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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담담한 말투 속에 분노도 섞여 있는 듯했다.

온다연은 열이 나는 이유로 정신이 혼미해서 저도 모르게 용기가 생겨 말했다.

“삼촌, 너무 가까워요.”

온다연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낮았는데 살짝 갈라지기까지 했다.

유강후는 눈가의 어둠이 점점 더 강해지면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온다연이 지금 열 때문에 이렇게 정신이 없어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면 유강후는 그녀가 자신을 유혹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때 갑자기 누군가가 창문을 두드렸다.

차창을 내리자 밖에서 이권이 비에 흠뻑 젖은 채 얼굴을 닦으면서 말했다.

“도련님, 차가 왔어요. 다연 양과 함께 얼른 타세요.”

유강후는 쏟아지는 빗속에서 불빛을 번쩍이는 롤스로이스를 흘끗 쳐다본 뒤 열이 나 정신이 혼미한 온다연을 바라보면서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구급차 불러.”

이권은 얼굴에 묻은 빗물을 닦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도련님, 몇 년 동안 여기 계시지 않아서 경원시의 상황을 모르실 겁니다. 지금 비로 인해 경원시 절반이 정전되고 교통이 마비됐어요. 이 시간에 어디 가서 구급차를 부를 수 있겠어요?”

유강후는 휴대폰을 들고 전화를 걸려했는데 이권이 또 말했다.

“도련님, 마침 이 옆에 도련님 명의의 방이 있는데 오늘 밤엔 거기에 가서 머무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소 선생님도 같은 동네에 있어 병원에 가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이섭은 유강후의 집에 도착했다.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이 온다연이라는 것을 확인한 소이섭은 눈빛이 복잡해졌다.

“왜 다연이 여기 있어?”

유강후는 온다연에게 수액을 놓는 소이섭을 바라보며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길에서 만났는데 아파 보이길래 데려왔어.”

그러자 소이섭이 콧방귀를 뀌었다.

“유씨 가문 셋째 도련님이 언제부터 이렇게 착해졌지?”

소이섭은 일어나서 아직 의식이 없는 온다연을 흘끗 쳐다보며 그다지 친절하지 않는 어조로 말했다.

“유강후, 네가 모를까 봐 말하는데 은별이의 우울증은 이미 매우 심각해졌으니까 더 이상 은별이를 자극하지 마.”

하지만 유강후의 태도는 차가웠다.

“소이섭, 참견하지 마.”

소이섭은 금테 안경을 올리며 온다연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그냥 잠깐 가지고 노는 거라면 별거 아니겠지만 이번에 네가 돌아온 목적이 은별이랑 약혼하는 것이란 걸 잊지 마. 은별이야말로 네 아내가 될 사람이야.”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서 사이도 좋고 서로에 대해 잘 알아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 소이섭의 말투는 유강후를 매우 언짢게 했다.

게다가 그가 온다연을 바라 보는 눈빛은 마치 자신의 물건이 감시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유강후는 갑자기 소이섭에게 전화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후회했다. 그리고 분노가 섞인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소이섭, 너 선 넘었어. 나가!”

“누구는 좋아서 신경 써주는 줄 알아!”

소이섭은 콧방귀를 뀌며 약상자를 집어 들고 자리를 떠났다.

온다연은 눈을 떴을 때 자신이 푹신한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은은한 우디 향이 공기에 퍼졌고 부드러운 불빛 아래 크림색 가구들은 고상한 분위기를 풍겼다.

온다연은 숨을 들이마시고 일어나려고 했지만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이게 어디지?

결국 기절한 건가?

유강후는 어디 있을까?

더 깊게 생각하기도 전에 아픈 것을 억지로 견디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러다 자신이 언제 옷을 갈아입었는지 검은색 실크 셔츠만 입고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한눈에 봐도 남자 옷이었다. 그것은 겉옷처럼 느슨하게 몸을 덮고 있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감히 누가 옷을 갈아입혔는지 생각도 못 하고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문을 열고 넓은 거실로 나가자 가구는 거의 없었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내려오는 넓은 창문 앞에 큰 사이즈의 가죽 소파와 와인으로 가득 찬 데스크가 있었다.

