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로 향하는 차 안에는 어색한 공기로 매워쌌다. 차가 번화가를 벗어나 한 호화 주택가로 들어선 다음에야 그는 긴 한숨을 내리며 차에서 내렸다.그는 뒤에 내린 신연지에게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내가 가슴 크고 백치미 있는 여자를 좋아한다고 했어?”신연지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까는 그냥 그의 이미지에 생채기라도 낼 생각에 홧김에 한 말이었는데 그걸 기억하고 있었을 줄이야!고개를 돌리자 박태준의 시선이 고의인지 아닌지 그녀의 가슴께로 향해 있는 것이 보였다.그의 눈빛에서 잔잔한 비웃음이 느껴졌다.“남자들 좋아하는 여자 이상형은 거의 다 비슷하지 않아?”박태준이 인상을 쓰며 대꾸했다.“난 아니거든?”신연지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길거리에 나서면 모두의 시선을 받을 만큼 화려한 이목구비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박태준이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은 담담하고 아무런 온도도 느껴지지 않았다.“당신 취향은 내 알 바 아니지만 난 활기차고 밤일 잘하는 남자를 좋아해. 그게 이혼하려는 이유이기도 하고.”박태준의 얼굴이 순식간에 싸하게 굳었다.옆에서 대기하던 강태산의 이마에서도 식은땀이 흘렀다.“도련님, 작은 사모님, 이제 들어가시죠. 바람이 찹니다.”신연지는 곧장 현관으로 향했다. 강혜정이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고 나오더니 그녀의 손을 잡고 안으로 이끌었다.“내가 아줌마 시켜서 삼계탕 끓였어. 안에 피부 미용에 좋은 약재도 넣었으니까 이따가 먹어봐.”그녀는 뒤따라오는 아들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거실로 들어온 강혜정이 작은 소리로 며느리에게 물었다.“태준이 녀석 요즘은 얌전하지?”어제 뉴스를 보고 혹시나 신연지가 상처받았을까 봐 본가로 부른 게 분명했다! “어머님, 저희는….”그녀가 이혼 얘기를 조심스럽게 꺼내려는데 강혜정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태준이 녀석 너 속상하게 하면 나한테 말해. 내가 대신 혼내줄 테니까! 녀석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지만 말고 이따가 리스트 따로 적어줄 테니까 그것만 끼니 때 챙겨줘
신연지는 말투가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어머님의 성의를 무시하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어 싸늘하게 대꾸했다.“당연히 마셔야지.”박태준은 말없이 그릇을 들고 욱여넣다시피 해서 한 그릇을 비우더니 탕 하고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전등을 끄고 침대로 올라왔다.신연지는 그를 등지고 누워 눈을 감았다.가끔은 이렇게 둘이 같은 침대에 누워 잠든 적이 있었지만 항상 멀리 떨어져서 잠만 잤다.그런데 오늘은 뭔가 달랐다.잘 자고 있는데 갑자기 박태준이 다가오더니 그녀를 품에 껴안았다. 그의 딱딱한 근육이 등에서 느껴졌다.남자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거친 숨결을 토해내고 있었다.신연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허리 아래에서 딱딱한 느낌이 느껴졌다.“박태준!”그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신혼 때는 이런 상황을 기대했던 적도 있지만 3년 동안 그의 냉대와 침묵에 지쳐 언젠가부터 포기하고 있었다. 이제 곧 이혼할 사이인데 그와 이런 식으로 엮이는 건 달갑지 않았다.실수는 한번이면 족했다.“뭐가 잘못됐어?”남자의 살짝 가라앉은 목소리가 귓가에서 들려왔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당당했다.박태준은 순식간에 그녀의 위로 올라타더니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신연지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그를 밀쳐냈다.“싫어.”“내가 남자 구실을 안 해서 질렸다며? 아까 그 약을 먹으라고 강요할 때 이런 거 바라고 한 거 아니었어? 이제 와서 싫다는 건 너무 속보이지 않아? 나랑 밀당이라도 하고 싶어?”그의 말투에서 진한 비웃음이 느껴졌다.신연지는 그제야 약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난 몰랐어.”“나한테 그걸 믿으라는 거야? 이런 적이 처음 있은 것도 아니고.”“그건….”매번 그 이야기만 나오면 신연지는 깊음 무력감을 느꼈다. 이제 그만 잊으려고 할 때마다 그는 그날 밤 실수를 상기시켜 주었다.“마지막으로 말하지만 그때는….”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태준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덮쳐왔다.당황한 신
