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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4화

유남준은 점심때 임시로 일이 있다고 밖에 나갔다.

소파에 앉아 도도한 말투로 말하는 고영란을 보며 박민정은 입가에 냉소를 지었다.

“남준 씨를 여기에 버린 것도 어머님 아니세요? 무슨 자격으로 제가 어떻게 돌봤는지를 비난하는 거예요? 굶어 죽거나 얼어 죽지 않게 한 것만으로도 이미 제가 할 부부의 의무는 다했다고 봐요.”

고영란은 말문이 턱 막혀 한참 말이 없다가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남준이 어디 있니? 지금 바로 걔 데리고 가야겠어.”

이미 유남우가 회사를 거의 장악했고 주식과 자산도 양도 절차를 마친 판국이라, 문중의 어른들과 손아랫사람들이 유남준이 힘들게 일군 기반을 빼앗아 갈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유남준을 집으로 데려갈 때가 된 것이다.

“전 안 돌아갈 거예요.”

문밖으로부터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남준은 언제 돌아왔는지, 검은 롱 코트를 입고 문 앞에 서 있었다. 흑요석처럼 까만 눈동자는 고요한 호숫물과도 같았다.

그렇게 훌륭했던 아들이 한순간에 장님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직도 받아들일 수 없는 고영란은 천천히 걸어들어오는 유남준을 보며 얼른 일어나 그를 부축하려 했지만, 유남준은 그녀의 손길을 강하게 거부했다.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허공에 멈춰있는 자신의 두 손을 보며 고영란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남준아, 너 아직도 엄마한테 화 난 거니? 엄마도 다 우리 집을 위해서야. 네 아빠는 아무 일에도 신경 안 쓰는데 나까지 손 놓고 있으면, 네가 지금껏 일군 회사는 남이 차지하게 되는 거야. 그럴 바엔 남우한테 맡기는 게 낫지 않겠니? 이제 네가 몸이 다 나으면 다시 너한테 돌려주라고 할게.”

유남준의 기억은 회복할 수 있지만 눈은 그럴 수 없다는 걸 고영란은 알고 있었다. 의사는 유남준이 교통사고 후 외상성 시신경 손상으로 평생을 어둠 속에서 살아야만 한다고 말했다.

유남준은 그녀의 말을 듣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남우한테 가서 말해요. 내가 가만 놔두지 않을 거니까 기다리고 있으라고.”

어릴 적의 기억을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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