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윤도 화가 나서 으르렁거렸다.“송이야 너 정말 너무하는 거 아니야? 지금 부모님을 화나게 하는 건 우리한테 너무 가혹한 일이잖아. 우리 나이란이 얼마나 겁이 많은데 내일 연회에 오지 않겠다고 하면 네가 책임질 거야?”“오빠는 내가 아니라 이제 나이란밖에 생각하지 않는 거야?”“내가 언제!”유치한 두 사람이 이 자리에서 당장 싸울 기세를 보이자 세훈이 다급하게 말렸다.“됐어. 다들 그만해.”그리고 강연에게 말했다.“어머니는 괜찮으신데 아버지가 많이 화가 나셨어. 감당할 자신은 있고?”“화를 내는 게 다행인 거예요.”강연이 ‘흥’하며 말했다.“속에 꾹꾹 누르고 있다가 내일 안택 오빠랑 우리 서안 오빠에게 분출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거란 말이에요. 우리 서안 오빠가 그런 대접을 받는 걸 눈 뜨고 볼 수가 없어요! 그래서 서안 오빠한테 잘해주지 않으면 이 딸은 도망이라도 갈 것이다, 라는 포부를 보여준 거예요!”오래간만에 어린 티를 내는 강연을 보니 세훈은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그만해. 네 옅은 속셈을 부모님이 모를 리가 없잖아. 데리러 올 때 전서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달라고 하셨어.”세훈이 서안을 보며 말했다.“널 위해 거짓말을 꾸미느라 고생했을 텐데.”그 말에 서안은 되려 마음이 편해졌다.처음부터 속일 생각이 아닌, 강연이 장난을 친 것이라는 인식을 주는 게 오늘 목적이었다. 일을 작게 만들어 강연이 처벌을 받지 않게 하려고 서안은 고민했었다.그리고 강씨 가문 사람들은 강연의 마음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그러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자, 이제 대본 챙겨서 돌아가 천천히 읽어봐.”서안이 강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네가 준비되면 감독님과 오디션 약속 잡을게.”그 말에 김성재의 입꼬리가 꿈틀거렸다.‘나만 죽어가는구나.’‘혹시 강연 씨가 계속 준비가 되지 않는다면 영화는 계속 스탠 바이하고 기다려야 하냐고!’“응, 걱정하지 마. 빠르게 준비해 볼게.”강연이 고개를 숙여 조혜영과 김성재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네.”서안은 바로 열일 모드에 돌입했다.다른 한편, 강씨 저택에서.집으로 돌아온 강연이 맞서야 하는 건 부모님의 심문이었다.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아버지 강현석의 심문이었다.소파에 앉아 있는 강현석의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다만 좀 더 진중해졌으며 인상이 전보다 온화해 보였다.하지만 그 온화함을 지금은 찾아볼 수가 없다.강현석은 한 손에 신문을 들고 아무런 표정이 담기지 않은 얼굴로 강연을 쳐다보았다.“아빠...”강연의 애교에도 강현석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아빠 화 풀어요, 네? 자꾸 화내면 늙는다고 그러잖아요.”강현석은 여전히 아무 말도 없이 손에 쥔 신문만 점점 더 세게 그러쥐었다. 어느새 이마에도 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났는데 아마 화가 많이 난 것 같았다,강연이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아빠 자꾸 화내다가 못생겨지면 엄마가 아빠 버리면 어떡해요?”“감히?”강현석이 참지 못하고 한마디를 하더니 신문을 홱 내려놓았다.“뭐라고?”뒤로 도예나의 의아함을 담은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러자 강현석은 바로 신문을 주어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그럴 수도 있겠어.”“...”‘이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은 뭘까?’“아빠 솔직하게 말할게요. 오늘 나를 집에 가둔 것에 화가 나서 도망간 게 맞아요. 하지만 서안 오빠는 이런 날 다독여 집으로 보내줬어요. 앞으로 일도 열심히 하라고 응원도 해주고요.”“지금 잘못을 깨달았고 충분히 반성하고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도 알 것 같아요. 그러니까 엄마랑 아빠랑 그만 화내면 안 돼요?”“그만 화내고 계속 잘생긴 아빠로 남아주면 안 돼요?”계속 이어지는 애교 공세에 강현석이 넘어가지 않을 리가 없었다.“정말 반성했어?”강현석이 강연을 바라보며 물었다.강연은 도예나가 건네준 예쁘게 깎은 사과를 한입 베어 물며 고개를 끄덕였다.“정말 반성 많이 했어요. 다시 안 그럴게요!”강연은 사과를 우물우물 씹으며 말했다.“아빠 저 연기 선생님 찾아주시면 안
