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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우연한 구원

다행히 이성까지 잃은 것 같진 않았다.

“유미 누나, 어떻게 오셨어요?”

송유미는 대답 대신 독한 눈빛으로 이종원을 바라보며 물었다. “윤성아는?”

그가 고개를 저었다. 그도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분명 윤성아가 메시지를 보내서 이곳으로 찾아왔는데 그녀는 없었다. 그래서 잠시 기다리면 올 줄 알았는데 앉아있을수록 몸이 더워지며 벌레가 온몸을 무는 것 같았다.

지금 송유미를 바라보면서 오직 한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는 송유미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시선이 점차 흐릿해지더니 눈앞의 송유미가 윤성아로 보였다.

그는 대뜸 송유미를 안았다. “성아 누나, 저 누나 좋아해요!”

“성아 누나!”

그가 중얼거리며 송유미를 향해 입술을 내밀었고 송유미는 버둥거리며 차가운 눈빛으로 이종원을 향해 외쳤다.

“정신 차려! 똑바로 봐! 내가 어떻게 그 빌어먹을 윤성아로 보일 수 있어?”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점점 흐리멍덩해지는 눈빛을 하고 송유미를 끌어안던 이종원은 그녀의 옷을 벗기려 하며 바닥으로 깔아 눕혔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몸부림쳤지만 송유미는 건장한 남자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핸드폰을 찾아 강주환에게 전화를 걸었고 울먹이며 소리쳤다.

“구해줘! 주환아, 나 좀 구해줘...”

강주환이 미간을 구기며 싸늘하게 물었다. “어디야?”

송유미는 이미 눈물범벅이 되어있었다. “주환아, 나 드레스룸에 있어.”

곧이어 달려온 강주환은 옷이 찢긴 채 바닥에 깔린 송유미와 그녀의 위에서 뭔가 하려는 듯한 이종원을 보게 되었고 화가 치밀어 폭발하듯 발로 이종원을 차서 날려버렸다.

“퍽!”

옷장에 부딪혔다가 옷 속에 파묻힌 이종원은 몸을 일으키려 했고 일어나다가 옷에 발이 걸려 뒤로 넘어져 버렸다. 뒤통수를 크게 다친 그는 단번에 기절해버렸다.

강주환은 정장 외투를 벗어 처참한 몰골의 송유미를 감싸주며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주환아...”

송유미는 강주환의 품을 파고들며 엉엉 울었다. 그녀는 어깨가 부들부들 떨렸고 서럽고 무서워서 못 견딜 것 같았다. 그리고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도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 아, 윤성아야! 그녀가 일부러 내 드레스에 와인을 쏟았어. 그리고 나를 데리고 드레스를 바꿔주겠다며 이곳으로 데려왔어. 하지만 이곳의 옷이 나에게 맞지 않았어... 다시 옷을 골라 돌아왔을 땐... 이종원이 여기에 있었어! 난...”

송유미는 눈물이 차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

“주환아, 네가 제때에 와서 다행이야! 네가 오지 않았더라면 난 이종원에게 몹쓸 짓을 당했을 거야. 그럼 차라리 죽는 게 나아!”

강주환이 미간을 구겼다. 그는 윤성아에게 송유미를 해칠 것 같은 담력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윤성아가 꾸민 짓이야.”

송유미는 윤성아가 자신을 해치려 했다고 확신했다.

“나를 질투해서 그래. 내가 곧 너의 약혼녀가 될 테니까. 그래서 나를 괴롭히는 거야. 이렇게 하면 네가 나랑 결혼하지 않을 거니까... 주환아, 윤성아가 나에게 복수하려는 거야.”

“전에 내 어시로 일할 때 내가 못되게 굴었어.”

송유미가 주절주절 말을 이어갔다.

“전에 난 윤성아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 너무 가식적이고 허영심이 많았으니까. 강주환, 넌 모를 거야. 그녀가 퇴사하겠다면 4천만 원을 가져갔는데 알고 보니 그냥 인사팀에 가서 휴가를 낸 거였어. 너랑 나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게 분명해. 내 돈을 가져갔으면서 회사에서 나가지도 않고 돈도 돌려주지 않았어. 심지어 내가 주려고 한 돈인데 왜 돌려줘야 하냐면서...”

