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결정하라고?’‘이걸 어떻게 내가 선택을 할 수 있어?’‘엄마로 협박하는데 내가 타협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있을까?’유월영은 기가 막힌 듯 웃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머리가 빙빙 도는 느낌이 들어 그녀는 비틀거리며 연재준 쪽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유월영의 팔을 잡고 있던 현시우의 손이 내려와 그녀의 손바닥을 잡아 맞댔다. 유월영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은 많은 걸 말하고 있었다. 연재준은 싸늘한 시선은 두 사람의 애틋한 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맞잡은 두 손으로 향했다. 유월영은 주먹을 꼭 쥔 채 연재준을 바라봤다. “당신이랑 다시 돌아가면, 정말로 엄마를 풀어줄 건가요?”연재준은 시선을 거두고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당신, 나랑 같이 안 가면 누구랑 가고 싶은데?”유월영은 현시우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내고 한숨을 쉬면서 정원 밖으로 걸어갔다. 한세인은 자기도 모르게 그녀에게 향했다.“현 대표님...”현시우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유월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연재준은 승리를 만끽하는 표정 대신 차가운 눈빛으로 현시우를 노려보았다. “이 일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예요.”그는 유월영을 따라잡아 그녀의 손을 낚아채고 막무가내로 차에 태웠다. 한세인이 이를 갈며 말했다. “대표님, 이대로 유월영 씨를 그냥 보낼 건가요? 저들이 사람이 많지만 우리가 싸워 이길 수도 있잖아요!”“양어머니가 잡혀 있는 한, 월영이도 어머니를 그렇게 내버려둘 수는 없을 거야.”신주시는 연재준이 꽉 잡고 있었고 나머지 세 개의 가문까지 있어서 그들 손에서 이영화를 데려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영화의 몸도 아직 회복되지 않아 무리할 수 없었다. 현시우가 말했다.“지남이도 연재준의 손에 있어...”유월영은 방금 현시우의 손을 잡고 있을 때, 그녀에게 뭔가를 쥐어줬다....노현재가 앞좌석에서 돌아보면서 눈썹을 긁적이었다.
“...”유월영은 그를 밀어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그의 힘을 당해내지 못했다. 연재준의 다리와 허리, 그리고 가슴은 그녀에게 밀착시켜 왔다. 그의 따뜻한 체온과 익숙한 숨결이 닿자 그녀는 매일 밤 안고 자던 기억이 떠올랐다. 유현석이 자살한 후 그녀는 매일 밤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그때마다 그는 그녀를 안은 채 다독여 주고 같이 있어 줬으며 그녀에게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그의 모든 행동이 단지 연기라는 생각이 들어 털끝 하나 건드리기만 해도 견딜 수가 없었다. 유월영은 젖 먹던 힘까지 써서 발버둥 쳤다. “혼인신고만 안 하면 당신이랑 관계가 없어요!”“오늘 전까지 당신 그런 생각하지 않았었잖아.”연재준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또 현시우 때문이야? 당신 현시우랑 만나기만 하면 모든 걸 다 부정하잖아. 10년이나 지났는데, 왜 아직도 그 자식을 못 잊는 거야?”연재준의 질투하는 듯한 말에 유월영은 콧방귀를 끼었다. “나에 대한 모든 행동이 계획된 게 아니라는 점만 해도, 벌써 당신보다 훨씬 나아요.”그의 손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유월영은 반항하기를 멈추고 가만히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예쁜 두 눈에는 한이 서려 있었다. “그리고 말끝마다 내 남편이라고 강조하지 말아요. 나랑 결혼한 목적이 아버지의 장부를 내놓으라고 하기 위해서였다는 걸 이제는 알았으니까.”연재준은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 이내 웃음을 터뜨리면서 차갑게 말했다. “알고 있는 게 참 많군.”유월영은 그가 지금 바로 그녀에게 자백한 건지 헷갈렸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쨌든 그건 사실일 뿐이니까. 유월영도 비웃으며 말했다.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자살하기 전까지도 장부를 나와 엄마에게 맡기지 않았어요.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고요. 우리를 잡아간다고 해도 당신이 원하는 걸 얻을 수 없을 거예요.”연재준이 물었다.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고 있어?”유월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몰라요. 연 대표님의 속을 누가 알겠어
