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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한참 후, 유강후는 다시 염지훈을 쳐다봤다. 그의 매서운 눈빛은 염지훈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염지훈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혹시 제가 도련님 집 아이를 훔쳤다고 의심하는 건 아니죠?”

유강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차갑게 쳐다보기만 했다. 두 사람은 키가 비슷하고 모두 카리스마가 넘쳤지만 유강후는 염지훈보다 몇 살 연상이고 비즈니스와 정치계에서 몇 년 있다 보니 남다른 기세가 있었다.

순간 염지훈은 기 싸움에서 뒤처진 느낌이 들었다. 그는 유강후의 눈빛만 봐도 숨이 막혀왔다.

비록 두 가문의 재력은 비슷했지만 유씨 가문은 정치계에서 더 잘나갔다. 그 때문에 염지훈은 유강후와 적이 되기 싫었다.

이때 염지훈이 다시 입을 열었다.

“강후 도련님, 제가 같이 찾아드릴까요?”

유강후는 염지훈의 뒤에 있는 캄캄한 반사 유리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리고 담담하게 말했다.

“필요 없어.”

그리고 그는 자리를 떠났다.

잠시 후, 유강후의 차는 주차장을 떠났다. 그제야 염지훈은 문을 열며 말했다.

“나와.”

문에 웅크리고 앉아 엿듣던 온다연은 문이 열리자마자 차에서 떨어지면서 이상한 자세로 착지했다. 그러자 염지훈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그녀를 부축했다.

온다연은 머리가 아까보다 더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팔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녀는 차 문에 기대어 염지훈을 멍하니 쳐다봤다.

염지훈은 차 문에 기대어 담배에 불을 붙이고 초라한 모습에 술 냄새까지 풍기는 온다연을 자세히 훑어보았다.

온다연은 예쁘게 생겼고 피부도 하얗고 눈도 초롱초롱했다. 나이가 많지 않았지만 배짱이 좋은 것 같았다.

염지훈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온다연은 사정없이 훑어보았다.

“유강후랑 무슨 사이야? 왜 피해 다녀?”

온다연은 염지훈을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

“난 그쪽을 모르는데요.”

그녀는 술에 많이 취해서 염지훈의 생김새를 잘 볼 수 없었지만 그의 날카로운 눈빛과 더운 날에 두꺼운 옷차림을 한 것을 보니 좋은 사람 같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유강후처럼 키가 크고 카리스마가 넘쳐 위에서 아래로 그녀를 내려다볼 때 자꾸 유강후가 떠올랐다.

온다연은 한 걸음 물러서면서 말했다.

“당신... 당신은 나쁜 사람이야. 저리... 저리 가...”

염지훈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온다연에게 담배 연기를 뿜어대며 언짢은 말투로 말했다.

“참, 요즘 시대는 좋은 일을 하고도 칭찬을 못 받네. 너를 구해줬더니 고맙다는 말도 없이...”

온다연은 담배 연기에 기침을 심하게 했다. 하마터면 똑바로 서지 못할 뻔했다. 그녀는 서둘러 차 문을 붙잡고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비틀거리며 앞으로 걸어갔다.

염지훈은 그녀가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고 그녀를 불러 세웠다.

“저기, 많이 취한 것 같은데 데려다줘?”

그러자 온다연은 손을 흔들며 비틀거리며 앞으로 계속 걸어갔다. 그녀가 점점 멀어져가며 보이지 않자 염지훈은 그제야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유강후를 무서워하는 여자가 있다는 사실에 염지훈은 큰 흥미를 느꼈다. 온다연은 교학동 건물 앞에 앉아 한참을 쉬다가 정신을 차렸다.

손발에 힘이 조금 들어가는 것 같았지만 위는 아까보다 더 아팠고 심한 통증으로 위가 찢어질 듯 아팠다.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임혜림에게 전화하려다가 배터리가 없어 핸드폰이 꺼진 것을 발견했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아픈 배를 움켜쥐고 천천히 교문 밖으로 걸어 나갔다.

몇 걸음 걷자 빨간 페라리 한 대가 돌진해 오는 것을 보았다. 온다연은 재빨리 몸을 돌려 화단 뒤편 그늘 속으로 숨었다.

차는 온다연과 4, 5미터 떨어진 곳에 멈춰 섰고 젊은 여자 두 명이 차에서 걸어 내려왔다.

키 큰 여자는 예쁘게 생겼고 크롭탑을 입고 최신 샤넬 백을 들고 있었다. 키 작은 여자는 흰색 원피스에 검은 머리였고 청순하고 여린 분위기를 풍겼다. 그녀는 키 큰 여자의 눈치를 보는 듯했다.

