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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심재경은 송연아를 만나러 오는 길에 우연히 강세헌의 차를 얻어 타게 되었다. 최지현이 다가온 것을 보고 그는 차 문을 열며 말했다.

“난 먼저 갈게.”

심재경이 떠난 후, 최지현은 그의 자리로 와서 앉았다. 강세헌이 사람을 잘못 봤다는 것을 눈치 챈 그녀는 속으로 약간 불안하기는 했지만 강세헌이 줄 수 있는 도움을 생각했을 때 도무지 그를 놓칠 수 없었다.

병원장은 송연아의 능력을 오래전부터 인정해 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군병원의 인턴 기회를 그녀에게 넘겨준 건 당연히 강세헌 덕분일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최선을 다해 강세헌을 구워삶아 보기로 했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그냥 날려 보낼 멍청이는 없을 것이다.

“저 생각 정리 끝났어요.”

최지현은 강세헌을 바라보며 말했다. 강세헌은 그녀가 이렇게 빨리 결정할 줄 모른 듯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답을 기다렸다.

“저는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강세헌이 결혼 얘기까지 꺼낸 걸 보면 어젯밤 큰일이 일어난 게 분명했다. 최지현이 가장 원하는 것이 결혼이기는 하지만, 그녀는 욕심쟁이로 보이지 않기 위해 약간의 밀당을 하기로 했다.

“그저 대표님이랑 평범한 친구가 되고 싶어요.”

강세헌은 입술을 깨물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차분한 말투로 물었다.

“확실해요?”

최지현은 머리를 끄덕였다. 어젯밤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기에 아직은 소극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알겠어요. 지현 씨의 선택을 존중하죠.”

...

병원 안.

송연아는 휴게실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따라 집으로 돌아가기 너무 싫었다. 왜냐하면 그곳은 강세헌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원에서 시간을 때울 수밖에 없었다. 이참에 공부를 더 할 수 있어서 나름 좋기도 했다.

똑똑.

누군가가 노크하고 휴게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다름 아닌 심재경이었다.

심재경은 책을 읽고 있는 송연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여기 숨어서 뭐 해?”

“안 숨었거든요.”

손연아는 책을 덮어 책상 위에 내려놓고는 몸을 일으켰다.

“선배는 휴게실에 무슨 일이에요?”

“당연히 너 찾으러 왔지. 도움을 받았으면 감사 인사를 해야 할 거 아니야. 가자, 내가 비싼 거 사줄게.”

“됐어요.”

“왜? 혹시... 무슨 안 좋은 일 있었어?”

심재경은 송연아의 울적한 표정을 발견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아니에요.”

“아니긴.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말해. 내가 도와줄게.”

“그냥...”

송연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 선배랑 같은 병원 못 갈 것 같아요.”

심재경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화난 말투로 말했다.

“병원장이 그래? 그럼 너 대신 누가 오는데? 아니다, 내가 직접 찾아가서 물어봐야겠어.”

송연아는 심재경의 팔을 잡으며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 군의관이 되는 게 꿈이라며? 군병원으로 못 오면 꿈은 어떻게 이루자고 그래?”

심재경은 답답하게 구는 송연아가 이해되지 않았다. 지금껏 군의관이 되기 위해 피 타는 노력을 해왔으니 말이다.

송연아는 머리를 숙였다. 그녀도 가능하다면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이 따라주지 않는 것을 어떡하겠는가. 게다가 그녀는 심재경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심재경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알겠어, 안 가면 되잖아.”

“그럼 우리 비싼 거 먹으러 가요.”

“다음에 먹자. 다음에 꼭 사줄게.”

심재경은 분명히 누군가가 뒤에서 수를 썼으리라 생각했다. 이토록 불공평한 대우에 송연아는 순순히 물러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는 절대 두고 볼 수 없었다.

“난 다른 할 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

심재경은 분노 섞인 발걸음으로 원장실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실력 좋은 의사로 평가받는 한편, 재벌 2세이기도 하기에 권세를 상대하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던 병원장은 갑자기 쳐들어온 심재경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통화를 끊었다.

“심 선생, 여기까지는 무슨 일이야?”

“군병원 인턴 송연아로 결정 났잖아요. 근데 왜 바뀐 거예요? 어디서 무슨 말을 들었길래 갑자기 바뀐 거냐고요?”

병원장은 난감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이번 일은 나도 어쩔 수 없었어. 강세헌 대표가 직접 최지현 선생을 잘 부탁한다고 하는 걸 무시할 수는 없잖아.”

강세헌의 이름을 들은 심재경의 얼굴은 보기 좋게 구겨졌다.

“혹시 불만이 있으면 강 대표한테 말해.”

어차피 강세헌과 심재경 둘 다 병원장의 위치에서는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는 책임을 전가했다.

심재경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상태에서 강세헌의 차가 세워져 있는 대문으로 향했다. 최지현은 마침 그의 차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그가 성큼성큼 걸어가자, 최지현은 손을 들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어.”

심재경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몰라 먼 곳을 바라보며 짧게 답했다. 최지현이 기분 좋게 떠나는 것을 보고 심재경은 화가 치밀었다. 하필이면 자신이 잘 아는 사람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 더욱 답답했다.

강세헌은 단 한 번도 여자에게 관심을 보인 적 없었다. 그런 그가 최지현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는 친구로서 당연히 일을 망칠 수 없었다. 어쩌면 이는 강세헌의 혼사가 걸린 문제이기도 했다.

“나 진짜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왜 하필 최지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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