연재준은 밀리지 않고 오히려 유월영을 더 세게 눌러왔다. “내가 그깟 수단을 써서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은 게 뭐가 잘못된 거야? 당신도 말했었잖아, 성인들 사이 약간의 수단과 방법은 받아들일 수 있다고. 왜 그때의 신연우는 되고, 내가 그러는 건 안 된다고 하는 거야?”유월영은 그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이유를 댈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그만 억지 부려요! 이게 어디 같은 일인가요?”“왜 아니야?”연재준의 선명한 아래턱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당신도 그날 말했었잖아. 반지를 끼면 그전에 있었던 일들은 다 용서하고 없던 일로 하겠다고. 그러면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유월영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게.’‘없던 일로 하겠다고.’‘어떻게 저렇게 당당하게 입 밖에 낼 수 있지?’그의 논리대로라면 본성을 숨기고 착한 척한 건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였다. 압력을 넣어 여론을 조작한 것도, 아버지를 협박하고 어머니를 납치한 것도, 모두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한 작은 수단과 방법일 뿐이며 도리에 어긋나더라도 모두 그녀를 좋아하는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고 모두 그녀가 반지를 받기 전에 일어난 일이니 그녀의 약속대로 더 이상 그를 탓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그의 변명이었다. 유월영은 그의 옷깃을 꽉 움켜쥐었다.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고 창자가 꼬이는 듯한 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녀가 반박할 수 없다는 걸 단정하는 듯한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 유월영은 그를 밀쳐냈다. “...이거 놔! 연재준! 이거 놓으라고!”유월영의 얼굴이 창백해지자 연재준은 그녀가 하루 종일 굶어 위병이 도진 줄 알고 그녀의 팔목을 잡아끌고 강제로 선실 밖으로 향했다. “밥 먹어.”유월영은 다른 한 손으로 문틀을 잡은 채 나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다 문에 부딪치고 말았다. 쿵 하는 소리가 선실 밖으로 울려 퍼졌고 소란을 들은 노현재는 재빨리 다가와 상황을 살피다 문에서 실랑
연재준은 멍하니 있다가 그녀가 한 말을 이해하고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당신 눈에는 내가...”그는 갑자기 숨이 막혀오고 가슴이 답답해져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유월영의 말은 모두 비수가 되어 그에 가슴에 박혔다. 노현재는 상황이 치닫자 이러다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급하게 끼어들었다.“재준이 형, 기장이 형을 찾던데, 잠깐 가서 뭔 일인가 보지 그래?” 연재준의 잘생긴 얼굴은 기침 때문에 점점 창백해졌다. 그의 눈은 한밤중처럼 새카맣고, 표정은 굳어진 채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에야 그는 숨을 고르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잘 살아 있는 게 좋을 거야. 당신이 죽으면 어머님은 어떻게 하려고 그래? 당신 따라 죽기를 바라는 거야? 그리고 당신 언니랑 조카, 조카를 그렇게 예뻐하잖아. 매번 조카선물도 잊지 않고 사주던데. 당신이 정말 죽으면 우리는 그들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고.”‘연재준, 당신 정말 대단해.’유월영은 입술을 깨문 채 그를 노려봤다. 그녀는 더 이상 그와 말을 섞기 싫어 선실로 돌아가 힘껏 문을 닫았다. 연재준도 더 이상 그녀를 쫓아가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그녀는 심지어 그가 자신이 죽기를 바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그들 사이에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으랴.연재준은 가슴을 움켜쥐고 노현재의 곁을 지나면서 한마디 던졌다. “월영이 방에 먹을 것 좀 가져다줘.”...기진맥진 한 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소파에 주저앉아 한참 쉬고 나서야 복통이 점차 멎었다. 그녀는 두 다리를 껴안은 채 웅크리고 있었다. 그저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잠시 후 이성을 찾은 유월영은 갑자기 두려워졌다. 이렇게 그와 얼굴을 붉혔는데 연재준이 엄마를 만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 방문이 다시 열리고 유월영은 차가운 시선으로 문 쪽을 노려보았다. 노현재였다.그녀는 역시나 차가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입가에 슬쩍 미소가 어린 채 손에 있는
