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리은 18살 때부터 서준혁을 따라다녔다. 그녀는 자신감이 넘쳤다. 항상 자기가 그의 마음속에 남다른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중에 서준혁은 여자 하나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 여자는 무척이나 연약하고 풋풋했다. 예전의 그녀와 똑 닮아있었다.
View More송지음이 머뭇거리며 서준혁을 쳐다보았다.“오빠... 어머님이 아침에 갑자기 오셨는데, 오빠가 없어서 어쩔 줄 몰랐어. 어머님 기분 상하게 해드린 것 같네...”송지음은 말하며 서준혁의 표정을 살폈다. 그녀는 서준혁에게서 이렇듯 무서운 기세가 풍겨 나오는 걸 보는 건 처음이었다. 송지음은 저도 모르게 뒤도 반보 물러났다.서준혁의 얼굴에는 여전히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하정숙이 있을 때까지만 해도 있었던 언짢음이 가시기는커녕, 더 가중된 듯한 표정이었다.신유리는 이석민에게 손으로 까닥거리고는 나갔다.서준혁의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최대한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사실은 신유리의 다년간 업무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하물며 현재 그녀는 버닝스타를 대표하여 온 입장이다 보니 서준혁과 척을 지면 더 안 좋았다.신유리가 나가려고 할 때 등 뒤에서 송지음의 처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송지음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오빠, 화났어?”이석민은 옆에서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서 송지음에게 말했다.“서 대표님께서 금방 계약하고 오셔서 힘든 것 같은데 송 비서는 일단 서 대표에게 쉴 시간을 주죠.”송지음의 낯빛이 조금 오묘해졌다. 그녀는 서준혁을 쳐다보며 눈물을 글썽거렸다.“오빠는 내가 버닝스타를 찾아가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하지만 오빠가 다쳤는데, 이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면... 오빠는 신유리한테 피해가 갈까 봐 책임을 묻지 않는 거야?”송지음은 울먹거리며 말을 이었다.서준혁은 눈을 낮춰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그였지만, 송지음은 오한이 드는 것 같았다. 서준혁의 검은 눈동자에 걷잡을 수 없는 한기가 스민 것만 같았다.송지음은 오한을 느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서준혁의 눈동자에 서렸던 한기는 오간 데 없이 사라지며 감정 없는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밖의 일은 이석민 씨한테 맡겨, 날씨가 더우니 너는 회사에만 있어.”송지음은 넋이 나갔다. 서준혁의 뜻을 파악한 순간, 그녀는 주먹을 꼭 쥐었다.서준혁의
신유리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근무 시간이고 주위에 사람들이 많지 않았든 관계로 인하여 주위 사람들은 그녀의 목소리를 정확히 들을 수 있었다.서준혁은 신유리를 쳐다보더니, 싸늘한 눈동자로 주위를 훑어보다 다시 시선을 신유리에게로 돌렸다.그는 눈꼬리를 내리더니, 경멸 섞인 말투로 말했다.“본인의 일도 다 정리 못 해놓고, 다른 사람의 일로 동분서주하다니, 신유리 씨는 멍청한 건가요? 아니면 일의 경중을 구분 못 하는 건가요?”신유리는 눈을 감고 잠시 사색을 마친 후 답했다.“이게 제 일입니다.”서준혁이 냉소적으로 비웃었다.“쓸데없는 일 말인가요?”신유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오늘 서준혁의 기분이 별로라 신유리가 뭐라 하던 오답이었다.그녀는 고개를 들고 서준혁의 뒤에 서있던 이석민을 보았다. 이석민은 티 나지 않게 신유리에게 눈치를 주었다.신유리는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말했다.“오늘 이 화제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것 같네요. 저는...”