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이 일에 대해서는 난 배인호를 믿어요.”나는 진지하게 아빠의 질문에 대답했다. 비록 아빠는 화를 냈지만 배인호가 나를 위해 해준 모든 일을 나는 가슴속에 기억했다.언제는 원한은 명확했다. 빈이의 일에서는 그는 내게 아무런 미안한 것이 없었다. 오히려 나를 위해 계속 양보했고 심지어 자기가 다른 남자아이의 아빠가 되었다는 사실조차 숨기며 말하지 않았다. 나중에 민설아가 직접 말하지 않았다면 그는 이 문제를 이용해 빈이의 양육권을 손에 넣었을 것이다.지금 이 상황이 조금 익숙했다. 내가 배인호에게 푹 빠졌을 때 우리 부모님은 반대하셨고 나는 배인호가 반드시 나의 사랑에 감동받을 거라는 말로 부모님을 설득했지만 결과는 모두가 아는 것과 같았다.지금 나의 모습이 몇 년 전 멍청하게 굴던 때와 비슷해 보였는지 아빠의 얼굴이 창백해졌다.“지영아, 너 그때 배인호하고 어떻게 이혼했는지 잊었어? 예전에 배인호가 널 어떻게 대했는지 모두 잊은 거니? 어떻게 그놈을 믿을 수 있어?”부모님은 배인호에 대한 인상이 아주 안 좋았다. 두 분은 아주 밝은 사람들이었지만 배인호의 일에서만큼은 항상 고집스러웠다. 가끔 이해되면 상관하지 않으셨지만 내가 다시 그에게 빠지는 듯해 보이자 다급하게 말리셨다.“안 잊었어요. 그리고 다시 인호 씨와 만나고 싶은 생각 없어요. 난 그저 인호 씨가 나를 도와서 빈이를 입양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에요. 지금 내 상황으로는 입양은 힘들어요. 그리고 보육원에 민설아가 아는 사람도 있고요. 걸림돌이 많은 상황이에요.”설명했지만 아빠는 더 듣지 않으셨다. 아빠는 이렇게 가다가는 내가 결국 다시 배인호와 함께할 것이라고 생각하셨다.대화를 나누다 보니 부녀 사이에 기분이 모두 상했다. 분명 좋은 소식을 내게 전해주기 위해 온 것이었지만 아빠는 결국 나 때문에 화가 나셨고 엄마에게 전화해 고자질까지 했다.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갑자기 뭔가 떠올랐다. 아직도 엄마에게 투덜대고 있는 아빠의 뒤로 다가가서 어깨를 두드렸다. 아빠는 깜짝 놀라며
“우지훈 씨 시간 있으면 정신과나 가봐요.”나는 이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우지훈은 미친 듯이 나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고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그를 차단했다.하지만 나는 이미 영국에 도착한 아빠가 걱정되었다. 만약 이우범을 만났다면 일찍 돌아오시길 바랐다.“괜찮아. 지금 우범이한테 왔어. 근데 너무 걱정되는구나. 우범이 수술 마치고 2, 3일 뒤에 별문제 없으면 그때 돌아가마.”아빠는 나의 전화를 받은 뒤 2, 3일 더 있다고 돌아오겠다고 했다. 아무래도 이우범에 대한 죄책감 때문인 것 같았다. 아빠는 마음속으로 항상 이우범에게 미안해하고 계셨다.부모님 모두 한평생 누군가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사신 적이 없었지만 이우범에게는 두 분 모두 마음속으로 죄책감을 느끼시는 것 같았다.이건 나도 마찬가지다.배인호가 나를 도와주는 건 나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며 나 자신을 위로했지만 이우범은 내게 아무런 빚을 진 것도 없이 일방적으로 많은 것을 나를 위해 희생했다.아무리 그가 원해서 한 것이라고 해도 나는 양심상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그러세요. 오빠 세희 전화번호 알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세희한테 전화하세요. 세희가 아빠를 도와줄 거예요.”나는 아빠에게 당부했다.“그래.”아빠가 대답했다.이우범이 수술을 받은 날 아빠는 내게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문자를 보내줬다. 하지만 회복하는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아빠와 대화를 더 나누려는데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도우미가 나가서 보더니 내게 다가와 물었다.“아가씨, 배 대표님께서 찾으시는데요.”그 말에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배인호?그가 어떻게 돌아온 거지. 거기다 나에게 말도 없이?“들어오라고 하세요.”나는 도우미에게 말했다. 이틀 동안 배인호와 연락이 없었다. 해외에[서 일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 항상 나에게 알려줬기에 나도 재촉하지 않았다.그런데 갑자기 돌아왔다고 하니 나는 조금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전에 그는 좀 더 시간이 걸린다고 했었는데 설마... 빈이를