다섯 시간 후 비행기가 신주시에 착륙했고 하정은은 차량을 이끌고 공항으로 그들을 마중 나왔다. 유월영은 곧장 그중 차 한 대로 향했다. 그녀는 앞좌석에 앉아 연재준과 같이 나란히 앉을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했다. 하지만 차 문을 열고 올라타기도 전에 연재준은 그녀의 팔을 잡고 뒷좌석으로 밀어 넣었다. 더 실랑이 해도 허사라는 걸 깨닫고 그녀는 아무런 반항 없이 뒷좌석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하정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대표님, 우선 동해안 저택으로 가시겠어요?”연재준이 대답했다.“응.”유월영은 즉시 반박했다.“엄마 만나서 병원에 갈 거예요.”연재준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지금 ICU에 계셔서 당신 들어갈 수 없어. 그리고 가서 만난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게 없어. 당신이 병원에서 먹고 자고 하는 건 동의할 수 없어.”“내가 곁에 같이 있든 말든 내 일이에요. 더 이상 날 어떻게 할 생각하지 말아요.”“그럼 내가 할 수 있나 없나 한 번 보지.”연재준이 다시 말했다.“동해안 저택으로 가.”유월영도 지지 않고 소리 질렀다.“병원으로 가라고요!”운전기사는 당연히 연재준의 말에 따랐고, 내비게이션 목적지를 동해안으로 설정했다. 유월영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날 내려줘요. 나 혼자 병원에 갈 거예요.”운전기사는 백미러로 연재준의 눈치를 살폈다. 그가 아무런 지시가 없자 운전기사는 그대로 속도를 줄이지 않고 길을 달렸다. 자기 말에 아무런 반응이 없자 유월영은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바로 앞 좌석으로 몸을 일으켜 운전기사의 운전대를 낚아챘다.“차 세우라고!”갑작스러운 행동에 운전기사는 핸들을 놓치고 차는 길에서 방향을 잃고 휘청거렸다. 다행히 주위에 차가 없어서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다. 연재준은 재빨리 그녀를 끌어당겼다. “당신 미쳤어?”유월영은 연재준의 손을 뿌리쳤다. 다음 순간, 그녀는 손에 유리 조각을 쥐고 연재준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하정은이 놀라 소리 질렀다.“대표님! 사모님! 진정하세요!
차는 곧 신주병원 입구에 도착했다. 유월영은 차에서 내려 바로 병원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이내 연재준이 그녀를 잡아끌었다. “재준 씨!”유월영이 빠져나오려 하자 연재준이 담담하게 말했다.“어머님 보고 싶으면 나한테 맞춰줘.”‘뭘?’유월영은 눈살을 찌푸리고 그를 바라봤지만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손을 이끌고 병원 안으로 향했다. 두 사람이 계단을 오르자 뒤따라오던 승용차 한 대가 입구에서 천천히 멈춰 섰다. 뒷좌석 차창이 천천히 내려지고 윤영훈과 오성민이 얼굴을 드러냈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옆으로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다 병원 안으로 사라지자 비로소 눈길을 돌렸다. “연 대표 정말로 유 비서를 데려왔네.”윤영훈 비웃는 어조로 말했다. “난 또 유 비서가 현시우 따라가 버리고 다시는 안 돌아올 줄 알았지. 현시우가 첫사랑이라고 하지 않았어? 첫사랑도 별거 없고 연재준이 더 좋다 이건가?”오성민은 손에 있는 염주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자기 엄마를 위해 돌아왔을 거야. 그래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병원으로 달려온 거고.”“그건 모르는 거야. 당신이 유 비서를 몰라서 그래. 내가 애초에 그녀를 얼마나 열심히 쫓아다녔는데. 내게 웃는 얼굴도 안 보여줬어. 이 아가씨 아주 냉정하고 똑똑하다고. 연재준과 결혼까지 한 걸 보면 정말로 연재준을 좋아하는 걸 거야.”오성민은 윤영훈의 말에 담긴 뜻을 알아챘다.“그 말은 그녀가 정말로 연재준을 위해서 유용우하고 고해양 그리고 고씨 집안의 복수를 포기할 거라는 뜻이야?”윤영훈이 표정 변화 없이 대꾸했다.“불가능한 건 아니잖아. 똑똑한 여자일수록 사람에 빠지면 답이 없다고.”오성민은 안전벨트를 풀고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도 사랑에 빠지면 답이 없어 보이는데?”윤영훈은 오성민이 그가 했던 말처럼 뿌리를 뽑을까 봐, 유월영이 해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애써 설명하고 있었다. 오성민은 차 문을 열고 내렸다.“내 눈으로 봐야겠어.”그는 병원으로 들어가 ICU 병실
