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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그때도 지금과 같은 매미가 울어대는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소녀의 수줍은 눈빛과 땀에 젖은 옆머리가 그날 오후와 겹쳐졌다.

그 모습이 지난 3년 동안 매일 밤 꿈속으로 들어와 밤마다 유강후를 뒤흔들었다.

유강후는 방금 온다연의 손길이 닿은 곳이 화끈거려 손끝을 만지작거렸다. 이 순간 공기마저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유강후는 재빨리 시선을 거두며 여전히 차갑고 고상한 표정으로 말했다.

“들어가.”

온다연은 즉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마치 사면받은 사람처럼 도망치듯 떠났다. 물론 온다연은 차에 탄 유강후의 맹수 같은 약탈적인 눈빛을 보지 못했다.

온다연은 유씨 가문 저택에 들어선 후에야 유씨 가문 식구들뿐만 아니라 유강후의 옛 친구들도 모두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도련님들은 모두 높은 신분을 가지고 있었고 유강후는 그중에서도 최고였다.

온다연은 전에 그들의 말도 안 되는 행동을 여러 번 목격했었기 때문에 그들을 피하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하지만 안주인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심미진은 온다연을 놓아주지 않았다.

“나 시간 없으니까 네가 이 술을 네 작은 삼촌에게 갖다줘.”

온다연은 거절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은 화려했고 술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온다연은 가시 장미에 섞인 새하얀 장미처럼 눈길을 사로잡으며 문 앞에 서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를 향했다.

어두운 조명 속에서도 온다연의 검은 머리와 붉은 입술, 매력적인 골격,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하늘색 치마 밑의 하얀 피부는 사람을 유혹할 정도로 하얗게 빛났다.

잠시 동안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갑자기 누군가 웃음을 터뜨렸다.

“도련님, 유씨 가문의 양딸을 몇 년 동안 보지 못했었는데 그새 잘 자랐네요.”

유강후 역시 온다연이 들어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손에 든 와인잔을 흔들었다.

“몇 년 동안 유씨 집안에서 먹여준 건 맞지만 양딸이라고 할 순 없죠.”

유강후의 목소리는 마치 중요하지 않은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차가웠고 온다연과의 관계에 대해 선을 긋는 듯 이야기했다.

동시에 온다연을 유씨 가문의 인맥에서조차 제외했다.

그 말에 온다연은 가슴이 살짝 내려앉고 두 손은 쟁반을 꽉 움켜쥐었다.

유강후는 전과 마찬가지로 어떤 말을 해야 가장 고통스럽게 사람의 마음을 찌를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온다연은 유강후를 쳐다보지 않았다.

비록 이 순간 유강후는 앉아 있고 자신이 서 있어도 그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고 느끼면서 자존감이 바닥 쳤다.

온다연은 사람들의 심문하는 듯한 경멸적인 시선을 마주하며 와인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삼촌, 와인이요.”

유강후은 시선을 온다연의 매끈한 종아리에 잠시 멈췄다가 눈을 살짝 감더니 냉기가 감도는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너더러 들어오랬어? 나가!”

모두 좋은 구경거리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온다연을 쳐다보았다.

순간 온다연은 마치 환한 대낮에 옷이 발가벗겨진 것처럼 부끄러움을 느꼈고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물고 쟁반을 내려놓은 후 재빨리 문밖으로 물러났다.

뒤에서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도련님, 왜 이렇게 차갑게 대하세요. 그래도 저 애는 미녀인데 좀 봐주시지!”

“도련님, 어차피 우리랑 같이 술 마실 여자가 없으니 조카더러 내려와서 술 한잔하게 해주세요.”

온다연의 손끝이 살짝 떨렸다. 유강후와 그의 친구들의 눈에는 그녀가 술집 아가씨와 같은 존재였다.

온다연은 그들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아 재빨리 자리를 떠났다.

실내에서 와인 잔을 들고 있던 유강후의 손이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여자를 원하면 여기서 그러지 말고 나중에 술집에 가. 거기에는 다양한 여자가 많으니까.”

하지만 그 사람은 겁도 없이 계속해서 말했다.

“저 애는 어차피 유씨 가문의 일원도 아닌데 우리와 함께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것은 저 애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잖아요.”

“다리가 예쁘네요. 하얗고 가늘어서 허리를 감싸면 죽여주겠는데요.”

유강후는 미소를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에서 약간의 살기가 새어 나왔다.

곧이어 유강후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 위에 있던 와인병을 집어 들고 그 사람의 머리를 바로 내리쳤다.

병이 깨지면서 남자의 머리가 찔리고 검붉은 술이 피와 섞여 사방으로 흘러내렸다.

모든 사람들이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한참 지나서야 누군가가 자리에서 일어나 겁에 질린 표정으로 지켜보며 말했다.

“도련님, 저...”

