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정이 그에게 직접 전화를 했던 적이 있었던가...망설이던 이한석이 대답했다.“전에 제가 말씀드린 적도 있었는데 대표님께서 그런 사소한 일까지 보고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서민영 씨와 관련된 일을 제외하고 다른 일은 저한테 바로 전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 자리에 소은정 씨도 있었고요. 그래서 대표님께 직접 전하지 않으신 게 아닐지...”박수혁의 짜증을 느꼈을까? 이한석은 또다시 말끝을 흐렸다. 이한석의 말에 그때 상황을 떠올린 박수혁은 미간을 꾹꾹 눌렀다. 그때의 그의 머릿속은 온통 서민영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이 생각뿐이었다.그 사이에 기대에 차있던 소은정의 눈빛은 슬픔으로, 차가움으로 변해갔겠지.소은정의 말대로 결혼을 해줬으니 마음대로 부려먹어도 된다고 생각했나 보다. 건방지게.갑자기 가슴이 아파오고 숨도 쉬어지지 않았다. 매사 조심스럽게 그의 눈치를 보던 소은정이 언제부터 차가워진 걸까? 그를 혼란스럽게 만들던 질문의 답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대표님, 회의는...”“SC그룹 소은정 본부장과 약속 잡아. 할 말이 있으니까.”소은정이 그의 전화를 받을 리도 없고 불쑥 찾아가 봤자 반감만 살 테니 이한석을 통할 수밖에 없었다.“SC그룹 쪽에서는 소은정 본부장이 시간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이한석이 억울하다는 듯 대답했다. 하지만 박수혁의 차가운 눈빛과 마주한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에 바로 말을 바꾸었다.“그쪽에서 시간을 정할 때까지 계속 연락해 보겠습니다.”“나가 봐. 회의는 예정대로 진행할 거야.”“네, 대표님.”이한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사무실을 나섰다.굳이 왜?이혼까지 한 마당에 왜 저렇게 집착하시는 걸까?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박수혁에게 직접 물을 수 없는 질문들. 이한석은 고개를 저었다.한편 SC그룹, 박대한을 배웅한 우연준은 자신이 들은 통화 내용을 그대로 보고했다. 이에 소은정은 차갑게 웃었다. 박대한이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것도, 수단이 만만치 않
소은정은 아무 말 없이 우연준을 바라보았다. 우연준도 어리둥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박수혁의 존재는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소은정은 한숨을 내신 뒤 미소를 지으며 임춘식을 바라보았다.“이런 자리인 줄은 몰랐네요.”여유로운 말투에 담긴 뜻을 눈치챈 임춘식은 소은정과 박수혁을 번갈아 쳐다보다 어깨를 으쓱했다.“무례한 걸 알지만 저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전 두 분 사이 일에 끼어들 일은 추호도 없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제가 빌미를 제공한 건 맞으니 사과의 의미로 저희 거성그룹에서 새로 설립한 연구실을 보여드리죠. 본부장님도 관심이 가실 것 같은데요.”관심? 임춘식의 말도 맞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놀아난 듯한 기분에 불쾌함이 밀려왔다.소은정은 무표정한 얼굴로 박수혁을 바라보았다.“박 대표님, 또 그 담뱃대에 대해 말씀하시고 싶은 거라면 제 의견은 대표님 할아버님께 다 말씀드렸으니 더 이상 얘기하지 마세요. 제 생각은 바뀌지 않습니다.”오전에는 박대한이, 저녁에는 박수혁이. 이 집안사람들은 참 뻔뻔하고 집요하다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이쯤 되면 포기할 때도 되지 않았나?“은정아.”박수혁은 진지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바라보다 말을 이어갔다.“할아버지가 회사로 찾아갔다는 말은 들었어. 뭐, 좋은 말씀은 안 하셨겠지. 마음에 담아두지 마. 미...”미안하다고 말하려는 순간, 박수혁은 말끝을 흐렸다. 소은정에게 이런 사과는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3년 동안의 고통이 미안하다는 한 마디로 지워지진 않겠지.소은정은 왠지 평소와 다른 박수혁의 모습에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겨우 그런 말이나 하려고 이렇게 자리를 만든 건가요?”짜증 섞인 소은정의 질문에 잠시 침묵하던 박수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그 담뱃대... 어차피 네가 가지고 있어도 딱히 쓸 곳도 없잖아? 우리 가족들한테 복수하고 싶은 거였다면 이미 성공했어. 언젠가 화가 풀리면 다시 돌려줬으면 좋겠어. 물론 돌려주는 조건은 네가 정하고.”박수혁의 말에