유강후는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긴 다리를 꼬고 앉고 흰 셔츠를 입은 그의 모습은 고상하면서 기세가 남달랐다.

유강후는 인기척을 듣고 온다연을 올려다보았다.

지나치게 헐렁한 셔츠는 그녀의 몸에 느슨하게 늘어져 무릎까지 내려와 하얀 다리를 드러냈다.

유강후는 시선을 피한 채 차가운 표정으로 물었다.

“일어났어? 몸은 좀 나아졌어?”

머리는 여전히 어지러웠지만 열은 조금 내려갔다.

온다연은 눈을 내리깔고 모기처럼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괜찮아졌어요.”

유강후는 가볍게 대답하고 차가운 표정으로 계속 말했다.

“가벼운 폐렴이래. 방금 누가 와서 수액을 맞혔고 약도 줬어.”

유강후는 뒤에 있는 데스크를 살짝 두드리며 말했다.

“약은 여기 있으니 와서 먹어.”

조금 전 무서운 눈빛을 가진 차 안의 사람과는 다른 사람인 것처럼 말투가 극도로 차가웠다.

온다연은 유강후가 어둠 속의 사나운 맹수처럼 언제든 달려들어 물어뜯을 준비가 되어 있는 모습과 냉장고에 사흘 동안 얼려놓은 것처럼 차갑고 침착한 두 종류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유강후든 이 세상을 경멸하듯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강압적인 기세가 있었다.

온다연은 천천히 걸어가서 몇 개의 분할된 약과 여러 병의 생수가 있는 것을 보았다.

작은 알약 한 알을 삼켰고 물을 입에 넣기도 전에 갑자기 번개가 번쩍이고 둔탁한 천둥소리가 들렸다.

온다연은 순식간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 생수병이 일그러질 정도로 꽉 쥐었다.

밖은 비가 그친 적이 없는 듯 여전히 어두웠고 번개와 천둥소리는 주한의 장례식이 있었던 날처럼 마치 공기조차 피를 흘리는 것 같았다.

병 속의 물은 천천히 바닥으로 흘러 내렸고 온다연은 밖을 바라보며 온몸이 제자리에 얼어붙은 것 같았다.

유강후는 온다연이 심상치 않은 것을 감지하고 담담하게 물었다.

“번개 치는 게 무서워?”

온다연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물이 이미 비싼 나무 바닥에 흘러내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황한 그녀가 황급히 물을 닦으려고 하자 유강후가 말렸다.

“도우미들이 닦을 거야.”

유강후는 온다연의 창백한 얼굴을 흘끗 쳐다보며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이섭이가 너 영양 부족이래.”

유강후의 소꿉친구이자 유명한 의사인 소이섭은 젊은 나이에 이미 경원시 의료계에서 천재라는 칭호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유씨 가문과 친한 집안의 도련님이기도 했다.

온다연은 그 사람의 이름을 낯설지 않았다.

밤새 열이 나서 그런지 그녀의 표정은 피로감으로 물들었다.

“다이어트하는 사람은 다 어느 정도 영양실조예요.”

유강후는 온다연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머리 위의 불빛이 내려와 그의 눈썹에 그림자를 드리우자 날카롭지는 않지만 극도로 차가워 보였다.

또한 위험했다.

온다연은 깜짝 놀라며 자신이 너무 오랫동안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눈빛을 마주하면 온다연은 자신의 거짓말을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지막이 말했다.

“최근에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받았어요.”

유강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빛에서 위험한 기운이 줄어들었다. 유강후는 손을 뻗어 앞에 놓인 작은 테이블에서 작고 얇은 카드를 집어 온다연에게 건넸다.

“이거 네가 가져.”

황금색 은행 카드는 한눈에 봐도 평범하지 않아 보였다.

온다연은 한 발짝 물러나서 그 카드를 받지 않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삼촌, 괜찮아요. 저 돈 있어요.”

유강후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의 시선은 창백하면서도 예쁜 온다연의 얼굴에 잠시 멈췄다가 결국 다시 그녀의 매혹적인 입술에 닿았다.

그날 오후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유강후의 눈빛이 어두워지고 공기 중에 갑자기 위험한 기운이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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