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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침울하고 재미없어

신유리가 전해주기도 전에 서준혁이 잠에서 깨버렸다.

그의 목소리는 조금 잠겨 있었다. “해결했어?”

“응. 100프로 저쪽 과실이야. 저쪽에서 이미 보험회사에 연락했어.” 신유리는 곧장 서준혁 앞으로 걸어가더니 손에 들린 물을 뚜껑까지 열어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 얕았고, 평소 일 할 때보자 다정함이 조금 섞여 있었다. “파티 책임자한테도 연락했어. 조금 이따 내가 데려다줄게.”

그녀는 빈틈없이 모든 일을 살폈고, 다정하고 세심했다.

서준혁은 앉아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의 목젖은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분위기는 주위 사람들이 벽을 느낄 정도로 무척이나 화목했다.

송지음은 한쪽에 서서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이 상황을 지켜보았고, 서준혁이 물을 다 마신 후에야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서 대표님, 죄송해요. 제가 아니었다면, 대표님이 다칠 일도 없었을 텐데…” 그녀의 목소리에는 자책과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

그 말에 서준혁은 물병을 아무렇게나 내려놓더니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리 와.”

송지음은 제자리에서 한참이나 머뭇거린 후에야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서준혁은 다친 손을 그녀 앞에 내려놓더니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무서웠어?”

송지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고개를 더 아래로 숙일 뿐이었다.

그녀의 모습에 서준혁은 낮게 웃더니, 이내 다른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다시 세워주었다. “나도 안 무서운데, 네가 뭘 무서워해.” 여자를 달래는 듯한 목소리였다.

송지음은 볼에 공기를 넣더니, 뾰로통한 얼굴로 남자를 쳐다보았다. 곧이어 그녀는 우물거리며 말했다. “전 대표님이 아플까 봐…”

목소리가 엄청 작았지만, 신유리는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더니 서준혁이 바닥으로 내려놓은, 지금은 거의 쏟아질 듯 위태로운 물병을 쳐다보았다.

“서준혁 보호자 분?” 응급실 간호사가 엑스레이를 들고 오더니 그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이내 시선을 신유리에게 멈추며 엑스레이를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손목 엑스레이에요. 이거 들고 의사한테 가세요.”

막 일어서려던 송지음의 몸은 그만 얼어버렸고, 곧이어 서서히 원상태로 돌아갔다.

그녀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신유리를 쳐다보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신유리가 막 그녀에게 말하려는 그때, 서준혁이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 “네가 의사한테 가봐. 지음이랑 할 말 있으니까.”

멀어져가는 신유리의 뒷모습을 보는 송지음의 얼굴에는 언짢은 기색이 역력했다.

서준혁이 그런 그녀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왜 또 억울해졌어?”

“아니에요. 전 그냥 대표님이랑 유리 언니가 엄청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송지음은 말을 하자마자 입을 닫아버렸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서준혁을 쳐다보았다.

일종의 탐색이었다. 그녀는 서준혁의 대답이 듣고 싶었다.

서준혁은 한참 동안 침묵하더니 이내 풉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의 대답은 무척이나 무심했다. “잘 어울린다고? 난 걔의 그 침울한 모습이 정말 싫어. 재미없어 죽겠어.”

송지음은 눈을 깜빡였다. 서준혁은 또 뭐라 말을 했고, 그녀의 얼굴에는 바로 천진난만한 웃음이 퍼졌다.

신유리는 바로 코너에 서 있었다. 그녀는 손에 있던 물을 송지음에게 건네주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온몸이 녹슨 것처럼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서준혁이 나보고 침울하고 재미없다고 했다.

서준혁의 손목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기껏해야 며칠 휴식만 취하면 되는 것이었다. 신유리가 약을 들고 돌아왔을 때, 서준혁과 송지음의 상태는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

단지 송지음의 눈가에 감출 수 없는 기쁨이 일렁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표정이 신유리에게 방금 들은 말들이 가짜가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고 있었다.

가는 길 내내, 신유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조용히 송지음을 집에 데려다주고, 서준혁과 그들이 사는 곳으로 돌아갈 뿐이었다.

차는 지하 주차장에서 안전하게 멈춰 섰고, 신유리는 차키를 빼며 침착하게 말했다. “걔랑 정식으로 만나기로 한 거야?”

방금 송지음이 차에서 내릴 때, 신유리는 백미러로 그녀가 서준혁의 볼에 뽀뽀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서준혁은 부정하지 않았다. “응.”

“언제?”

“아까.” 서준혁이 대답했다. “너한테 질투하고 있어. 달래주기는 해야 하니까.”

그 말에 차키를 잡고 있는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내 질투는 왜 하는 건데?”

서준혁은 그녀가 입을 검은색 원피스를 보며 대답했다. “앞으로 검은색 옷 입지 마. 별로야.”

신유리는 입술을 오므렸다.

별로여서 그런 거야, 송지음이 싫어해서 그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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