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등 뒤로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하정숙이 굳은 얼굴로 걸어들어오고 있었는데, 등 뒤에는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송지음도 함께였다.신유리는 송지음에게 잠깐 시선을 두었다. 그녀가 기억하건대, 송지음은 항상 혈색이 어두웠고, 창백해 보였다.신유리의 생각은 하정숙의 분노에 찬 목소리로 인해 중단되었다.“이제 집으로 오라는 것도 내가 직접 와서 모셔가야 하는 거니?”서준혁이 들으라고 하는 말이었다.서준혁의 검은 눈동자는 먹물을 머금은 것 같았다. 눈동자에는 일말의 온정도 없이 냉담한 시선으로 하정숙을 쳐다보며 답했다.“회사 일이 바빠서요.”사실 서준혁의 외모는 대부분 하정숙에게서 물려받은 거나 다름이 없었다. 날카로운 눈매, 짙은 눈동자, 얇은 입술, 우뚝 솟은 콧날, 날렵한 턱선이 닮았다.이러한 외모는 날카로운 인상을 주기 마련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신중하고 냉담한 분위기마저 있어, 날카로운 분위기를 얼마간 상쇄시켜 주었다.하정숙은
신유리는 이마를 꾹 누르며 말했다."어렵게 꼬투리를 잡은 송지음이 그렇게 쉽게 포기할 리가 없죠. 괜히 시비를 거느니 차라리 우리가 먼저 서 대표님에게 털어놓고 얘기합시다.”송지우가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요."이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신유리도 잠시 생각에 잠겨 조용히 말했다."만약 실패하면 그냥 돌아올게."이신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전화해."그는 오늘 원래 사람과 약속이 있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방의 전화에 불려갔다. 그녀는 송지우와 이야기하고 택시를 타고 화인 그룹에 갔다.신유리는 마지막 결과가 어떻든 간 데 그들은 모두 한 마디의 확실한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송지음 같은 오늘 같은 일이 또 발생할 것이었다.그녀가 화인 그룹에 도착했을 때, 엘리베이터에서 양예슬을 만났고 양예슬도 그녀를 보고 매우 놀랐다."유리 언니, 왜 왔어요?”딱 봐도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라 신유리가 물었다."왜 그래? 무슨 일이 생긴 거야?”"대표님 어머님께서 지금 회사에 계시는데 송지음 씨는 오늘 왜 늦었는지 모르겠지만 방금 잡혀서 지금 위층에서 욕을 먹고 있어요. 대표님은 일 때문에 회사에 없어서 아무도 못 올라가고 있어요.”신유리는 미심쩍었지만 송지음이 버닝스타로 온 것은 정말 그녀 자신만의 생각이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하정숙이 있다면 더 이상 갈 필요가 없었다. 어쨌든 그녀와 마주치는 것도 그리 즐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다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하정숙과 송지음이 마주칠 줄은 몰랐다.히정숙은 한결같이 화사한 화장을 하고 있었다. 다만 한눈에 봐도 격노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송지음은 주눅이 든 모습으로 그녀의 뒤에 서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열릴 줄 몰랐던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쳐다보았고 신유리를 본 후 얼굴의 분노는 더욱 짙어졌다.그녀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신유리는 경희영을 만난 일을 에피소드라고만 생각하고 마음에 두지 않았다.그녀는버닝스타의 비즈니스를 이어받아 매일 발이 땅에 닿을 새 없을 정도로 바빴다.버닝스타는 원래 외국에서도 잘 알려진 데다 성남시로 돌아가자마자 부서와 미래 그룹이 협력하고 있기 때문에 단기간에 협력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신유리는 줄곧 사람들이 보낸 자료를 처리하느라 바빴다.서준혁 쪽에서는 여전히 태도를 밝히지 않고 있었다. 이랑은 이신에 의해 교체되었고 장소는 송지우가 과거에 활동했던 곳으로 바뀌었다.일을 시작하는 날, 신유리는 마침 사진 한 세트를 뽑아야 해서 송지우를 따라갔다.가는 길에 송지우가 말했다."사장님 말씀을 들으면 이랑이가 아마 잘릴 것 같아. 안전사고가 장난이 아니야."공사현장에는 자재 분실을 막기 위해 CCTV를 설치했고, 서준혁이 다친 것도 또렷하게 찍혔는데, 확실히 이랑의 문제였다.