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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이튿날.

송연아가 출근 준비를 할 때, 임지훈이 별장 앞에 나타났다.

“송연아 씨, 저는 강 대표님의 비서 임지훈입니다. 잠깐 따라와 주시죠.”

임지훈이 문밖에 있는 것을 본 송연아는 황급히 머리를 숙여 얼굴을 숨겼다. 지난번 심재경 대신 환자를 보러 갔을 때 본 적 있는 익숙한 얼굴이었다.

‘이 사람이 강세헌의 비서라고? 그럼 설마 다친 사람이 강세헌이었던 건가?’

“이쪽입니다.”

임지훈은 송연아가 가만히 있는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말했다. 그녀는 잠깐 멈칫하다가 답했다.

“저 출근해야 해요.”

이는 명백한 거절이었다. 그녀는 강세헌을 만나러 가고 싶지 않았다.

“괜히 대표님의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송연아 씨만 손해를 볼 거예요. 병원에서 잘리기도 어려운 일은 아니겠죠. 오늘 하루를 위해 앞길을 망치고 싶으세요?”

임지훈은 덤덤한 말투로 위협했다.

송연아는 주먹을 꼭 쥐었다. 아버지가 수술비만 내준다면 병원비와 간호인은 그녀의 월급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병원 일이 그만큼 그녀에게 중요했기에 결국 임지훈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럼 잠깐 기다려 줄래요? 병원에 얘기는 해놔야 해서요.”

송연아는 위층으로 올라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혹시 몰라 연습용 메스를 가방 안에 넣었다.

송연아는 임지훈과 함께 클럽으로 왔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이런 곳에 와본 적 없었다. 이곳에는 끈적하게 붙어 있는 남녀가 도처에 널려 있었다. 이때 모퉁이에 서서 수다를 떨고 있는 여자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위층 VIP 룸에 강세헌 씨랑 장사하는 그 남자가 왔대. 소문으로는 완전 상또라이라고 하던데?”

“아~ 저번에 상미 씨를 죽일 뻔했다던 그 변태?”

“맞아 맞아, 그 사람이야.”

“쯧쯧, 이번에는 또 누가 걸리려나. 우리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상미 씨 말이야, 목숨을 겨우 건지기는 했지만 평생 임신을 못 하게 됐다고 하더라고.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그 지경이 된 거지?”

송연아는 몸이 저릿저릿해지는 것 같았다. 특히 여자들의 수다에서 강세헌의 이름을 들었을 때는 손바닥에서 식은땀까지 나기 시작했다.

얼마 후,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임지훈은 창백한 안색의 송연아를 향해 말했다.

“이혼협의서에 사인만 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빨리 사인하세요.”

이번 혼사는 강씨 가문에서도 마지못해 허락한 것이었다. 그러니 송연아가 이혼협의서에 사인만 한다면 쉽게 해결될 일이다.

송연아는 몸을 파르르 떨었다. 만약 그녀에게 선택권이 있었다면 애초에 강씨 가문에 시집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강세헌에게 이런 협박을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송연아는 심호흡 하며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섰다. 임지훈은 미간을 찌푸리기는 했지만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그녀를 화려한 VIP 룸에 데려다줬다. 어두운 조명의 프라이빗 룸에는 강세헌과 낯선 남자가 함께 앉아 있었다.

“아이고.”

남자는 적나라한 눈빛으로 송연아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괜찮네. 피부가 하얗고 살결이 고운 것이 품에 안을 맛이 나겠어. 아가씨, 이쪽으로 와서 앉아요.”

송연아는 강세헌을 바라봤다. 그는 우아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두운 환경 탓에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기다리다 못해 벌떡 일어나더니 송연아의 어깨를 잡으며 강세헌에게 말했다.

“이런 여자는 어디서 났어? 화장품 냄새가 고약하게 나는 여자보다 훨씬 났네. 깨 물면 물이 나올 것 같은 것이 딱 내 취향이야.”

강세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행동을 묵인이라도 하는 듯이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송연아는 식은땀이 나는 손으로 가방을 꼭 쥐었다.

“술 마실 줄 알아요?”

남자는 송연아의 허리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그의 행동이 역겨웠던 송연아는 옆으로 피하면서 말했다.

“아니요.”

“마실 줄 몰라도 괜찮아요. 내가 가르쳐 주면 되지.”

남자는 술을 한가득 따라서 송연아의 입가에 갖다 댔다. 송연아는 당연히 피하려고 했지만, 남자가 강한 힘으로 누르고 있는 탓에 꼼짝할 수 없었다.

“이거 놔요...!”

“이건 당신이 응당 해야 하는 일이에요.”

강세헌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은은한 조명하에 그의 이목구비는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못하겠으면 꺼지던가요.”

송연아는 강세헌이 기껏해야 자신을 쓰레기 취급할 줄 알았다. 그가 이토록 비열한 수까지 쓸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제가 마실게요.”

송연아는 남자가 건네는 술잔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잠깐 멈칫하다가 단번에 원샷 해버렸다. 이는 그녀의 첫술이었다. 목구멍부터 위까지 전부 타들어 가는 듯 한 느낌에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남자는 벌써 흥분했는지 송연아를 데려가려고 했다.

“세헌아, 이 여자는 내가 데려간다?”

송연아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도망가려고 했다. 그렇게 머리를 드는 순간 칠흑같이 어두운 강세헌의 눈과 마주쳤다.

‘일부러 이런 일을 만들려고 나를 불러왔나?’

강세헌은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마음대로 해.”

남자는 헤벌쭉해서 송연아를 끌어안았다. 송연아도 반항하지 않고 그를 따라나섰다.

이때 임지훈이 다가와서 말했다.

“대표님, 이거 괜찮은 거 맞아요? 송연아 씨...”

임지훈은 아무리 송연아가 밉다고 해도 이런 방식으로 보복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세헌은 그저 덤덤한 표정으로 술을 따르며 말했다.

“괜찮아. 애초에 깨끗한 여자가 아니니까.”

임지훈은 놀란 표정으로 강세헌을 바라봤다. 송씨 가문에서 순결을 잃은 여자를 시집보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는 잠깐이나마 송연아를 동정했던 자신이 한심했다. 그녀는 애초에 동정할 가치조차 없는 여자였다.

“제가 이혼협의서에 사인하면 돌아갈 수 있다고 했는데도 협의서 얘기는 안 했나 보네요. 대표님, 혹시...”

“이만 돌아가지.”

강세헌이 임지훈의 말을 끊었다. 그는 송연아의 얘기는 더 이상 듣기 싫은 표정이었다. 임지훈은 말없이 앞장서서 문을 열었다.

강세헌은 차에 앉아 빠르게 지나가는 가로등을 바라봤다. 머릿속에서는 고훈의 품에 안겨 간 송연아로 가득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면서도 순순히 따라간다고? 무슨 여자가 이래...’

“차 돌려.”

임지훈은 잠깐 멈칫하더니 금방 그의 뜻을 알아차리고 클럽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클럽에는 그가 찾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강세헌의 안색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임지훈은 눈치껏 가장 빠른 속도로 별장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별장에도 역시 송연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임 비서, 지금 당장...”

강세헌이 마침 말하려고 할 때, 문을 여는 소리와 함께 송연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주머니...”

술을 마실 줄 몰랐던 송연아는 한 잔만으로도 잔뜩 취해 있었다. 만약 의사 공부까지 버텨낸 타고난 자제력이 없었더라면 집까지 돌아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아...”

송연아는 휘청거리며 오은화를 찾다가 거실에 서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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