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정이 대놓고 적대감을 드러내자 서민영은 박수혁을 향해 애원 어린 눈빛을 보낼 수밖에 없었지만 그의 시선은 정작 다른 곳에 있었다.그녀의 집안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박대한이 도와줄 리도 없고 박대한 앞에서는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이민혜와 박예리가 나서줄 가능성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그녀를 더 짜증 나게 만드는 건 오늘 하루 종일 소은정만 바라보는 박수혁의 모습이었다.서민영은 조용히 고개를 떨구고 주먹을 꽉 쥐었다.“소 회장님, 설령 회장님 말씀대로 저희가 은정이한테 잘못했다고 칩시다. 어차피 다 지난 일이고 두 사람은 이미 이혼한 사이입니다. 굳이 문제를 더 키울 필요가 있을까요?”뻔뻔한 박대한의 말에 소찬식은 뒤통수가 뻣뻣해질 지경이었다. 이렇게 적반하장인 사람들한테서 은정이는 어떻게 3년이나 버틴 걸까?소찬식은 바로 경비 2명을 불러 서민영을 가리켰다.“일단 이 사람부터 여기서 내보내요. 제 딸을 위한 자리입니다. 제 딸의 심기를 거스르는 사람을 남겨둘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소찬식의 말에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든 서민영이 믿을 수 있는 건 그래도 박수혁뿐이었다.“수혁아...”“기사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얼른 가.”하지만 박수혁의 말투에는 그 어떤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의 행동에 놀란 건 소은정도 마찬가지였다.좋아 죽고 못 살 때는 언제고 뭐야? 벌써 마음이 바뀐 거야?하여간, 남자들이란.서민영을 이 자리에 부른 이민혜와 박예리도 당황하며 박대한의 뒤에 몸을 숨겼다.“박 회장님, 저희 은정이가 그 집에서 어떤 꼴을 당했는지에 대해서는 천천히 얘기하죠. 하지만 인터넷에 떠도는 말도 안 되는 루머에 대해서는 직접 해명해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소은정의 신분이 밝혀진 이상 루머가 가짜라는 사실은 이미 밝혀진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태한그룹이 공식적으로 잘못을 인정하길 바랐다.“하,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박대한이 코웃음을 쳤다.“그 정도 성의도 보이지 않는다면 앞으로 태한그룹과는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
그의 질문에 소은정은 흠칫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그게 왜 궁금한데?”어차피 다 밝혀진 마당에 그 이유가 뭐가 중요할까?“대답해 줘.”박수혁의 무거운 목소리가 그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듯했다.“가족들이 반대하는 결혼이었고 당신을 사랑한다는 그 마음 하나만 믿고 모든 걸 버리고 떠났어. 그런 내가 무슨 염치로 SC그룹의 딸이라고 말할 수 있었겠어.”박수혁에 대한 사랑 하나면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족도, 친구도 다 버리고 달려갔지만 결국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건 끝없는 심연뿐이었다.“뭐 이제라도 콩깍지가 벗겨져서 다행이야?”소은정은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듯 가벼운 말투로 피식 웃었다.“얘기 다 끝났어? 얼른 가봐. 지금쯤 아주 난리 났을 텐데.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어?”와인을 한 모금 마신 소은정은 또각거리며 자리를 떴다.여유롭게 파티장을 찾은 손님 한 명 한 명과 인사를 나누던 소찬식은 뭔가 생각난 듯 소은호에게 물었다.“은해는? 오늘 같은 날 왜 안 온 거야?”소은해도 소은정과 스캔들이 났던 주인공이 아닌가?아버지의 질문에 소은호는 어색하게 헛기침을 했다.“그게... 자기가 오면 사람들 시선이 다 자기한테 쏠릴 거라고... 집에서 자고 있을 거예요.”“자뻑은. 아주 톱스타 나셨네.”소찬식이 콧방귀를 뀌었다.한편, 집에서 자신이 주연으로 나왔던 영화를 보던 소은해가 귀를 긁적였다.파티 분위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자 한유라와 김하늘은 소은정을 끌고 조용히 건물을 나왔다.사운드 클럽.“형, 약속 시간이 언젠데 이제 온 거야...”박수혁의 등장에 강서진이 바로 다가갔다. 파격적인 전광판 광고와 빠르게 퍼지는 기사 덕분에 소은정이 바로 SC그룹 외동딸이었다는 사실을 그를 비롯한 다른 친구들도 모두 알게 되었다.세상에... 그동안 소은정을 향해 했던 말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고 강서진은 등골이 오싹해졌다.박수혁은 말업이 자리에 앉아 위스키 한 잔을 원샷했다. 다른 친구들도 조용히 박수혁의 눈치만 볼 뿐