신유리는 이것에 대해 별 의견이 없었다. 버닝스타를 만든 것은 원래 디자인 업계인데 가장 기본적인 안전 문제조차 보장할 수 없다면 누가 그들과 협력하려고 하겠는가. 게다가 그날의 스릴을 그녀는 잊을 수 없었다.만약 서준혁이 아니었다면 그 무너진 석고 조각들은 전부 그녀의 몸에 부딪혔을 것이고 결과는 그의 손보다 상처가 훨씬 더 심각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신은 매우 빠르게 움직였고 신유리가 사진을 찍고 돌아갔을 때, 이랑이 이미 물건을 정리하고 떠나려고 했다.신유리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말 잘 끝냈어? 쟤 손에도 버닝스타의 디자인이 꽤 있을 텐데 괜찮아?"디자인 업계에서 가장 꺼리는 것은 아이디어 유출이었다. 신유리와 이랑 모두 어떤 성격인지 잘 몰랐다. 다만 송지우의 말을 들어보면 이랑은 채용 당해서 입사했었다고 한다. 게다가 사람도 답답하고, 평소에 같이 놀지 않고, 장소 돌아다니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이신이 말했다."처음 계약서에 안전사고에 관한 것이 있었는데 그가 먼저 잘못을 저질렀어요."이신이 이렇게 말한 이상, 신유리도 그렇게 걱정하지 않았
왕 대리는 말을 마치자마자 기세등등하게 떠났다.진규성이 원만하게 수습하려 했지만 왕 대리의 뒷모습을 보고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몇 마디 얼버무리고 떠났다.송지음은 갑작스러운 변고를 보고 어리둥절해 했지만 더 큰 당황스러움이 밀려왔다. 그녀는 무의식중에 서준혁을 올려다보며 말했다."오빠, 내가 방금 말실수했어?”서준혁의 감정 기복은 그렇게 크지 않았고 왕 대리의 반응은 사실 그렇게 놀랍지 않았다.그는 진작에 뒤에서 풍성과 연락했을 것이었다. 다만 방금 송지음에게 직접 폭로 당해서 화가 났을 뿐이었다.송지음은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고 서준혁이 계속 대답을 하지 않자 더 무서워서 손을 뻗어 그의 옷자락을 잡았다."미안해, 방금 그렇게 말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나는 단지..."그녀는 계속 중얼거렸고 말을 잇지 못했다.송지음은 단지 신유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자기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심지어 그녀보다 더 잘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서준혁은 비로소 눈을 들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저쪽에 디저트가 있으니 가서 좀 쉬어.”"오빠, 내 탓 안 해?”"어, 안 해.”그의 대답을 들은 송지음은 활짝 웃었다. 그녀는 발돋움하여 그에게 뽀뽀하려고 했지만 서준혁이 마침 머리를 갸웃거렸고 그녀의 입술은 자연스럽게 그의 턱에부딪혔다.그는 무표정으로 말했다."잠깐 쉬어.”발길을 돌린 송지음의 마음은 한결 편안해졌고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신유리를 찾기 위해 온 장내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신유리를 찾긴커녕 실수로 한 사람과 부딪혔다.부딪힌 남자의 몸에서 진한 향수 냄새가 전해지자 송지음은 어리둥절해서 하며 사과했다."죄송합니다. 고의는 아니에요.”경희영은 자신의 안경을 올리며 앞에 있는 여자를 훑어보았다."제가 조심하지 않았네요. 당신을 아프게 하진 않았나요?”온후한 목소리에 그제야 고개를 든 송지음은 그의 청초하고 점잖은 얼굴을 보았다.경희영은 송지음이 얼굴을 드는 순간 깜짝 놀랐다. 그는 목청을 가다듬고 다시
신유리의 표정은 차분했지만 미간에는 냉기가 서려 있었다. 그녀와 서준혁 사이의 분위기는 누가 보아도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진규성은 두 사람의 얼굴을 훑어보며 말했다."아이고, 친구인데 그런 말을 해서 뭐합니까?"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듯싶더니 자연스럽게 말했다."저는 서 대표님을 칭찬하는 것입니다. 성남시에서 금융을 하는 사람이라면 화인 그룹이 최근 몇 년 동안 얼마나 크게 부상했는지 다 알고 있잖습니까? 이것은 모두 서 대표님의 공이 아닙니까?"말을 마친 그녀는 옆 웨이터의 쟁반에서 칵테일 한 잔을 받아 가볍게 한 모금 마셨다.진규성이... 