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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포르쉐 타이칸은 마치 한 마리의 용처럼 도로를 질주했고 그들은 곧 경주시 제일 병원 VVIP 병실에 도착했다.

병상에 있는 유효진은 이미 심각한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고 몸에는 각종 기기가 연결되어 있었다. 그녀의 맥박은 미약하여 당장이라도 사라질 것 같았다.

어제까지 재계를 종횡무진했던 절세미인이 갑자기 생명이 위독하다는 것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 병상 옆에서 그녀의 맥을 짚고 있는 한 노인이 눈에 띄었다.

유설진은 얼굴을 찡그리더니 어르신 뒤에 있는 젊은 남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김 도련님, 이 사람은...?”

이 남자는 김세부동산의 이사 김승태로 유효진이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떠는 지독한 유효진 스토커였다. 병상 옆의 어르신도 김승태가 데려온 것이다.

“이 사람은 바로 유명한 신의 이시진 선생이에요. 효진 씨 병을 보이게 하려고 제가 특별히 모셨어요.”

김승태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유설진을 향해 말했다.

그녀의 쭉쭉빵빵한 가슴을 힐끗 스쳐 지나가는 그의 눈빛에는 욕망의 불꽃이 튀었다가 사라졌다.

두 자매는 한 명은 성숙하고 지적이며 다른 한 명은 젊고 활발하다. 게다가 몸매와 용모 모두 일품이기에 두 사람의 마음을 동시에 쟁취할 수 있는 남자는 분명 전생에 나라를 구한 사람일 것이다.

“이시진 선생?”

유설진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시진 선생은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소문이 자자한 유명 신의로서 만약 이시진 선생이 맥을 짚어 준 것을 알았더라면 굳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임찬혁에게 부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디 이시진 선생께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유설진은 격동된 표정으로 이시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때 진맥을 마친 이시진이 ‘허허’ 웃더니 입을 열었다.

“아가씨의 병세는 이미 천계의 중생이 수명을 다하여 죽을 때가 되어야 보인다는 다섯 가지 징후인 천인오쇠의 지경에 이르렀어요.

이 상황에서는 오직 귀문십삼침만이 아가씨를 구할 수 있어요. 다행히 저는 여러분들이 찾는 유일한 귀문심삼침을 놓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 특별히 김승태 도련님의 요청을 받아 이 자리에 왔으니 병을 고치고 나면 고맙다는 말은 승태 도련님께 하세요.”

말을 마치자마자 이시진은 침가방을 꺼내 익숙한 자세로 유효진의 각 혈을 짚어 옷 위로 바로 은침을 찔러 넣었다.

사람들은 그의 신기한 솜씨에 놀라 입이 떡 벌어졌고 마치 신선이 마법을 부리는 듯한 모습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이시진의 뛰어난 의술을 보고 김승태는 득의양양한 얼굴로 웃더니 이내 몸을 웅크리고 앉아 인형같이 생긴 맑은 피부의 여자아이를 안으며 말했다.

“연우야, 엄마 좀 빨리 일어났으면 좋겠지?”

김승태가 물었다.

“네...”

어린 여자아이는 피부가 하얗고 볼은 통통해 말을 할 때도 귀여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이 아이가 바로 유효진의 딸 연우다.

엄마의 목숨이 위태로운 것을 알고 있는 연우의 까맣고 큰 눈에는 걱정과 두려움이 가득 차 있었고 거기에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었다.

“만약 의사 할아버지가 엄마를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오면 삼촌을 아빠로 인정해 주는 거야?”

김승태는 은근히 사람을 유혹하는 말투로 물었다.

유효진은 산 정상에 있는 차가운 꽃같이 도도한 사람이지만 오직 연우에게만 한없이 나약했다. 연우는 그녀의 유일한 약점이었다.

만약 연우가 자신을 인정한다면 유효진의 마음을 얻는 일은 그 무엇보다 쉬워진다.

“네...”

연우는 알 듯 말 듯 한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만 살릴 수 있다면 김승태를 아빠라고 부르는 것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이보다 더 한 것을 하라고 해도 서슴없이 다 할 것이다.

하물며 연우는 다른 아이들에게 있는 아빠가 자기에게는 없어 항상 아빠를 그리워했다.

유설진은 김승태의 행동이 지나치다는 생각에 주의를 주고 싶었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에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언니를 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시진의 침술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고 유효진의 생명징후도 서서히 회복되고 있었다.

“역시 신의답게 침 몇 번에 금방 병이 호전되네요. 유 대표님은 곧 깨어나실 겁니다!”

“역시 이시진 선생은 단연 당대 최고입니다!”

“이시진 선생 의술은 정말 최고입니다. 승태 도련님의 마음 씀씀이도 남다르시네요. 만약 승태 도련님이 아니었다면 이시진 선생님께서 어찌 여기까지 걸음을 하셨겠습니까? 유 대표님도 분명 고마워할 것입니다.”

옆에 있던 의료진은 김승태와 이시진을 연속 칭찬했다. 김씨 집안도 부잣집이거니와 그 자산도 유씨 집안 못지않기 때문이다.

“당신의 귀문십삼침은 틀렸어요!”

그때 옆에서 지켜보던 임찬혁이 갑자기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의 귀문십삼침을 의심하는 건가요?”

