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지켜 본다고 판세가 뒤집히겠느냐?” 탕양의 말에 우문호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뇨. 하지만 적어도 판세를 읽고 대비를 할 수 있겠지요.”탕양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왕야, 지금 이 풍랑을 맞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왕야께서 지금 몸이 안좋으니 굳이 황제께서도 양해 해주실겁니다. 지금 이 모양으로 입궐하신다면 오히려 일부러 왕야가 고육지책을 쓴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서일아, 가마를 마련하거라” 우문호는 직접 서일에게 분부했다. 서일은 난처한 표정으로 탕양을 바라보았다. 성치도 않은 몸으로 어떻게 궁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왕야, 심사숙고하십시오!”탕양이 말했다. 우문호가 어찌 심사숙고 하지 않았겠는가. 수천번을 생각해도 답은 같았다. 목여태감이 원경릉을 데려가는 순간부터 그의 머릿속에는 수천가지의 생각이 떠올랐다. 어떻게 하면 이 고비를 넘길 수 있을지 수천번을 생각해도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우문호는 원경릉이 자기 혼자 살겠다고 초왕인 자신을 모함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했다. 원경릉은 그와 혼인 한 후, 궁 안에서 그녀의 뜻을 한번도 펼치지 못했고, 원경릉과 그의 사이는 늘 안좋았다. 이를 미루어보아 그녀가 그를 배신할 가능성이 충분했다. 우문호가 입궁을 하려고 하는데 문지기가 급하게 달려왔다. “왕야, 경조부 오대감(吴大人)이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탕양이 재빨리 고개를 들었다. “어쩌면 왕야를 해하려고 한 놈을 찾았을지도 몰라!” 서일은 기쁜 표정으로 눈을 반짝였다.우문호는 그 말을 듣자 갑자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오대감은 경조부의 포졸을 데리고 왔다. 여섯명의 포졸들이 문앞에 서자, 오대감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탕양은 “오대감님, 왕야를 해하려고 한 자객들은 찾았습니까?” 라고 물었다. 오대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앞으로 한걸음 다가와 우문호를 보고 절을 했다. “하관(下官)이 왕야에게 인사드리옵니다.”“예의는 생략하게!” 우문호는 그를 보며 “범인이 자백을 한
소월각은 긴 정적 속에 잠겼다. 우문호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고개를 들어 탕양에게 말했다. “태상황님이 무슨 독에 중독 된건지. 가서 알아보거라”“왕야, 아마 어려울 것 같습니다.”“구사는 알고 있을 것이야!” “지금 구사는 어전에서 명령을 기다리고 있어서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방금 구사도 함께 왔다 갔는데 만약 알고 있었다면 알려줬을겁니다.”우문호의 눈에 독기가 가득찼다. “본왕이 죄를 인정한다고 궁에 가서 알리거라.”“왕야!” 서일과 탕양이 동시에 그를 보았다. 왕이 미친 것일까? 죄를 인정한다니!“본왕이 죄를 인정한다. 원경릉이 저지른 일도 다 내가 지시한 일이다.” 우문호가 담담하게 말했다. 우문호가 자객을 사주했다는 것을 인정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서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왕이 왕비에게 태상황의 병을 치료하게 했다고 해도 그 방식이 옳지 않다.“안됩니다. 왕야. 지금 편치않은 몸을 이끌고 어찌 죄를 인정하시려고 합니까.”서일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한참 생각에 빠져있던 탕양이 고개를 들었다. “왕야께서는 왕비를 믿으십니까?”“다른 방도가 없다!” 우문호가 쏘아붙였다. “왕야가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으니 왕비님과 한배를 탄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만약 왕비께서 판을 뒤집지 못한다면 왕야의 처지는 더 곤란해지실 겁니다. 이런 결과는 예상하셨습니까?” 탕양은 우문호를 바라보며 말했다.“이 말고 다른 방법이 있느냐?” 우문호는 격분하여 소리쳤다. 그에 목구멍에서 피가 끓어 올랐다. 그는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피비린내를 억지로 삼켰다.기왕(纪王)은 비밀이 새지 않도록 철저하게 준비했을 것이다. 이미 자객도 자결한 마당에 달리 다른 증거도 없을 것이다. 이번 일로 인해 우문호만 죽어나게 생긴 것이다. 그러므로 원경릉이 황조부를 잘 치료하기를 바라는 수 밖에 없다. 만약 황조부의 병세가 호전된다면 그 공(功)으로 죄를 덮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문호는 부황의 냉철하고 모진 성격인지 알고 있다. 서일은 도대체
