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알아차리지 못한 지아가 몸을 더 굽히자 마침 도윤의 이마에 닿았다.부드럽다.도윤은 눈을 감고 속으로 끊임없이 애국가를 제창했다.다행히 면도는 금방 끝났고 도윤은 숨을 돌릴 수 있었다.지아는 손을 깨끗이 씻고 오일을 발라 머리를 눌러주는데 예전보다 훨씬 더 섬세한 손길이었다.전혀 잘 기미가 없었던 도윤은 마사지해 주는 지아의 손길과 좋은 향기에 저도 모르게 잠에 들었다.잠든 그를 보며 지아는 안도했다.지아가 일어나 기지개를 켜며 달력을 보니 도윤의 몸속 독이 90%가 빠져나가기까지 길어야 일주일 정도 남았고, 그 뒤엔 도윤 스스로 몸을 회복해야 했다.지아는 이 남자가 쉽게 떠나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그가 가지 않으면 자신이 떠나야 한다.한참을 의학 서적을 읽어도 도윤이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지아도 씻고 쉴 준비를 했다.도윤은 물소리에 잠에서 깼다.오랫동안 잠든 사이 방안의 향초는 다 타버린 지 오래였고 남은 잔향이 사람의 마음을 간질였다.금방 깨어나 머리가 다소 아팠던 도윤이 눈을 깜박이자 전보다 훨씬 나아진 걸 발견했다. 이젠 거의 400도 근시안과 비슷해져 플라스틱 커버의 작은 글자를 제외하고는 방 전체의 모든 것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도윤의 시선이 병풍으로 향했다. 방에 조명이라곤 촛불만 켜져 있었고, 빛은 미약했지만 병풍에 드리운 지아의 모습을 드러내기에는 딱 좋았다.막 목욕을 마친 지아는 욕조에서 나와 무심코 가운을 집어 입고는 천천히 걸어 나갔다.그녀는 도윤을 신경 쓰지 않고 옆에 있던 수건으로 목에 있던 물기를 닦았다.그러고는 침대 앞에서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가운을 벗었고, 뒷모습일 뿐이었지만 그 모습이 오롯이 도윤의 눈에 담겼다.오랜만에 지아의 몸을 본 도윤은 코피가 났다.허둥지둥 처리하려던 그는 자신의 뺨을 때려 기절시키고 싶은 심정이었다. ‘쓸모없는 놈!’쿵 소리와 함께 도윤이 침대에서 떨어졌고 고개를 돌린 지아는 그제야 앞 못 보는 누군가도 방에 있음을 의식했다.고개를 돌리자마자 도윤이 바닥
직설적인 질문에 도윤은 심장이 입 밖으로 뛰쳐나올 뻔했다. 이런 상황에서 시력을 되찾았다고 인정하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당연히 도윤은 인정하지 않았다!“지아야, 나도 하루빨리 시력을 되찾아서 너한테 폐 끼치지 않았으면 좋겠어.”그가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움직이지 마, 종이 가져올게.”“그래.”도윤은 지아가 무심하게 가운을 걸치고 베개 밑에서 단검을 꺼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자신의 얼굴에 고정된 지아의 시선은 무언가 알아내려는 듯했다.도윤이 그런 지아의 생각을 모를 리 없었다. 지아는 이미 의심하고 있다.자신을 속이기 위해 앞을 못 보는 척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아가 알게 된다면 그 끝은 상상만으로 알 수 있었다.도윤은 마음속으로 불안했지만 감히 얼굴에 빈틈을 드러내지 않았다.코피가 흘러내리도록 내버려둔 채 그는 바보처럼 물었다.“지아야, 어디 있어? 돌아왔어?”지아는 도윤에게 다가가 휴지를 내려놓으며 평소처럼 말했다.“왔어.”지아는 휴지를 뽑는 순간 갑자기 칼을 뽑았고, 칼날이 도윤의 눈을 스쳐 지나가더니 안구에서 3센티미터 떨어진 곳에서 멈췄다.도윤은 눈을 깜빡이지도, 조금도 물러서지도 않았다.칼끝이 그의 눈을 똑바로 조준하고 있었다.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절대 보일 수 없는 반응이었던 터라 지아는 자신이 괜한 생각을 한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하지만 지아는 등 뒤에 있던 도윤의 손가락을 보지 못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며 도윤은 날카로운 통증으로 단검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을 참았다.지아가 아무리 독해도 도윤보다는 아니었다.도윤은 일부러 몸을 움직이기까지 했다.“지아야, 종이 어디 있어?”지아는 서둘러 단검을 치웠다.“여기.”그녀는 그 순간 도윤의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이 일로 도윤의 출혈도 기적적으로 멈췄다.피투성이가 된 도윤을 보자 다시 물을 받아 씻기기도 귀찮았다.“내가 방금 샤워해서 물이 아직 따뜻할 텐데, 안 더러우면 가서 씻어.”“안 더
