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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유월영은 차를 세운 뒤 조용히 그에게로 다가갔다.

“대표님.”

길이 어두컴컴해서 남자의 표정을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 그는 그녀가 다가오는 것을 들었음에도 고개를 돌려 그녀를 봐주지 않았다.

유월영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멀지 않은 곳에 24시간 슈퍼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슈퍼에서 김밥 한 줄을 구매한 뒤, 레인지에 가열해서 연재준에게로 가져왔다.

“저녁에 얼마 드시지도 않았잖아요. 자꾸 그러시면 속 버려요.”

연재준은 말없이 그녀에게서 김밥을 받았다.

유월영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회장님 말씀이 과했다지만 좀 참지 그랬어요. 회장님 고혈압 도지면 위험한 거 아시잖아요. 작년에도 병원에 한 달이나 입원해 계셨는데….”

연재준은 갑자기 싸늘한 미소를 짓더니 김밥을 바닥에 던져버리고 그녀를 끌고 차로 들어갔다.

모든 동작이 그렇듯 당연하고 거침이 없었다. 유월영은 하늘이 빙 도는 느낌이 들더니 정신을 파는 사이 어느새 남자의 손이 허벅지 안쪽으로 들어왔다.

당황한 그녀가 그를 밀쳐내며 소리쳤다.

“대표님!”

비록 좁은 골목이라고는 하지만 길가는 행인들도 있었고 이런 장소에서는 싫었다.

“이러지 마세요, 대표님! 여기서는 싫어요.”

연재준은 그녀의 두 손을 꽉 잡아 머리 위로 고정한 채,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 비서 거절할 줄 아는 사람이었어? 모든 사람의 비위를 맞추느라 거절도 못하는 사람일 줄 알았는데.”

남자의 거친 숨결이 그녀의 민감한 귓가를 자극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꾹 참고 하지 않으려고 했던 말을 꺼냈다.

“모두가 저를 좋아하는 건 아닌데요. 대표님은 저 싫어하시잖아요. 대표님은 백유진 씨 같은 스타일을 좋아하니까.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백유진 씨랑은 진심이세요? 아니면 그냥 잠깐의 호기심인가요?”

그녀는 줄곧 연재준이 백유진에게 흥미를 가지는 정도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그가 했던 말은 그녀의 모든 예상을 뒤엎었다.

혼전 순결을 지켜주겠다던 말.

그날에야 그녀는 자신이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잘못된 판단으로 그녀는 좌천 당해 지방에 두 달이나 유배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얘기를 꺼내면서 드는 생각은 오늘을 기점으로 아마 자신과 연재준의 사이는 완전히 끝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냥 모르는 척 지낼 수도 있었다.

3년 전 그에게 구원을 받았던 날부터 그녀는 되돌릴 수 없는 사랑을 시작했다. 그녀는 이대로 계속 그의 신변에 남아 있을 수만 있다면 자존심 같은 건 바닥에 버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그날 마침 그가 그 자리에 나타나 주지 않았더라면 그녀의 인생은 지금보다 더 최악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사람은 결국 이기적인 동물이었다.

그에 대한 사랑을 인정한 순간부터 더 많은 걸 바라고 있었다.

그렇게 인내심으로 버텨온 3년.

결국 그녀는 자신은 그토록 바랐으나 가질 수 없던 관심과 애정을 다른 여자에게 주는 그의 모습을 보며 결국 하지 말아야 할 질문을 하고 말았다.

정말 결혼이 하고 싶을 정도로 백유진을 사랑하는 걸까?

연재준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인이 아닌 침묵을 택했다는 건 이미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유월영의 입가에 처연한 미소가 걸렸다.

“백유진 씨와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으면서 저한테 이러는 건 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배신이 아닌가요?”

“어차피 쓰고 버릴 도구 같은 건데 배신이라고 할 것까지야 없지 않나.”

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유월영은 손을 들어 그의 귀뺨을 때렸다.

힘주어 때린 건 아니지만 유월영 자신조차 자신이 이런 행동을 할 줄은 몰랐다.

연재준의 두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인간 취급도 하지 않았던 여자에게 한방 먹었다는 배신감 때문인지 그의 표정은 험하게 일그러졌다.

유월영은 온몸에서 떨림이 느껴졌지만 후회는 되지 않았다.

화가 나면 몸이 떨린다는 게 이런 걸 얘기하는 거였구나.

그녀의 눈가에 촉촉하게 이슬이 맺혔다.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연재준은 참을 수 없는 짜증이 치밀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내려.”

유월영은 덤덤한 표정으로 옷매무시를 정리하고 차에서 내렸다. 문을 제대로 닫지도 않았는데 연재준은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으며 출발해 버렸다.

그녀는 멀어지는 차량을 바라보며 깊은 피로감이 몰려왔다.

어딘가에서 보이지 않는 힘이 그녀를 그의 곁에서 밀어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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