유강후는 옷을 정돈하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이렇게 좋은 와인으로도 저놈 입을 막을 수 없다니, 기분이 잡치는군.”

유강후의 말투는 너무 차분해서 전혀 폭력적인 행동을 한 사람 같지 않았다.

“하지만 도련님, 저분은 도련님을 환영하려고 온 건데 어떻게...”

유강후는 휴지 한 장을 뽑아 손가락을 하나 하나 닦았다. 표정은 차분했지만 눈빛이 냉기를 뿜어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 정도였다.

“유씨 가문의 것들을 함부로 대할 생각하지 마. 그게 개라도 말이야.”

유강후는 칼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 사람을 훑었다.

“꺼져!”

머리를 맞은 사람은 비참한 모습으로 피를 뚝뚝 흘리며 고개를 들지도 못했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다들 자기 가문에서 도련님이지만 그들 중 최고는 유강후였다. 그 사람이 건드릴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 사람은 심지어 감히 눈앞을 막는 피를 닦지도 못하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도련님,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유강후는 휴지를 던지고 돌아서서 방을 나섰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몸에서 풍기는 차가운 기운은 조금 전의 행동보다 더 섬뜩했다.

누군가가 그 사람을 일으켜 세우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얼른 가. 도련님 기분 나쁘게 하지 말고 뒷문으로 나가.”

온다연은 자신의 방에서 잠시 누워 있다가 떠나기로 했다.

그런데 방에서 나오자마자 유강후가 2층 계단 앞에서 천천히 내려가고 있는 모습을 볼 줄은 몰랐다.

온다연은 멈칫하다가 다시 방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유강후는 이미 그녀를 봤다.

온다연은 한 손으로 문의 손잡이를 잡고 다른 손으로 가방을 꽉 쥐었다. 순간 방으로 들어가야 할 지 그냥 나가야 할 지 결정하지 못해서 그냥 문에 기대어 저도 모르게 유강후를 불렀다.

“삼촌.”

유강후는 자신의 이마 위에 삐져나온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한 걸음 한 걸음 그녀에게 다가갔다.

유강후의 눈빛을 마주하자 온다연은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그 두 눈동자는 더없이 차가웠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에 온다연은 바닥으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

갑자기 시간이 10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그때도 지금처럼 더운 여름날이었고 이모 따라 유씨 가문 저택의 로비에 끌려갔다.

유자성의 아들과 딸은 온다연을 가리키며 여우라고 욕하고 그녀의 트렁크를 문밖으로 던졌다.

귓가에서 이모의 울음소리가 들렸지만 어쩔 줄 몰라 자신의 치맛자락을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온 세상에 버림받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때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민준, 유하령, 선생님이 너희에게 손님을 이런 식으로 접대하라고 가르쳤어?”

순간 로비는 쥐 죽을 듯 조용해졌다.

온다연은 그때 고개를 들고 봤던 그 순간을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

화려한 전통식 별장 안 소용돌이 모양의 계단 끝에 한 소년이 서 있었다. 흰옷에 검은색 바지를 입은 그 소년의 모습은 고상해 보였고 얼굴은 말도 안 되게 잘생겼다.

그 소년은 긴 다리를 옮겨 계단에서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그 소년은 불빛 아래에서 갓 완성된 유화처럼 아름다웠고 온다연 어린 시절의 큰 충격으로 남았다.

심미진은 온다연의 옷을 잡아당기며 속삭였다.

“이 사람은 네 삼촌 유강후야. 유자성의 동생이지. 빨리 삼촌이라고 불러.”

온다연은 고개를 숙인 채 감히 유강후를 바라보지 못했다. 가슴이 너무 떨려 한참 지나서야 고양이처럼 약한 목소리로 낮게 불렀다.

“삼촌.”

유강후는 간단히 대답하고 온다연을 지나쳐 바깥쪽으로 걸어갔다.

“앞으로는 이곳을 자기 집처럼 생각하고 필요한 게 있으면 주 집사에게 말해.”

유강후의 목소리는 맑고 차가워서 너무 듣기 좋았다. 온다연은 한참 동안 자리에 서서 넋을 놓은 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문밖에서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가 들리자 온다연은 유강후가 이미 나간 것을 발견하고 놀랐다.

그 후 오랫동안 온다연은 유강후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온다연은 유강후 앞에 무릎을 꿇고 미친 듯이 애원했지만 그는 무관심하고 냉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제야 온다연은 유강후가 자신을 가엾게 여긴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강후 같은 사람은 착할 리가 없다. 그는 피바람에 부는 세상에서 태어난 악의 꽃이다. 무자비하고 잔인한 행위를 많이 봤기 때문에 유강후는 그런 일에 능숙했다.

그렇기에 유강후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유강후는 곧 온다연 앞에 도착하여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어두운 눈빛으로 말했다.

“너 유씨 가문에서 나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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