가마는 어서방 문 앞에 멈췄다. 예친왕은 탕양에게 “본왕은 황제를 뵈러 갈테니. 너랑 왕야는 여기서 기다리거라.” 라고 말했다.예친왕은 두루마기를 펄럭이며 어서방 안으로 들어갔다. 탕양은 얼굴이 잿빛이 된 정후가 궁 앞에 벌벌 떨고있는 모습을 보았다. 탕양은 그에게 가까이 걸어갔다. “후작(侯爷)나리?”정후는 누군가 자신을 부른 소리에 깜짝 놀랐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머리를 쭉 뻗고 그를 보았다. “탕양!”“후작나리 여기서 무엇하십니까?” 탕양이 물었다. 정후가 울상이 되어 말했다. “황제의 부름에 기다리고 있는데,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황제께서 사람을 시켜 저를 이리로 오라고 하셨는데 만나 뵙지는 못했습니다. 그저 오는 길에 황제께서 보낸 신하가 원경릉에 대해서 몇 마디 물어보고는……. 그냥 여기서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그가 말을 하는 도중에 목여태감이 나왔다. “초왕은 안으로 들어와 알현하라.”탕양과 서일이 우문호를 부축해 가마 밖으로 나왔다. 정후는 우문호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그의 모습이 마치 종잇장처럼 닿기만 해도 부서질 것 같았다.“황제께서는 초왕만 들라하셨다!” 목여태감이 서일과 탕양을 보며 말했다.서일과 탕양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우문호를 힐끗 보았고, 우문호는 천천히 중심을 잡고 일어섰다. “태감님 안내해주시지오.”우문호가 말했다.궁으로 들어가 스무 걸음만 가면 어서방 정전에 이른다. 우문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바닥에 피가 흘렀고, 다리의 상처가 모두 터져서 걸음마다 바닥에는 섬뜩하게 피가 묻었다. 목여태감은 이런 우문호를 보고 놀랐다. 눈썹뼈 부근과 귓가에만 상처가 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심하게 다친 줄을 몰랐다. 명원제가 미간을 찌푸렸다. 우문호가 걸어온 자리에 묻은 피를 보니 마음이 답답했다.다친지 이틀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상처에서 피가 나다니, 우문호가 나를 바보로 아는 것인가?아들 놈이 머리를 꽤나 썼구만. 우문호의 미간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걸어들어오는 길에
예친왕은 피투성이가 된 우문호를 도저히 볼 수 없어 자신의 소매 주머니에서 약을 꺼내 우문호의 입에 넣었다. 그리고 한쪽 무릎을 꿇고 명원제에게 말했다.“황제, 신제(臣弟)는 다섯째가 스스로 자해한 것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이 상처는 어의들도 치유할 수 없을텐데, 한낱 눈속임이라고 하기엔 상처가 심각합니다.”이 말을 들은 원경릉은 가슴이 철렁했다. 황제는 우문호가 스스로 자해한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고? 예친왕의 말이 끝나자 원경릉을 감시하던 구사도 황제에게 사정했다. “폐하. 소인이 보아도 자해는 아닌 것 같습니다. 어의도 왕야가 중상을 입었다고 말했으며 후사(后事)를 준비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태상황께서 왕비를 출궁시켜 왕야를 치료하게 한 것입니다. 소인이 무예를 연마해 본 적이 있어 압니다만, 칼에 베인 상처들은 생명에 큰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명원제는 담담한 눈빛으로 “모두 일어나거라.” 라고 말했다. 구사의 눈빛이 어두웠고, 황제는 시종일관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어의가 급히 달려왔다. 그는 그간 궁 안에서 태상황의 병을 돌볼 정도로 실력이 있는 어의였다. 그는 급하게 무릎을 꿇고 인사를 했다. 위급한 상황이니 어의는 명원제가 일어나라고 명령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어의는 우문호의 앞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는 약상자를 꺼냈다. 원경릉은 황제를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어의가 가져온 약상자를 열고 가위를 꺼내 우문호의 옷을 자른 다음 가제로 우문호의 상처 위쪽을 강하게 감아 지혈했다. 그녀는 빠르게 그의 신발을 벗기고 바지를 잘랐다. 명원제는 우문호의 허벅지 안쪽에 난 상처를 보고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직 지혈하지 못한것인가?” 그가 어의에게 물었다. 어의는 재빨리 일어나 원경릉을 거들었다. 예친왕이 자금단을 꺼내 우문호의 입에 넣은 덕에 피는 서서히 멎고 있었지만, 상처와 봉합한 곳을 잘 처리해야만 했다. 명원제는 자리에 앉아 원경릉이 능숙하게 상처를 치료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조금도 망설
