강윤아는 별 생각 없이 동의했다.하지만 그녀는 이제서야 조금 전 상대방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묻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마음속에서 불안함이 슬금슬금 머리를 내밀었다.‘남자면 어떡하지? 혹시 나쁜 마음을 품고 몹쓸 짓을 하기라도 하면••••••.’아무리 두꺼운 커튼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고 해도, 근본적인 걱정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강윤아가 한창 머릿속으로 온갖 걱정을 하고 있을 때, 옆에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그 사람이 옷을 벗는 것 같았다. 강윤아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그녀는 더욱 긴장한 채 두 손으로 이불 자락을 꽉 잡고 두 눈을 부릅떴다. 곧장 그 사람이 들이닥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강윤아의 괜한 걱정이었던 것일까? 옆 사람은 옷을 갈아입은 후, 불을 끈 뒤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균형적인 호흡소리가 들려왔다.그 소리에 강윤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피곤했는지 아니면 일시의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이내 졸음이 쏟아져내렸다. 그렇게 비몽사몽하던 와중에 갑자기 어딘가에서 기이한 향기가 풍겨왔다.꽃향기 같기도 하고 백단향 같기도
5년 후, S 시티 경성 국제공항.강윤아는 이 낯익은 땅에 다시 발을 디뎠다. 마음 속에서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들끓었다.그녀는 자신이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5년 전, 청계 마을에서의 그 황당했던 하룻밤 이후, 그녀는 글쎄 임신을 하게 되었다.꼬박 석 달 남짓할 때에 배가 불룩해졌다. 그녀는 그때야 비로소 자신이 임신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때부터 그녀의 인생은 한순간에 뒤바뀌게 되었다.원래 그녀에게는 곧 결혼을 앞둔 약혼자가 있었는데, 뜻밖에 임신하는 바람에 그는 단칼에 그녀를 떠나버렸다.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처녀가 덜컥 임신을 하는 바람에 그녀 할아버지는 그만 병에 걸리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강윤아의 아버지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그녀와 부녀 관계를 끊어버리기까지 했었다.강윤아는 순식간에 강씨 가문의 가장 큰 치욕거리로 전락했다.경성의 모든 사람들은 그녀가 여자의 도를 지키지 않았다고 비판하며 악의적으로 그녀를 모욕했다.경성의 유명한 순수하고, 순결한 여신이었던 강윤아는 나중에는 많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락거리는 누구나 쉽게 넘볼 수 있는 천하디 천한 여자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었다.그 후, 그녀는 강씨 가문에 의해 해외로 보내졌고, 5년 동안 이렇다 저렇다 소식도 없었다. 게다가 그녀의 행방을 묻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마치 강윤아라는 사람이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지난날의 이런저런 일을 떠올리자, 강윤아는 코끝이 시큰거렸다. 마음 속은 마치 큰 바위에 눌린 듯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그때, 옆에서 명랑한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들려왔다. “엄마, 왜 멍하니 서 있어요? 짐 찾으러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강윤아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작은 꼬마를 바라보았다.그 꼬마는 강윤아의 아들인 은찬이었다.그해, 강씨 가문에 의해 강제로 출국한 뒤 그녀는 아이를 지우지 않았다. 외국에 있는 몇 년 동안 그녀는 온갖 고생을 다 겪었는데, 만약 은찬이 옆에 없었다면