고의성이 다분한 발언에 박태준의 표정이 순식간에 똥 씹은 것처럼 일그러졌다.하지만 수화기 너머에서는 매니저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대표님, 우리 예은이 어쩌면 발레를 그만둬야 할지도 몰라요. 재활이 힘들다고 하네요. 애초에 무리해서 해외로 나간 것도 대표님의 옆자리에 어울리는 신분을 갖추기 위해서였는데… 옆에서 지켜보는 게 안타까울 정도였어요. 인척도 없는 해외에서 혼자 얼마나 고생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어 버렸으니….”박태준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침대를 내려갔다.“지금 그쪽으로 갈게. 예은이 잘 지키고 있어.”신연지는 떠나는 그를 잡지 않았다. 어차피 잡아서 들을 사람도 아니었다.처음부터 소유권을 주장할 생각은 없었다. 단지 소심한 복수라고 할까?박태준은 옷을 갈아입고 외출 준비를 하면서도 아내인 신연지에게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모두가 잠든 밤, 아래층으로 내려가 현관문을 여는 순간, 거실 전등이 켜졌다.주방 입구에서 강혜정이 싸늘한 표정을 하고 아들에게 물었다.“이 시간에 어딜 가는 거야?”박태준은 인상을 쓰며 그녀에게 물었다.“이 시간에 안 주무시고 뭐 해요?”“이 밤중에 연지 혼자 버려두고 어딜 가냐고 물었다!”박태준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못 마땅한 말투로 대답했다.“힘 조절을 잘못해서 그 사람 좀 다쳤어요. 연고 사러 나가는 길이에요.”강혜정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피어올랐다.“20대 청소년도 아니고 좀 살살 하지 그랬어? 빨리 다녀와. 아니다, 연지랑 같이 가. 염증 나면 곤란하니까 이참에 병원에 한번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박태준은 황당한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결국 그는 강혜정의 고집을 못이기고 위층에 있는 신연지에게 전화를 걸어 옷 갈아입고 내려오라고 명령했다.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신연지는 다급히 옷을 입고 내려왔다.거실에서 박태준과 시어머니가 대치하고 있었다.남자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 아까 긁혔잖아. 같이 약국에 좀 다녀오자.”신연지는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쏘아보았
“내려!”어차피 시내로 들어왔기에 택시를 잡기엔 문제가 없어 보였다. 어차피 신연지도 그를 따라 병원까지 가서 전예은의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그녀는 한치 주저도 없이 고개를 빳빳하게 들며 당당하게 차에서 내렸다.그녀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차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신연지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차를 향해 소리쳤다.“그렇게 보러 가고 싶었는데 어떻게 여태까지 참았대?”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신연지가 길에서 택시를 기다리는데 검은색 벤틀리가 그녀의 앞에 멈추어 섰다.차에서 내린 강태산이 공손하게 말했다.“도련님께서 보내서 왔습니다. 작은 사모님, 이만 집으로 가시죠.”신연지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강태산을 노려보았다.‘그러니까 자긴 애인 만나러 가고 난 무조건 집에 돌아가라는 거잖아?’기분이 나쁘지만 걸어서 돌아갈 수는 없기에 그녀는 순순히 강태산을 따라 차에 올랐다. 돌아가는 길, 그녀는 이혼 서류를 언론에 공개하면 박태준을 엿 먹일 수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하지만 그렇게 되면 잃는 게 더 많았다.어차피 3개월밖에 남지 않은 시간, 더 참아보기로 했다.어차피 전예은 성격에 박태준을 내버려둘 것 같지도 않았다.다음 날, 신연지는 간만에 늦잠을 잤다.휴대폰을 보니 진유라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허 원장님이랑 내일 만나기로 했어. 난 고객 미팅이 있어서 같이 못 갈 것 같아.]진유라는 대학을 졸업하고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골동품 가게를 차렸다. 신연지도 종종 가서 도와주고는 했다.신연지는 알겠다고 답장을 보낸 뒤, 아침을 먹고 외출했다.신당동에서 나가 살려면 출퇴근하기 편리한 거처를 알아보기로 했다.그녀는 곧장 부동산으로 가서 방 두 개짜리 집을 계약했다. 작업실과 거리도 가깝고 가구가 많지 않아 방 하나를 작업실로 쓰기에도 편리했다.아파트도 외부인 출입금지라 보안도 상당히 괜찮았다.게약을 마친 뒤, 신연지는 백화점으로 향했다. 곧 진유라의 생일이 돌아오는데 괜찮은 핸드백으로
