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대화주제를 바꾸는 서준혁 때문에 신유리는 뭐부터 말해야할지 몰라 조금 멈칫거리며 입을 열었다.“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으면 돼요.”신유리는 전에 가난했던 시절이 있던 터라 근검절약 정신은 이미 몸에 베여있었다.그녀의 말에 서준혁은 피식 의도를 알 수 없는 웃음을 터뜨렸고 호텔로 돌아가서는 도시락을 신유리가 아닌 이석민에게 들려주었다.할아버지는 별로 음식을 드시지는 않았지만 온 저녁 기분이 좋으신지 내내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나이가 있으신 탓인지 8시도 되지 않았지만 슬슬 졸려했고 신유리는 유씨 아저씨더러 얼른 할아버지를 모시고 호텔로 돌아가라는 말을 했다.할아버지는 서준혁과 신유리를 번갈아보며 뭔가 할 말이 있어보였는데 그 모습에 신유리는 할아버지를 달래듯 입을 뗐다.“저랑 준혁 씨는 따로 할 말이 있어서요.”그들은 호텔 2층에서 함께 밥을 먹었고 할아버지 방은 마침 딱 위층에 있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면 되는 간단한 동선이라 안전에 관한 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보였다.신유리가 말한 서준혁과 나눌 얘기는 바로 입찰회에 관한 말이었다.버닝스타와 화인은 한곳에 묶여있는 터라 만약 버닝스타가 철저히 거절당한다면 화인그룹 또한 별 희망이 없게 된다.“나하진 씨 구체적인 입국 시간이랑 날자 알고계세요?”신유리는 단도직입적으로 서준혁에게 물었다.“말로는 다음 달 초쯤이랍니다.”서준혁의 말에 시간을 계산해본 신유리는 다음달초가 되기까지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남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신유리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급해나는지 서준혁에게 물었다.“제가 오늘 부 선생님이랑 장수영 씨한테 물어봤는데 나하진 씨 대하기가 되게 힘들다던데요, 서준혁 씨 생각에는 나하진 씨가 한세형 씨 쪽을 믿을 것 같나요 아니면 저희를 믿을 것 같나요?”신유리는 무의식적으로 서준혁과 자신을 같은 팀이라고 단정 지었다는 일을 자기가 말하면서도 알아차리지 못했다.서준혁은 생각에 빠진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손끝으로 책상을 툭툭 쳐대다가 담담한 말
연우진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또렷하게 들려왔고 신유리는 베란다로 향해 바깥의 야경을 가만히 바라보며 입술을 오물거렸다.“이 일도 참 오래 끌었어, 이제야 겨우 끝을 향해 달리네.”신유리를 대신해 이연지와 주국병의 일을 오랫동안 쫓아왔던 연우진이기에 한숨을 푹 내쉬며 말을 했다.갔다 왔다만 수백번 반복한 끝에 이젠 결과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신유리는 연우진의 말에 크게 흥분하지 않고 차분한 모습이었는데 눈에는 많은 감정들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이연지가 증인을 하고 증거를 대는 일은 아주 좋은 시작이었다.그러나 신유리의 가슴깊이 자리 잡고 있는 그 무거운 돌덩이는 최종결과를 얻기전까지 내려놓지 못할 것 같았다.연우진은 아무리 기다려도 신유리의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리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를 건넸다.“그래도 많이 발전하고 있어, 천천히 시작을 떼고 진보해나가면 금방 해결 될 거야.”“응, 그렇겠지?”신유리는 그의 위로에 짧은 대답을 해주었고 그와 몇 마디 대화를 더 나누었는데 연우진은 행여 쉬고 있는 신유리에게 방해가 될까 얼마 가지 않아 전화를 끊어버렸다.신유리는 방으로 돌아가 깊은 한숨을 푹 내쉬였다.[그래, 조금이나마 진전이 있으면 그걸로 됐어.][그래도 이번엔 진도도 꽤 많이 나갔네.]다음날 아침 신유리는 바로 이신에게 전화를 걸어 미래그룹의 일을 말해줬고 이신은 빠르게 수락하며 저녁에 재료들을 가져다주겠다고 대답했다.“언제 성남에 돌아오려고?”업무에 관한 말들을 마치고 이신은 또 다시 이 물음을 제기했다.보아하니 연우진은 이미 이신에게 발생한 일들을 다 알려준 것 같았다.“때가 되면 그쪽에서 나한테 연락 하겠지.”신유리가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신유리는 무의식적으로 송지음이 쉽게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지금 돌아가도 별 소용이 없다고 느꼈다.요즘 많은 일들이 한데 뒤엉켰고 신유리는 사람인지라 조금 힘들고 고단해졌다.순간 무언가 떠오른 듯 신유리는 이신에게
