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시에서 가장 유명한 유흥 장소, 서덕궁. 룸 안은 어둑어둑하고, 술과 낭만이 가득하며 야릇한 옷차림의 여자가 병풍 뒤에서 은밀한 춤을 추며 밤의 열기를 고조시켰다.하지만 윤영훈은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소파에 나른하게 기대고 있었다.발밑 카펫에는 젊고 아름다운 여자가 앉아 있으며, 그의 무릎에 엎드려 가끔 술을 따르고 과일을 입에 넣어주었다.겉보기에는 친밀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 이상의 행위는 없었다. 그는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옆에 던졌다. 여자는 곧바로 그에게 포도를 먹여주며 다정하게 말했다. “윤 대표님~”“착하지.” 윤영훈은 입꼬리를 올리며 강아지 머리를 쓰다듬듯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바로 그때 오성민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물었다. “누구한테 전화했어?”“우리 연 대표님이지.” 윤영훈은 포도가 꽤 단 듯 입맛을 다셨다.“병원에 심어둔 사람이 하는 말이 연재준이 유 비서를 데리고 혈액 검사를 받으러 갔는데, 임신한 것 같대.”오성민은 임신이라는 두 글자를 듣자 표정이 어두워지며 소파에 앉았다. 다른 여자가 다가와 시중을 들려고 했지만, 그는 바로 밀어냈다. 윤영훈이 그를 힐끗 쳐다봤다. “유 비서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보다 더 기분이 나빠 보이네.” 오성민은 술 한 잔을 들고 조용히 한 모금 마셨다. “어떤 사람의 임신은 확실히 기뻐할 일이 아니야. 없애버릴 수만 있으면 좋겠어.”윤영훈은 웃으며 여자의 턱을 잡았다. “어이 여동생, 빨리 우리 오 변호사님한테 법을 어기지 않고도 태아를 없앨 방법을 좀 알려줘.”여자는 깔깔 웃으며 말했다. “사향이요~” 오성민은 여자를 바라보았다. 윤영훈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그게 뭐야?”“윤 대표님, 사극 드라마에서 못 봤어요? 후궁들이 누가 임신하는 걸 원치 않으면 사향으로 태아를 떨어뜨리잖아요."여자는 나풀거리며 일어나 윤영훈 옆에 앉아 그의 팔을 감싸안으며 자신의 풍만한 가슴을 그에게 문질러 왔다. 오늘 밤 그가 머물도록 하려는 심산이었다. “
오성민은 얼굴이 굳은 채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윤영훈이 접시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새우, 방금 나왔는데 꽤 신선해. 너도 먹어봐.”오성민은 소파에 놓인 외투를 집어 들고 무표정하게 말했다. “나중에 유월영이 임신인지 아닌지 나오면 나에게 알려줘. 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윤영훈은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핸드폰을 들어 아무렇게나 만지다 마침 오는 전화를 받았다. “말해.”전화 건너편 사람이 말했다. “윤 대표님, ICU에 누워 있는 사람의 데이터가 방금 한 번 큰 움직임이 있었습니다.”윤영훈이 즉시 눈을 가늘게 떴다. “깨어났어?”“아직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우연히 ICU를 지나가다가 본 건데요, 주치의는 아무 말이 없더라고요. 제 경험으로 볼 때, 그분의 의식이 깨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윤영훈은 유월영을 보호하면서도, 이영화가 가지고 있는 장부를 반드시 손에 넣어야 했다.“계속 지켜봐.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보고해.”“알겠습니다!”...해가 서쪽으로 넘어가고 어느덧 저녁 7시가 되었다.해운그룹은 퇴근 시간이 지났고, 건물 전체에 몇몇 창문에만 불이 켜져 있을 뿐 대부분은 어둠 속에 빠져있었다.유월영은 그렇게 누운 채 진짜로 잠들었고, 깨어났을 때 방은 깜깜하였다. 설명할 수 없는 쓸쓸한 감정이 그녀의 마음에서 솟구쳤다.그녀는 한숨을 내쉬고 침대에서 내려와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굴을 씻고 나서 휴게실을 나왔다.마침 하정은이 들어와 연재준에게 보고하고 있었다.“대표님, 병원에서 보낸 검사 결과입니다.”연재준은 보고서를 받아 마지막 장으로 넘겼다. 결과를 확인한 그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으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보고서의 내용을 짐작할 수 없게 했다. 유월영은 따뜻한 물을 한 잔 따라 마시며 그를 힐끗 보았다. 연재준이 물었다. “궁금해?”유월영은 물잔을 들고 말했다. “궁금하지 않아요. 내 몸은 제가 제일 잘 알아요. 임신이 아니라는 걸 확신해요. 검사 결과도 그렇게 나올 거예요.”연재준은 팔꿈치를 책