이미 지나간 일이기에 나는 배인호와 더 그 문제로 다투고 싶지 않았다.그 문제에 있어서 우리 두 사람에게 옳고 그름은 없었다. 그저 하늘의 정해진 운명일 뿐이었다.내가 말아 없자 배인호도 현명하게 이 화제를 중단했다. 더 이상 얘기하면 문제가 더 커질 뿐이었다.“민설아가 전에 사람을 고용해서 널 죽이려고 했다던데 왜 나한테 얘기하지 않았어?”그는 또 다른 문제를 언급했다.이우범이 나 대신 다쳤을 때 그에게 얘기했었지만 그때는 증거가 없었기에 민설아와 관련되었다는 걸 증명할 수 없었다.그 뒤로는 다른 일들이 생겨서 노민준이 민설아가 사주한 일이라고 증언했다는 걸 배인호에게 아직 말하지 못했다.“뭘 더 논의할 게 있어요? 민설아는 방법을 생각해서 해외로 갔으니 나도 방법을 생각해서 민설아를 다시 한국으로 데려와야죠.”민설아는 원래 나를 독살하려고 한 사건으로 한국에서 재판받아야 했지만 무슨 수를 썼는지 굉장히 빠른 속도로 해외로 환송되었다. 결국 그녀는 법을 어기고도 법정 제재를 벗어났다.“그 일은 내가 해결하는 게 좋을 거야. 나한테 그렇게 명확하게 선 그을 필요 없어.”배인호는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그의 일 처리 능력이 나보다 훨씬 좋다는 건 알고 있지만 이미 그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이번 일은 내가 직접 해결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이제 나는 배인호가 적인 것 같기도 하면서 친구 같은 느낌도 들었다. 친구라고 하기에는 우리 사이에 모순이 많았고 적이라고 하기에는 협력 관게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나도 알아요. 근데 더 이상 인호 씨 신세를 질 수는 없어요.”나는 고개를 저으며 진지하게 대답했다.비록 전생에서 배인호가 나에게 미안한 일을 많이 했지만 내가 반드시 인정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나와 결혼할 때부터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게 거짓말을 한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서란을 사랑하게 된 다음에는 아주 솔직하게 내게 말했었고 경제적인 보상도 해주겠다고 했었다.한편으로는 내가 너무 집요했다.
배인호가 로아를 안고 있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복잡했다.개인적으로 이 장면을 정말 보고 싶지 않았다. 두 아이가 나중에 아빠를 알아보고 아이들 때문에 그와 계속 얽히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하지만 아이들에게 아빠의 사랑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특히 아이들을 너무나 사랑하는 아빠의 사랑을 받는 것은 큰 힘이 있는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기에 아빠가 옆에 있어 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배인호는 살짝 딸 바보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로아를 안고 나서는 승현이보다 더 사랑스러워하는 것이 분명했다. 목소리가 크면 로아가 놀랄까 봐 더 부드러워졌다.이때 식사 준비를 마쳤는지 도우미가 다가와 식사하라고 말했다.“내가 로안 안고 밥 먹을게.”배인호는 내게 말했다. 지금 두 아이 모두 이유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각자 식탁 의자가 있었다. 승현이는 이미 도우미가 안아 의자에 앉힌 뒤 이유식을 먹여주고 있었다.로아는 조금 어리광이 많았기에 배인호의 품에서 나오기를 거부했다. 배인호는 로아를 무릎에 앉힌 뒤 한 손으로 숟가락을 잡고서는 먹여 주기 시작했다. 그 자세가 꽤 안정적이어서 나는 굳이 말리지 않았다. 나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아빠.”로아는 아주 입에 꿀을 바른 것 같았다. 배인호가 두 숟가락 밥을 먹여주니 갑자기 달콤한 목소리로 배인호를 불렀다. 나는 그 한마디에 사레가 들릴 뻔했다.배인호의 표정은 살짝 흥분한 것이 분명했지만 참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숙여 로아의 작은 얼굴에 뽀뽀했다.바로 이때 다이닝룸 문이 열리며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영아, 엄마가 걱정돼서 왔어. 네 아빠 우범이한테 갔다며 그래서 내가 회사 며칠 쉬기로 하고 왔지...”엄마는 말하며 들어오고 있었고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엄마는 나와 배인호가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는 장면을 보고 멈칫했다. 표정이 점점 안 좋게 변해갔다.“엄마.”
