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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진실

‘언니? 말도 안 돼! 언니는 몇 해 전에 죽었어. 바다로 떨어지는 걸 내가 직접 봤어... 저 여자가 언니일 리는 없어! 그럼 누구지?’

안효주는 눈을 가늘게 뜨며 생각에 잠겼다. 여자의 정체를 반드시 밝혀내리라 다짐했다.

다른 한편.

사람들은 떠나는 강주환을 보고 여전히 손가락질했다.

“저놈이 양 씨 딸을 돈 주고 산 남자야? 돈은 흘러넘치게 많아 보이네!”

누군가가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 보탰다.

“게다가 나이 많은 남자도 아니네. 잘생기기까지 했어.”

순식간에 경멸하던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었는데 부러워하는 이에서 질투하는 이까지 다양했다. 하지만 곧이어 앙칼진 여자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슨 쓸모가 있어요? 좋아봤자 애인이고 첩인데!”

사람들이 멈칫하더니 누군가가 이내 한마디 했다.

“그럼 그럼, 우리처럼 제대로 교육받은 집안의 딸은 부모 얼굴에 먹칠하는 저런 짓은 못 하죠.”

부러움과 질투는 다시 경멸로 바뀌었고 욕은 전보다 더 듣기 거북해졌다.

다른 한편.

강주환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윤정월이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차가운 얼굴로 둘이 떠나는 방향을 바라볼 뿐 막으려는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윤성아가 더더욱 미워졌다!

누나를 데리고 아버지께 절을 올리기 위해 양신우가 밖으로 나왔다. 사흘간 그는 몇 번이나 나와 윤성아를 살펴줬고 먹을 것도 가져다주며 윤정월에게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자고 애원했다.

낯선 남자가 누나를 안아서 데려가려고 할 때, 밖으로 나가 막으려는 그의 팔을 붙잡은 사람은 윤정월이였다.

“네가 뭣 하러 나가? 저 남자가 바로 네 누나를 돈 주고 산 사람이야! 저기 차 보이지? 돈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 네 누나를 얼마나 걱정하는지도 보이지? 분명 저 남자에게 돈을 요구해서 네 아버지를 구할 수 있었지만 기어코 거절했지. 네 누나가 네 아버지를 죽인 거야.”

...

윤성아는 끝내 양지강의 마지막 길을 지켜볼 수 없었다.

강주환이 병원에 데려다줘서 다시 깨어났을 땐 병원이었다. 밖은 어둑어둑했다.

‘이제 장례식은 진작 끝났겠지...’

“뭐 먹고 싶은 게 있어?”

강주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 대답이 없는 윤성아를 보며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먹고 싶은 게 없으면 아무거나 사 올 테니까 알아서 먹어.”

그렇게 그가 떠나고 링거액을 바꾸기 위해 간호사가 들어왔다. 간호사는 씩 웃으며 “정말 좋으시겠어요! 남자친구가 연예인 못지않게 잘생긴데다 이렇게 잘해주기까지 하니까요. 정신을 잃었을 때 옆에서 얼마나 잘 보살펴주던지..”

윤성아는 차가운 얼굴을 하고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친구가 아니에요.”

간호사는 놀란 듯 그녀를 보더니 이내 농담 몇 마디 던지곤 그곳을 떠났다.

얼마 후 강주환이 포장된 음식을 들고 빠르게 나타났다. 그는 윤성아 앞에 앉아서 전과 달리 부드러운 태도로 밥을 떠먹여 줬다. 그 모습은 남자친구와 다름이 없어 보였다.

윤성아는 넋이 나간 듯이 입을 벌려 밥을 먹고 삼켰다. 강주환이 그럼 그녀를 보며 말했다. “너 정말 멍청한 거야? 만약 내가 너를 데려오지 않았더라면 넌 그곳에 앉아서 그들이 너를 괴롭히는 걸 견디기만 했을 거야?”

“그리고 대체 언제까지 무릎을 꿇고 있을 생각이었어?”

윤성아의 공허한 눈빛이 남자의 얼굴에 떨어졌다.