이 비보에 강연은 눈물이 앞을 가렸다.역시 아버지를 당해낼 방법은 없었다.하지만 강연은 부모님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이러한 이유로 강연은 더 빠르게 성장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정상에 서게 된다면 서안에 대한 믿음도 더 커질 것이다.하지만 안타깝게 된 건 서안이었다. 망부석이 아닌 망처석이 될 운명이었다.강연은 서안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알렸다.잠시 침묵하던 서안이 예상과는 달리 긍정적인 대답을 보였다.“앞으로 가야 할 길이 더 길어.”그 말에 강연은 갑자기 없던 힘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새로 찾은 연기 선생님과 학구열을 불태웠다.다음날, 강씨 가문 연회.강씨 형제들은 자신의 반쪽과 함께 참석했다.강현석과 도예나의 시선은 쌍쌍이 등장한 아이들을 향했다.송청아는 우아하고 아름다웠으며 진중한 세훈과 완벽한 한 쌍으로 보였다. 나이란은 귀엽고 활동적이었는데 털털한 성격의 세윤과 아주 잘 어울렸다. 송예은은 차가운 인상과는 달리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으며 제훈에게 많이 의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차갑기로 소문이 난 제훈이 다정하게 예은을 다독이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세 쌍의 커플은 강현석의 마음에 쏙 들었다.그 뒤로 보이는 건 보배 같은 두 딸을 채간 안택과 전서안이었다. 강현석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다들 앉지요.”강현석이 도예나와 함께 중간 자리에 착석했다.남은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자리에 착석했다.강씨 세 형제는 안택과 서안을 구경이라도 난 듯 바라보았다.자신의 보물인 동생을 채갔으니 세 형제 역시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송청아와 인사를 주고받던 강현석과 도예나의 시선이 안택과 서안을 향했다.안택은 온화한 성격을 가졌고 피아노를 연주하던 그 분위기에 사람들의 호감을 쉽게 샀다.비록 강씨 가문 사람들은 예외였지만.수아가 먼저 안택에게 프러포즈를 한 사실을 알고 나서는 강씨 가족은 뒷목을 잡고 쓰러질뻔했었다. 서안이 수아의 옆을 얼마나 오래 지켰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중
예를 들어 오늘 같은 장소에서만 강현석이 직접 요리를 선보였다.강연은 서안의 앞접시에 놓인 음식을 보며 마른침을 몇 번 삼키며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강연은 서안과 모든 짐을 나눠 짊어질 수 있었지만...아버지가 만든 음식만큼은 예외였다.‘이건 어쩔 수 없어 서안 오빠.’‘우리 사랑은 3분 뒤에 다시 이어지는 거야.’사람들의 시선을 온몸으로 받으며 서안이 덤덤하게 음식을 집더니 천천히 씹어 꿀꺽 삼켰다. 삼킬 때까지도 서안의 얼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삼키고 나서 서안이 강현석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감사합니다, 삼촌. 입맛에 아주 맞아요.”강씨 가문 사람들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구겨졌다.젓가락을 쥐고 있던 강현석의 손도 살짝 흔들렸다.“입맛에 맞으면 많이 먹게.”강현석은 또 서안의 앞접시에 한 움큼 옮겨 담고 말없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이에 세윤은 기회다 싶어 바로 음식을 접시째로 당기며 말했다.“이거 모두 네가 먹어.”서안을 제외한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서안은 여전히 침묵을 유지했다. 남자 친구가 괴롭힘을 받는 걸 더는 참지 못한 강연이 몸을 일으켜 다시 접시를 밀어내려는데 서안이 강연의 손을 잡아당겼다.그리고 표정 변화 한번 없이 말을 이었다.“삼촌과 형님들의 관심에 감사드립니다.”서안은 다시 젓가락을 들고 차마 눈에 담을 수도 없는 그 처참한 요리를 묵묵히 입에 넣었다.사람들은 이런 서안을 보며 감탄을 자아냈다.강현석 본인도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이렇게 대단한 소년은 이 세상에 흔치 않았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아직 철없는 제 딸이 이런 소년을 만나는 게 과분하다는 생각도 들었다.이번 모임에서 안택은 술을 잔뜩 먹은 것으로 강씨 가문 사람들의 기분을 풀어주었고 서안은 이 요리를 먹어준 것으로 존경을 받았다.다들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떠났음에도 제훈은 여전히 자리를 지켰다.그리고 인상을 찌푸리며 서안이 먹었던 요리를 살짝 혀끝에 가져다 대었다.“어때? 아버지 요리
