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6화 관계자 외엔 모두 나가주세요

그 시각.

“유연서요?”

차에 오른 이진은 마침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더니 귀에 익은 이름을 듣는 순간 입꼬리를 씩 올렸다.

만약 그녀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유연서는 윤이건이 사랑하는 상대다. 그녀와 결혼한 지난 몇 년간 윤이건이 매일이다시피 병원에 찾아갔던 그의 빛과도 같은 존재.

그런데 그 유연서가 자기가 맡을 환자가 됐다니 세상 참 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방금 전 아직 이혼 서류에 사인하지 않았다고 말하던 윤이건의 말이 생각나 이진은 몸을 떨었다.

‘윤이건의 옛사랑을 구해주라고?’

손가락으로 턱을 톡톡 두드리던 이진은 뭔가 좋은 수라도 생각난 듯 눈을 반짝였다. 상대에게 이혼을 요구할 좋은 수가 떠오른 것이다.

그리고 무심결에 백미러로 그녀의 모습을 본 케빈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보스가 이렇게 웃는다는 건 누군가 재수 없을 거란 예고인데 그 불쌍한 상대가 누구일지 궁금했다.

그 시각 병원.

빠른 걸음으로 유연서가 입원해 있는 병실에 도착한 윤이건은 지금껏 본 적 없는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건 오빠, 왔어?”

침대에 누워있던 유연서는 윤이건을 보는 순간 가슴속에 잔잔한 물결이 일렁거렸다.

그리고 순간 뭔가 생각난 듯 입술을 꽉 깨물며 팔을 들어 올렸다. 넓은 환자복이 쭉 흘러내리며 드러난 팔에는 흉측한 화상 자국이 보였다.

“움직이지 마.”

그 모습에 윤이건은 가슴이 아팠는지 다급히 다가오며 수척한 유연서를 위해 이불을 덮어주었다.

눈에 드리운 차가움도 그 화상 자국을 보는 순간 미안함으로 뒤바뀌었다.

그때 유연서가 그를 구해주려고 나서지만 않았어도 이런 흉측한 상처가 나지는 않았을 텐데.

“의사 선생님이 움직이지 말라고 했잖아. 너 아직 몸이 약한데 이렇게 갑자기 움직이면 안 돼…….”

나직한 소리와 걱정 가득한 눈빛에 윤이건이 아직도 미안해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자 유연서는 그제야 윤이건 몰래 입꼬리를 씩 올렸다.

“다른 사람이라면 내가 이러지도 않아…… 오빠라서 이러는 거지…….”

윤이건이 병문안 온 이 기회에 더 가까워져 보려던 생각을 하기 바쁘게 병실 문이 열렸다. 그 덕에 유연서는 하려던 말을 도로 삼켰다.

“윤 대표님.”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병원 원장이었다.

그 소리에 윤이건은 유연서를 침대에 다시 눕히고 의사 쪽으로 돌아섰다. 당연히 유연서 눈에 언뜻 스쳐간 날카로운 빛은 발견하지 못한 채.

“윤 대표님, 저희 병원에서 방금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린 ‘이안 님’을 모셨습니다. 유연서 씨의 병은 지금껏 계속 재발했고 병원에서도 그 이유를 찾지 못했는데 이안 님은 수많은 불치병을 치료한 분이시기에 희망이 있어 보입니다.”

“엄청 신비로운 분이셔서 지금껏 행방을 알 수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연이 닿아 어렵게 모셔왔습니다!”

원장은 병원에 조만간 방문하겠다는 이안의 약속만 생각하면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안이 병원에 오면 그의 병원은 앞으로 잘 될 일만 남았으니.

그 말을 들은 윤이건의 눈빛은 점차 어두워졌다. 이쯤 되니 원장이 입이 닳도록 칭찬하는 그 사람이 대체 누구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유연서는 그와 확연히 다른 반응이었다. 순간 느껴보지 못했던 불안감이 휘몰아쳤다. 왜냐하면 그녀는 사실 아무 병도 없었으니까…….

“이안이라는 의사를 모시기 어려웠을 텐데 엄청 애썼겠다. 그런데 나 정말 괜찮아…….”

눈물이 글썽거리는 유연서를 보고 있자니 윤이건은 난처한 듯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유연서 씨, 그러실 필요 없어요. 이안 님이 유연서 씨의 일을 듣고 증세에 흥미를 보이면서 일부러 와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원장이 갑자기 끼어드는 바람에 유연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 순간,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오더니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렀다.

그리고 이내 검은 하이힐에 흰 의사 가운을 걸치고 있는 여자가 병실에 나타났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돌려본 윤이건은 원장 뒤에 나타난 사람을 발견했고 뭔가를 말하려고 고개를 들던 유연서도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목이 메었다.

“이진?”

윤이건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진 씨가 여긴 어쩐 일이야?”

두 사람을 보았는데도 이진은 조금도 놀라는 기색을 하지 않았다. 말하려던 말이 잘렸는데도 무뚝뚝한 태도였다.

그때.

“이진 언니 미안해요. 제가 일부러 이건 오빠더러 제 곁에 있어달라고 한 거 아니에요. 그저 저 혼자 병원에 있는 게 너무 무서워서, 흑흑…….”

유연서가 갑자기 눈물을 훔치며 묻기도 전에 먼저 설명했다. 불쌍한 척 울어대는 목소리마저 처량하고 듣기 좋았다.

하지만 이진은 그저 눈썹을 치켜뜨며 옆에 있는 원장을 바라봤다.

“유연서 씨, 이 분이 바로 유연서 씨의 병을 치료해 줄 이안 님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혼자 외로울 걱정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원장이 눈치껏 끼어들었다. 게다가 마지막 한마디는 일부러 꺼낸 거였다.

역시나 그 말에 유연서는 일순간 계속 울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진 씨가 이안이라고? 이진 씨의 의술이 뛰어나다는 건 몰랐는데?”

윤이건의 낯빛은 일순간 어두워졌고 눈에는 질책과 따져 묻는 듯한 의사가 다분했다.

방금 전까지 파티장에서 드레스를 입고 GN 그룹을 인수하던 사람이 이제는 의사 가운을 입고 옷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채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다니.

‘이 여자가 정말 이안이라고?’

“쯧, 윤 대표님, 혹시 해변가에 사세요?”

윤이건의 체면을 봐주지 않는 발언이었다.

그 말에 윤이건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진이 이안이라는 걸 내가 왜 몰랐지? 지금껏 일부러 정체를 숨겼나?’

순간 왠지 모르게 마음 한편이 씁쓸해졌다.

눈앞의 여자가 자기와 몇 년 간의 결혼 생활을 해오면서 이렇게나 많은 사실을 숨기고 있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리고 그 시각 윤이건이라는 사람을 처음부터 몰랐다는 듯 차가운 표정을 짓던 이진이 윤이건의 어깨를 툭 치며 침대 쪽으로 다가갔다. 곧이어 눈을 내리깔며 유연서를 바라봤다.

“유연서 씨, 화장 번졌어요.”

대체 어디서 이런 싸구려 화장품을 구매했는지 아이라인이 눈물에 녹아 검고도 긴 줄을 몇 가닥 드리웠다. 마치 파리 다리를 연상케하는 모습에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하! 뭐…….”

유연서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겨우 화를 가라앉혔다.

“관계자 외엔 모두 나가주세요. 환자분 수술에 방해되니까.”

그때 이진의 흔들림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약 수술의 성공 여부가 상관없다면 남으셔도 됩니다.”

관련 챕터

최신 챕터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