이 세상에 도윤이 못해낼 일은 없다. 게다가 아직 지아와 그 사이엔 네 명의 아이가 있으니 서두르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았다.꽁꽁 얼린 얼음도 하루아침에 녹지 않는데, 자신과 지아 사이의 응어리를 풀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방금 전 진심을 다해 웃는 지아의 미소를 떠올리며 도윤은 진심으로 진심을 맞바꿀 계획을 세웠다.“지아야, 목욕 타월 어디 있어?”셔츠와 바지가 모두 피투성이가 되어 입을 수 없었던 터라 지아는 경훈에게 옷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도윤을 피하기 위해서 지아는 방에서 나와 경훈더러 옷을 입히게 했다.“보스, 사모님께서 옷 입히고 방으로 돌려보내라고 하셨어요.”도윤의 얼굴이 잔뜩 서늘하게 굳었다. 지아는 이러한 방식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하지만 태생이 반골인 도윤이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도윤은 더 주저하지 않고 경훈을 따라 나갔다.아직 며칠이 남았는데 그사이에 지아와 진전이 없다면 전처럼 밤낮으로 상사병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하늘에 뜬 보름달을 바라봤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서둘러야 했다.지아는 도윤이 자신을 귀찮게 할 거라 생각했지만 이틀 동안 도윤은 그녀를 일부러 찾지 않았고 오히려 조원주와 가까워졌다.조원주는 도윤이에게 쪼개진 옥수수를 알맹이로 하나하나 껍질을 벗기는 등 할 일을 던져주고, 옥수수를 수확할 때는 경훈과 함께 일꾼으로 데려가기도 했다.며칠 만에 도윤은 옥수수밭에 서서 바지 다리를 걷어 올리고 낫을 더듬으며 줄기를 자르는 등 농사일에 익숙해졌다.속도는 느리지만 체력이 좋았다!조원주는 도윤의 손을 당기며 말했다.“자네, 태생이 옥수수 농사를 지을 인재인데 여기 남아서 날 도와 농사나 짓지 그래?”도윤은 숨기지 않았다.“좋죠, 할머님만 괜찮으시다면요.”조원주는 도윤을 직접 보기 전까지 그가 거칠고 위압적이고 배신자에 나쁜놈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부지런하고 건장하고, 농사를 짓고 몸이 튼튼한 사람으로 바뀌었다.생각만큼 미운 행동도 하지 않고 지아를 향한 사랑을
지아는 소달구지에 올가미를 매고 있었다. 마을의 교통수단은 소달구지 아니면 말이었고 생활 조건이 조금 악랄해도 지아는 이곳에 머무는 것이 행복했다. 서로 물고 뜯는 대도시의 삶보다 훨씬 좋았다.“도윤이랑 같이 가. 둘이 가면 더 빠르니까.”경훈은 침을 맞고 약을 바르느라 당분간 움직이지 못했고, 두 사람을 이어주고 싶었던 조원주의 마음을 잘 알았기에 지아는 거절할 수 없었다.도윤과 지아는 덜컹거리는 소달구지에 나란히 앉았고 이따금 몸이 마구 흔들렸다.도윤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자 지아는 도윤을 바라보았다.“왜 웃어?”“그냥 이렇게 사는 것도 재미있어서. 우리가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넌 소달구지를 몰고 난 옥수수를 뜯고, 이런 일상도 나쁘지 않네. 평화롭고 소박하고, 심지어 평생 여기서 너와 농사지으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어.”지아가 미간을 찌푸렸다.“난 싫어.”아직 끝내지 못한 일, 죽이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경훈을 볼 때마다 젊고 아름다웠던 미연이 자신의 심장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려다 결국 눈앞에서 생을 마감하던 게 떠올랐다.지아는 2년 동안 이를 갈았다. 이제 그 사람에게 미연이 겪은 것의 백배를 갚아주는 일만 남았다!미연에게 빚진 걸 한꺼번에 다 갚을 생각이었다.도윤은 그저 웃으며 중얼거렸다.“그냥 내 희망 사항이라고 생각해.”밭에 도착하자 지아는 도윤을 옥수수밭으로 이끌었다.“여긴 당신이 베, 내가 나중에 정리할게.”“알았어.”도윤의 눈은 완전히 나았지만 지아 앞에서 계속 아픈 척을 해야 했다.적어도 이렇게 손이라도 잡을 수 있으니까.도윤은 한 번 자를 때마다 지아를 한참이나 쳐다봤다.지아는 마을에서 항상 수수한 옷을 입고 민첩하게 일을 했다.짧은 시간에 밭에서 많은 양의 벼를 베내는 지아는 무엇이든 빨리 배우고 잘하는 사람이었다.그런 천재가 자신의 무지로 인해 미래를 잃을 뻔한 것이다.도윤도 고개를 숙이고 조심스럽게 옥수수 줄기를 잘랐다. 7시간 넘게 연달아 일하니 체력 좋은 도윤도 구