강주환의 낯빛이 몹시 흐렸다.

“일단 돌아가자. 데려다줄게.”

그는 정장 외투로 송유미를 감싸 안고 호텔에서 나와 직접 집까지 데려다줬다. 그리고 한참이나 그녀를 위로해준 후에야 다시 돌아왔다.

차에 앉은 후, 그는 잔뜩 무거운 표정으로 윤성아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그녀는 받지 않았다.

바로 이때, 나엽에 관한 뉴스가 바로 실검 1위를 차지했다.

「남우주연상 명품 배우 나엽, 야심한 밤 미인을 안고 빠르게 떠나는 모습 포착, 열애설이 가까워진 느낌!」

뉴스는 파파라치가 찍은 사진도 게재되었는데 그곳엔 검은색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여자를 안은 나엽이 보였다.

그는 몹시 급해 보였고 두 팔로 여자를 들어서 품에 안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신분이 알려지는 것이 싫어서인지 자기 정장 외투로 그녀의 머리를 꽁꽁 싸매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강주환은 그 뉴스를 보자마자 나엽이 안고 있는 여자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바로 윤성아였다!

‘빌어먹을, 이래도 나엽과 아무 사이 아니라고 할 수 있어? 하...’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라면 왜 나엽이 그녀를 안고 떠날까? 그리고 두 사람의 뉴스가 실검 1위를 차지할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지금도 전화를 받지 않는 상태였다.

강주환은 안색이 흐릴 대로 흐렸고 주위의 공기마저 얼어붙었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는데 이 순간 정말 누군가를 죽여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거칠게 액셀을 밟자 그의 우아한 곡선을 자랑하는 차가 쏜살같이 거리로 나아갔다.

십몇분 뒤, 그가 다급하게 아파트 아래서 급정거했다. 차에서 내려 아파트로 달려가 문을 열었는데 깜깜한 방 안에 역시나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다른 한편,

송유미가 윤성아를 기절시켰을 때로 돌아간 상황.

재벌가 딸인 송유미의 팔심은 아주 보잘것없었다. 온 힘을 다해 철 막대기를 내리쳐 윤성아를 기절시켰지만 그리 오래 기절시키진 못했다.

약 7,8분 뒤, 다시 깨어난 윤성아는 통증이 전해지는 뒤통수를 어루만졌는데 피가 만져졌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하지만 어지러운 것 외에 몸이 아주 뜨겁고 더워졌다. 곧이어 온몸이 나른하게 맥이 빠졌고 일어서기조차 어려워졌다.

송유미가 그녀를 갑자기 공격한데다 지금 이 순간 몸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감각에 그녀는 자신이 아주 위험한 상황임을 감지했다.

‘여기에 있으면 안 돼!’

모든 힘을 다해 겨우 일어난 윤성아는 드레스룸을 벗어났다.

하지만 몇 걸음 못 가 휘청거렸는데 다행히 벽을 짚어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녀는 벽에 기댄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때 전화를 받으러 나왔던 나엽이 윤성아를 발견했다. 그녀의 상태가 아주 이상한 것을 알아채고 얼른 달려와 물었다.

“성아 씨, 괜찮아요?”

윤성아가 얼굴을 들었다. 그녀의 눈빛은 이미 점점 흐릿해지고 있었다. 눈앞의 잘생긴 눈매의 남자를 보자 몸이 더 뜨거워졌으며 그를 몹시 원하게 되었다.

강주환과 함께한 지 이제 4년이다.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여자가 아니었고 이제 자신이 곧 견디지 못할 것임을 알았다.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망신당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아무 이유 없이 이용당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굉장히 나긋나긋했고 야한 분위기를 뿜어냈다.

“누군가 날 해치려고 해요. 날 데리고 떠나줄래요?”

“알겠어요.”

나엽은 윤성아를 데리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곧 자신을 억제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에 윤성아는 입술을 더 꽉 깨물었다.

‘무너지면 안 돼!’

윤성아는 마지막으로 남은 이성을 쥐어짜 나엽을 향해 말했다.

“부탁이에요. 꼭 병원으로 데려다주세요.”

말을 마치고 그녀는 엘리베이터 벽에 세차게 머리를 찧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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