제훈의 결혼은 오늘부터 3년 뒤였다. 인상을 찌푸리며 불만을 가득 표하는 제훈과는 달리 송예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예은에게 천천히 적응할 시간이 주어졌다. 갑자기 결혼이라니,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형제 중 가장 의견이 큰 사람은 수아였다.분명히 네 쌍둥이로 같은 날에 태어났지만 결혼 순서는 네 번째로 미뤄졌다. 그래서 수아는 한껏 뾰로통 해냈다.수아와 안택도 오랜 세월 함께했었다. 그전에는 수아가 미처 제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해 시간을 그렇게 흘려보냈었다.이제 사랑이 뭔지 제대로 알아버린 수아는 안택과 하루빨리 결혼해 그동안 못 해준 걸 갚아주고 싶었다.그게 바로 무대에서 프러포즈한 이유였다.하지만 이렇게 미뤄지자 늘 침착하던 수아가 평정심을 잃어버렸다.수아가 대놓고 부모님께 항의했지만 돌아오는 건 싸늘한 거절이었다.다행히 안택이 중요한 시점에 나타나 수아를 다독여 분위기가 얼어붙지 않게 했다.이에 도예나가 안택에게 물었다. 강현석의 결정에 속상하지 않은지를.하지만 안택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평생 수아 선배의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서로 사랑을 하는 사이가 되다니 저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만약 저와 수아 선배가 결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건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니 조금 빠르든 늦든 시간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안택의 대답은 도예나의 마음에 아주 들었다.수아는 늘 이성적이고 침착했으며 쉽게 곁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수아의 엄마로서 도예나는 수아가 사실 감정에 아주 연약한 아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마음에 들어온 사람은 평생 지켰다.그리고 다행히 안택은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다.언니와 오빠들의 일이 어느새 자리 잡히고 가장 속상해하는 건 강연이었다.“5년, 앞으로 5년이나 더 기다려야 한다니. 그것도 내가 연기로 정상까지 찍어야 결혼이 가능하다고 그러잖아. 자기야, 우리 이번 생에 결혼할 수 있을까?”“걱정하지 마.”서안이
강연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나이란이 말했다.“강세윤이 그랬는데 이번 오디션에 떨어진다면 돈을 쏟아부어서라도 반드시 배역을 따내게 해주겠다고 했어. 200억이나 준비했다고 했으니까 언제든지 네 든든한 스폰서가 되어줄 거야.”“...”‘이게 바로 날 절대적으로 믿는다는 의미인 거야?’‘뇌물 자금까지 준비했다니.’강연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때 뒤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강연?”고개를 돌린 강연이 상대를 발견하고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혹시... 이연수 언니?”이연수는 “그 시절, 우리는” 드라마 촬영 당시 안면을 튼 배우였다. 강연과 찍는 씬이 많기도 했고 나이도 비슷해 꽤 친하게 지냈었다.하지만 드라마 촬영이 끝나고 톡방에서 말을 몇 번 주고받았을 뿐 별다른 연락을 하지 않았다.강연의 신분이 공개된 후로 이연수는 강연에게 따로 연락했었다.하지만 연락하지 않은 지도 시간이 꽤 지났다.이곳에서 아는 얼굴을 만날 줄 몰랐던 강연은 의외이기도 기쁘기도 한 마음이 들었다.“혹시 어느 배역 오디션 보러 온 거야?”연수의 물음에 강연이 대답했다.“스파이에서 이가을 역이요.”이가을은 영화 여자 주인공 역이었다.강연의 말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 이연수는 살풋 웃더니 말했다.“넌 반드시 따낼 거야.”강연은 미소를 살짝 지우고 말했다.“따낼 수 있는지 없는지는 오디션에 달렸죠, 안 그래요?”강연의 말은 자신의 신분과 배경의 영향을 지우고 실력으로 따내겠다는 결심을 보였다.이연수는 옅은 감탄을 자아냈고, “이가을” 역을 원하는 다른 배우들도 안심했다.‘배경으로 따내는 게 아니라니 다행이야.’다른 사람들이 이런 말을 했다면 믿지 않았을 테지만 강연처럼 대단한 가문의 공주님의 말은 믿음이 갔다. 배경으로 따낼 수 있는 배역이었다면 강연이 직접 오디션을 보러 올 리가 없었을 테니.또한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강연은 겸손하고 바른 사람이었으며 자신의 신분으로 갑질을 하지도 않는다고 했다.“그 시절, 우리는” 촬영에서도 많은 고생을
