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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계속 생각나는 그녀

강주환은 송유미를 떼어내며 차가운 눈빛으로 물었다.

“넌 이제 내 약혼녀야. 그리고 앞으로는 내 아내가 될 거야. 네가 가져야 할 건 빠짐없이 네 것이 될 거야. 돈이든 지위든, 내 아내라는 신분이든. 그리고 넌 아이를 가질 수도 있어. 하지만 그 이상은 바라지 마.”

“내가 밖에서 하는 일은 상관하지 말길 바라.”

송유미가 눈물을 떨구며 남자를 쳐다봤다.

“나한테 정말 이렇게 잔인하게 굴 거야? 주환아, 어떤 여자가 남편이 밖에서 애인에게 돈을 주는 걸 견딜 수 있을까?”

그러자 강주환이 차갑게 웃었다.

“우리 두 집안은 가문의 이익을 위해 아무런 감정이 없는 혼인을 ‘계약’했어. 그러니 이런 일이 있는 건 정상이 아닐까? 네 아버지만 해도 밖에 여자가 하나만 있는 건 아니잖아.”

“...”

침묵하던 송유미가 결심한 듯 말했다.

“그래, 상관하지 않을 수 있어! 네가 윤 비서와 뭘 하든 괜찮아. 계속 돈을 준다고 해도 괜찮아! 내 명성, 아니, 내 모든 것에 영향 주지만 않는다면.”

“하지만..”

송유미는 다시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주환아, 난 네 약혼녀야. 지금 바로 날 가져줘. 응?”

강주환은 미간을 구겼다.

송유미는 확실히 예쁘고 몸매도 좋았다. 그런 그녀가 안기며 안아달라 하는데 약혼까지 한 사이에 그가 거절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끝내 거절했다!

“결혼하고 얘기해. 지금은 관심 없어.”

차갑게 뒤돌아서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송유미는 가슴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강주환의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얌전히 호텔에 남아 그를 기다렸다.

그날 밤, 계약을 맺을 사업 파트너를 만나 많은 술을 마신 강주환이 호텔로 돌아오자 송유미가 그를 맞이했다.

“왔어, 주환아?”

“응.”

“술 많이 마셨네. 해장국 끓여줄까?”

로열 스위트룸의 주방으로 걸어 들어가며 송유미가 말했다.

강주환이 소파에 앉아 약간 불그레한 눈빛으로 송유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윤성아를 떠올렸다.

여리지만 굴곡진 몸매를 가진 그녀. 그녀는 해장국을 끓여 조심스럽게 그의 앞에 내려놓고 눈을 살짝 내리깐 채 마치 명령에 복종하듯이 천천히 그에게 먹여줬었다...

“입으로 먹여줘.”

그가 명령했을 때, 윤성아의 자그마한 얼굴에 놀라운 빛이 스쳤다. 입술을 깨물며 고민하던 그녀는 거절할 수도, 거절할 용기도 없어 그의 명령에 따랐다...

그 모습에 그는 단번에 달아올랐고 키스하며 그녀를 자기 몸 아래에 가뒀다.

그녀의 몸은 부드럽고 향긋했다.

...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을 뿐인데 강주환은 벌써 입이 바싹 바르며 윤성아가 그리워졌다. 지금 당장 그녀를 끌어안고 한껏 괴롭혀주고 싶은 충동이 솟구쳤다.

어떡하지? 아직 돌아가려면 이틀이나 남았다.

하지만 뜨겁게 달궈진 몸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강주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침실로 향했다. 욕실에 들어가 샤워기를 틀자 찬물이 쏟아져나왔고 그는 꿋꿋하게 찬물을 맞으며 버텼다.

“주환아, 해장국 좀 마셔봐.”

국을 들고 방으로 들어온 송유미는 아무도 없는 것을 발견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그곳을 바라보니 반투명의 유리 너머 희미하지만 또렷한 남자의 우람한 몸의 그림자가 보였다.

그녀의 몸이 얼굴과 함께 달아올랐다.

이 남자는 그녀의 것이다. 발리에 온 지 며칠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다.

오늘 그가 술을 마셨으니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두 사람의 관계를 더 끈적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끓인 해장국을 보며 송유미가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그녀는 특별히 이 안에 정기를 북돋는 노용과 같은 약재를 넣었다. 때가 되면...

‘오늘 밤 반드시 강주환의 여자가 될 거야. 영주시에 돌아가면 윤성아 그 빌어먹을 년이 꼬리 칠 텐데 나한테 너무 불리해.’

송유미는 해장국을 침대 머리맡에 놓고 떠났다. 하지만 씻고 나온 강주환은 해장국을 흘긋 보더니 건드리지도 않고 그대로 침대에 고꾸라져 잠들었다...