“이게 내 팔자예요.”

그녀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여전히 창백한 얼굴에 우는 것만도 못한 미소가 걸렸다.

“난 이런 꼴을 당해도 싸요!”

강주환은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녀를 훈계하려고 입을 열었으나 마음이 너무 아파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이제 열이 내렸으니 밥 먹고 나가자.”

윤성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윤성아를 배불리 먹인 후 강주환은 그녀가 남긴 음식을 전혀 개의치 않고 남김없이 먹어 버렸다.

다시 아파트로 온 강주환은 그녀를 안고 욕실로 향했다. 강주환이 옷을 벗길 때, 윤성아는 약간 미간을 찌푸렸을 뿐, 반항하거나 밀어내지 않았다.

“씻겨줄게, 가만히 있어.”

남자는 마치 그녀를 씻겨주는 것 외 다른 목적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듯, 일부러 말했다.

욕조엔 뜨거운 물이 가득했다. 그는 천천히 그녀를 욕조에 내려놓고 샤워기를 틀었다. 기다란 손가락이 그녀의 검은색 머리 사이를 파고들어 부드럽게 머리를 씻겨줬는데 아주 집중해서 열심히 씻었다.

윤성아는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없었다. 그래서 10살에 어머니가 양지강과 재혼한 후에야 부성애를 느낄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그녀의 머리를 이런 식으로 씻겨준 남자는 없었다.

약간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강주환이 “왜 그래?”하고 물었다.

대답 대신 윤성아는 고개를 저었다. 누군가의 머리를 씻기는 일이 처음인지라 강주환도 혹여나 그녀를 아프게 할까 봐 부드러운 목소리로 당부했다.

“만약 아프면 얘기해줘. 살살 할게.”

윤성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마치 시간이 4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녀가 처음으로 그와 밤을 보내던 날, 지금처럼 부드러운 어조로 똑같은 말을 했었던 것 같다.

그땐...

그녀의 얼굴이 저도 모르게 달아올라 완전히 빨갛게 익어버렸다.

강주환도 4년 전, 처음 여자와 밤을 보냈던 날을 떠올렸다! 그때의 그녀는 지금처럼 차갑지 않았고 많이 미숙했다.

그날 밤, 그녀는 두려워 보였다. 입술을 살짝 깨물며 약간 발그레한 얼굴로 “안 아파요.”라고 말했었다.

같은 기억을 공유하며 욕실 온도는 점점 더 뜨거워졌다.

강주환의 눈빛에서 벌써 이글거리는 불빛이 타올랐다. 그는 애써 생각을 잠재우며 여자에게 물었다.

“4년 동안 나에게 돈을 요구한 이유가 아버지 빚 때문이었어?”

“네.”

얘기를 나누며 강주환은 깨끗하게 씻은 머리카락을 커다란 수건으로 감싸고 물기를 짜냈다.

그는 정말 씻겨주기만 했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깨끗하게 씻겨줬는데 타월로 몸의 수분을 닦아준 후, 가운을 입혀 다시 커다란 침대로 데려와 눕혔다.

그리고 부드럽게 다가와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천천히 키스했다...

밖은 어둠이 깔렸다. 언제부터인지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강주환은 그저 키스만 할 뿐이었고 그녀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나간 일은 지나가게 내버려 둬. 앞으로 내 옆에 있으면 아무도 널 괴롭히지 못하게 할 거야.”

그는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자자.”

몸에서 긴장이 느껴졌지만 오늘은 그저 그녀를 안아주고 싶을 뿐, 다른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하룻밤 내내 그는 그녀를 안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해가 떠올라 눈 부신 햇살이 방안을 비췄다. 윤성아가 깨어났을 때, 강주환은 이미 옷을 갈아입고 침대 옆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마침 깨우려던 참이었다.

“깼어?”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어봤다.

“아직 회복하지 못했으니까 집에서 며칠 더 쉬어.”

윤성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가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그는 허리를 숙여  그녀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더니 사랑스럽다는 듯이 웃으며 떠나기 전, 키스도 남겼다.

“착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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