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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그녀는 손을 움찔하더니 문을 열 용기가 사라져 몸을 돌려 화장실로 향했다.

누구와 결혼하든 똑같다니. 그녀를 선택한 것에 별다른 이유는 없었고 그 사람이 아닌 아무라도 괜찮았던 것이다.

그녀는 밖에서 10분 남짓 있다가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돌아갔다.

문을 열자 음식들이 모두 테이블에 올려져 있었다. 강한서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확인하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신미정이 그녀에게 앉으라고 손짓하고는 물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유현진이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죄송해요, 방금 속이 좀 더부룩해서요.”

신미정은 멈칫하며 그녀의 얼굴을 살폈고 확실히 안색이 창백해졌고 립스틱도 조금 벗겨진 모습에 물었다.

“괜찮아? 병원 갈까?”

“그럴 필요까진 없어요. 이젠 괜찮아요, 어머니.”

신미정이 말했다.

“그래도 병원에 가 봐. 임신이면 어떡해?”

방금까지 신미정이 왜 그녀의 건강을 걱정하는지 의아했던 그녀는 이제야 신미정의 저의를 알았다. 그녀는 유현진이 임신했을 가능성을 생각하여 행여나 자신의 핏줄이 잘못되지는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다.

유현진이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알겠어요, 어머니.”

신미정은 더는 캐묻지 않았다. 그들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지만 유현진은 마치 외부인처럼 대화에 끼지 못했다.

그릇에 갈비가 놓이고 유현진이 고개를 돌려 강한서를 보았다. 강한서는 그녀를 보지도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알아서 먹어.”

아니, 그녀는 외부인이 아니다. 유현진은 가족 모임에 참석한 연기자로서 강한서와 각자 알아서 배역에 맞게 연기하면 되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녀는 왠지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연기가 필요해? 좋아, 맞춰줄게.’

이내 그녀는 아주 매운 닭고기 요리를 강한서의 입가에 가져가며 말했다.

“여보, 이거 먹어봐.”

강한서는 움찔하더니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유현진은 싱긋 웃으며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

매운 음식을 싫어하는 강한서에게 그녀는 일부러 매운 닭고기 요리를 준 것이다.

‘어떻게 연기하나 보자고.’

그가 만약 거절한다도 해서 연기가 끝나도 그녀의 잘못은 아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을 때 강한서가 입을 벌려 그녀의 젓가락을 입안에 넣고 닭고기를 받아먹으며 유현진의 놀란 눈빛을 보며 말했다.

“맛 괜찮네.”

유현진은 어이가 없었다.

‘개자식! 매워 죽으라지!’

신미정은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시선을 떨구고 생각에 잠겼다.

식사를 하고 있던 도중 강한서의 폰이 울렸고 그가 나가서 전화를 받는 사이 신미정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유현진을 향해 물었다.

“현진아, 위는 언제부터 안 좋았어? 속이 메스껍지는 않아?”

유현진은 변명했다.

“어머니, 저 임신한 거 아니에요. 생리가 지난주에 끝났어요.”

신미정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또 물었다.

“내가 저번에 준 약은 제때에 먹었어?”

약이라는 소리에 유현진은 속이 안 좋았다.

신미정은 그녀의 임신 사실에 아주 집요했는데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이유가 꼭 그녀에게 있는 것처럼 몇 년간 그녀에게 임신에 도움이 된다는 약을 먹였다.

강한서는 성욕이 없는 것인지 1년에 그녀와 잠자리를 하는 횟수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들지도 않는데 자웅동체가 아닌 그녀가 어떻게 스스로 임신을 할 수 있을까.

“먹었어요.”

신미정이 믿지 않는다는 생각에 그녀는 말을 보탰다.

“장씨 아주머니가 봤어요.”

강민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엄마, 내가 뭐랬어요? 얼마나 효과가 좋은 약이든 둘이 잠자리를 해야 애가 생기든지 하죠.”

신미정이 그녀를 흘기더니 나무랐다.

“네가 상관할 일이 아냐.”

강민서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신미정이 다시 물었다.

“한서랑 혹시 피임하니?”

유현진은 말문이 막혔다.

‘이렇게 직설적으로 묻다니. 부끄럽지도 않나?’

그녀는 심호흡을 하더니 솔직하게 답했다.

“아뇨.”

피임은 정말 하지 않았다. 강한서는 그녀의 배란일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매번 할 때면 배란일을 반드시 피해서 하기 때문에 피임을 따로 하지 않았고 그녀가 임신할 일도 없었다.

신미정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

유현진이 시름을 놓으려고 할 때 신미정은 강민서더러 박스 하나를 가져오라고 했고 안에는 검은 액체가 담긴 병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신미정은 하나를 따서 유현진에게 건넸고 쓰디쓴 한약 냄새가 그녀의 코를 찔렀다.

임신에 좋다는 약이 주는 공포감에 유현진은 속이 부대껴 토하고 싶었다.

“아는 친구가 홍콩에 유능한 의사 한 명을 추천했어. 걔 딸도 너처럼 임신이 쉽지 않았는데 여기서 약을 해서 먹고는 반년 안에 쌍둥이를 낳았지 뭐야. 이번에 민서가 홍콩에 다녀오면서 내가 그 의사에게 가보라고 했어. 너의 상황을 얘기했더니 이 약을 처방했지 뭐니. 효과는 전에 먹던 약보다 좋을 거야. 매일 시간 맞춰서 먹어. 다 먹으면 더 줄게.”

유현진은 말문이 막혔다.

“어머니, 약이 문제가 아니에요. 1년이나 넘게 마셨잖아요. 저번에 건강검진받을 때 의사는 제가 아주 건강하다고 했어요.”

이 약을 아들에게 먹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강민서가 비아냥거렸다.

“건강한데 왜 임신이 안 돼? 우리 오빠 정도면 다른 사람이라면 애 둘이나 낳았겠어. 너랑 왜 결혼했는지 정말 모르겠다니까. 집에서 놀기만 하는 주제에 애도 못 낳는걸.”

유현진은 어두워진 표정으로 그녀를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강민서는 도발적인 눈빛으로 그녀의 시선을 맞받았다.

그때 유현진이 의외의 발언을 했다.

“애를 지우는 것보다 가지지 못하는 게 훨씬 낫지.”

강민서가 안색이 변하며 물었다.

“무슨 소리야?”

“아니야.”

유현진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저번에 병원에 갔을 때 젊은 여자들이 유산을 그렇게 많이 하더라고.”

유현진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강민서의 눈빛에는 놀라움과 두려움, 그리고 의심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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