강연은 언뜻 보아도 미녀의 아우라가 풍겼는데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와 작은 얼굴형, 청순하고 활발한 성격이 아주 매력적이었다.실물로 보아도 예쁜데 카메라로 보니 더 예뻤다. 이런 얼굴은 배우 하기 위해 태어난 것 같았다.송우형은 강연의 예쁜 눈망울을 잠시 지켜보다가 덤덤하게 말했다.“자기소개부터 하세요.”화면 밖의 서안이 인상을 확 찌푸렸다.그러자 김성재가 옆에서 물었다.“도련님, 송우형 감독님께 연락할까요?”“그럴 필요 없어요.”서안이 점차 인상을 풀며 말했다.그래서 김성재도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평등하게 모두가 받는 질문에 강연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답을 시작했다.반듯한 자세와 예의 바른 말투가 들려왔다.“송우형 감독님, 그리고 선생님들 안녕하세요, 저는 강연이라고 합니다. 신인 배우이고 ‘그 시절, 우리는’ 드라마에서 백연주 역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번 오디션 기회가 주어져서...”강연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나긋해 아주 듣기 좋았다.자신의 신분은 숨기고 바로 연기 경력을 말하는 강연의 모습에 스태프들이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을 보였다.자기소개가 끝나고 송우형이 물었다.“강연 씨는 왜 굳이 연예계 일을 하고 싶은 건가요?”옆의 조감독이 깜짝 놀라 표정 관리에 실패했다. 송 감독이 직설적으로 물어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습이었다.다들 모르는척하면 넘어갈 수 있었는데 말이다.“저는 하늘 아래 모든 사람이 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연기를 좋아하고 실력 있는 배우가 되는 것이 제 꿈입니다. 제 실력을 인정받기 위해 오늘 이 자리에 오게 되었습니다.”강연은 당당하고 침착했다.역시 대가문의 공주님다운 우아한 기풍이 넘쳤다. 다른 일반인이 이런 말을 했다면 하늘이 무서운 줄 모르고 덤빈다는 말이나 들었을 것이다.하지만 강연에게는 믿음이 갔다.마치 강연이 해낸다고 한 일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해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송우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덤덤하게 말했다.“그러면 준비하고 연기를 시작해 주세요.”그 말
강연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조감독이 식은땀을 흘리며 송우형 감독을 오늘 오디션에 참석시키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했다.강연이 고집을 부려 가장 어려운 대본으로 오디션을 봤다가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실패라도 하면 어떻게 하겠는가?조감독은 강연이 쉬운 대본을 선택하기를 간절히 빌었다.그리고 강연은 빠르게 선택을 내렸다.“저는 이 대본으로 하겠습니다.”손에 쥔 대본을 팔랑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이미 저한테 주셨으니 제 대본은 정해졌습니다. 바꿀 생각은 없으며, 송 감독님과 조감독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송우형은 전혀 놀라지 않은 모습이었는데, 무뚝뚝하던 그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좋아요, 그렇게 하죠.”외유내강인 여자만이 서안과 어울리는 상대였으며 그러니 서안이 온 마음을 다해 쏟아붓는 것이라 송우형은 생각했다.‘역시 서안의 안목은 틀리지 않았어.’강연은 이런 송우형의 마음은 전혀 읽지 못하고 묵묵히 오디션 준비를 했다.3분 안에 모든 대사를 외우고 감정까지 입혀야 했다.3분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고 연기가 시작되었다.세상에 배신당하고 살 희망을 잃어버린 여자의 마음속 깊숙한 어둠과 원한은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할까?그리고 강연은 또 어떻게 이 캐릭터를 풀 것인가?조명이 켜지고 카메라가 스탠바이를 했다.강연은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를 숙였으며 헝클어진 머리에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날 찾아와서 뭐 하는데요? 난 쓸모없는 기생일 뿐이에요.”부드럽고 나긋하던 목소리가 갑자기 가시가 걸린 것처럼 갈라졌다. 그 순간의 변화에 사람들이 시선을 집중했다.“복수요? 허, 누구한테 복수를 해야 하는데요?”강연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먼지로 뒤덮인 얼굴에 세월의 풍파를 겪은 여자의 모습이 겹쳤다. 텅 빈 눈동자와 비아냥거리는 말투, 그 모든 것에서 한기가 느껴졌다.“그 남자는 죽었어요. 문을 나서자마자 죽어버려서 5만 원에 날 팔아버린 돈을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마차에 치여 죽었대요.”“날 팔아버린 돈은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