하하 웃으며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리려는데 그의 눈은 서준혁이 꽁꽁 싸매고 있는 손등에 떨어졌다."서 대표님, 손이 왜 그러세요?"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하고 있던 신유리는 잠시 주춤했고 시선은 서준혁의 손을 향했다.그녀는 그날 입은 상처를 보았고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알고 있었다.신유리가 입꼬리가 살짝 오므렸다. 서준혁이 괜찮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공사장에 갔다가 다쳤어요.""어떻게 공사현장에서 다칠 수 있죠? 기본적인 안전도 담보하지 못하면 공사가 안 될 것 같습니다."왕경호가 말을 이었다.신유리가 미간을 약간 찌푸리면서 멈칫했다. 그녀가 고개를 들자 갑자기 서준혁과 시선이 부딪혔다.서준혁의 검은 눈동자에는 안개가 끼어 있는 것만 같았고 입술이 얇아 보였다. 그는 신유리를 내려다보면서 자신의 자긍심을 조금도 거두지 않았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서준혁이 공사현장에서 다친 일은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일이었다. 그가 추궁하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만약 추궁한다면, 제일 먼저 합작에서 손을 뗄 사람은 미래 그룹일 것이었다.그래서 사건 당일 신유리는 서준혁에게 사과를 하고 어떤 합리적인 배상도 할 수 있다고 했었다.잠시 조용해지자 신유리는 그의 가벼운 웃음소리를 들었다."확실히 안됐어."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갑자기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리
신유리에게 외투를 걸쳐준 뒤 이신은 다시 진지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몸에 걸친 셔츠가 바람에 조금씩 펄럭거렸다.그녀의 코끝에 이신의 박하 레몬 향이 가득 찼다. 기분 나쁘지 않은 은은한 향이었다.신유리는 정장을 가져왔기에 이신의 셔츠를 돌려주려 했다. 이때 은백색의 스포츠가 한 대가 그들 옆에 멈춰 섰다.뒤이어 검은색의 마이바흐 한 대가 도착했고 자동차 번호판을 본 신유리는 멈칫했다.이내 스포츠카의 문이 열리고 꽃무늬 셔츠를 입은 우서진이 차에서 내려왔다. 그는 선글라스를 벗어 차에 던진 뒤 그들을 바라봤다.그는 휘파람을 불며 한쪽 눈썹을 치켜뜨고 이신을 훑어봤다."이신?"이신이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우서진?""최근 이정과 부쩍 친해져서 너에 대한 말 많이 들었어."우서진이 건들거리며 말했다."용기가 대단하네. 인정해."그의 조롱하는 말투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편하게 만들었다."그런데..."우서진은 옆에 있는 신유리를 보고는 피식 비웃으며 입을 열었다."여자 보는 눈이 없네. 정이에게서 좀 배워야겠어."신유리는 우서진을 무시했다. 그를 본 순간부터 그에게서 좋은 말을 들을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녀는 걸치고 있던 외투를 벗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서진 씨, 요즘 또 병원에 가는 걸 잊었어요?"신유리는 가볍게 입을 열었다."서진 씨 광견병 증상이 더 심해진 것 같아요."우서진의 표정이 굳었다."유리, 너..."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옆에 있던 마이바흐의 차 문이 열리고 안에서 짙은 색의 양복을 입은 서준혁이 내렸다.맞춤 정장이 그의 늘씬한 몸을 감싸고 있었고 넓은 어깨와 좁은 허리의 그는 비율이 매우 좋았다.서준혁의 눈빛은 차갑고 매서웠다. 어두운 하늘 아래 검은 그의 눈동자는 더욱 검어 보였다.그는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눈빛으로 신유리를 바라봤고 신유리도 물러서지 않고 그를 빤히 쳐다봤다.둘은 그렇게 팽팽하게 대립하며 서로를 쳐다봤다."준혁아."거들먹거리는 우서진의 목소리가 적막을 깼다. 그는
