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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유월영은 월셋방으로 돌아가서 짐을 정리했다.

“이제 돌아온 거야? 오늘도 안 돌아오면 시내에 있는 병원 다 뒤져서라도 찾아가보려고 했는데!”

“이제 괜찮아.”

유월영의 룸메이트 조서희는 그녀의 대학 동창이었다. 두 사람은 대학교 때부터 같은 월셋방에서 동고동락하며 지내왔다.

입원해 있는 동안에 그녀를 걱정해 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유월영은 친구에게조차 사실을 말하지 않고 그냥 감기로 입원해 있다며 병문안을 거절했다.

실내화로 갈아신은 조서희는 월영의 방 문 앞에서 짐 정리를 하는 친구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또 출장이야? 퇴원한지 며칠이나 됐다고. 연재준 그 인간 너무 직원을 부려먹는 거 아니야?”

조서희는 연재준과 월영의 관계를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친구를 부려먹는 악덕 상사를 줄곧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유월영은 이번에 떠나면 또 언제 돌아올지 장담할 수 없기에 솔직하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나 지방 발령 났어. 안성 지사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됐는데 언제 끝날지는 몰라. 3개월이 지나도 나 안 돌아오면 새로운 룸메이트를 찾는 게 좋을 거야. 그때 가서 미리 나한테 연락 주면 와서 남은 짐을 가져갈게.”

조서희가 순간 당황하며 물었다.

“이렇게 갑자기?”

“누구나 직장에서 일하다 보면 발령 날 수도 있고 그런 거지 뭐.”

다른 사람이었다면 흔히 있는 일이라고 넘어갔겠지만 연재준과 월영의 사이를 아는 조서희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너 연재준이랑 싸웠어?”

월영은 길게 얘기하고 싶지 않았기에 말없이 일어섰다. 그러다가 호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이 바닥에 떨어졌다. 조서희는 발 빠르게 그 종이를 집어 들었다.

병원 진료 기록이었다.

조서희는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고 친구를 바라보았다. 날짜를 확인해 보니 그녀가 집을 비운 날짜와 맞물렸다.

“유산해서 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거야? 아이는 당연히 연재준 아이일 테고. 그 인간이 유산하라고 강요했어? 아니면 이제 너 필요 없으니까 멀리 꺼지래?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 있어? 개 같은 자식! 당장 그 자식 만나야겠어!”

아기자기 귀여운 이목구비를 가진 조서희는 외모와는 다르게 불 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유월영은 다급히 친구를 말렸다.

“서희야, 그 사람은 내가 유산한 거 몰라. 뜻밖에 사고를 당해서 유산한 거야.”

조서희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 인간한테 얘기 안 했어?”

“얘기할 필요 없잖아.”

유월영이 입술을 깨물며 답했다.

“대체… 어쩌려고 이래?”

유월영은 황급히 진료기록을 친구의 손에서 가로채 갈기갈기 찢어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어쩌긴 뭘 어째. 그냥 알게 하고 싶지 않았어.”

조서희는 친구의 생각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유월영이 욕실 용품을 챙기러 화장실로 들어간 사이, 그녀는 찢어진 종이조각을 조심스레 챙겼다.

그날 밤, 유월영은 안성으로 떠났다.

그 뒤로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본사에 업무 진행 상황을 보고하는 것 이외에 그녀는 따로 연재준과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

그녀와 꽤 잘 지내던 비서실 동료들은 가끔 그녀에게 본사 상황을 전해주었다.

내용은 별거 없었다. 연재준이 백유진을 애지중지하며 직접 업무를 가르친다는 시시껄렁한 얘기들뿐이었다. 어느 날은 비 오는 날에 백유진이 야근한 적 있었는데 일찍 퇴근했던 연재준이 다시 회사로 돌아와서 직접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는 얘기도 있었다. 회사에서는 현재 두 사람이 연인 사이라는 소문이 쫙 퍼졌다고 했다.

하지만 처음 그런 소문을 냈던 직원은 연재준이 직접 잘랐다고 한다.

그렇게 어느새 백유진은 비서실에서 연재준을 등에 업고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유월영은 처음 연재준과 같이 회사로 왔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도 그는 그녀에게 직접 이런저런 업무를 가르쳤었다. 그것 때문에 회사에 이상한 소문이 났지만 그는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유월영은 자신의 노력으로 오늘 날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 그녀는 줄곧 연재준이 감정 없는 냉혈한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지금 보면 대상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았다.

상념에 잠겼던 그녀는 저도 모르게 아랫배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한 달이 지났지만 조서희를 제외하면 아무도 그녀가 뭘 잃었는지 모르고 있었다.

또 두 달이 지나갔다.

안성의 프로젝트는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비서실 동료는 그녀에게 요 며칠 사이 연재준이 안성을 방문할 거라는 사실을 귀띔해 주었다. 그러면서 이번 기회에 본사로 돌아갈 기회를 잘 잡아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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