“엄마.”나는 엄마가 이우범 얘기를 꺼내자 머리가 지끈거렸고 기분이 잡치기 시작했다.엄마는 내 표정이 이상해지자 나와 이우범 얘기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난감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난 그냥 네가 인호랑 엮이는 게 싫어서 그래. 인호는 너한테만 상처 준 게 아니야. 나랑 너희 아빠도 상처받았어. 알잖아.”엄마는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혼자 위층으로 올라갔다.나만 덩그러니 식탁에 남게 되었다. 그러니 식욕도 사라졌다.——그날이 지나고 배인호도 더는 찾아오지 않았다. 내게 할말이 있으면 카톡으로 먼저 내게 연락했다. 엄마의 기분이 좋아지길 바라는 것 같았다.나는 민설아를 예의주시했다. 노민준은 이미 그녀가 배후라고 털어놓았고 모든 증거를 확보한 상태다. 이젠 그를 외국에서 인도해 오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빨리 외국으로 도망가는 데 성공했는데 지금 같은 속도로 그녀를 인도해 오려니 조금 어려움이 있었다.하지만 결과는 이미 확실해졌다. 무조건 국내로 돌아와 받아야 할 벌을 다 받게 될 것이다.약 한주쯤 지나 아빠가 외국에서 돌아왔다. 원래는 더 빨리 돌아오려고 했지만 이우범이 수술 후 문제가 조금 생겨 며칠 더 지체했다고 했다.아빠는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이우범의 상황을 자세히 내게 설명해 주었다. 나는 마음을 졸이며 들었지만 딱히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지영아...”아빠가 무언가 말하려다가 다시 입을 닫았다. 할말이 많아 보였지만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아빠, 하실 말씀 있으면 그냥 해요. 근데 우범 씨와 다시 시작해 보라는 거면 힘 뺄 필요 없어요.”내 말은 얼마 남지 않은 아빠의 환상을 완전히 깨버리는 것과 같았다.아빠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나랑 너희 엄마 앞으로 이런 얘기 안 할 거야. 우범이도 나한테 얘기했어. 수술 끝나면 빈곤 국가로 가서 의료 지원하면서 지내겠다고. 아마 몇 년은 안 들어올 생각인 것 같았어. 메스를 다시 잡을 순 없지만 그래도 경험으로 더 많은
전에 한번 화재를 겪은 적이 있어서 경험이 어느 정도 생겼다.나는 문을 열어 집안 상황을 확인하려 했지만 문을 열자마자 검은 연기가 안으로 들어왔다. 2층은 아직 불이 번지기 전이었지만 1층의 불길이 천천히 위로 번지고 있었다. 연기가 제일 치명적이었다.도우미들은 이미 다 탈출한 뒤였다. 1층에서 지내고 있기에 도망가기도 쉬웠다. 올라와서 내게 소식을 알려준 것도 다행이라 생각해야 했다.아까 베란다로 이미 탈출한 도우미를 보고 사실 한시름 놓았다.나는 정아와 애들에게 전화하고는 119가 오기를 기다렸다.그러고는 문틈과 창문을 젖은 수건으로 막고 아이를 돌봤다. 이때 치지직하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전선을 타고 불길이 번지고 있었다.불꽃이 튀어 오르는 걸 보니 마음이 조여왔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로아와 승현이도 위험한 기운을 느꼈는지 잠에서 깼다. 내가 옆에서 지키고 있는 걸 보고는 울지 않고 일어나 앉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갑자기 별장 다락방에 출구가 있는 게 생각났다.나는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바로 방문을 열었다. 아직 연기로 가득 차오르지는 않았다. 나는 한 손에 아이를 하나씩 안았다. 모성애가 내 잠재력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내가 이렇게 힘이 이렇게 센지 몰랐다. 나는 2층에서 다락방까지 단숨에 달려 올라갔다. 4층 정도 되는 높이라 불길이 번지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나는 다락방 출구를 찾아 발코니와 비슷한 곳으로 나갔다. 거기서 아래로 내려다보니 아직 타지 않은 곳이 보였다. 만약 누가 거기에 에어백을 준비해 주거나 시트를 펴서 아이를 받아주기만 해도 탈출할 가망이 있다.119가 오기 전까지 에어백은 없을 것이다.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잠옷만 입었지만 춥지는 않았다.나는 다시 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올 때 제일 큰 시트를 가져다 달라고 했다. 그녀는 이미 오는 길이었다. 내 상황을 듣고는 마음이 급해서 울먹거리기 시작했다.“그래. 알겠어. 기다려. 나 거의 도착하니까.”“그래.”나는 이상하리만치 덤덤했다.