연우진이 별로 말을 하고 싶지 않아 하는 눈치기에 신유리는 더 이상 묻지도 않았다.그들은 곧 이연지가 머물던 여관에 도착했고 카운터 직원에게 cctv를 좀 확인하겠다는 말을 꺼냈다.“cctv? 저희는 그런 거 없어요. 빨리 나가세요!”직원은 말을 하며 신유리와 연우진을 쫓아내려고 애를 썼다.말로만 여관인 이곳은 사실 병원 옆에 있던 아파트 하나를 개조하여 허름하고 낡은 집이였다.주위를 쓱 둘러보던 신유리는 여관에 영업증서조차 없다는 것을 발견하였다.“어쩔수 없어. 다른데 가서 알아보자.”연우진이 직원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신유리에게 말했다.그녀는 실망하지 않고 알겠다는 듯 끄덕였지만 속으론 내심 실망하고 있는 눈치였다.하지만 이연지가 말한 장소만 해도 여러 군데가 있으니 이렇게 쉽게 포기 할 신유리가 아니었다.그리고 한 가지 힘든 점은 이연지가 지금 이를 악물고 송지음을 감싸주고 있다는 사실이다.신유리는 표정관리가 되지 않는 듯 안색이 어두워졌고 예쁜 두 눈에 생기가 돌지 않아보였다.연우진은 그녀를 백번이고 이해한다는 듯이 먼저 위로를 건넸다.“급해 하지말자, 아직 내가 있잖아.”신유리는 그날 집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고 다음날 해가 뜨기 바쁘게 별장으로 향했다.어제 서준혁이 다친 일도 아직 처리가 됐는지 조차 모르고 있었기에 더욱 마음이 급했다.거의 다다랐을 때쯤, 예상치 못한 인물과 마주쳤는데 그건 바로 채리연 이었다.신유리는 그녀에 대해 별 다른 인상이 없었지만 하나 유일하게 기억나는 건 몇 년 전 서준혁이 자신을 데리고 채리연 남편의 생일파티에 참석했다는 것 이였고 그 후론 아무런 교류조차 없었다.전에 채리연과 하영호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서야 신유리는 그녀가 누구였던지를 알아차렸다.채리연은 명품 옷들과 가방을 걸치고 화려한 메이크업을 한 상태로 환하게 웃으며 신유리에게 다가왔다.“신유리씨 맞으시죠?”신유리가 그녀를 피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채리연이 급히 그녀를 불러 세웠다.“네, 채사모님.”“저번에 정숙씨
“준혁오빠...”송지음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서준혁을 바라보며 말했다.“오늘 오전에 회사에 나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열이 나는 바람에... 약 먹고 지금까지 잤는데 아까 석민씨가 전화 와서 깨버렸어요.”그녀의 말에도 서준혁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송지음은 그의 옆에 서서 입술을 꽉 깨 물고는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전에 서준혁의 말속에 그득하게 섞여있는 짜증을 송지음이 알아차리지 못할 수가 없었다.더욱이 그러한 말투는 전부 다 신유리 때문인 것 같아 그녀는 더욱 마음이 불편했다.그 시각, 신유리가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이신과 이랑이 걸어오는 모습을 발견했다.이랑의 안색은 썩 좋지만은 않았고 머리는 살짝 수그리고 있어 아마도 이신에게서 쓴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무슨 일 입니까?”마침 신유리가 나오는 것을 본 이신이 달려와 물었다.“송지음씨가 왔더라고요. 그리고 저보고 서대표님과 거리 좀 유지해라고 해서.”신유리를 바라보는 이신의 눈빛은 다정하고도 애정이 담겨있었다. 그녀의 대답에 이신은 곧장 말했다.“어디 다친 데는 없습니까? 검사라도 해볼까요?”“전 진짜 괜찮아요.”신유리가 급히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전 괜찮은데 서대표님이 많이 다치셨어요. 만약 책임을 진다고 하면 쉽지 않을 것 같아요.”“다 제 탓입니다 형님. 유리씨 정말 죄송해요.”이랑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그 도 그럴 것이 이랑은 허경천과 달리 이신과 친구사이가 아닌 정식적으로 면접을 거쳐 온 사람이었기 때문이다.이랑의 집안 사정이 썩 좋지 않기에 서준혁이 다친 뒤로 이신은 많은 생각에 잠겨있었다.그는 응급실입구를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제가 서대표님께 사과하고 오겠습니다. 다 제 탓입니다. 사무실과는 아무 상관없습니다.”“서대표님이 그렇게 쌓아놓으면 위험하다고까지 알려주셨는데 제가 말을 안 들었습니다.”“이제 와서 그런 말해도 아무 쓸데없지 않습니까?”가만히 있던 이신이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그리고는 신유리를 보며 당부하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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