소은정의 말에 박수혁의 마음이 또 욱신거렸다. 바이올린을 연주할 줄 알았다는 것도. 담배를 피울 줄 알았다는 것도. 가끔은 정말 독해질 수 있다는 것도. 전부 그가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다.“당신이 싫어할 것 같아서 당신한테는 숨긴 거야. 뭐, 굳이 숨기지 않아도 볼 기회조차 없었지만.”헌혈을 마치고 온몸에 힘이 풀릴 때마다 박수혁은 그녀의 곁이 아닌 서민영을 보살펴주고 있었다. 그녀의 씁쓸한 마음과 외로움을 달래주는 건 담배뿐이었다. 어떻게든 스트레스를 풀 방법을 찾다가 시작하게 된 담배는 이제 습관이 되어버렸다.소은정의 눈동자에 서글픔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소은정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박수혁을 바라보더니 장난스레 웃었다.“내 조건 들어보고 싶어?”박수혁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소은정은 바로 조건을 제시했다.준 것도 받은 것도 다 돌려주고 돌려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아직 돌려받지 못한 게 있었다.“3년 동안 내가 서민영에게 수혈해 줬던 피, 그대로 다시 내놓으라고 해. 한 번으로 안 되면 두 번, 세 번. 횟수는 상관없어. 하지만 1년 안에 전부 돌려놓아야 해.”그녀의 말에 박수혁은 충격을 먹은 듯 고개를 번쩍 들었다.“뭐라고?”하지만 소은정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생각해 봤는데 내 소중한 피를 그딴 여자한테 줬다는 게 너무 억울하더라고. 더 가치 있는 일에 쓰는 게 나을 것 같아서. 3년 전에는 바보처럼 이런 생각은 하지도 못했지. 하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해. 내 피를 돌려줘. 그러면 나도 담뱃대를 돌려줄 테니까. 그럼 우리 두 사람 다시 엮일 일 없는 거야.”서민영은 소은정을 괴롭히기 위해 일부러 꾀병을 부리며 소은정의 수혈을 강요했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것도 모르는 박수혁이 원망스러웠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피를 받고 담뱃대를 돌려주고 그녀의 과거와 완전히 선을 그은 뒤 이제는 온전히 그녀를 위한 삶을 살고 싶었다.게다가 마침 서민영도 다시 돌아왔다고 하지 않았던
임춘식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대답했다.“이유가 어찌 되었든 오늘은 제가 실례했습니다. 시간 괜찮으시다면 지금 실험실을 둘러보시겠어요? 핵심 기술 연구실입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말이죠.”소은정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거성그룹의 최신 기술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기회, 완벽한 대외비인 연구실을 둘러본다면 거성그룹의 향후 계획은 물론 AI 분야 사업을 진행함에 있어 필요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이때, 임상희가 뒤에 서 있는 우연준을 향해 말했다.“안타깝지만 우 비서님은 함께 갈 수 없을 것 같군요. 연구실은 저희 그룹의 기밀이 담겨있는 곳이라서요. 아, 물론 제가 책임지고 댁까지 모셔다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망설이는 우연준의 모습에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난 괜찮으니까 이만 들어가요.”“네, 본부장님.”두 사람은 그렇게 임춘식의 차에 탔다. 차에 타는 순간, 밖의 풍경을 볼 수 없도록 차창에 커튼이 스르륵 내려왔다. 신중한 임춘식의 태도에 소은정의 기대감은 점점 더 부풀어 올랐다.“소 대표님이 아끼는 우 비서까지 내주신 걸 보면 정말 본부장님을 아끼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재결합을 단호하게 거절하신 거겠죠. 더 좋은 남자가 있는데 왜 굳이 과거의 인연을 붙잡겠어요.”임춘식이 금테 안경을 올리며 웃었다.잠시 망설이던 소은정이 담담하게 대답했다.“대표님이 절 아끼시는 건 제 재능을 높게 사서입니다. 안목이 있으신 거죠.”단호한 그녀의 모습에 임춘식은 박수혁이 아무리 노력해도 이 관계는 되돌릴 수 없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20분 정도 달렸을까? 차량은 한 건물의 지하 차고로 진입했다. 차에 내린 순간, 대낮처럼 환한 조명이 소은정의 눈을 자극했다. 평범한 그레이 톤 인테리어, 위장을 위해 일부러 이렇게 만든 거겠지.임춘식은 소은정과 함께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임춘식의 지문을 비롯한 3단 점검을 마친 뒤에야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열렸다.“자, 가시죠.”임춘식이 손을 뻗