유월영은 TV를 보면서 그의 말을 들은척하지 않았다. 연재준도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곧바로 집을 나섰다.집을 나서자마자 그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그는 냉랭하게 하정은에게 물었다.“혹시 오늘 내가 월영을 회사에 데려간 일을 누가 아버지에게 말했어?”그렇지 않고서야 연민철이 이렇게 급하게 그를 집으로 부를 리가 없었다.하정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마도 큰 사모님인 것 같습니다.”밤이 되니 연씨 가문은 검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연재준의 자동차가 뜰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한 줄기 빛이 집을 비추었다.하인이 달려와 차 문을 열어주자 연재준이 차에서 내렸다.“왜 불을 안 켰어요?”하인이 대답했다.“사모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요즘 회장님께서 밤에 잠을 잘 못 주무셔서 너무 밝아서 그런 걸 수 있다고 하면서 불을 다 끄라고 하셨습니다."지금의 아버지는 더 이상 그를 만날 때마다 꾸짖거나 책상을 치면서 호통치던 연 회장이 아니었다.유월영이 고씨 집안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지 불과 반달 만에 연민철의 혈압은 급상승하고 매일 악몽을 꾸다 결국 거의 침대에 누워 지내게 되었다. 이제는 완전한 문장조차 말할 수 없게 되었다.연재준이 그의 침대 앞에 섰다.“아버지.”연민철이 중얼거렸다.“장부, 장부...”연재준이 말했다.“유현석 아내는 아마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거예요. 아무도 장부의 행방을 모릅니다. 그러니 이젠 누구도 장부를 꺼내 과거의 사건을 들추어낼 수 없을 거예요.”연민철은 얼굴이 굳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유, 유월영...”“월영은 장부를 본 적도 없고 과거의 일들을 들춰볼 생각도 없어요. 월영이는 내 아내이며 지금 내 아이를 임신하고 있어요. 그녀는 내 편에 서 있습니다.”연민철은 계속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못 믿겠어...”연재준이 담담하게 말했다.“월영이가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버지도 알고 있었잖아요? 그렇지 않았다면 왜 우리 둘을 그렇게 이어주려고 애쓰셨나요?”“믿지 못해...”연민철은 장부가 그렇게
팍—!찻잔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위층과 아래층의 하인들이 놀라 고개를 내밀었고 연재준이 윤미숙의 목을 조른 채 벽에 밀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달려왔다.“도련님, 도련님, 제발 그 손 놔주세요. 이러시면 안 돼요...”그들은 이 계모와 의붓아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 채, 그저 연재준의 얼굴에 날서린 표정을 보고 발을 동동 구르며 그를 말렸다.연재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한번 해 보세요.”윤미숙은 목을 졸린 채 숨을 쉴 수 없었지만,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그런 말이 있잖아.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고. 누구든 내 딸을 건드리면, 나도 똑같은 방법을 써서...갚아줄 것이야!”오랫동안 자비로운 어머니 연기를 해왔지만, 연 회장이 이제 막 위독해지자마자 그녀는 가면을 벗어 던졌다.연재준은 싸늘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다 처음으로 이 여자가 생각보다 깊은 계략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았다....동해안 저택.연재준이 떠난 후, 유월영도 TV에 집중할 수 없었다.그녀는 다리를 소파 위로 올리고 한 손으로 무릎을 껴안고 다른 손은 무의식적으로 배를 어루만졌다.검사 결과에서는 임신하지 않았다고 나왔지만, 그건 현시우가 혈액 샘플을 바꿔치기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 결과는 당연히 임신으로 나오지 않았다.하지만 그녀가 실제로 임신했는지는 아닌지 그녀조차 확신이 없었다.잠이 많아지고, 식욕이 늘고, 자주 헛구역질하는 등의 반응을 보면 임신한 것 같았다. 그리고 작년에 연재준과의 몇 번의 관계에서 그녀는 피임하지 않았다...아니, 그녀는 피임약을 먹었었다.그건 이승연이 준 약이었다. 그들은 그 당시 농담으로 피임약을 공유하는 자세가 너무 익숙하다고 했었다.오직 마지막 한 번, 바로 유현석이 그녀와 연재준의 결혼을 반대하다 감정이 격해져 그녀의 뺨을 때렸던 그날 밤이었다. 그날 밤, 유월영은 연재준과 함께 동해안으로 왔었다.그때 두 사람은 피임을 하지 않았고, 이승연이 사후 피임약을 주었지만, 연재준의 ‘