회의가 거의 마무리 되는 순간 상위에 놓은 송지음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려댔다.한세형이 지금 업무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본 송지음은 울려대는 핸드폰을 슥 쳐다만 보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러나 발신자는 송지음이 끊어버리면 곧바로 다시 걸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고 그녀는 끊임없이 울리는 핸드폰을 보며 불안에 휩싸였다.발신자의 위치는 성남시라고 표시되었는데 송지음은 떨려오는 가슴을 부여잡고 조건반사적으로 신유리를 쳐다보았다.원래 송지음을 쳐다보고 있던 신유리는 그녀가 고개를 들어 자신을 보는 것을 보고도 담담하고 평온하게 송지음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흔들림 없던 송지음의 동공이 흔들렸고 아직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생각조차 못했을 무렵 옆에 있던 장수영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송 비서님, 전화 좀 받으세요. 계속 진동하는 바람에 상까지 흔들리잖아요.”송지음은 고개를 들어 한세형을 슬쩍 쳐다보았는데 그의 표정 또한 좋지만은 않았다.그제야 그녀는 낮은 소리로 사과를 하더니 핸드폰을 들고는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송지음이 입구로 도착하기도 전 성큼성큼 내믿던 발걸음이 갑자기 멈췄고 그녀의 놀란 듯한 목소리가 울려펴졌다.“뭐라고요?”그녀는 핸드폰을 꽉 쥐고 고개를 돌려 신유리를 쳐다보았는데 눈빛엔 공포와 불안으로 가득차있었다.그러나 신유리는 그런 송지음을 담담히 바라만 볼 뿐이었다.송지음은 바로 회의실을 떠났고 회의가 끝나서도 그녀는 돌아오지 못했다.점심 휴게시간에는 장수영이 은밀하게 하나의 소식을 들고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신유리를 보더니 말했다.“진즉에 알고 계셨죠?”“뭐를요?”신유리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서류들을 정리하며 되물었다.“송지음 씨가 성남시에 있는 경찰에 소환된 일말이에요, 곧장 성남으로 돌아가서 조사에 협조해야 된다던데요.”“방금 제가 올 때 뭘 봤는지 아세요? 한세형 씨랑 송지음 씨가 휴게실에서 싸우고 있더라고요. 한세형 씨 목소리를 들으니까 무척이나 화가 나 있던데 송지음 씨는 계속 눈
주언의 말에 이석민은 말문이 막혀 어떻게 대꾸를 해야 할지 몰라 하며 고개를 돌려 백미러를 쳐다보았다.신유리는 주언의 말에 동의라도 하듯이 담담히 이석민에게 말했다.“저 혼자 택시타고 갈 거예요.”그녀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뒷좌석의 창문이 스르륵 열리더니 서준혁의 아무 감정 없는 얼굴이 보였고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신유리에게 시선을 돌렸다.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내리는 비마저 잠시 멈추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비까지 내리는 바람에 바깥공기는 시렸고 서준혁의 시선은 더욱더 차가워졌다.그의 시선이 주언의 손에 들려있는 우산에게로 향했고 그닥 크지 않은 크기의 우산 때문에 신유리와 주언은 거의 딱 붙어있다시피 가까이 있었다.두 사람의 모습은 평소보다 더 친밀하고 다정해보였다.주언은 신유리에게 우산을 씌워주며 기분이 나쁜 듯 서준혁을 보며 말했다.“서 대표님, 이 차 저희는 앉을 자격이 없는 것 같습니다.”“신유리 씨, 비는 점점 더 세게 내릴 텐데 빨리...”이석민은 그들 사이 분위기를 조금 풀어보려고 애썼지만 서준혁은 여전히 어떠한 말도 하지 않고 있었고 이석민은 백미러를 통해 서준혁을 쳐다보며 소심한 목소리로 입을 뗐다.“서 대표님?”이석민의 말에 대답을 한 건 서준혁이 아닌 올라가는 창문소리였고 서준혁은 여전히 같은 우산을 쓰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열려는 순간 그의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발신자는 서창범.서준혁과 서창범은 그리 친하지도 않은 사이였기에 급하지 않은 일이라면 서창범은 절대로 먼저 서준혁에게 먼저 연락을 하지 않았다.아주 당연하게도 서창범이 생각하기에 급한 일들은 서준혁에게 있어서 별로 중요치 않는 일들이었다.그는 무심히 울리는 핸드폰을 받았고 말을 하기도 전 수화기 너머 서창범의 엄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요즘 네가 부산에서 하는 홍란 입찰회인가 뭔가 거기에 입장자격도 따내지 못했다는 말이 있더구나. 서준혁 너 도대체 뭐하는 거냐? 이런 일도 똑바로 못하면 나중에 어떻게 본