수술이 끝나 병실로 옮겨질 때까지도 유월영은 자신이 유산으로 아이를 잃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그녀를 병실로 데려간 간호사는 인적 사항을 등록하기 위해 그녀에게 물었다.“유월영 환자분, 가족들은 어디 계신가요?”유월영은 초점을 잃은 눈으로 천장만 올려다볼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간호사가 재차 물었다.“유월영 씨, 가족들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이때, 약품을 정리하던 다른 간호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나한테 줘. 그거 내가 입력할게. 환자가 구급차에 실려올 때 신분증이랑 카드 나한테 줬었어. 바로 등록하고 비용 결제하면 된다고. 아마 이 환자는….”유월영은 그제야 입술을 달싹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저는 가족이 없어요.”진한 소독약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이를 잃었다는 상실감이 점점 더 진실되게 다가왔다. 그녀는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다가 더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떨구었다.깊은 절망감이 찾아왔다.수술을 마친 유월영은 홀로 병원에서 사흘간 입원해 있었다.그 동안 그녀를 찾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나흘 째 되던 날, 드디어 연재준에게서 전화가 왔다.“유 비서, 무단 결근 3일이면 충분히 휴식하지 않았어? 지금 옷 입고 서덕궁으로 와.”남자의 목소리와 함께 시끄러운 배경 음악과 여자들의 웃음소리까지 같이 전해져 왔다. 유월영은 지금 입원 중이라고 말해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유 비서.”낮게 깔린 중저음 목소리가 재차 전해졌다.화가 많이 났다는 증거였다.유월영은 하려던 말을 도로 삼키고 그대로 병원을 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부랴부랴 서덕궁으로 향했다. 그녀는 가는 길에 차 안에서 화장을 했다.목적지에 도착하자 그녀는 대충 립스틱을 입술에 바르고 카운터로 직행했다.“해운그룹 연 대표님이 계신 방이 어디죠?”고개를 든 어린 남직원은 눈앞의 미모의 연인을 보고 수줍게 웃으며 다급히 길을 안내했다.“연 대표님은 1번 룸에 계십니다. 제가 안내할게
술자리가 끝나고 유월영은 고객사 직원들을 한 명씩 차에 태워 보냈다. 모든 일이 끝난 뒤, 그녀는 피곤한 얼굴로 길가 가로등에 등을 기댔다. 이미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오장육부가 뒤틀리듯이 아팠다.립스틱은 이미 지워진지 오래고 파리한 입술에는 핏기 한 점 없었다.그녀의 상태가 이상한 것을 눈치챈 연재준의 운전기사가 다급히 다가오며 그녀에게 말했다.“유 비서님, 먼저 차에 타실래요?”유월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힘겹게 뒷좌석에 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 문이 열리더니 밖에 연재준과 여자애가 서 있었다. 같이 타려고 했는데 유월영이 먼저 타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연재준이 그녀를 보고 인상을 확 찌푸렸다.여자는 다급히 달려가서 조수석 문을 열며 말했다.“대표님, 제가 앞에 탈게요.”연재준은 짜증스럽게 문을 쾅 닫고 차에 오르며 말했다.“유진이 먼저 데려다줘.”유월영은 고통스럽게 두 눈을 감았다. 온몸에 힘이 다 빠지고 속이 울렁거렸다. 유산하고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서 술을 마시니 죽을 것 같은 고통이 찾아왔다.차는 한 낡은 아파트 구역으로 들어섰다. 유월영이 잠깐 눈을 붙이고 있는데 연재준이 갑자기 그녀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골목이 어두워서 위험해. 유 비서가 유진이 집까지 좀 데려다줘.”백유진이 흑수정 같은 눈망울을 반짝이며 말했다.“괜찮아요, 대표님. 언니도 피곤할 텐데 여기서부터는 혼자 갈 수 있어요. 조금만 더 걸으면 도착해요. 혼자 올라갈게요.”차에서 내린 그녀는 뒷좌석 차창에 대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대표님은 월영 언니 바래다줘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 좋은 꿈 꿔요.”차갑기만 하던 연재준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언뜻 스치고 지나갔다.“그래, 좋은 꿈 꿔.”유월영은 차에 오르고 지금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운전기사는 유월영을 집에 데려다주는 대신, 연재준의 동해안 별장으로 차를 돌렸다. 그는 연재준의 가까운 심복 중 한 명으로써 눈빛 하나로도 연재준의 속마음을 알 수 있었다.집 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