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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억대 몸값 비서님
천억대 몸값 비서님
작가: 고나름

제1화

수술이 끝나 병실로 옮겨질 때까지도 유월영은 자신이 유산으로 아이를 잃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녀를 병실로 데려간 간호사는 인적 사항을 등록하기 위해 그녀에게 물었다.

“유월영 환자분, 가족들은 어디 계신가요?”

유월영은 초점을 잃은 눈으로 천장만 올려다볼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간호사가 재차 물었다.

“유월영 씨, 가족들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

이때, 약품을 정리하던 다른 간호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한테 줘. 그거 내가 입력할게. 환자가 구급차에 실려올 때 신분증이랑 카드 나한테 줬었어. 바로 등록하고 비용 결제하면 된다고. 아마 이 환자는….”

유월영은 그제야 입술을 달싹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저는 가족이 없어요.”

진한 소독약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이를 잃었다는 상실감이 점점 더 진실되게 다가왔다. 그녀는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다가 더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떨구었다.

깊은 절망감이 찾아왔다.

수술을 마친 유월영은 홀로 병원에서 사흘간 입원해 있었다.

그 동안 그녀를 찾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흘 째 되던 날, 드디어 연재준에게서 전화가 왔다.

“유 비서, 무단 결근 3일이면 충분히 휴식하지 않았어? 지금 옷 입고 서덕궁으로 와.”

남자의 목소리와 함께 시끄러운 배경 음악과 여자들의 웃음소리까지 같이 전해져 왔다. 유월영은 지금 입원 중이라고 말해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

“유 비서.”

낮게 깔린 중저음 목소리가 재차 전해졌다.

화가 많이 났다는 증거였다.

유월영은 하려던 말을 도로 삼키고 그대로 병원을 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부랴부랴 서덕궁으로 향했다. 그녀는 가는 길에 차 안에서 화장을 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그녀는 대충 립스틱을 입술에 바르고 카운터로 직행했다.

“해운그룹 연 대표님이 계신 방이 어디죠?”

고개를 든 어린 남직원은 눈앞의 미모의 연인을 보고 수줍게 웃으며 다급히 길을 안내했다.

“연 대표님은 1번 룸에 계십니다. 제가 안내할게요.”

유월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직원을 따라 1번 룸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가볍게 노크한 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진한 알코올 냄새가 코를 찔렀다. 속이 뒤틀리고 위에서 신물이 올라왔다.

그녀가 아직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했는데 남자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 비서 왔으니까 유 비서랑 마셔요. 입사한지 얼마 안 된 새내기는 그만 놔주시고요.”

고객사 임원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불쌍한 우리 유 비서 자다가 불려온 거 아니야? 저런 악덕 상사를 봤나. 새내기만 챙기고 우리 유 비서한테 다 떠넘기는 것 좀 봐.”

유월영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연재준의 옆에 앉은 한 어린 여자에게 시선이 닿았다.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여자는 그녀와 예전부터 친하게 지내던 사이처럼 친근하게 부르며 말했다.

“월영 언니, 죄송해요. 제가 술을 못 마셔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연재준이 끼어들었다.

“사과할 필요 없어. 유 비서가 무단결근만 안 했어도 오늘 이 자리에 나왔을 사람은 유 비서야.”

누가 봐도 새내기를 감싸는 말이었다.

냉혈한으로 널리 알려진 연재준이 누군가에 이 정도로 관심을 준 적 있었던가?

유월영은 저도 모르게 그 어린 여자에게 시선이 갔다.

포니테일 머리에 심플한 원피스를 입은 여자는 이십 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이런 혼잡한 술장소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순진한 토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유월영은 입가에 영업용 미소를 장착하고 테이블로 다가갔다.

“서 대표님,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과도한 음주는 간 건강에 안 좋다니깐요.”

유월영, 해운그룹 수석 비서. 음주가무에 능란하고 뛰어난 말빨과 화술로 술자리의 마스코트라고 불렸다. 아무리 끈질긴 주정뱅이가 와도 저 화려한 언변으로 상황을 유리하게 바꿔놓는 재주가 있는 여자였다.

서 대표라는 사람도 아까까지는 죽을 때까지 마시자더니 유월영을 보자 바로 꼬리를 내렸다.

하지만 연재준은 시종일관 그녀를 위해 말 한마디 해주지 않았다.

시끌벅적한 가운데 남자가 옆자리에 앉은 새내기의 귓가에 대고 말하는 소리가 유월영의 귀까지 전달되었다.

“졸려? 이따가 먼저 데려다줄게.”

그와 3년을 동고동락했지만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자상한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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