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5화

"민이 오늘 소이연 씨 기다리느라 평소보다 한 시간 늦게 잤어요."

육현경은 입을 열어 어색함을 풀려고 했다.

소이연은 마음이 살짝 떨리더니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

"사실 대표님은 민이에게 내가 엄마가 아니라고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어요."

육현경의 칠흑 같은 검은 눈동자가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갑작스러운 침묵에, 소이연은 자기가 실수라도 한 줄 알았다.

소이연은 별 고민 없이 말했다.

"화재는 사고일 뿐이에요. 대표님도 괜히 제 식사 신경 쓰실 필요 없고요, 간병인도 필요하지 않아요. 맞다, 휴대폰은 얼마죠? 계좌로 이체해 드릴게요."

"난 소이연 씨가 똑똑한 사람인 줄 알았어요."

"......"

‘그래서 난 대체 뭐가 바보 같다는 거지?!’

"민이는 엄마가 필요해요."

육현경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당연한 듯이 말했다.

"그래서요?"

소이연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육현경은 그녀를 한참 동안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을 열어 말했다.

"민이는 소이연 씨를 좋아해요. 이쯤 얘기하면 내가 소이연 씨를 원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셨겠죠?"

"......"

그녀는 정말 눈치채지 못했다.

육현경의 행동은 그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소이연 씨, 바로 답해 주지 않아도 돼요. 아무래도 우리는......"

육현경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마치 적당한 표현을 생각해 낸 듯 마지막에 몇 글자를 덧붙였다.

"아직 친하지 않으니까요."

분명히 단지, 우연히 만난 낯선 사람일 뿐이다.

소이연은 깊은숨을 내쉬며 애써 평정심을 유지했다.

"대표님, 사람 감정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 아닌가요?"

육현경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육현경은 쉽게 다가가기 힘든 비주얼이다. 하지만 이 순간 소이연은 그가 더 멀게 느껴졌다.

"대표님 아이가 절 좋아해서 대표님도 절 원한다고요? 그럼 저는 그저 꼭두각시라는 얘긴가요? 그럼 언젠가 민이가 다른 여자를 좋아하게 된다면 대표님은 또 다른 여자를 원할 건가요?"

소이연은 다소 무거운 어조로 마음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대표님의 가치관을 받아들일 수 없어요,"

"소이연 씨를 원하는 건 민이와 상관없어요. 단지 내가 민이처럼 당신을 좋아해요."

육현경은 직설적으로 말했다.

소이연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이 갑작스러운 고백...... 농담이지?!’

그들은 겨우 몇 시간 동안 알고 지냈을 뿐이다.

"그러니 소이연 씨는 민이가 다른 여자를 엄마로 좋아하게 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육현경은 또박또박 말했다.

"우리 가문의 모토가 일편단심이에요.".

"......"

‘이건 민이를 어필하는 거야, 아니면 본인을 어필하는 거야.’.

‘아니면 나에게…… 맹세라도 하는 거야?!’

소이연은 육현경의 리듬을 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방금 만난 사람에게, 그녀는 확실히 어떠한 감정적인 반응을 할 수 없었다.

"대표님이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하게 얘기할게요. 아까하신 그 말, 거절할게요."

육현경은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앞으로 얽히는 일 없길 바라요. 우리는 그저 업체 관계자와 고객일 뿐이에요......"

"거절한다고 했죠, 그렇다면 난 소이연 씨의 거절을 거절할게요."

육현경이 소이연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엄숙한 어조로 못을 박았다.

그 말에 소이연은 화가 올라왔다.

"나에게 어떤 과거가 있는지 알아요?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좋은 여자가 아니에요."

"내 안목은 틀림없어요. 그리고 과거에 연연하지 않아요."

"한때 나에게 같은 말을 한 사람도 있었죠. 하지만 결국 어떻게 되었을가요?"

그녀가 어떻게 방금 알게 된 낯선 사람을 믿을 수 있을까?

"날 인간쓰레기와 비교하지 말아요."

갑자기 침묵이 흘렀다. 육현경은 차가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소이연은 마음이 움찔했다.

육현경의 표정은, 그녀가 정말 그를 모욕한 것처럼 느끼게 했다.

소이연은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그녀도 왜 웃는지 모른다.

아마도, 이 세상에 아직도 그녀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모든 사람은 문서인이 그녀에게 과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아버지조차도 그녀가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소이연 씨한테 저와 인간쓰레기의 차이를 보여줄게요."

육현경은 소이연의 웃음에 눈가가 요동쳤다.

육현경의 이 말을 해석해 보면...... 앞으로 그는, 그녀에게 최선을 다할 것이다!

육현경은 몸을 돌려 병실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치 더는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그가 결정한 일은 아무도 바꿀 수 없다.

"저기 대표님."

소이연이 황급히 그를 불렀다.

육현경은 발걸음을 멈추었지만 머리는 돌리지 않았다.

"내 과거를 알아보는 게 좋을 거예요."

"필요 없어요."

육현경은 딱 잘라 말하고 고개도 돌리지 않고 가 버렸다.

......

병실로 돌아온 소이연은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녀는 그제야 생각났다. 그녀는 아직 육현경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

‘됐어.’

‘보아하니, 이 정도 돈은 모자라지 않아 보이는데.’

‘보상이라고 치지 뭐.’.

소이연은 기억을 더듬으며 익숙하지 않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장 변호사님, 저 소이연이에요."

"소이연 씨. 안녕하세요."

"우리 엄마가 물려주신 은하 그룹을 되찾으려고요. 혹시 문제 있나요?"

"물론 없죠."

그는 확신하며 답했다.

"어머니의 유언장에 분명히 있어요. 은하 그룹은 소이연 씨 소유이니 원한다면 언제든지 경영권을 가져올 수 있어요"

그녀의 어머니가 돌아간 후, 그녀의 어머니가 결혼 전에 홀로 설립한 의류 위주의 은하 그룹은 소승영이 대신 관리하게 되었다. 그러다 나중에 소이연은 해외로 보내졌고 은하 그룹은 자연스럽게 소승영에게 넘어갔다. 귀국 후 소이연은 어머니가 승계해 준 회사를 물려받으려고 했지만 많은 시간과 정력을 문씨 그룹에 쏟다 보니 여태까지 지체되었다.

"그러면 저랑 같이 은하 그룹에 한 번 가주셔야겠어요."

"언제든지 기다릴게요."

장 변호사는 바로 대답했다.

......

소이연은 일주일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

한 주간, 육민은 매일 그녀를 찾아왔으며 두 사람은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녀도 어린아이가 반가웠다. 하지만 육민이 자주 들리다 보니 육현경과도 자주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소이연은 육현경이 그다지 싫지는 않았다.

그날 그녀에게 "고백"한 뒤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때로는 너무 조용해 존재감도 없었다.

그녀는 육현경이 그날 머리가 뜨거워져서 아무 말이나 했을 거로 의심했다.

‘설마 뜻도 모르고 날 원한다고 말한 거야?!’

유일하게 와닿는 것은 바로 그녀의 식사였다. 문씨 아저씨는 매일 새로운 음식을 차려왔다. 심지어 날이 갈수록 그녀의 입맛에 꼭 맞았다.

소이연은 간단하게 물건을 정리했다.

사실 육현경이 준 휴대폰 외에는 가져갈 게 따로 없었다.

"엄마, 나중에 또 볼 수 있어?"

애처롭게 그녀를 바라보는 육민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존재감 없이 옆에 있는 육현경과는 완전히 대조적이었다……

Related chapters

Latest chapter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