소지아가 위암을 확진한 날, 이도윤은 그의 첫사랑과 함께 그녀의 아들과 아동 병원에 있었다.병원 복도에서 임건우는 검사 보고서를 들고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지아야, 검사 결과 나왔어. 악성 종양 말기야, 수술 성공하면 5년 생존율은 15~30% 정도고."소지아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숄더백 어깨끈을 잡아당겼고, 약간 창백한 작은 얼굴의 표정이 무척 심각했다."선배, 수술을 하지 않으면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요?""6개월에서 1년, 사람마다 다르지. 네 상황은 먼저 약물 치료를 두 번 받은 뒤, 수술을 하는 게 좋을 거야. 이렇게 하면 암세포의 확산과 전이의 위험을 막을 수 있거든."소지아는 입술을 깨물며 힘겹게 말했다."고마워요, 선배.""나한테 고맙긴, 내가 바로 입원시켜 줄게.""아니요, 난 치료할 생각이 없어요. 약물 치료 견딜 수 없을 거예요."임건우는 또 몇 마디 더 말하고 싶었지만 소지아는 공손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선배, 이건 일단 비밀로 해줘요. 가족들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요."소씨네 가문이 파산해서 아버지의 거액의 입원비를 내는 것만으로도 소지아는 전력을 다해야 했고 이제 또 가족에게 자신이 암에 걸렸다고 알려주는 것은 틀림없이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임건우는 어쩔 수 없어 하며 한숨을 쉬었다."걱정 마. 입 꼭 다물고 있을게. 참, 너 결혼했다고 들었는데, 네 남편 쪽은.......""선생, 우리 아빠 잘 부탁할게요, 신경 좀 많이 써주세요. 난 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요."소지아는 이 화제를 언급하고 싶지 않은 듯 그의 대답을 듣지 않고 재빨리 떠났다.임건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그녀가 대학을 휴학하고 시집갔다는 소문을 들은 적 있었다. 의과 천재는 그렇게 의학계에서 사라져 지금은 만신창이가 되었다.지아의 아버지가 치료를 받는 이 2년 동안, 오직 소지아 만이 바쁘게 그를 돌보았는데, 그녀 자신이 아파서 쓰러졌을 때도 행인이 병원으로 데려다 주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의 남편은 그림자조차 보
어두컴컴한 밤, 그녀는 혼자 욕실로 돌아왔다.뜨거운 물은 그녀의 추위를 씻어냈고, 그녀는 빨갛게 부은 눈을 비비며 한 방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늑한 인테리어를 한 어린이방이 그녀의 눈앞에 나타났다.그녀가 가볍게 벨을 흔들자, 오르골의 음악 소리가 방에서 울렸다. 방의 등불은 무척 따스한 불빛이었고, 분명히 아름다운 화면이었지만 소지아는 눈물을 멈출 수 없이 줄줄 흘렸다.아마도 이것이 그녀가 받아야할 벌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자신의 아이를 잘 보호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하느님은 그녀의 생명을 빼앗으려 했다.소지아는 1.2미터의 어린이 침대에 올라 자신의 온몸을 웅크렸고, 왼쪽 눈의 눈물은 오른쪽 눈으로 흘러내리며 볼에서 미끄러져 몸 아래의 담요를 촉촉하게 적셨다.그녀는 인형을 꼭 안고 중얼거렸다."미안해, 아가야, 모두 엄마 잘못이야. 엄마가 너를 잘 보호하지 못했어. 두려워하지 마. 엄마가 곧 갈게."아이가 죽은 후, 그녀의 정신은 줄곧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마치 아름다운 꽃이 나날이 시들어가는 것 같았다.그녀는 그 어두운 야경을 보면서 아버지에게 이 돈만 남기면 자신의 아이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이튿날 아침, 날이 밝기도 전에 소지아는 이미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 고개를 숙여 웨딩 드레스를 입고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자신의 사진을 바라보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3년이란 시간이 지났다.그녀는 특별히 위에 좋은 아침을 먹었는데, 비록 오래 살지는 못하지만, 그녀도 가능한 한 좀 더 오래 살아서 아버지를 돌보고 싶었다.소지아는 외출하자마자 병원의 전화를 받았다."아가씨, 지금 환자분께서 갑자기 심장병이 발작하여 이미 수술실로 들어갔어요.”"곧 갈게요!"소지아는 재빨리 병원으로 달려갔고, 수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소지아는 수술실 문밖에서 두 손을 모아 기도하며 기다렸다. 그녀는 이미 모든 것을 잃었고, 이제 유일한 희망은 아버지가 건강하게 잘 살아있는 것이다.이때 옆에 있던 간호사가 비용 명세서를 그녀에게 건네