신유리는 그대로 내리는 비를 쫄딱 맞고 있는 와중에 서준혁과 시선이 마주쳤고 어느새 그녀의 옷은 흠뻑 젖어가고 있었다.뒤에 있는 여자아이는 주언을 졸졸 따라다니며 아프냐고, 괜찮냐고 물어댔고 이석민은 주언을 부축해서 다가오며 신유리에게 말했다.“신유리 씨, 차 문 좀 열어주세요.”신유리는 이석민의 말에 고개를 들어 서준혁을 슥 쳐다보고는 말했다.“고마워요.”그리고는 빠르게 문을 열어 이석민과 함께 주언을 차에 태웠다.만약 서준혁이 허락하지 않았더라면 이석민도 다가와 도움을 줬을 리는 없었기에 신유리는 먼저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주언이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이동이 불편해져 신유리는 어쩔 줄 몰라했는데 서준혁의 차가 있으니 편하기도 하고 시간도 절약할 수 있었다.그녀는 주언을 잘 앉혀놓고 다른 쪽으로 차에 올라타려고 하였지만 이석민이 빠르게 다가가 주언의 옆자리를 차지하는 바람에 신유리는 하는 수 없이 조수석에 타야만 했다.신유리가 차 문을 여려는 순간,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거리에 울려퍼졌다.“언니, 핸드폰 좀 빌려주실 수 있어요? 아빠한테 전화 좀 할게요. 그래야 병원비리도 물어주죠.”방금 전까지 주언만 챙기는 바람에 여자아이의 존재를 까마득히 잊고 있던 신유리는 아이의 몸과 머리, 그리고 옷에 잔뜩 묻은 모래와 빗방울들을 번갈아보았다.그녀가 뭐라고 대답을 하려는 시각, 서준혁이 문을 열어 차에서 내리더니 신유리의 옆으로 다가와 그녀를 바라보았고 신유리는 자기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그는 문을 열어주며 담담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타세요, 제가 처리합니다.”신유리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고 얼음같이 차갑고 굳어있는 서준혁의 표정에는 어딘가 불쾌하다는 기분이 드러나 있었다.그는 손을 뻗어 신유리의 머리를 슬쩍 막아주며 다시 말했다.“비 많이 옵니다, 계속 이렇게 서있으면 감기 걸려서 일이 더 복잡해질 수도 있습니다.”비는 끊을 기미가 없어보였고 이미 흠뻑 젖어버린 신유리는 그의 말대로 순순히 차에 올라탔다.앉자마자 느껴
주언은 오늘 수술까지 받고 다리까지 삐는 바람에 정말로 몸과 마음이 불편해왔다.게다가 비싼 차로 이동을 하는 것도 확실히 다른 차보다는 편했었다.[무조건 서준혁 씨가 엄청 질투하게 만들어야 돼, 알겠어?]주언은 임아중이 자신에게 했던 당부의 말들도 잊지 않았었고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변 공기들은 조용해졌다.이석민은 아무렇지않아하며 혼자 평온한 얼굴을 하고 서있는 주언과 어두운 안색으로 서있는 서준혁의 옆모습을 번갈아보며 마른기침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어차피 다들 호텔로 돌아가야 하니 같이 갑시다, 서 대표님께서도 별로 신경을 쓰시지는 않을 겁니다.”신유리는 탐탁치 않았지만 지금 마침 출퇴근시간인지라 차가 많이 막히는 시간대였고 비까지 내리니 택시도 잡기 쉽지 않아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서있었다.그녀는 주언의 손에 들려져있는 봉지를 건네받으며 이석민과 서준혁을 쳐다보며 말했다.“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서준혁은 무감정한 눈빛으로 신유리에게 시선을 옮기고는 물었다.“신유리 씨는 검사 안 받아도 되겠습니까?”신유리는 아까 전 주언에 의해 끌어당겨질 때 충격을 받았었고 비까지 다 맞아버렸기에 확실히 검사를 받아봐야 할 것 같았다.돌아가는 길 내내 비는 그칠 기미도 없이 점점 거세게 내렸고 신유리는 여전히 조수석에 앉아 거리에 이미 자욱하게 낀 안개를 창밖으로 내다보며 멍을 때리고 있었다.주언의 다리가 다친 사실을 안 이석민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열정적이게 주언을 부축하여 방까지 데려다주었고 서준혁도 그들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주언을 방 앞까지 데려다 준 뒤, 신유리가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서준혁은 신유리 방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녀는 발걸음을 멈칫거리다가 마음을 먹은 듯 다가가 먼저 말했다.“주언 씨가 오늘 다쳐서 차에 오르고 내릴 때 혹시 차가 더럽혀졌다면 제가 세차비 드릴게요.”서준혁은 새까만 눈동자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이렇게까지 철저하게 계산을 해야겠습니까?”신유리가 대답했다.“자매나
