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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처가 대표님과 결혼했어요
애처가 대표님과 결혼했어요
작가: 차차

제1화

심유진은 조건웅의 온라인 쇼핑몰 장바구니에 한가득 쌓인 임산부 용품을 발견하고서야 그가 바람을 피웠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전에 조건웅이 한창 그녀를 쫓아다녔을 때 심유진은 그에게 솔직히 털어놓고 말했었다. 그녀는 이번 생에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다고. 그녀의 말에 조건웅은 이렇게 답했었다.

“낳을 생각이 없으면 낳지 않으면 되지. 두 사람만의 생활을 즐기는 게 나도 더 좋아.”

그 답에 심유진은 그와 만나보기로 결심했고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때문에 장바구니에 담긴 물건들은 절대 조건웅이 그녀를 위해 사려는 게 아닐 것이다.

심유진은 생각했다. 조건웅 주위의 친인척들과 친구들 중 최근 임신을 한 사람이 있었던지. 그녀의 기억속에 임산부는 그의 부하 여직원인 우정아뿐이었다.

지난번 그의 부서에서 회식을 하던 날, 그녀가 키를 깜빡하고 챙기지 않아 그가 있는 곳으로 가지러 간 적이 있었다. 우정아는 볼록 튀어나온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그의 곁에 앉아있었다. 두 사람의 모습은 다른 동료들 보다 확실히 더 가까워 보였었다.

그 모습을 본 심유진은 언짢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곧바로 우정아가 스스럼없이 자신한테 인사를 건네는 모습에 자신이 예민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녀는 조건웅의 이전 장바구니를 더 뒤져보았다.

방금 보았던 임산부 용품과 비슷한 계열의 물건들을 제외하고도 각종 프리미엄 브랜드의 뷰티 제품과 기초화장품, 게다가 한정판 샤넬 핸드백까지 이미 구매한 목록에 담겨있었다.

그녀의 기억이 맞다면 회식 날 우정아가 곁에 두고 있던 백이 바로 이 백이었다.

모든 단서가 하나로 이어졌다. 심유진은 머리칼이 쭈뼛쭈뼛 서는 것 같았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뒤통수를 세게 후려친 것처럼 아찔해났다. 갑작스러운 사실에 순간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마음 한편에서는 일말의 요행을 바라고도 있었다. 만약…… 만약 이 모든 게 단순한 우연의 일치라면?

심유진은 당장 조건웅을 찾아가 따지지는 않았다.

오늘은 이번 달의 마지막 금요일이었다. 관례대로라면 오늘 그의 부서에서는 또 한차례의 회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녀는 조건웅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회식에 가족을 동반해도 되냐고 물었다.

“나 오늘 밥하기 싫어서 그래.”

이틀 전 그녀는 감기에 걸렸었는데 오늘 증상이 더 심해져 휴가를 내고 집에서 쉬고 있던 참이었다. 물론 조건웅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부서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들어 댈 건데. 당신이 오면 두통만 더 심해질 거야.”

그가 말했다.

심유진이 그의 직원들과 밥을 한두 번 먹은 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보고 느낀 그들은 분수를 아는 사람들이었다. 적어도 그전에 그녀는 그들이 시끄럽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었다.

그의 반응이 어쩐지 더욱 수상하게 느껴졌다.

“그냥 곁에서 밥만 먹을게.”

그녀가 이어서 말했다.

“밥만 먹고 갈 거야.”

조건웅이 잠깐 망설이다가 답했다.

“그럼 그렇게 해.”

어쩐지 그는 내키지 않는 것 같았다.

심유진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

감기에 걸린 심유진의 얼굴색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괜히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 일부러 메이크업을 짙게 덧칠했다. 그리고 몸에 딱 달라붙는 원피스에 높은 구두를 신고 집을 나섰다.

조건웅과 그 일행들의 회식 장소는 샤부샤부 가게였다. 부서에 사람들이 많았기에 큰 테이블이 있는 룸으로 예약을 마친 상태였다.

심유진이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예상대로 우정아는 조건웅의 곁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가방끈을 잡고 있던 심유진의 손에 힘이 더해졌다. 그녀가 가볍게 미소 지으며 안으로 향했다. 그리고 조건웅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다른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오랜만이에요.”

그녀가 곁눈질로 우정아를 힐끗 바라보았다. 여자의 얼굴에는 더 이상 웃음이 남아있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조건웅의 표정도 어색하게 굳어있었다. 그가 다른 한쪽에 남겨진 빈자리를 두드리며 심유진에게 말했다.

“여기 앉아.”

심유진이 의자를 조건웅이 있는 쪽과 더 가깝게 옮긴 후에야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그녀가 자연스럽게 그가 있는 쪽으로 몸을 가까이 옮기더니 그의 손을 잡아당겼다.

조건웅이 의식적으로 자신의 손을 다시 거두어가려고 했으나 그녀가 그의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가 머리를 숙이고 미간을 찌푸린 채 낮은 목소리로 그녀를 나무랐다.

“이러지 마. 보는 눈도 많은데……”

심유진이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표정만큼은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뭐가 겁나서 그래. 우리 둘은 정정당당한 부부잖아.”