이때 옆에 서 있던 정아도 큰 소리로 말했다.“지영아, 빨리 뛰어. 더 지체할 시간이 없어. 불길이 너무 세서 너 화상 입을 수도 있어!”나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조금 화상을 입은 상태라 등이 째질 듯이 아파왔다.“두 아이를 위해서라도 뛰어! 무서울 게 뭐야!”정아가 다시 소리를 질렀다.로아와 승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지만 뛰어내렸다가 죽을까 봐, 더우기는 죽지 않고 반병신이 될까 봐 걱정이었다. 그러면 죽기보다 못한 상황이 된다.나도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몰랐다. 재촉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전해지는 고통을 무릅쓰고 난간에 기어올랐다. 그러고는 배인호와 애들이 힘껏 당긴 임시 구명 시트에 몸을 던졌다.사실 이 높이도 있고 나 자체의 몸무게도 있으니 받기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여 마음의 준비를 끝내고는 몸을 던지자마자 눈을 감고 하늘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다.펑!내가 뛰어내리자마자 3층에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무엇이 폭발했는지는 모르지만 베란다가 순식간에 불길에 사로잡혔다.불행인 건 내게 판단 오류가 생겼다. 이 거리에서 아이를 버리는 건 그래도 감이라는 게 있었지만 자기가 뛰어내릴 땐 판단이 흐려졌다. 그 바람에 나는 이불에 떨어지지 않고 바로 옆에 있는 바닥으로 향했다.이제 끝이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배인호가 믿기지 않는 속도로 손을 벌리더니 내가 떨어지는 방향으로 달려왔다. 나는 사정없이 그의 몸 위로 떨어졌다. 덕분에 나는 충격을 완화할 수 있었지만 배인호의 몸에서 우두둑하는 소리가 살짝 들렸다.“인호야! 지영 씨!”노성민이 이를 보더니 긴장한 표정으로 상황을 살피러 왔다. 나는 괜찮았다. 온몸이 불편했지만 큰일은 없었다. 하지만 배인호가 뭔가 이상했다. 얼굴이 너무 창백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매우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 왔다. 나는 자기 상황을 챙길 새 없이 바로 배인호를 체크했다.그는 나를 바라보며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소방차가 도착해 불을 끄기 시작했다. 동시에 구급대
엄마는 내게 전화를 건네주었고 나는 받자마자 다급하게 물었다.“아주머니, 인호 씨 지금 어때요? 어느 병원에 있어요?”김미애는 울먹이며 말했다.“지영아, 먼저 몸조리부터 해. 인호는... 우리가 돌보면 되니까. 아마 외국 나가서 치료해야 할 수도 있어.”외국 병원까지 가야 되는 거면 엄마가 말한 것보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거다. 나는 마음이 조여왔다.“지금 어디에요? 아직 깨어나기 전인가요?”내가 긴장한 말투로 물었다.“지영아, 걱정하지 마. 일단 상처부터 잘 치료해. 우리 몫까지 로아와 승현이 잘 챙기고.”김미애는 이렇게 말하더니 전화를 끊었다.나는 화들짝 놀라며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더는 받지 않았다.엄마는 내가 계속 배인호 쪽에 연락하려 하자 핸드폰을 뺏어가며 마음 아프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지영아, 일단 급해하지 말고 인호 상황 좀 기다려보자, 응?”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왠지 모르게 내 마음은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처럼 아파왔다.하지만 내겐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직감이 자꾸만 내게 배인호가 이번엔 큰일났다고 말해주고 있었다.나는 마음이 자꾸만 복잡해져서 자리에서 일어나 가려고 했다. 등에서 난 상처가 너무 아팠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내 반응에 엄마, 아빠는 너무 놀라 의사와 간호사를 불러왔다.진정제를 한방 놓아서야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꿈을 꿨다. 장례식을 참가하러 갔다. 주변 사람들의 착장은 온통 까만색이었다.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흐릿한 게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조급해지려는데 눈앞의 광경이 휙 변하더니 나는 묘지에 서 있었다. 앞에 세워진 묘비에 사진 한 장이 박혀 있었는데 놀랍게도 사진 속의 사람은 나였다.나는 너무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두 걸음 정도 물러서자 묘비에 박혀있던 사진이 나에서 배인호로 변했다.“아!”나는 그 무서운 악몽에 놀라 잠에서 깼다.진정제의 약 효과가 이미 지난 듯했다. 엄마, 아빠는 어디로 갔는지 병실에는 아무도 없었다.나는 천정을 올려다보다가 피곤한 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