예상치 못한 만남에 소은정은 바로 호랑이를 품에 안았다.“꼬맹아, 여기서 또 보네?”그녀의 품에 얼굴을 비비던 호랑이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나 꼬맹이 아니에요. 난 멋진 호랑이라고요!”아무리 멋있는 표정을 지어도 귀엽기만 한 호랑이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던 소은정이 임춘식에게 물었다.“절 기억하네요?”“워낙 기억력이 좋은 아이라서요.”임춘식이 목소리를 낮추며 설명해 주었다.“어디까지나 진짜 호랑이는 아니니까요. 이렇게 말하면 삐질지도 몰라요.”“다 들었거든요. 미워! 흥!”호랑이는 삐진 척 고개를 홱 돌렸다.임춘식이 어깨를 으쓱하던 그때, 파마머리 남자가 다가왔다.“그쪽이 얘가 말하던 예쁜 누나였군요?”20대 초중반의 젊은 청년이었지만 검은색 뿔테안경 뒤에 숨겨진 진지한 눈빛, 누가 봐도 어엿한 과학자의 모습이었다.“이 배신자가 글쎄 예쁜 누나를 봤다고 어찌나 자랑을 하던지. 워낙 안목이 높은 애라 저희도 궁금했었는데 이렇게 만나네요.”쑥스러워진 소은정은 어색하게 웃으며 괜히 호랑이의 털을 만지작거렸다. 그녀의 손길을 즐기던 호랑이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이쁘죠? 이쁘죠?”“지금 네가 배신자라고 인정하는 거야?”파마머리 남자의 장난 섞인 질문에 호랑이는 고개를 홱 돌렸다.“누가 성격을 디자인했는지 좋아하는 사람이 자꾸 바뀐다니까요. 그래서 다들 배신자라고 불러요.”임춘식이 웃으며 소은정에게 설명해 주었다.“내가 디자인한 건데? 얘 성격이 뭐가 어때서?”이때, 안쪽에서 동그란 얼굴에 큰 눈이 매력적인 여자가 나오더니 임춘식을 노려보았다. 그녀는 소은정의 품에 안긴 호랑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얼른 누나한테 와.”하지만 호랑이는 고개를 젓더니 소은정의 품에 더 꼭 안겼다.“싫어, 싫어. 난 예쁜 누나 품에 안길 거란 말이에요...”호랑이의 말에 여자는 어이없다는 웃었다.“이 배신자야!”소은정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호랑이를 만드신 분이신가 봐요?”여자는 소은정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감탄을 시작했다.“
은찬 오빠가 스위스에서 상을 받고 찍은 사진이었다. 17살에 논문을 발표하고 바로 세계 일류 물리학자 대열에 이름을 올린 그녀의 오빠는 수많은 나라에서 욕심내는 천재였다. 수려한 이목구비에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는 오빠를 바라보던 소은정이 미소를 지었다.“은찬님을 알아요?”신나리는 잔뜩 흥분한 얼굴로 달려왔다.“제 롤모델이요. 언젠가 은찬님을 직접 만날 수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거예요!”오버스러운 말투로 말하는 신나리의 눈빛은 당장이라도 하트를 발사할 것만 같았다.그런 신나리의 모습에 소은정은 침묵했다. 잘생긴 외모, 천재적인 재능, 완벽해 보이는 그녀의 오빠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바로 여자와 대화하는 걸 극도로 거부한다는 것이었다. 아빠도 소은찬이 평생 외롭게 혼자 사는 게 아닐까 가끔씩 걱정을 내비치기도 했다.한편, 이런 사정은 까맣게 모르고 있는 신나리는 그녀의 팔을 흔들며 말을 이어갔다.“정말 잘생기지 않았어요? 웬만한 연예인 저리 가라라니까요. 저 옷 속의 몸은 어떤 모습일까요...”영낙없이 사랑에 빠진 신나리를 바라보던 소은정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평범해요...”어렸을 때, 웃통을 벗은 채 돌아다니는 오빠들의 모습을 모두 지켜봤던 소은정이 저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었다. 워낙 운동도 안 하는 책벌레다 보니 큰 오빠와 셋째 오빠와 비교하면 조금 밀리는 건 사실이었다.“그걸 어떻게 알아요?”신나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더니 물었다.“아니, 그전에 어떻게 은찬님을 아는 거죠?”소은정은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망설였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신나리라면 무뚝뚝한 은찬 오빠의 마음을 열 수 있지도 않을까?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제가 이 사람 연락처를 아는데. 드릴까요?”신나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정말요?”소은정은 바로 휴대폰을 꺼내 소은찬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시차로 아직 일어나기 전인지 소은찬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모습이었다.평소 흠모하던 롤 모델의 흐트러진 모습이라니.
