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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향낭 덕분

강무진이 사진 속의 여자에게 관심을 보이며, 적막한 그의 눈동자에 빛이 서렸다.

“최대한 빨리 찾아서 데려와.”

강무진이 재촉의 기운이 다분한 어조로 지시했다.

왠지 재미있을 것 같다고 느낀 무진은 이런 소소한 재미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손건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보스, 밤이 너무 늦었습니다. 먼저 모셔다 드리고 돌아가겠습니다. 사람을 찾는 일은 아래 수하들이 바로 시작할 겁니다. 의사 선생님이 이미 댁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볍게 턱을 끄덕이며 알았다는 표시를 한 강무진.

뒤편의 작은 창고에서 휠체어를 밀고 온 손건호가 강무진을 부축해서 앉혔다. 그리고 두꺼운 담요로 무진의 다리를 덮은 후, 휠체어 채로 안아 올려 차에 태웠다.

수천 번도 더 해 본 동작들은 모든 진행과정이 일사천리로 매끄러웠다.

곧 무진의 거처에 도착했다.

거실에는 이미 흰색 셔츠를 입은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반쯤 기른 머리는 목덜미 쪽에 작은 꽁지머리로 묶여 있었다. 꼬리가 살짝 날카롭게 치켜 올라간 눈썹 아래에는 길게 뻗은 도화안이 자리하고 있었다. 살짝 웃는 듯이 꼬리가 내려온 서글서글한 한 쌍의 눈이 자칫 사람을 빠져들게 한다.

위로 약간 들려진 적당한 두께의 붉은 입술은 자웅을 겨루기 힘들 정도로 수려했다.

금테 안경 아래의 두 눈동자에는 다정한 빛이 서려 있어 온화하고 점잖아 보였다.

강무진의 오랜 친구이자, 강무진을 전담하는 정신과 의사, 진우현이었다.

사실 그는 전적으로 강무진의 심리 상담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랜 시간 불면증을 앓아온 강무진을 위해 최면을 걸어 수면을 돕고, 또 수면의 질을 높여 주는 게 그가 담당한 역할이었다.

인기척 소리에 고개를 돌린 진우현의 눈에 손건호가 강무진의 휠체어를 밀고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또 일하고 왔어?”

진우현은 한 차례 기지개를 켠 후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었다.

고개를 끄덕인 무진은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휠체어에서 일어나며 진우현에게 말했다.

“먼저 목욕부터 하고 올게.”

이런 장면 또한 무수히 보았던 터라 이미 무엇 하나 이상하지 않았다.

저 휠체어도 원래 보이고 싶은 사람들한테 보여주기 위해 앉는 것일 뿐이다.

무진이 욕실로 들어가자, 따라 일어난 우현도 무진의 방으로 들어가 준비를 했다.

우선 주변 환경이 절대 안정을 유지하도록 신경 썼다. 그리고 그는 무진의 침대 맡에 보라 빛 훈증향을 피웠다.

향에는 무진의 수면을 돕기 위해 우현이 특별히 제조한 약물 성분이 들어있었다.

무진이 욕실에서 나옴과 동시에 우현의 준비 작업도 끝이 났다.

무진이 침대에 눕자, 우현이 향을 피우고 최면을 걸기 시작했다.

불면과의 오랜 전투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는 그였다.

그런데 무진이 최면에 든 지 2분도 안 되어 바로 잠이 들었다.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여태까지 무진이 잠 들려면 길게 두 시간, 때론 더 긴 최면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런데 오늘 밤은 어떻게 된 거지?’

‘2분과 2시간은 진짜 서로 너무 다른 개념이라고.’

감격에 찬 우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소리 내어 울고 싶을 지경이었다.

무진이 불면증에 시달리며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을 때마다, 자신의 의술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늘 의심하게 되는 그였다.

그런데 지금 보니, 요 몇 년 동안의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나 보다. 그의 의술이 훌륭하다고 할 밖에.

자신의 생각을 검증하기 위해 조심스러운 손길로 무진의 맥박을 짚어보았다.

맥도 안정적이고, 호흡도 길다. 무진은 이미 깊은 수면에 빠져 있었다.

떨리는 자신의 손을 진정시키고 회중시계를 챙긴 우현이 살금살금 걸어 나가 문을 꼭 닫았다.

한밤 중에 손건호가 돌아왔다.

손건호가 막 거실에 들어서는데, 자지 않고 계속 자료를 보고 있던 우현이 득달같이 이 기쁜 소식을 알렸다.

턱을 쓸며 잠시 생각하던 손건호가 말했다.

“향낭 때문인지, 어젯밤 돌아오신 후에도 바로 잠이 드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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