그녀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테이블에 앉아있는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마주 잡고 있던 손을 번쩍 들어 올려 일부러 조건웅의 결혼반지를 보여주며 물었다.

“혹시 보기 불편한가요?”

“아닙니다. 아닙니다!”

직원들이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오직 우정아만이 싸늘하게 굳은 표정으로 다리까지 늘어뜨린 식탁보를 두 손으로 잡아당기고 있었다.

**

식사 중 심유진은 잠깐 화장실에 들렀다.

볼일을 마치고 나오던 그녀는 마침 화장을 고치고 있던 우정아와 마주쳤다.

세면대에는 인터넷에서 보았던 한정판 샤넬 핸드백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입생로랑 립스틱 역시 조건웅이 구매했던 쇼핑 목록 중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립스틱이었다.

심유진은 세면대로 걸어가 손을 씻으며 잡담을 하듯이 말을 꺼냈다.

“정아 씨 그거 이번에 금방 나온 샤넬 한정판 맞죠? 저도 사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구하지 못했었거든요.”

“그래요?”

립스틱을 바르던 우정아의 손이 순간 멈칫거렸다. 그녀가 우쭐거리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 백은 제 남편이 웃돈을 주고 해외 직구로 산 거예요.”

남편?

심유진이 이를 악물었다.

그녀가 페이퍼타월 몇 장을 뽑아 손을 닦으며 물었다.

“언제 결혼했어요? 남편한테서 그런 소리 못 들은 것 같은데. 이렇게 빨리 임신까지 하고 말이에요.”

우정아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녀가 거울에 비친 심유진과 시선을 마주치며 매혹적인 웃음을 지었다.

“작년에 혼인신고만 하고 여태 식을 안 올렸어요. 그래서 굳이 동료들한테 말하지 않았고요.”

작년에 혼인신고를 했다고? 그 말은 그녀와 조건웅이 작년부터 내통하고 있었단 말인가?

심유진은 또다시 숨이 가빠지는 것 같았다. 심장 주위가 저릿저릿하게 아파났다. 그녀는 거울을 보는 척하며 세면대를 잡은 손에 힘을 주어 겨우 몸을 가누었다.

두 사람이 함께 화장실에서 나왔다.

화장실에서 룸까지 가려면 기다란 복도를 지나야 했다. 그 사이로는 요리를 나르는 종업원들이 빈번하게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그녀들이 나왔을 때 마침 종업원이 샤부샤부 탕거리를 들고 조심스럽게 그들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그때 심유진은 곁에 있던 우정아가 갑자기 다리를 휘청거리더니 비틀거리며 그녀가 있는 쪽으로 넘어지려는 것을 확인했다.

심유진과 종업원 사이는 불과 반 미터 남짓했다. 그녀는 그 짧은 몇 초 사이에 결정을 내려야 했다. 심유진이 빠르게 몸을 움직여 우정아와의 충돌을 피했다.

결국 우정아가 종업원과 부딪히게 되었다.

종업원이 갑작스러운 충격에 몸을 휘청거리자 국물이 출렁이며 두 사람 쪽으로 쏟아졌다.

“꺄악!”

우정아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그녀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두 손으로 배를 감쌌다.

종업원 역시 꼴이 말이 아니었다.

심유진이 빠르게 휴대폰을 꺼내들고 구급차를 불렀다.

소란이 제법 컸는지 양쪽 룸에서 이따금 사람들이 고개를 내밀고 상황을 살폈다. 구경하는 사람들이 점점 몰려들고 있었다.

“정아야!”

멀지 않은 곳에서 조건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유진이 고개를 돌렸다. 그가 빠른 속도로 달려와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우정아를 안아들었다. 그는 그녀의 몸에 튄 국물 같은 건 신경도 쓰지 않는듯했다.

조건웅을 확인한 우정아가 더욱 어리광을 부려댔다.

“건웅 씨…… 저 너무 아파요……”

조건웅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녀의 볼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며 낮은 목소리로 달랬다.

“내가 당장 병원에 데려다줄게. 무서워하지 마. 알았지?”

마치 둘만의 세상에 갇힌 듯 한 두 사람의 모습에 심유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가 빠른 걸음으로 조건웅을 쫓아갔다. 그리고 그의 팔을 잡고 우정아를 힐끗 보며 물었다.

“당신 나한테 해명부터 해야 하지 않아?”

조건웅은 순간 마음이 약해졌다. 그러나 곧바로 이어지는 우정아의 신음 소리에 마음을 굳혔다.

“일단 정아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난 다음에 말해.”

그가 심유진의 손을 뿌리치고 빠른 걸음으로 엘리베이터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심유진은 그 자리에 한참 동안 가만히 서있었다. 그녀가 겨우 분노와 슬픔에서 빠져나와 정신을 차렸을 때 오른쪽 발목에서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고개를 숙이고 살펴보니 발목 주위가 빨갛게 익어있었고 피부 표면에 기름 자국이 흥건히 묻어 있었다. 아까 국물이 쏟아졌을 때 그녀 쪽으로 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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