성남경찰서에서는 이미 수차례나 송지음에게 전화를 걸어 조사에 협조하라는 재촉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순순히 돌아간다면 좋지 않은 결과만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서준혁도, 경희영도 송지음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리가 없었다.더군다나 한세형, 그는 송지음이 경찰에 소환 당했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얼른 그녀와 손절하려고 애를 썼고 아예 모르는 사람인냥 굴었다.지금 송지음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신연이었다.송지음은 마치 마음을 굳게 먹은 듯 입술을 꽉 깨물고 성큼성큼 발걸음을 회사 내부로 옮겼다.갓 들어서자마자 송지음은 마르고 예쁜데다가 흰 피부까지 가지고 있어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여자를 발견했고 그녀에게서 쉽사리 눈을 떼지 못했다.태지연은 송지음의 시선을 느낀 듯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태지연의 순수하고 맑은 눈빛에 송지음은 무의식적으로 거부감이 들었다.[멍청하고 가식덩어리 같은 저 눈빛 정말 싫어.]송지음은 성큼성큼 카운터로 향했고 직원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안녕하세요, 신연 씨 좀 만나려고 왔는데요.”카운터에 있던 직원이 물었다.“언제 만날지 미리 약속은 하셨나요? 시간은 언제죠?”송지음은 순간 짜증이 치밀어 올라 고개를 바짝 쳐들고는 대답했다.“저 신연 씨 친구 되는 사람입니다. 중요한 일이 있어서 왔어요. 전에도 신연 씨가 저 데리고 여기로 온 적 있고요.”회사 밖으로 나가려던 태지연은 순간 그녀의 말에 발걸음을 잠시 멈추더니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송지음의 빼빼 마른 뒷모습뿐이었다.그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눈을 깜빡거리다가 이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송지음의 옆에 멈춰선 태지연은 머뭇거리며 물었다.“안녕하세요, 신연 씨 잘 아세요?”카운터 앞에 서있던 송지음은 묻는 태지연에게 시선을 돌렸고 그녀의 청아하고 고운 소리에 탐탁치 않아하며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죄송해요, 제가 아직 자기소개를 안했네요. 저는 신연 씨-”태지연은
신유리는 파티가 끝난 후 바로 서준혁을 데리러 갔다.그녀는 룸 문을 열었고, 열자마자 어린 여자와 마주치게 되었다.여자는 깔끔한 얼굴에 빛나는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사람의 호감을 사는 얼굴이었다.신유리는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 여자는 바로 비서팀에 새로 온 인턴 송지음이었다.송지음은 고개를 들어 신유리를 쳐다보았고, 그녀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신유리에게 말했다. “유리 언니.”방금 밖에서 들어와서인지 신유리의 몸에는 차가운 공기가 조금 남아있었다. 그녀는 빼어난 용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자주 웃지 않는 탓에 사람들에게 왠지 모를 거리감을 주곤 했다.신유리는 담담하게 송지음의 말에 대답했다. 그녀는 룸 안을 한 바퀴 둘러본 후에야 시선을 송지음에게 멈추었다. “준혁이는?” 그녀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차가웠다.서준혁의 이름을 듣자 송지음은 당황하며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그녀는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더니 신유리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룸 안의 스피커 소리에 거의 묻힐 정도로 작고 부드러웠다.“서 대표님, 제 음료수 사러 가셨어요.”그녀의 말에 신유리는 눈썹을 찌푸렸다. 송지음을 쳐다보는 그녀의 눈빛에 이상한 감정이 조금 더 많아졌다.그녀도 서준혁을 오랫동안 따라다녔지만, 그동안 뭘 해달라고 번거롭게 만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지난달, 신유리의 차는 누군가에게 미행을 당했고 그로 인해 왼쪽 손목이 다쳤었다. 모든 거동이 불편했지만 서준혁은 그녀에게 물 한 잔 따라 준 적이 없었다.위아래로 자신을 훑어보는 눈빛에 송지음은 마음이 더 불안해졌다. 그녀는 옷자락을 만지작대며 어색한 말투로 말했다. “서 대표님, 금방 오실 거예요.”하지만 신유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저번 주에 급히 합정에 회의를 참석하러 갔었다. 오늘 서둘러 서씨 집안의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돌아온 것이다.서준혁은 집안사람들과 사이가 안 좋았다. 그래서 이런 가족 모임은 항상 신유리보고 대신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