신연지는 당연히 순순히 박태준이 올 때까지 기다려줄 마음이 없었다. 그런데 문을 나서자마자 이쪽으로 다가오는 남자를 발견했다.박태준은 검은색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 입고 싸늘한 차도남 이미지를 풀풀 풍기며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잘생긴 외모에 엄청난 재력까지 겸비한 성공한 기업인.솔직히 저 재수 없는 성격만 제외하면 완벽한 남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그의 옆에는 진영웅이 뒤따르고 있었다.신연지가 멍 때리는 사이, 그녀의 앞으로 다가온 박태준이 불쾌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강 기사한테 들었는데 어제 집에 안 들어갔다면서?”고작 이것 때문에 기다리라고 한 건가?“기사 아저씨가 내 말은 안 전했나봐? 어제만 안 들어가는 게 아니라 앞으로도 그 집에는 갈 일 없어.”신연지가 그를 지나쳐 밖으로 나가려는데 진영웅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신 비서, 대표님은 신 비서가 여기 있는 줄 알고 달려온 거예요.”그래서 어쩌라고?그 정성에 감격의 눈물이라도 흘리라는 건가?진영웅은 박태준 주변 인물 중에 두 사람의 결혼사실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신연지를 사모님이 아닌 신 비서로 호칭했다.박태준 옆에서 3년 하녀 생활을 하는 동안 박태준은 물론이고 그의 주변 인물들마저 그녀를 재경의 안주인이 아닌 하녀 취급하고 있었다.신연지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진영웅을 바라보며 말했다.“진 비서, 당신 같은 사람을 고대에는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진 태감!“신연지, 적당히 해.”박태준이 경고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적당한 다툼은 부부 생활의 재미라고 넘어가줄 수 있지만 과하면 보기 안 좋아. 집에 옷이랑 신발 모두 그대로 있던데 나한테 삐져서 달래달라고 나간 거잖아? 진 비서, 괜찮은 레스토랑으로 예약해 줘.”그는 신연지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저녁에 같이 외식이나 하자. 며칠 뒤에 보석 전시회가 있는데 그때 가서 당신 갖고 싶은 거 마음대로 골라.”이게 박태준이 싸운 뒤에 그녀를 달래는 방
신연지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좋아하는 사람을 3년이나 방치해? 그런 사랑이면 난 사양이야!”진유라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건 그러네. 하지만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널 집에 가두려는 의도가 뭘까? 어차피 3개월 지나면 이혼하고 그 집에서 나오게 될 텐데 굳이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을까?”신연지도 그 점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깊게 파고들지 않기로 했다.그날 저녁 그들은 밖에서 샤부샤부를 먹었다.신연지는 가장 매운 소스를 주문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고기를 섭취했다.그날 밤, 남자에게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 그녀는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그녀는 캐리어를 들고 어제 계약한 새 집으로 향했다.간단히 짐을 정리한 뒤, 그녀는 새로 취직한 곳으로 향했다.경원 작업실.허 원장은 이곳 담당자였다. 60세가 넘은 노인은 신연지를 보자마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진유라 씨가 얘기하던 복원사 실버가 자네였어?”신연지는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맞아요.”최근 몇 년 사이, 신연지가 작업한 작업물은 그리 많지 않지만 매번 극악 난이도의 작업물만 작업했기에 업계에서 꽤 유명해져 있었다.사람들 앞에 나서고 싶지 않았기에 실버라는 가명을 썼다.허 원장은 직전에 그녀의 작품만 보고 대단한 실력자라고 평가했다. 몇몇 작품은 심지어 업계의 원로들마저 자신 없어 하던 작업이었는데 실버라는 신인 복원사가 해냈다는 소리를 듣고 높은 평가를 주었다.그래서 허 원장은 실버가 자신과 나이가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젊은 처자였을 줄이야!“자네가 복원한 작품을 봤어. 상당한 실력을 가졌더군!”신연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과찬이십니다. 아직 배울 것이 많아요.”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허 원장은 그녀를 이끌고 자리로 갔다.“이곳이 자네가 일할 곳이야!”그는 직원 한 명을 자리로 불렀다.“경수 씨! 가서 작업해야 할 골동품들 좀 가져와 봐.”골동품 복원사로서 그 골동품이 존재했던