키 큰 여자의 이름은 유하령이였고 그녀는 유강후의 친조카였다. 키 작은 여자는 유하령 보모의 딸 진설아였다. 진설아는 어릴 때부터 유하령의 껌딱지였다.

온다연은 그들을 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유하령은 내년에 귀국한다고 했는데 왜 지금 왔을까?

이때 진설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 드디어 돌아왔네요. 언니가 없는 이 2년 동안 온다연 그 계집애가 제멋대로 날뛰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했어요. 며칠 전에 집에 갔을 때 자기가 진짜 유씨 가문 아가씨라고 했어요.”

유하령은 그 말을 듣자 화가 치밀어 올라 핸드백을 차 문에 내리쳤다.

“계집애!”

진설아는 청순한 비주얼을 가졌지만 질투심이 가득한 여자였다.

“그리고 대학원 입학시험 면제를 받았는데 그 자격을 갖기 위해 책임 선생님과 잤다고 하던데요. 정말 더러워!”

그 말을 듣자 온다연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진설아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녀의 어머니처럼 남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능력은 청출어람이었다.

유하령은 눈을 가늘게 뜨고 차갑게 웃었다.

“언제까지 잘난 척하나 보자. 한 달만 지나면 주한의 죽음과 관련된 사람들이 출소할 거야. 그 자식들은 거지야. 그때 돈을 좀 주고 온다연이랑 침대에서 자는 사진을 몇 장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면 걔는 끝장이야. 어느 학교에서 이런 학생을 받아들일까? 하하하.”

진설아는 고개를 숙이고 피식 웃었다.

“역시 언니. 다 생각이 있었네요.”

유하령은 차갑게 웃었다.

“그 계집애는 주한이가 건물에서 뛰어내려 죽은 줄 알았을 거야. 그렇게 주한이를 좋아하는데 그의 진짜 사인을 안다면 충격받을 거야. 그 계집애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온다연은 그 말을 듣자 유하령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주한이는 건물에서 뛰어내려 죽은 게 아니라고? 그럼 진짜 사인은 뭘까?

온다연의 가슴과 위는 마치 찢어지는 듯 아파져 왔다. 괴로워 토하고 싶을 만큼 말이다.

왜 유하령은 그녀와 나이가 같은데 이렇게 지독할까? 그리고 진설아도 온다연처럼 모두 괴롭힘을 당하는 처지인데 왜 그녀를 짓밟고 죽음으로 몰아넣으려고 할까? 단지 온다연이 심미진의 조카라는 이유 때문일까?

유하령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먼 곳을 차갑게 바라봤다.

“심미진 이 천한 년이 아들을 낳고 싶어 한대. 아빠 말로는 임신 준비를 하고 있고 약을 먹고 심지어 주사까지 맞고 있대. 아들을 낳아 유씨 가문의 재산을 빼앗으려는 걸까? 그래. 낳으라고 해. 괴물이나 불구가 나왔으면 좋겠다. 하하.”

그러자 진설아가 말했다.

“이 일은 제가 어머니랑 잘 상의해 볼게요. 별문제 없을 거예요.”

유하령은 담배를 집어 던지고 진설아를 차갑게 쳐다보았다.

“네가 말을 잘 듣기만 한다면 내가 너를 잘 대해줄 거야.”

그러자 진설아가 얼른 말했다.

“언니, 빨리 갑시다. 염지훈이 도착했을 거예요. 이 학교에 미친년이 너무 많아요. 빨리 갑시다.”

그 말을 듣자 유하령이 미간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누가 감히 내 남자를 건드려. 죽여버릴 거야.”

두 사람은 점점 멀어져갔고 온다연은 그늘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염지훈? 아까 그 남자?

온다연은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살랑살랑 부는 저녁 바람에 그녀의 앞머리가 흩날렸다. 마침 그녀의 미간에 그늘이 지면서 그녀가 무슨 표정을 하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위가 다시 심하게 아파져 오자 온다연은 그제야 밖으로 걸어 나갔다.

경원시의 저녁은 낮보다 더 번화했고 경원 사대는 비록 교외에 위치했지만 교문 밖은 차들로 붐볐고 불빛 때문에 대낮처럼 밝았다.

온다연은 눈앞의 불빛 때문에 더 위가 아파져 왔다. 그녀는 조금 걷다가 오동나무에 기대 휴식을 취했다. 이때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천천히 다가왔다.

차창을 내리자 그윽한 눈동자를 가진 남자가 그녀를 쳐다봤다.

바로 유강후였다.

그는 초췌한 온다연을 쳐다보면서 차갑게 말했다.

“올라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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