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13화

그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대형 사고였다.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부상이 없는 사람들은 현장을 정리하고 부상자는 병원으로 옮겨졌다.

다행히 선박은 골조만 완성된 상태라 생각보다 무겁지 않았기에 유월영도 골절상을 피할 수 있었다. 만약 완성된 선박이었다면 그 결과는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이 사고로 크게 다친 사람은 하필 스미스였다. 그는 현장에서 머리를 맞고 혼수상태에 빠졌다. 누군가는 이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공장장은 부상자를 병원으로 이송한 뒤, 사건의 자초지종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조사 결과, 골조를 지탱하고 있던 4번 끈이 풀리면서 평형을 잃고 추락했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런데 끈이 왜 갑자기 풀린 걸까?

병실로 찾아온 공장장이 쓴웃음을 지으며 결과를 보고했다.

“4번 끈이 갑자기 풀려서 일어난 사고입니다. 하지만 공장 내부에는 CCTV가 없어서 끈이 풀린 이유는 밝혀내기 어려울 것 같아요. 기억을 되짚어 보면 사고 직전에 그 위치에 머무른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연재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듣고 있었지만 화가 많이 난 상태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게 누굽니까.”

공장장은 시선을 회피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게….”

병상에 있던 유월영이 입을 열었다.

“저예요.”

연재준의 시선이 유월영에게 쏠렸다.

조금 전 사고로 그녀는 머리가 흐트러지고 옷도 먼지투성이가 되었으며 가녀린 종아리에는 두터운 붕대를 감고 있어 조금 안쓰러워 보일 정도였다.

연재준은 갑자기 어젯밤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눈시울을 붉히며 자신을 똑바로 노려보던 그녀의 모습도 지금처럼 안쓰러웠었다.

그는 숨을 고르고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거기 서서 뭐 했어?”

유월영은 자초지종을 사실대로 말했다.

“백유진 씨가 이 사업 회사에 금전적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냐고 물었어요. 그래서 걸음을 멈추고 그 질문에 대답했죠.”

공장장이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돈이 되고 안 되고가 어딨겠습니까. 카누 제작은 눈에 보이는 것처럼 쉽지 않아요. 물에 뜰 수 있는 자재를 찾기 위해 사방으로 돌아다녀야 한다고요. 백 미터가 넘는 선박 골조를 만드는데만 5년이 걸렸어요. 그런데 추락해서 산산이 부서졌으니….”

연재준이 물었다.

“끈 건드린 적 없어?”

유월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없어요.”

하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백유진이 작은 소리로 끼어들었다.

“언니가 건드리는 거 본 거 같아요.”

유월영과 연재준의 시선이 일제히 그쪽으로 쏠렸다.

백유진은 현장에서 부상 정도가 가장 경미한 사람이었다. 손바닥이 살짝 긁혀서 껍질이 벗겨진 정도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재준은 간호사를 불러 상처를 꼼꼼히 소독하게 했다.

그녀는 침대에 앉은 채로 순진무구한 눈을 반짝이며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월영은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건드리는 걸 본 것 같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싸늘한 그녀의 목소리에 백유진은 놀란 듯 시선을 회피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그때… 끈을 살짝 잡아당겼잖아요. 그래서 그걸 얘기한 건데….”

연재준이 말했다.

“계속해 봐.”

“그래서 그것 때문에 끈이 풀린 건 아닌지… 해서요. 죄송해요, 대표님. 그 끈 한번 건드렸다고 그렇게 심각한 사고가 날 줄은 몰랐어요. 알았더라면 그러지 말라고 말렸을 텐데….”

유월영은 의심의 눈초리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연재준이 백유진을 좋아했기에 평소에 잔꾀를 부리는 게 눈에 보여도 못 본 척하고 지나갔다. 어차피 말해 봐야 연재준은 당연히 그녀를 감쌀 게 뻔하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선을 넘은 발언이었다.

유월영의 얼굴이 차갑게 식었다.

“다시 말해봐. 내가 뭘 건드렸다는 거지?”

백유진은 연재준의 등 뒤로 숨으며 놀란 토끼처럼 바들바들 떨었다.

연재준이 싸늘한 목소리로 유월영에게 말했다.

“지금 내가 질문하고 있잖아.”

끼어들지 말라는 뜻이었다.

유월영은 백유진이 부린 꼼수가 우습기만 했다.

하지만 무작정 백유진만 감싸는 연재준의 태도에 가슴에 고이 눌러두고 있던 분노와 서러움이 한순간에 폭발했다.

“쟤가 뭐라고 하면 그대로 믿겠다는 건가요!”

연재준이 물었다.

“그래서 유진이가 했던 말 중에 거짓이 있다는 거야?”

백유진은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대표님, 저는 거짓말하지 않았어요. CCTV 확인해 보면 알 거예요. 저는 사실만 말했어요.”

유월영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공장장님 하신 말 못 들었어? 공장 내부에는 CCTV가 없다잖아!”

그녀의 언성이 높아지자 연재준도 불쾌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소리 좀 낮춰!”

유월영은 순간 멈칫하며 충격적인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누군가 머리 위에 얼음물을 들이부은 것처럼 온몸이 차게 식었다.

연재준이 성격 더럽기로 소문났지만 3년 동안 그녀에게 대놓고 화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백유진의 두 눈에 물기가 서리더니 거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대표님, 저는 거짓말하지 않았어요….”

“알아. 난 믿어.”

그 한 마디에 유월영은 지금까지 쌓은 모든 노력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연재준이 말했다.

“유 비서 오늘 하루종일 정신을 어디다 팔고 다니는 거야? 그거 건드리지 않은 게 확실해?”

유월영은 멍하니 그를 바라만 볼 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이런 연재준은 그녀에게 너무도 낯설었다.

그녀는 그가 직접 지목한 수석 비서였다. 회사에서든 밖에서든 그녀는 한 번도 실수를 저지른 적 없었다. 그런데 왜 새로 만난 여자의 한마디만 믿고 그녀가 범인이라고 의심하는 걸까?

상대가 백유진이라서?

한참이 지난 뒤, 그녀는 또박또박 힘을 주어 말했다.

“만약 제가 끈을 건드려서 일어난 사고라면 인정했을 거예요. 저는….”

‘저는 책임을 회피하려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하지만 결국 중요한 말은 하지 못했다.

연재준이 그녀의 말을 잘랐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왜 지금은 인정을 안 하는 거지? 유진이가 그걸 건드리는 걸 봤다잖아. 어린애가 이런 일로 유 비서를 모함한다고 생각해?”

유월영은 황당한 이론에 웃음이 나왔다.

분명 자신을 모함한 사람은 따로 있었지만 지금은 연재준이 더 미웠다.

‘대표님에게 3년은 어떤 의미였나요? 제가 이 정도로 보잘것없는 존재였나요?’

관련 챕터

최신 챕터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