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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퇴근할 때가 되어 유월영은 연재준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사모님께서 점심에 연락이 오셨어요. 저녁에 본가로 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러고 보면 본가에 안 간지 벌써 6개월도 더 되지 않았나요?”

연재준이 짜증스럽게 미간을 찌푸렸다.

“평소에도 우리 가족들이랑 자주 연락해?”

“아니요. 매번 사모님께서 먼저 연락을 주시면 받았어요.”

유월영의 대답에 연재준은 시간을 확인하더니 차키를 그녀에게 던지며 말했다.

“운전은 유 비서가 해. 운전기사는 유진이 집까지 데려다줘야 하니까.”

유월영은 조용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에게 절실히 묻고 싶은 말이 있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답이 어떨지 대충 알고 있었고 그 답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유재준의 본가.

윤미숙은 부지런히 유월영의 접시에 맛있는 반찬을 담아주었다.

“왜 이렇게 말랐어? 안색도 이제 보니 안 좋고. 혹시 어디 아파?”

연재준은 집에 온 뒤로 시종일관 싸늘한 표정을 유지했다. 들어올 때 유 회장에게 인사를 건넨 것 말고는 그는 여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여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유월영이 웃으며 말했다.

“아프기는요. 새로 산 립스틱을 발랐는데 색상이 제 피부색과 안 어울리나 봐요. 돌아가서 버려야겠어요.”

해운 그룹 비서실의 에이스, 못하는 게 없고 뛰어난 화술까지 겸비하여 모두의 사랑을 받는 존재. 그녀는 그의 부모님에게도 아주 많이 사랑 받고 있었다.

연재준은 갑자기 오전에 백유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다 유월영을 좋아한다는 말. 동료들은 물론이고 고객사 직원들, 심지어 나이 드신 어르신들까지 그녀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녀는 그에게 온 뒤로 그의 일과 생활 모든 것에 개입했다. 그리고 일이면 일, 인간관계 모든 걸 훌륭하게 처리했다. 그의 부모님은 물론이고 친구들까지 둘이 언제 결혼하냐고 재촉할 정도였다.

연재준의 입꼬리가 비뚜름하게 올라갔다.

아니나 다를까, 윤미숙은 또 결혼 얘기를 꺼냈다.

유월영은 여기 오기 전까지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그럼에도 대놓고 물어보니 당황해서 연재준의 눈치만 살폈다.

연재준은 찻잔을 입가로 가져가며 싸늘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우린 그런 사이 아니에요.”

조용히 스테이크를 칼질하고 있던 유월영은 그 말을 듣고 당황해서 쥐고 있던 나이프를 테이블에 떨구었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심장이 멎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유 회장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월영이랑 결혼 안 하면 누구랑 하려고? 비서실에 새로 들인 그 어린애랑 할 거야? 네가 회사에서 무슨 짓거리를 하고 다니는지 내가 모를 줄 알았어!”

“회장님….”

유월영은 갑작스럽게 식어버린 분위기에 다급히 유 회장을 말렸다. 예전에도 그들 부자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그녀가 중재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연재준은 여전히 싸늘한 표정을 유지한 채 차갑게 말했다.

“제 일에 너무 과도하게 간섭하려 하시네요. 솔직히 아버지도 젊었을 때 사고 많이 치고 다녔잖아요. 안 그래요? 유 회장 사모님?”

윤미숙의 얼굴이 파랗게 질리고 유 회장은 테이블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자식이!”

연재준은 티슈로 입가를 닦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 먹었으니 이만 가볼게요.”

유 회장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윤미숙은 다급히 따뜻한 물을 남편에게 건넸다.

“그만 화 풀어요. 혈압도 높은데 갑자기 화를 내시면 어떡해요.”

유월영도 옆에서 거들었다.

“오늘 고객사 미팅에서 좀 불쾌한 일이 있어서 기분이 나쁘신가 봐요.”

유 회장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마사지하며 말했다.

“저 녀석 성격을 내가 몰라? 굳이 감싸줄 필요 없어.”

윤미숙이 말했다.

“재준이도 이제 성인이고 어엿한 회사 대표인데 아직도 어린애 혼내는 말투를 쓰니까 누구라도 기분 나빴을 거예요. 당신도 그만해요.”

말을 마친 그녀는 유월영에게 고개를 돌렸다.

“월영이 네가 고생이 많아. 어서 재준이 따라가 봐. 마당에 있는 차 아무거나 끌고 가도 돼.”

사실 유월영은 쫓아가고 싶지 않았다.

아이를 잃은 뒤로 매번 연재준만 만나면 아팠던 그날이 떠올라서 숨이 막혀왔다. 예전에는 그가 아무리 매몰차게 굴어도 그날 밤 자신에게 우산을 씌워주던 그 모습을 떠올리면 괜찮아졌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그녀는 결국 연재준 부모님의 부탁에 등 떠밀리듯 차키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얼마 가지 않아 길목에 세워진 연재준의 차가 보였다. 그는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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