수술이 끝나 병실로 옮겨질 때까지도 유월영은 자신이 유산으로 아이를 잃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그녀를 병실로 데려간 간호사는 인적 사항을 등록하기 위해 그녀에게 물었다.“유월영 환자분, 가족들은 어디 계신가요?”유월영은 초점을 잃은 눈으로 천장만 올려다볼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간호사가 재차 물었다.“유월영 씨, 가족들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이때, 약품을 정리하던 다른 간호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나한테 줘. 그거 내가 입력할게. 환자가 구급차에 실려올 때 신분증이랑 카드 나한테 줬었어. 바로 등록하고 비용 결제하면 된다고. 아마 이 환자는….”유월영은 그제야 입술을 달싹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저는 가족이 없어요.”진한 소독약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이를 잃었다는 상실감이 점점 더 진실되게 다가왔다. 그녀는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다가 더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떨구었다.깊은 절망감이 찾아왔다.수술을 마친 유월영은 홀로 병원에서 사흘간 입원해 있었다.그 동안 그녀를 찾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나흘 째 되던 날, 드디어 연재준에게서 전화가 왔다.“유 비서, 무단 결근 3일이면 충분히 휴식하지 않았어? 지금 옷 입고 서덕궁으로 와.”남자의 목소리와 함께 시끄러운 배경 음악과 여자들의 웃음소리까지 같이 전해져 왔다. 유월영은 지금 입원 중이라고 말해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유 비서.”낮게 깔린 중저음 목소리가 재차 전해졌다.화가 많이 났다는 증거였다.유월영은 하려던 말을 도로 삼키고 그대로 병원을 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부랴부랴 서덕궁으로 향했다. 그녀는 가는 길에 차 안에서 화장을 했다.목적지에 도착하자 그녀는 대충 립스틱을 입술에 바르고 카운터로 직행했다.“해운그룹 연 대표님이 계신 방이 어디죠?”고개를 든 어린 남직원은 눈앞의 미모의 연인을 보고 수줍게 웃으며 다급히 길을 안내했다.“연 대표님은 1번 룸에 계십니다. 제가 안내할게
술자리가 끝나고 유월영은 고객사 직원들을 한 명씩 차에 태워 보냈다. 모든 일이 끝난 뒤, 그녀는 피곤한 얼굴로 길가 가로등에 등을 기댔다. 이미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오장육부가 뒤틀리듯이 아팠다.립스틱은 이미 지워진지 오래고 파리한 입술에는 핏기 한 점 없었다.그녀의 상태가 이상한 것을 눈치챈 연재준의 운전기사가 다급히 다가오며 그녀에게 말했다.“유 비서님, 먼저 차에 타실래요?”유월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힘겹게 뒷좌석에 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 문이 열리더니 밖에 연재준과 여자애가 서 있었다. 같이 타려고 했는데 유월영이 먼저 타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연재준이 그녀를 보고 인상을 확 찌푸렸다.여자는 다급히 달려가서 조수석 문을 열며 말했다.“대표님, 제가 앞에 탈게요.”연재준은 짜증스럽게 문을 쾅 닫고 차에 오르며 말했다.“유진이 먼저 데려다줘.”유월영은 고통스럽게 두 눈을 감았다. 온몸에 힘이 다 빠지고 속이 울렁거렸다. 유산하고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서 술을 마시니 죽을 것 같은 고통이 찾아왔다.차는 한 낡은 아파트 구역으로 들어섰다. 유월영이 잠깐 눈을 붙이고 있는데 연재준이 갑자기 그녀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골목이 어두워서 위험해. 유 비서가 유진이 집까지 좀 데려다줘.”백유진이 흑수정 같은 눈망울을 반짝이며 말했다.“괜찮아요, 대표님. 언니도 피곤할 텐데 여기서부터는 혼자 갈 수 있어요. 조금만 더 걸으면 도착해요. 혼자 올라갈게요.”차에서 내린 그녀는 뒷좌석 차창에 대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대표님은 월영 언니 바래다줘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 좋은 꿈 꿔요.”차갑기만 하던 연재준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언뜻 스치고 지나갔다.“그래, 좋은 꿈 꿔.”유월영은 차에 오르고 지금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운전기사는 유월영을 집에 데려다주는 대신, 연재준의 동해안 별장으로 차를 돌렸다. 그는 연재준의 가까운 심복 중 한 명으로써 눈빛 하나로도 연재준의 속마음을 알 수 있었다.집 안으로
