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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진시우는 손에 쥔 혼인 신고서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가짜라고? 이 아가씨, 큰일 날 사람이네. 이런 일까지 해낼 수 있다니.

“오, 그래.”

진시우는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가짜 혼인신고도 나쁘지 않았다. 나중에 번거로운 일들을 피할 수 있으니 말이다.

임아름은 귀찮은 표정으로 진시우를 보며 말했다.

“집은 너 혼자 가야겠다. 나는 볼일이 아직 남아서!”

말을 마친 임아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홀로 남겨진 진시우가 중얼거렸다.

“도시에 사는 재벌집 아가씨는 참으로 모시기 어렵네요...”

“그래, 3-4개월 뒤면 산으로 갈수 있어. 빨리 은혜나 갚자!”

뒤이어 산으로 들어가 약초를 캔 진시우는 약초를 다져 까만 알약을 만들었다.

독특한 약초의 향이 풍기자 진시우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이 약만 먹으면 할아버지의 병도 모조리 낫게 될 거야.”

오랜 시간 동안 임 노인의 몸에 갇긴 나쁜 기가 그의 오장 육부를 망쳐놓았다. 시중에서 파는 약으로는 임 노인의 상한 기를 빼낼 수 없었다.

임 노인이 먹을 약을 완성한 진시우는 이 도시를 좀 익혀보자는 생각으로 무작정 돌아다녔다.

점심때가 되어서야 저택에 도착했다.

기력을 많이 회복한 임 노인이 소파에 앉아 그를 맞이했다. 임 노인은 그와 함께 바둑이나 두려고 불렀다.

“할아버지, 제가 산에 가서 약을 준비해 봤어요. 이 약을 드시면 손상된 장기를 치료할 수 있을 거예요.”

진시우가 준비한 약을 가만히 보고만 있던 임 노인은 기뿐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좋아! 밖에 나가서도 이 늙은이 걱정을 해주다니!”

진시우가 말했다.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걸요.”

임호군이 그런 진시우에게 다정하게 물었다.

“시우야, 어떤 결혼식을 올렸으면 좋겠니? 이 할아버지가 당장 사람들을 불러 준비시키도록 하마. 일주일 안에 아름이와 결혼식...”

“할아버지!”

임호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당황한 목소리가 입구에서 들려왔다. 임아름이 집에 돌아왔다.

임아름은 임호군의 곁에 앉아 칭얼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할아버지, 진시우와 만난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어요. 아무런 감정도 없이 어떻게 결혼식을 올려요. 결혼식을 조금만 미루어주시면 안 될까요?”

아침 댓바람부터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가짜 혼인 신고서를 만든 그녀는 간신히 진시우와의 진짜 결혼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빨리 식을 올리다면 가짜 혼인 신고서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요즘 회사일도 엄청 많아요. 천용 그룹과의 계약도 아직 미정이군요. 저 그렇게 여유롭지 못해요.”

임호군은 미간을 찌푸린채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결혼식은 하루면 되는데...”

진시우가 말했다.

“할아버지, 저도 아름이와 같은 생각이에요. 아무런 감정없이 하는 결혼식은 하지 않는것 보다 못한 것 같아요.”

임아름은 진시우를 노려보았다.

아름이? 이 미친놈 자신의 이름을 이토록 친근하게 부르다니!

그래도... 뭐, 눈치는 있는 것 같으니 아량이 넓은 내가 한 번은 용서해 주지.

진시우의 말을 들은 임호군의 표정이 너그럽게 변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지. 시우가 하고 싶을 때 결혼식을 올리자꾸나.”

임아름은 불만 섞인 말투로 투정을 부렸다.

“할아버지, 제가 할아버지 친손녀에요!”

임호군이 크게 소리를 내어 웃었다.

“맞아 맞아, 이제부터 시우도 내 친손주인 셈이야. 너랑 같아.”

임아름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나랑 같다고? 이 촌뜨기가?

주방에서 진수성찬을 차리는 백설아를 본 임아름이 물었다.

“엄마, 뭘 이렇게 많이 차렸어?”

백설아의 온화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 아버지께서 조 의원님 모시러 갔어. 조 의원님과 시우가 할아버지 목숨을 살렸으니 밥 한 끼는 대접해 드려야지.”

임아름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진시우랑 무슨 상관이야? 운이 좋아 그런 침술도 익힌 거지. 조 의원님이야말로 진정한 신의 시지!”

“아름아,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백설아는 그런 임아름을 혼내 주었다.

찡그린 얼굴로 책상 위에 있는 종이 뭉치를 힐끗 본 임아름은 종이뭉치 안에 있는 내용물을 보고 헛구역질을 했다.

“웩~”

역한 냄새가 임아름의 코를 뚫고 들어왔다.

“이게 뭐야! 누가 양 똥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어! 더럽게!”

임아름은 약초가 담긴 종이 뭉치를 휴지통에 버렸다.

진시우가 눈살을 찌푸리고 말했다.

“할아버지를 위해 만든 약초야, 효과가 아주 좋아.”

임아름은 진시우를 노려보며 말했다.

“약초라고? 양 똥 냄새가 나는 저 물건이 약초라고? 너 일부러 우리 할아버지에게 몹쓸 약초 먹이려는 걸 내가 모를 줄 알고!”

“네가 어디서 가져온 건지도 모르는 약초를 우리 할아버지가 먹고 아프기라도 한다면 너 같은 촌뜨기가 챔임질거야?”

임아름이 진시우에게 욕설을 퍼붓는 것을 들은 임호군은 안색이 어두워지며 크게 화를 냈다.

“임아름! 시우에게 사과해!”

임아름은 화가 나 미칠 지경이다.

“할아버지, 저 사과 못해요. 못 믿으시겠으면 할아버지가 직접 와서 보세요. 이게 어디 약초에요 양 똥이지!”

할아버지가 진시우 편만 들자 임아름은 마음속에 불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왜 이 거짓말쟁이 편만 드시는 거야!

휴지통에 버려진 약초를 가만히 바라보던 진시우는 내일 몇 알 더 만들어 할아버지께 따로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진시우가 말했다.

“할아버지 괜찮아요. 아름이...”

“넌 좀 빠져!”

임아름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낄 자리가 있다고 생각해? 여기 우리 집이야!”

진시우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팍!

어두워진 얼굴의 임호군은 두 손으로 바둑판을 세게 내리쳤다.

주방에서 황급히 나온 백설아가 딸의 팔을 잡고 말했다.

“아버님, 아름이가 아직 철이 덜 들었나 봐요. 제가 따로 말할게요. 아버님 몸도 아직 편찮으신데 화내지 마세요.”

눈시울이 붉어진 임아름은 입술을 꼭 깨문 채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아름이를 너무 금이야 옥이야 했어!”

화가 난 임호군이 말했다.

백설아가 임호군의 마음을 달래며 말했다.

“누가 아니래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아름이를 얼마나 예뻐하셨는데요.”

말을 마친 그녀는 임아름에게 눈짓을 주고 심드렁한 얼굴의 임아름을 주방에서 끌고 나왔다.

임호군이 임아름을 대신해 진시우에게 사과했다.

“휴, 면목이 없다 시우야. 말은 저렇게 해도 심성은 착한 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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