“몰라.”박수혁은 차갑게 대답한 뒤 강서진의 팔을 뿌리쳤다. 3년 전, 서민영이 교통사고를 당한 날이었다. 출혈 상태가 심해 수혈이 필요했지만 RH- 혈액형 잔고가 부족해 안절부절못하던 그때, 소은정이 다가왔다. 수혈을 해줄 수 있으니 결혼해 달라고.워낙 긴박한 상황이라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두 사람은 얼렁뚱땅 혼인신고까지 하게 되었다. 사랑하진 않았지만 아내로서 최대한 존중해 줬다고 생각하며 나름 자부심을 느꼈었는데 이혼 후 알게 된 진실은 그게 아니었다.이때 룸 밖에서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호기심에 밖에 나가 본 강서진이 부랴부랴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젠장, 소은정 그 여자가 왔어!”가슴이 터질 듯한 음악, 스테이지의 사람들은 춤을 추며 분위기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그중 센터에 선 소은정은 지금까지 숨겨둔 춤 실력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완벽한 얼굴과 몸매, 자신감 넘치는 미소,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옆에 있는 남자 파트너와 화끈한 커플 댄스까지 보여주자 사람들은 더 환호했다. 강서진도 그 자태에 시선을 빼앗기고 속도 없이 열광하는 사람들에게 동참했다.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소은정은 강서진과 박수혁의 모습을 발견하고 더러운 물건이라도 본 듯 바로 표정이 굳더니 스테이지에서 내려갔다.영문을 모르는 다른 사람들은 아쉬운 탄식을 내뱉을 뿐이었다. 스테이지 조명 밖, 어두운 구석에 서 있던 박수혁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이렇게 춤을 잘 췄다는 것도 저렇게 매력적으로 웃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몰랐었다.3년 동안 그런 모습은 한 번도 볼 수 없었으니까.그에게 당당하게 다가와 마음을 고백하고 그만큼 치열하게 사랑했던 것만큼 이제 미련 또한 남아있지 않는 거겠지. 게다가 서민영과의 관계를 오해하고 상처를 받았을 걸 생각하니 가슴이 또다시 답답해졌다.전우가 마지막 남긴 유언에 사로잡혀 필요 이상으로 잘해주긴 했었다. 그렇다면 소은정에게 제대로 해명이라도 했어야 했는데... 언제까지나 그의 이기심을 받아줄 거라고 생각
그녀가 소찬식의 딸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아마 이 땅에서 계속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강서진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이 상황 자체가 수치스러웠지만 어쨌든 칼자루는 저쪽이 잡고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그래서, 뭘 원하는데요?”소은정을 건드리는 게 아니었는데 후회막심이었다. 소은정은 짜증스러눈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또각또각 강서진 앞으로 다가갔다. 그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조롱이 가득했다.“그 알몸 사진 때문에 그런 거잖아요? 3초 셀게요.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요. 안 그럼 그 사진이 바로 인터넷에 퍼질 테니까.”강서진의 당황한 모습에 소은정은 푸흡 웃음을 터트렸다. 정신을 차린 강서진은 도망치면서도 애원을 멈추지 않았다.“진... 진정해요!”뒤꽁무니가 빠져라 도망치는 강서진을 바라보던 소은정은 지루하다는 듯 고개를 젓더니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밖으로 나갔다.클럽 밖, 소은정의 차 옆에 누군가 서 있었다. 그 사람은 박수혁이었다. 그는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안 바빠?”소은정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어 차가운 미소를 더 매력적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당하고도 날 만나고 싶은 건가? 참 뻔뻔하다니까.깊은 눈동자를 한참 동안 소은정을 바라보던 박수혁이 매력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은정아, 민영이와의 사이에 대해 해명하고 싶어. 나랑 민명이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가 아니야.”이거라도 해명하면 그도, 소은정도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안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서민영이라는 단어에 소은정은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아니. 그럴 필요 없어.”소은정은 박수혁을 밀려낸 뒤 바로 차에 올라탔다. 조금이라도 빨리 여길 벗어나고 싶은 생각에 소은정은 벨트도 하지 않고 엑셀을 밟았다.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엑셀을 살짝 밟았음에도 차량 속도가 120km/h까지 올라갔다.소은정의 차량은 빠르게 달려 순식간에 도로 중앙으로 돌진했다. 새벽이라 도로를 거니는 차량은