백채원은 하얀 고급 캐시미어 외투를 입고 있었고, 귀에 있는 호주 백진주는 그녀를 부드럽고 기품 있도록 돋보이게 했다.그녀의 목에 있는 숄만 해도 수백만 원 했고, 점원은 그녀를 보자마자 얼른 맞이했다."사모님, 오늘 대표님께서 함께 주얼리 보러 오시지 않았어요?""사모님, 가게에 또 신상이 들어왔는데, 다 사모님과 잘 어울리는 거 같아요.""사모님, 지난번에 말씀하신 비취가 도착했는데, 이따가 한 번 써보세요. 사모님 피부색과 아주 잘 어울릴 거예요."점원이 사모님 사모님 하자 백채원은 미소를 지으며 소지아를 쳐다보았고, 눈빛으로 득의양양하게 자신의 승리를 선포했다.세상 사람들은 모두 이도윤이 그녀를 무척 총애한다고 알고 있었지만, 소지아가 그의 명실상부한 아내라는 것을 몰랐다.소지아는 두 손을 주먹으로 꼭 쥐었다. 왜 하필 가장 낭패할 때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는 것일까?백채원은 부드럽게 물었다."이렇게 좋은 재질의 반지를 가지고 와서 돈을 바꾸면, 적지 않은 손실을 볼 거 같은데요."소지아는 손을 뻗어 반지를 빼앗아왔고,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안 팔래요.""안 판다고요? 정말 아쉽네요. 난 이 반지를 매우 좋아하는데, 우리가 아는 것을 봐서, 비싼 값에 사려고 했어요. 소지아 씨는 돈이 부족하지 않나요?"소지아의 손은 제자리에 굳어졌다. 그렇다, 그녀는 돈이 부족했다. 그것도 엄청. 백채원은 이 점을 알고 거리낌 없이 그녀를 짓밟았다.옆에 있던 점원은 얼른 충고했다."아가씨, 이 분은 이씨 그룹 대표님의 약혼녀인데, 어렵게 아가씨의 반지가 마음에 든 이상, 기필코 아가씨에게 높은 가격을 제시할 거예요. 이렇게 하면 아가씨도 우리 쪽의 절차를 기다리지 않고 돈을 받을 수 있죠."사모님이란 호칭은 무척 귀에 거슬렸다. 분명히 1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은 절대로 그와 이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하며 그녀가 이런 마음 먹지 못하게 했다.겨우 1년이라는 시간에, 사람들은 이미 백채원의 신분을 알게 되었고, 소지아는 더욱
변진희는 소지아가 8살 때 떠났다. 그날은 소계훈의 생일이었는데, 그녀는 집에 돌아와 아버지에게 생일을 보내려고 기뻐했다. 그러나 돌아가자 본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혼 합의서였다.소지아는 그녀를 쫓기 위해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고, 신발이 떨어져도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변진희의 다리를 안고 끊임없이 울부짖었다."엄마, 가지 마요!"고귀한 여자는 그녀의 앳된 볼을 쓰다듬었다. "미안.""엄마, 나 이번에 전교 일등을 했는데, 아직 내 시험지를 보지 않았잖아요. 엄마 사인해야 된단 말이에요.""엄마, 날 떠나지 마요, 나 말 잘 들을게요, 앞으로 놀이동산에 가지 않고 더 이상 엄마 화나게 하지 않을 게요, 말 들을 테니까 제발......."그녀는 당황하여 자신의 아쉬움을 표현하며 여자가 남아 있기를 바랐다. 변진희는 단지 그녀에게 자신과 아버지의 혼인은 행복하지 않았으며, 지금 진정한 행복을 찾았다고 말했다.소지아는 낯선 아저씨가 그녀를 대신해서 트렁크를 차에 실은 뒤 손을 잡고 떠난 것을 보았다.그리고 그녀는 맨발로 땅에 넘어질 때까지 수백 미터를 쫓아갔고, 무릎과 발바닥은 모두 상처였으며, 그녀는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는 차가 떠나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그때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다. 커서야 엄마가 바람을 피웠다가 아버지에게 들켰다는 것을 알고 아예 이혼을 제기하고 홀몸으로 나가 그녀를 포함한 모든 재산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십여 년 동안 소지아는 변진희를 연락한 적이 없었고, 그녀는 평생 다시는 변진희를 만나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다.그러나 운명은 정말 아이러니했다. 결국 자신은 그녀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다니.목이 메며 그녀는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변진희도 그녀의 마음을 알고 스스로 일어나 그녀를 자신의 곁으로 끌고 앉혔다."나는 네가 나 미워하는 거 알아. 그때 너는 너무 어렸고, 많은 일들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었어. 엄마는 다 설명할 수 없었어."변진희는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