소은정은 신나리와 번호를 교환한 뒤 호랑이를 안고 실험실에서 나왔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임춘식은 생각보다 빨리 나온 그녀를 향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소은정은 호랑이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나리가 선물로 줬어요. 집에 데려가도 되죠.”흠칫 놀라던 임춘식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물론이죠. 이건 나리가 입사 전에 만든 로봇이라 회사 소유가 아닙니다. 나리가 허락했다면 얼마든지요.”말을 마친 임춘식은 호랑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이 배신자야, 잘 가. 은정 씨 말 잘 듣고.”“흥, 내가 어련히 알아서 잘 할 텐데요 뭘.”마지막까지 발칙한 호랑이의 모습에 임춘식은 웃음을 터트렸다.“가시죠. 제가 댁까지 바래다 드리겠습니다.”집에 도착하고 호랑이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려던 그때,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셋째 오빠 소은해가 보낸 영상통화 알림음이었다.한편, 호랑이는 그녀의 집에 돌아오자마자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이러저리 훑어보았다. 깔끔하지만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에 호랑이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꼬리를 흔들며 이리저리 둘러보던 호랑이는 소파 위에 풀쩍 뛰어올라 에르메스 스카프를 이불 삼아 편안히 눈을 감았다.소은정이 수락 버튼을 누르자 소은해의 잘생긴 얼굴이 나타났다. 데뷔와 동시에 뛰어난 외모로 연기력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그는 최연소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단점을 찾아볼 수 없는 조각 같은 외모에 타고난 끼, 연예인이 천직인 사람이었다.“우리 동생, 더 이뻐졌네?”소은정은 짐짓 머리를 넘기더니 말했다.“뭐 새삼스럽게.”소은해는 여동생의 자뻑에 피식 미소를 지었다.“동생, 이혼 축하해. 이럴 때일수록 가족이랑 시간을 많이 보내야 하는 거야. 그런 의미에서 오빠가 스케줄 다 비워두고 내일 귀국하려고. 공항까지 마중 나와야 해.”소은정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소은해는 영상통화를 끊어버렸다.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젓던 소은정은 호랑이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너 이름 있어?”“내 이름은 세상에서 가장 귀엽고 멋진
흐뭇한 얼굴로 단톡방을 들여다보고 있던 소은정의 귓가에 익숙한 단어가 들려왔다.“수혁아...”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소은정의 얼굴에 걸린 미소는 차갑게 굳어버렸다.서민영, 여기서 만나다니!박수혁은 비서인 이한석과 함께 직접 마중을 나와있었다. 박수혁의 얼굴을 확인한 서민영은 눈시울을 붉히며 달려갔다.서로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던 커플 같은 두 사람의 모습에 소은정의 가슴은 또 욱신거렸다.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었음에도 씁쓸함은 지워지지 않았다.다시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쓰던 그때,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잡아끌었다. 익숙한 향기... 그녀는 애써 밝게 웃으며 애교를 부렸다.“오빠, 유치하게 정말.”신이 정성스레 조각한 듯한 소은해의 얼굴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여자인 그녀조차도 질투가 나는 미모였다.소은해는 선글라스를 올리며 괜히 퉁명스레 말했다.“야, 너 많이 컸다?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어! 은해 오빠다!”누군가 소리쳤다. 순식간에 소녀팬들이 그녀를 둘러쌌다. 그녀들의 맹렬한 기세에 깜짝 놀란 소은정이 나지막이 물었다.“경호원은?”“휴가 줬는데?”그가 담담하게 대답했다.“그럼 어떡해?”“네가 오빠를 지켜야지...”소은해가 뻔뻔하게 말했다.소은해가 공항에 나타났다는 소식은 일파만파 퍼져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이 몰려들었다. 소은해는 동생이 인파에 휩싸일까 그녀의 어깨를 꼭 안았다. 수많은 카메라에서 터져 나오는 플래시가 소은정의 눈을, 끊임없이 그의 이름을 부르는 팬들의 목소리가 소은정의 귀를 자극했다.이럴 줄 알았으면 안 오는 건데!사진에 찍히고 싶지 않아 소은정은 애써 손으로 얼굴을 막았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팬들이 찍은 사진은 SNS에 빠르게 퍼졌고 그녀의 얼굴을 알아본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댓글을 남겼다.“소은해가 안고 있는 여자, 박수혁 대표랑 전 와이프 아니야?”“그러네. 진짜 소은정이잖아. 저 두 사람이 왜...”“설마 두 사람 사귀는 거야?”국내 최고의 톱스타와 전 재벌 며느리의 스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