한편, 인터넷에는 박씨 일가가 소은정에게 그동안 저지른 악행에 관한 토론으로 뜨겁게 달구어졌다. 하지만 여론이 화가 잔뜩 나있는 지금 괜히 해명문을 올리면 사람들을 더 자극할 뿐이었기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박씨 저택.한자리에 모인 가족들은 모두 박대한의 눈치를 보며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않았다.하루 아침에 태한그룹의 주가가 바닥까지 떨어진 상황, 박대한의 분노는 끝까지 차올랐다. 게다가 늦은 밤까지 박수혁은 코빼기도 모습을 보이지 않자 박대한의 화는 극에 달했다.“수혁이 이 자식은 도대체 어디 간 거야!”박대한은 지팡이로 바닥을 세게 내리치며 집사에게 물었다.“도련님께서 전화를 안 받으십니다. 이 비서도 도련님이 어디로 가셨는지 모른다고 하고요.”잔뜩 겁을 먹은 집사가 콩알만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흥, 집안이 이 꼴이 됐는데 한가롭게 어딜 돌아다니고 있는 거야! 그 자식 소은정 그 여자와 3년이나 살았다는 놈이 아무 눈치도 못 챴다는 게 말이 돼!”박대한은 자신의 한 짓이 후회스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소은정이 SC그룹 회장 소찬식의 딸이라는 걸 알았다면 절대 홀대하지 않았을 텐데.두 가문의 결합은 재계를 뒤흔들만한 빅 뉴스가 되었을 것이다.그런데 지금은...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SC그룹과 척을 지게 된 것은 물론 비취 담뱃대까지 빼앗기고 말았으니...박대한은 매서운 눈빛으로 이민혜와 박예리를 노려보았다.“멍청한 것들! 이게 다 너희들 때문인 건 알고 있겠지!”이민혜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변명했다.“아버님, 소은정 그 계집애가 작정하고 저희를 속인 거예요. 저희는 아무 잘못 없다고요. 그리고 그 계집애가 수혁이랑 결혼하기 전에 뒷조사까지 해보셨다면서요.”이민혜의 말을 들은 박대한은 콧방귀를 뀌더니 호통을 쳤다.“네가 내 담뱃대를 경매에 넘기지만 않았더라도 일이 이렇게까지 커지진 않았어! 어디서 뻔뻔하게 변명이야!”박대한의 기분을 거슬리게 만드는 사건들 중 그를 가장 화나게 하는 건 바로 비취 담뱃대를 빼앗겼다는
박수혁은 방금 전 차가운 가로등 불빛 아래, 외롭게 멀어져 가던 소은정의 모습을 떠올렸다.그 순간,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심장이 욱신거렸다. 아마 그녀에게 진 마음의 빚을 영원히 갚을 수 없음을 느꼈기 때문이겠지.박대한은 미간을 찌푸렸다.“사과? 말이 쉽지. 사과하는 순간, 우리가 그동안 소은정에게 했던 짓이 전부 사실이라고 인정하는 꼴이야. 회사와 우리 가문의 명예는 어떻게 할 셈이냐?”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박예리도 거들었다.“그러니까. 굳이 공식 사과문까지 발표할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소찬식 딸이면 또 뭐? 우리보다 더 고귀한 존재라도 돼? 결혼도 이혼도 다 그 계집애가 알아서 결정한 거잖아. 왜 그 책임을 우리가 져야 하는데!”사과를 한다면 친구들 모임에서 체면이 바닥까지 떨어질 게 분명했고 자존심 강한 그녀가 그걸 용납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죽어도 사과만은 할 수 없었다.여동생의 궤변에 박수혁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 보았고 겁을 먹은 박예리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박수혁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죽어도 체면은 버리지 못하겠다 이거지?“그래요. 공개 사과가 싫으시다면 직접 은정이 집에 가서 사과하시죠.”“그게 무슨 소리야?”이민혜가 바로 반박했다.비굴하게 그녀에게 머리를 조아리던 소은정에게 직접 사과까지 하라니!“그만해!”박대한은 일그러진 얼굴로 탁자를 내리쳤다. 그는 항상 자랑스럽게 여겨왔던 손자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다른 방법은 없는 게냐?”“없습니다.”박수혁이 무표정으로 대답했다. 지금이야말로 그와 가족들이 소은정에게 빚진 사과를 돌려줄 때니까.박대한은 두 눈을 감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네가 알아서 해!”지금으로선 박수혁의 판단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할아버지...”박예리의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에 박수혁은 차가운 얼굴로 경고를 날렸다.“박예리, 할아버지가 왜 담뱃대를 잃게 되셨는지 벌써 잊은 건 아니겠지? 또 소란 일으키면 카드고 뭐고 전부 다 끊어버릴 거니까 알아서 해. 알바를 하든