권재민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강윤아도 짐을 끌고 카페로 돌아왔다. 그녀는 자리에 얌전히 앉아있는 은찬을 발견했다. 그러다가 테이블 위에 명함 한 장이 더 있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미심쩍은 듯 그 명함을 자세히 살펴보았다.위에는 ‘스피드 테크놀로지 컴퍼니’ 라는 회사 이름이 쓰여 있었고 그 아래에는 권재민이라는 이름과 함께 그의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이게 뭐야?”강윤아가 물었다.“명함이요. 아까 어떤 아저씨가 준 건데 나중에 시간 나면 놀러 오라고 했어요.”그 말을 듣고 강윤아는 안색이 굳어졌다.요즘 어린이를 유괴해서 인신 매매업체에 가져다 파는 장사꾼들이 그렇게 많다던데••••••, 게다가 은찬은 워낙 귀엽고 멋져서 유괴범들의 표적이 되기 쉬웠다.오늘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후과를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이런 생각에 강윤아는 곧 화난 척 정색하고 소리를 낮췄다.“은찬. 밖에서 낯선 사람과 함부로 얘기하면 안 된다고 내가 가르쳐줬잖아? 그런데 명함까지 받아? 지금 밖에 나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게다가 넌 귀엽게 생겨서 다른 애들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고. 만약 누가 널 유괴해가면 어떡해?”은찬은 그녀의 말에 반박했다.“아니에요. 그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얼마나 잘생겼다고 그래요? 제가 여태까지 본 사람들 중에 제일 잘생겼어요. 엄마도 한 번 만나보실래요? 어쩌면 두 사람이 잘 될 수도 있을지 모르잖아요. 저한테 새아빠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좋은 기회예요.”은찬은 한창 신나게 말했다. 그러다가 강윤아에게 꿀밤을 얻어맞고 말았다.“은찬. 엄마가 요새 너무 오냐오냐했지?”강윤아는 주먹을 치켜들고 은찬을 노려보며 물었다.그 모습에 덜컥 겁을 먹은 은찬은 즉시 꼬리를 내렸다.“제가 잘못했어요, 엄마.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요.”은찬이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자, 굳었던 강윤아의 표정도 부드럽게 누그러졌다.“그래. 엄마는 우리 은찬이한테 무슨 사고가 날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
권재민은 깜짝 놀라하며 은찬을 바라보았다.은찬을 이렇게 빨리 다시 보게 될 줄이야, 더군다나 그가 자기 다리를 끌어안고 아빠라고 부를 줄은 상상도 못했다.운전석에 있던 기사도 이 호칭을 듣고 크게 놀랐다.그도 그럴것이 권재민은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기로 소문이 나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에게 언제 이렇게 큰 아들이 생긴 것일까?운전기사가 깜짝 놀라서 의아해 하는 사이, 권재민은 눈살을 찌푸리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너, 이 자식. 사람 잘 못 본 거 아니야? 난 네 아버지가 아니야.”“아니요. 아저씨는 제 아빠가 맞아요.”은찬은 두 손을 더 꼭 끌어안고 그가 도망갈까 봐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그 모습에 권재민은 얼굴이 찡그러졌다.“놀리지 마. 난 네 아버지가 아니야. 어서 빨리 네 부모님한테 가.”권재민은 은찬이 자기를 따라나온 줄 알고, 모처럼 화를 내지 않고 상냥하게 말했다. 은찬은 다급히 그의 목을 끌어안고 다가가 두 사람만이 들을 수 있게 조용히 속삭였다.“아저씨, 전 아저씨가 제 아빠가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어요. 근데 지금 우리 아빠인 척 좀 해줄 수 있어요? 우리 엄마가 나쁜 사람들한테 당하고 있는데 저를 아빠가 없는 사생아라고 욕해서••••••, 실례지만 저를 좀 도와주실 수 있어요?”권재민은 저도 모르게 동작을 멈추고 의아한 듯이 은찬을 바라보았다.은찬은 딱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권재민은 무의식중에 그의 제안을 거절하려고 했다. 그는 이같은 곤난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은찬의 애원하는 눈빛에 그는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네 엄마는 어디 있어?”“저기요.”은찬이 뒤쪽을 가리키며 말했다.권재민은 은찬의 손길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강윤아와 두 눈이 마주쳤다.앙증맞은 이목구비를 가진 강윤아는 하얀 피부에 햇빛을 받아 수정같이 반짝반짝 빛났다. 검고 긴 머리카락을 어깨에 아무렇게나 풀어헤치고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티셔츠와 멜빵 청바지를 입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