그 말을 끝으로 그들은 함께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 소리가 남녀의 신음소리를 덮었다.연재준에 이끌려 욕조에 던져진 유월영은 갑자기 3년 전 그와의 첫만남이 떠올랐다.그날도 비가 오는 날이었다.그녀의 부모님은 작은 슈퍼를 운영했다. 부유하진 않지만 궁핍하지는 않았고 다섯 식구가 서로 이해하고 도우면서 오붓하게 살았다.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사기꾼의 꼬임에 들어 10억이라는 거액의 빚을 지게 되었다. 그들은 슈퍼와 집을 팔고 집안의 팔 수 있는 건 다 팔았지만 그래도 6억이나 부족했다.막다른 길에 다달았을 때, 사기군은 유월영을 데려다가 빚을 갚게 하겠다고 꼬드겼다.그리고 그녀의 부모님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그녀는 비 오는 밤에 살기 위해 집에서 도망쳤다. 뒤에는 오토바이 소리가 그녀를 쫓고 있었다. 맹수에게 쫓기는 이 가여운 먹잇감은 도망치는 길에 신발까지 잃어버리고 머리는 산발이 된 채로 어두운 대로를 달리고 또 달렸다.달리다 지친 그녀가 바닥에 주저앉자, 오토바이를 탄 폭주족들이 그녀를 에워쌌다. 그녀가 모든 게 끝이 났다고 절망하던 순간에 차량 한 대가 골목으로 들어섰다.차 문이 열리고 반짝이는 구두가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고개를 약간 들자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검은 우산을 들고 냉랭한 분위기를 풍기며 다가와서 그녀의 머리 위에 우산을 씌워주었다.그리고 조폭들에게 자기 사람이라고 당장 꺼지라고 말했다.처음 만났을 때 그는 꿈에서 나타난 구원자 같은 느낌이었다. 그의 모습은 그대로 그녀의 마음속에 깊게 각인되어 버릴래야 버릴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대략 30분이 지나 유월영은 젖은 채로 욕실을 빠져나왔다. 그녀는 주방으로 가서 흑설탕을 따뜻한 물에 풀어 마시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연재준은 아직 욕실에서 씻고 있었다.그녀는 유산한 사실을 그에게 알려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하지만 결국 비밀에 부치는 걸로 결론이 났다.3년 전 그녀를 위기에서 구해준 남자는 그의 곁에 남는 대가로 더 이상 귀찮은 일을
유월영이 물었다.“뭘 해명하라는 건가요?”“유진이 왜 해고했어?”유월영은 사무적인 말투로 대답했다.“한아의 계약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소수점을 잘못 찍어 단가가 크게 차이 나는 실수가 발생했습니다. 다행히 한아 쪽 관계자는 우리와 친분이 두터운 사이라 해프닝으로 넘어갔지만, 회사 이익에 큰 손해를 끼친 신입은 바로 퇴사 처리하는 게 우리 방침이잖아요. 책임을 안 물은 것만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그 말을 들은 백유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제가 원래 덜렁거리는 습관이 좀 있어요. 죄송합니다….”연재준은 그런 그녀에게 위안의 눈빛을 보내고는 다시 싸늘한 눈빛으로 유월영을 바라보며 말했다.“그 서류 가져와.”유월영은 가지고 온 서류를 그에게 건넸다.연재준은 맨 마지막 장을 확인하더니 서류를 도로 책상에 던지며 말했다.“날짜를 보니 유 비서가 무단결근 한 날짜에 벌어졌네. 유 비서가 무단결근만 안 했어도 이 계약서는 유 비서가 처리해야 할 서류였어. 신입인 백유진이 아니라.”유월영은 황당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그래서 제가 이걸 책임져야 한다는 말씀인가요?”“비서실 수석 비서로써 부하 직원이 실수를 저질렀을 때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는 건 유 비서도 잘 알 텐데?”연재준이 전달하고자 하는 뜻은 명백했다. 백유진에게 책임을 돌리지 말라는 것!유월영은 치미는 화를 꾹 참으며 또박또박 말했다.“유진 씨가 입사한 날에 저는 휴가를 내고 회사에 없었고요. 그리고 모르겠으면 다른 동료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그냥 방치해 둬도 되는 서류였어요. 혼자 의욕에 넘쳐 처리한다고 했다가 문제가 생겼으니 당연히 당사자가 책임을 져야죠. 해운 비서실은 원래 전문 학과를 나온 탑클래스만 들어올 수 있는 자리 아니었나요? 아니면 경험이 풍부하거나 전 회사에서 뛰어난 업적을 세웠으면 모를까, 예술을 전공한 학생이 들어올 자리는 아닌 것 같은데요.”연재준이 물었다.“내가 꼭 유진이를 비서실에 둬야겠다면?”유월영은 어금니를 꽉 악물었다.“비서실은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