옆에 있던 이시진 선생은 순간 어리둥절했고 이내 안색이 변하며 버럭 화를 냈다.

업계 신의로 불리는 이시진 선생에게 지금까지 그 누구도 그의 의술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물며 그가 제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 또한 귀문십삼침이다.

사람들은 그제야 유설진 뒤에 있는 임찬혁을 발견했고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쏠리며 임찬혁이 미쳤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시진 선생의 의술을 의심할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 앞에서 그에게 도전장을 내밀다니!

“당신의 귀문십삼침은 진짜가 아니라 가짜예요. 잔병치레에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이대로 있다가는 유 대표님은 목숨을 잃게 될 거예요!”

임찬혁이 당당한 얼굴로 외쳤다.

이 침술은 가장 정통적인 십삼침이기에 임찬혁도 이 침술을 할 줄 알았다.

“귀문십삼침은 이시진 선생이 업계에 이름을 떨친 절세 기술인데 감히 그에게 가짜라고 하다니요!”

김승태는 임찬혁이 멍청하다는 듯 노려보며 말했다.

“경비! 이 시골 촌뜨기를 당장 끌어내요! 괜히 이런 인간 때문에 이시진 선생이 치료하는데 영향을 끼치면 안 됩니다!”

김승태의 고함과 함께 경비원 몇 명이 임찬혁을 제압하기 위해 그에게 뛰어갔다.

“멈춰!”

순간 유설진이 소리쳤고 경비원들도 자리에 멈춰 섰다.

“임찬혁은 언니를 치료하기 위해 제가 부른 거예요. 다들 물러가세요.”

유설진의 말에 경비원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랐다.

“설진 씨, 아무리 병이 위독해도 아무나 함부로 진료하게 하면 안 되죠. 이 녀석 좀 보세요. 어디가 의술을 할 줄 아는 사람으로 보여요.”

김승태는 계속 그녀를 보며 물었다.

“설마 설진 씨도 이시진 선생을 못 믿는 거예요?”

출소할 때 입은 옷을 그대로 입고 있는 임찬혁의 옷은 몹시 허름해 보였고 주위의 여러 사람도 그에게 계속 경멸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의사는커녕 시골 촌뜨기라고 하는 게 임찬혁에게 더 어울리는 단어였다.

임찬혁의 말을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자 유설진이 입을 열었다.

“이분은 언니의 몸 상태가 안 좋다고 제일 먼저 말한 사람이에요. 저도 언니 상태가 안 좋다는 거 알고 어쩔 수 없이 모신 겁니다. 하지만 도와주러 온 사람이니까 난처하게 하지 마세요.”

유설진이 임찬혁을 두둔하자 김승태는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임찬혁 씨 맞죠? 나는 당신이 어떻게 유효진의 건강이 안 좋다는 것을 예언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쩌다 한 번 운 좋게 맞힐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지금은 이시진 선생이 있으니 당신이 참견할 때가 아니에요! 눈치가 있으면 알아서 빠지세요. 한 번만 더 지껄이면 당신 입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거예요!”

김승태는 위협적인 말투로 임찬혁을 협박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아 하는 얼굴로 대답했다.

“이런 돌팔이 의사를 어떻게 신의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이 인간은 지금 사람을 구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죽이고 있다고요!”

임찬혁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이 자식이! 그럼 어디 내기 한 번 할래요?”

김승태의 눈빛에 독기와 분노가 서려있었다.

“이시진 선생이 유 대표님 병세를 치료 못 할 거라고 했죠? 그러다가 만약 병이 나으면 당신은 나에게 절 세 번을 하고 내 가랑이 밑을 기어서 지나가야 할 겁니다.”

김승태가 비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다가 병을 못 고치면요?”

임찬혁이 되물었다.

“못 고치면 나도 똑같이 하지요!”

김승태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이시진 선생도 치료하지 못하는 병이라면 아마 이 세상 그 누구도 치료할 수 없을 것이다.

이때 이시진 선생은 침술 치료를 마쳤고 그는 유효진의 몸에 놓은 은침을 보며 만족스러운 듯 수염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임찬혁이 한 말에 대해서 그는 무시하기로 한 듯 전혀 개의치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런 어린 사람과 굳이 눈살을 찌푸려가며 다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 대표님은 곧 깨어날 겁니다. 나의 귀문십삼침은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어요.”

이시진 선생이 말하자마자 유효진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움직이더니 드디어 천천히 눈을 떴다.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기쁨에 겨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유효진이 진짜로 깨어났다!

역시 이시진 선생의 의술은 명불허전이었다.

“봤죠? 효진 씨가 깨어났으니 얼른 무릎 꿇고 절을 한 후 내 가랑이 밑으로 기어서 지나가세요!”

김승태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나에게 맞서려는 자, 반드시 가차 없이 짓밟힐 거야!’

“유 대표님은 아직 완전히 치료된 게 아니에요. 지금 눈을 뜬 건 단지 죽기 직전에 돌이키는 기운이에요. 어서 빨리 몸에 있는 은침을 빼야 합니다. 안 그러면 위험해요!”

임찬혁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결코 주위 사람을 놀라게 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이것은 사실이다.

만약 더 이상 은침을 빼지 않는다면 유효진은 반드시 이 돌팔이 의사 손에서 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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