SC그룹, 회의실.소찬식은 의자에 기댄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소은호가 회의를 주도했다.소은호는 간단히 인사말과 함께 바로 소은정을 소개하기 시작했다.소은정은 상처를 가리기 위해 내린 앞머리를 만지작거렸다.“뭐 다들 이미 아셨을 거라 생각하지만 다시 한번 소개 드립니다. 소은정 씨는 제 하나뿐인 동생이자 SC그룹의 최대 주주입니다. 앞으로 SC그룹의 대표이사직을 맡게 되실 겁니다. 다들 우리 은정이를 믿고 따라주실 거라 믿습니다.”최대 주주!자리에 앉은 이사들의 모든 지분을 다 합쳐도 소은정을 이길 수 없으니 마음에 들지 않아도 따를 수밖에!애초에 장한명이 아닌 소은정 쪽에 서서 정말 다행이었다는 생각에 이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축하드립니다. 소은정 대표님.”누군가를 시작으로 모두들 소은정의 취임을 축하하며 박수를 쳤다.본부장에서 대표이사까지 오빠의 완벽한 계획 덕분에 그녀는 순조롭게 회사를 물려받게 되었다.비록 소은호는 앞으로도 그녀를 도와 함께 회사를 운영해 나가겠다고 했지만 갑자기 늘어난 업무량과 대표이사라는 직함이 주는 무게감에 소은정은 기쁘면서도 어깨가 무거웠다.회의가 끝나고 회의실을 나서는 소은정을 향해 우연준이 다가왔다.“대표님, 태한그룹에서 오늘 점심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소은정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이렇게 빨리?박대한의 성격에 적어도 보름 정도는 미룰 줄 알았는데...우연준이 건넨 태블릿을 쓱 흝어보던 소은정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단 몇 마디 말로 인터넷에 떠도는 루머가 가짜이며 3년 동안의 결혼생활에 대한 반성 아닌 반성까지. 아무런 감정도 온도도 느껴지지 않는 사과문, 딱 봐도 박수혁의 솜씨였다.“저희 쪽에서도 대응을 해야 할까요?”“아니요. 그럴 필요 없어요.”“알겠습니다. 아, 거성그룹 쪽에서 프로젝트 기획서를 함께 작성할 것을 제안해 왔습니다. 기획안 확정 전까지 프로젝트 팀원들이 거성그룹에 주둔하는 게 어떻겠냐며 임 대표가 묻던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거
한편, 임춘식은 소은정이 직접 기획안 작성에 참여한다는 소식에 기뻐하며 전화를 걸었다.“대표님, 오실 때 우리 배신자도 데리고 오시죠. 다들 말은 안 해도 보고 싶어 하는 눈치입니다.”“그럼요. 당연히 그래야죠.”소호랑이 있다면 거성그룹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건 물론 지루하지도 않을 테니 소은정에게도 나쁠 게 없었다.통화를 마친 소은정은 다시 업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새 밖은 캄캄해지고 가로등과 네온사인이 거리를 밝혔다.소은정은 기지개를 켜며 일어선 뒤 핸드백을 들고 일어섰다. 사무실을 나선 그녀는 여전히 불을 밝히고 있는 소은호의 사무실을 발견하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오빠가 키워놓은 회사를 그녀가 홀랑 먹어버린 게 아닌가 싶어 죄책감이 몰려왔다.사무실 문을 노크한 소은정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소은호는 한창 화상회의 중이었다. 진지한 얼굴로 대화를 하던 소은호는 그녀를 발견하고는 손가락으로 소파를 가리켰다.소은정은 싱긋 웃은 뒤 조용히 소파에 앉아 오빠가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니 왠지 태한그룹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그녀는 의아한 얼굴로 회의를 마친 소은호를 향해 물었다.“태한그룹? 유럽 지사에서 태한그룹이 준비하는 신제품과 똑같은 제품을 출시할 예정인 거야?”“그래. 똑같은 퀄리티에 가격은 훨씬 저렴해. 이번 일로 아마 손해 좀 볼 거야.”소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 마음이 불편했다.“오늘 태한그룹에서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어.”“알아. 하지만 그걸론 부족해. 너한테 준 상처를 사과문 하나로 없었던 일로 만들 수는 없어. 게다가 박수혁이 발표한 사과문 덕분에 주가 하락폭도 많이 줄어들었어. 결국 태한그룹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고.”소은정의 질문에 대답하던 소은호가 피식 웃었다.“뭐야? 설마 마음이 약해지기라도 한 거야?”“그럴 리가.”소은정이 고개를 저었다.“뭐 이건 표면적인 이유일뿐이고 해외 시장에서 태한그룹과 SC그룹은 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