손님이 꽉 들어찬 고깃집에는 진한 연기가 들어찼다.긴 웨이브 진 머리를 간단히 틀어올리고 하얀 목선을 드러낸 신연지의 모습은 청순하면서도 여성미가 넘쳤다. 그녀는 메뉴판을 보며 옆에 있는 남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그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직원을 호출했다.고연우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박태준에게 말했다.“네 마누라 너 없어도 잘 지내는 것 같은데?”박태준은 말없이 룸을 나섰다.맥주가 올라오자 이경수는 벌컥벌컥 한캔을 들이켜고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신연지에게 말했다.“연지 씨가 정말 실버에요? 거의 구데기가 된 고려 청자기를 복원해 낸 그 실버?”신연지는 어색한 웃음만 짓고 있었다.이 질문은 고깃집에 오기 전부터 열 번은 대답한 질문이었다.허 원장이 이경수의 옆구리를 치며 말했다.“내일도 출근해야 하는데 적당히 마셔. 연지 씨, 이 녀석은 신경 쓸 거 없어. 편하게 먹다 가면 돼.”신연지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고기 나왔습니다!”직원이 큰 소리로 외치며 불판과 함께 메뉴를 테이블에 올렸다.그때, 신연지의 휴대폰이 울렸다.그녀는 수저를 놓고 핸드백에서 휴대폰을 꺼냈다.발신자를 확인한 그녀는 움찔하며 잠시 고민하다가 휴대폰을 무음으로 해두고 테이블에 올려놓았다.전화는 잠시 울리다가 끊었다.박태준은 매번 이런 식이었다. 조금이라도 전화를 늦게 받으면 끊어버리고는 했다.휴대폰 화면에 문자 알림이 떴다.화면을 열어 확인해 보니 박태준에게서 온 문자였다.[나와.]신연지는 인상을 팍 쓰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맞은편 고급 레스토랑 앞에 세워진 검은색 벤틀리를 발견했다.한정판 차량이었기에 한눈에 박태준의 차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신연지는 무시하기로 하고 수저를 들었다.이경수는 그녀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있자 분위기가 어색해서 그러는 줄 알고 큰 고기를 한점 집어 그녀의 접시에 놓아주었다.“긴장할 거 없어요. 편하게 생각해요. 우리 직원들 다 성격이 좋은 사람들이에요.
차 안에 삭막한 정적이 감돌았다.박태준이 말했다.“그건 당신이 멍청하고 현실 감각이 없어서 그딴 생각이나 하는 거야.”“정말이지….”신연지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인간도 아닌 거랑 무슨 대화를 한다고.”말을 마친 신연지는 문을 열려고 손을 뻗었다. 박태준이 음침한 표정을 하고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바깥에서 서성이던 이경수는 안에서 반응이 없자 다급한 목소리로 신연지를 불렀다.“연지 씨, 괜찮아요?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에요?”“하, 눈물 나는 관심이군.”남자는 싸늘한 표정으로 신연지를 노려보며 말했다.“아직 이혼도 하기 전에 벌써 바람을 피우는 거야? 그런데 남자 보는 안목은 여전히 형편없군.”신연지는 더 이상 설명도 하기 귀찮아졌다.“그래. 남자 보는 안목이 형편없으니까 당신이랑 결혼했지. 그리고 이경수 씨랑은 그냥… 친구야. 당신이 떳떳하지 못하니까 다른 사람도 다 그렇다고 생각하나 본데, 그런 거 아니거든?”그를 약 올리는 건 상관없지만 그렇다고 무고한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줄 수는 없었다.대체 뭐가 남자의 신경을 건드린 건지, 박태준의 눈에서 불이 뿜어져 나올 것 같았다.“당신 애인은 당신이 유부녀라는 거 알아? 우리가 차에서 뭘 하고 있는지 목격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이 인간은 대체 내 말을 어디로 들은 거야?’신연지는 짜증이 치밀었지만 누구 한 명 죽일 것 같은 남자의 눈빛을 보자 가슴이 철렁했다.박태준은 행동으로 자신이 한 말이 장난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했다.그는 거칠게 그녀의 몸을 더듬으며 입술을 부딪혔다.신연지가 밀어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그는 버튼을 눌러 의자를 뒤로 젖힌 뒤, 그녀의 위로 올라탔다.박태준이 이렇듯 통제를 잃은 모습을 보인 건 처음이었다. 그녀는 몸을 비틀며 소리쳤다.“이거 놔!”그 순간, 그녀의 움직임과 함께 차체가 흔들렸다.창문을 노크하던 소리가 사라졌다. 아마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눈치챈 것 같았다.신연지는 동작을 멈추고 분노한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