반 시간 후, 시간을 재서 다시 나타난 송유미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해장국을 보고 화가 치밀었다.

오늘 밤은 이렇게 실패하고 마는 걸까?

‘절대 안 돼!’

그녀의 뜨거운 눈빛이 침대에서 단잠에 빠진 남자를 훑었다. 그의 조각 같은 얼굴, 굳게 다문 얇은 입술... 잠든 모습마저 고고한 아름다움을 뿜어냈다.

그의 고귀하고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 마치 신과도 같은 수려함을 그녀는 소유하고 싶었다! 모든 대가를 치르더라도 상관없었다!

송유미는 잠옷 단추를 하나둘, 풀며 남자의 침대에 천천히 올라갔다.

조심스럽게 이불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와 한 이불을 덮게되자 심장이 터질듯이 울려댔다.

그녀는 남자의 튼튼한 허리를 끌어안고 입을 맞췄다.

하지만 그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얼른 머리카락을 헝클고 남자의 옆에 기댄 후, 핸드폰으로 침대에서 나란히 잠든 두 사람의 모습을 찍었다...

영주시.

윤성아는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때 마침 송유미의 계정이 업데이트되었다. 9장의 사진 속에 그녀와 강주환의 모습밖에 보이지 않았다.

함께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발리섬의 해변을 거니는 두 사람의 모습은 몹시 다정했는데 마지막 장은 한 침대에서 나란히 기대 잠든 모습이었다.

담담한 표정으로 사진을 바라봤지만 윤성아는 심장이 쿡쿡 쑤시듯이 아픈 것을 느꼈다.

이내 씁쓸하게 웃으며 핸드폰을 꺼버렸다.

‘윤성아, 너 대체 무슨 생각이야. 그 남자는 이미 약혼했어. 넌 그 남자의 애인일 뿐이야. 나중에 그는 다른 여자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을 거야. 여기서 이런저런 생각을 할 자격이 없어, 넌.’

...

다음날, 윤성아가 핸드폰을 켜자 바로 전화가 걸려 왔다.

뜻밖에도 윤정월이였다. 양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녀는 윤성아에게 전화를 건 적이 없었다.

오늘 엄마의 전화를 받게 되니 약간 흥분한 목소리로 윤성아가 말했다.

“엄마?”

“신우가 아파, 병원에 있어!”

윤정월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신우가 아프다고?’

윤성아는 동생이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해 자꾸 병에 걸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 당장 갈게요.”

양신우의 상황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바로 입원할 것을 요구했고 어두운 표정으로 병세를 전달했다.

“아직 정확한 진단은 나오지 않았어요. 먼저 입원 절차를 밟으세요. 자세한 건 검사 결과가 나오면 다시 얘기하겠습니다.”

윤성아는 별수 없이 양신우와 함께 병원에 남아 결과를 기다렸다.

점심때, 나엽이 전화를 걸어왔다.

“성아 씨, 지금 어디예요? 식사 한 끼 대접하고 싶은데...”

나엽에게서 빌린 8천만 원이 떠올랐다. 양지강이 이미 죽어버렸으니 이제 이 돈도 쓸 곳이 없게 되었다.

그녀는 돈을 돌려줄 생각으로 그와 함께 만나기로 했다.

두 사람은 장사가 아주 잘 되는 맛집에서 만났다. 식사 때, 나엽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윤성아를 향해 물었다. “성아 씨, 전에 빌린 8천 만은 갚았지만 그래도 저한테 빚진 거 있죠?”

윤성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말인데요... 작은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요?”

나엽은 함께 광고를 찍을 여자 파트너가 사고를 당해 촬영할 수 없게 되었으니 윤성아가 대신해달라고 부탁했다.

윤성아는 깜짝 놀라며 거절했다.

“아, 안 돼요!”

“왜 안 돼요?”

나엽은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

“성아 씨, 외모나 분위기로 봤을 때, 이번 광고의 여주인공으로 아주 잘 어울려요. 게다가 옆모습만 촬영해요. 성아 씨, 부탁해요, 저 한 번만 도와주세요.”

“알겠어요. 하지만 제가 해내지 못할 수도 있어요...”

결국 나엽과 함께 광고를 찍겠다고 약속했다.

나엽이 찍는 광고 브랜드의 옷으로 갈아입은 윤성아. 하늘색 긴 원피스와 바람에 흩날리는 검은색 긴 머리를 본 나엽은 넋이 나가버렸다.

그는 멍하니 윤성아를 쳐다봤다. 그의 기억 속에 존재하던 소녀가 떠올랐다.

‘닮았어, 너무 닮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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