우문호를 다시 살려내다원경릉은 심장 맛사지를 계속 하며, 우문호가 그저 쇼크를 일으킨 것이길 바랬다.명원제는 줄곧 우문호를 생각하면 안타까움과 슬픔이 밀려왔다. 전에 가장 아꼈던 아들 우문호가 아닌가. 비록 마지막엔 실망시켰지만 부자의 정이란 것이 그렇게 잘라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명원제는 우문호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비틀거리자 예친왕이 즉시 그를 부축했다.“떨어뜨려 놓아라!” 명원제는 머리가 어질어질한 가운데 피맺힌 목소리를 뱉는다. 이때 “현비(賢妃) 마마가 초왕 전하를 보러 온다 합니다.” 구사는 앞으로 나가 원경릉을 왕야에게서 떼 놓으려 하는데 어의가 옆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왕야께서 숨을 쉬십니다. 왕야께서 숨을 쉬세요.”명원제는 홱 고개를 돌려 초왕의 가슴이 천천히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봤다.명원제가 직접 코에 호흡이 있는지 확인했다.원경릉은 젖 먹던 힘까지 모두 쥐어짜낸 뒤라 침대에 쓰러져 후후 숨을 몰아쉬고, 저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며, 참았던 슬픔에 목 놓아 울고 싶었다. 사실 원경릉은 이미 울기 시작했다.원경릉도 자신이 예를 어기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한쪽으로 무릎을 끓고 울면서 잘못을 빌었다. “아바마마, 소신이 예를 어긴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울고 싶었어요. 아바마마 잠깐만 우는 것을 허하여 주시옵소서.” 원경릉의 말은 예의에도 어긋나고, 우는 모습도 흉해서 눈물 콧물이 엉망진창이지만, 방금 아들을 잃었다가 다시 찾은 명원제는 조금도 개의하지 않고, 오히려 전에는 예뻐 보이지 않던 며느리가 귀엽게 느껴졌다.어의는 진맥을 마치고 연신 탄성을 지르며, “신기해, 정말 신기한 일이야, 하늘이 도우셨어!”예친왕은 어의를 흘겨 보며, “초왕은 살아날 운명이었군.”어의가 황급히 말을 바꾸며, “맞습니다, 초왕 전하께서 살아나실 운명이셨나 봅니다.”“뭐라고?” 명원제가 어의에게 물었다.어의는 손을 모으고: “폐하께 아룁니다, 초왕 전하는 점점 안정되어 가고 있습
태상황에게 독을 쓴 자는 누구인가“이리 돌아봐!” 우문호가 조용히 말했다.원경릉은 턱을 침대에 걸치고 웃으며 눈물을 떨군다. “죽음에서 살아 온 걸 환영한다.”“넌 짐이 죽기를 간절히 바라는 거 아냐?” 우문호는 환하게 웃는 그녀를 보았다. 이마엔 멍이 들었고, 눈 밑은 울어서 복숭아처럼 퉁퉁 부은 데다, 눈물이 더러웠던 얼굴을 타고 내려 두 줄기 하얀 피부가 드러나 있다. 사실 상상조차 못한 것이, 요 며칠 둘은 물과 불처럼 서로 싸우지 않았던가.“그래, 네가 죽길 간절히 바란 게 사실이야.” 원경릉은 눈물을 훔치며 결국 유치하게, “하지만 내 눈 앞에서 죽는 거 말고, 난 의사이고 환자가 내 앞에서 죽으면, 내 직무상 과실이 되거든.”우문호는 원경릉을 보고 슬그머니 웃었다.구사가 옆에서 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웃었다. 웃고 나서 복잡한 심경으로 원경릉을 응시했다.이 왕비는 사실 그렇게 싫지 않다.우문호가 마음을 가라앉히자, 자금단이 몸 속에서 작용하며, 단전의 기운이 서서히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우문호는 구사를 향해, “태상황 폐하는 무슨 독에 중독 되셨느냐?”구사는 앞으로 한 걸음 나와 말하길,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제 밤 태상황 폐하께서 갑자기 피를 토하시고 혼수상태에 빠지셨다는 것만 알 뿐입니다. 어의는 독에 당하셨다고 진단했습니다.”우문호는 원경릉을 보고, “네가 할바마마께 드린 약이 토혈과 혼수상태를 불러온 것은 아니냐?”원경릉은 “절대 그럴 리 없어.”“그럼 아바마마께서 조사하신 게 반드시 결과가 나와야 하겠구나.” “할바마마를 가서 뵙게 해달라고 아바마마께 말씀드리려고” 원경릉이 말했다.구사는 고개를 흔들며, “왕비 마마, 서두르지 말고 잠시 기다리시지요. 황제 폐하도 손을 쓰셨을 것이고, 분명 예친왕 전하도 말씀하실 겁니다.”밖에 서있던 정후는 마음속으론 딸 원경릉을 수백번도 더 혼을 냈다. 갖은 수단을 동원해 딸을 초왕부에 시집을 보냈더니, 좋은 일이 생기긴 커녕 안 좋은 일만 앞다투어 찾아올 줄 누가
정후의 집과 주명취의 집정후는 속으로 화가 치밀었다. 결국 원경릉 이것이 일을 치고 말았어!집으로 돌아와 충부인(冲夫人, 정후의 부인)에게 화풀이를 하며, “딸 자식을 어떻게 가르친 거야, 온 집안의 힘을 기울여 왕비 자리에 앉혀 놨더니, 우리 집안에 보답한 게 뭐가 있어? 오늘 황제 폐하께서 기분이 좋으셔서 내가 벌을 받지 않았을 뿐이지, 안 그랬으면 이번 기회에 관직이 떨어질 뻔 했다고.”정후의 부인은 줏대가 없는 사람으로 남편이 딸을 호통치자 자신도 같이 분개하며, “앞으로 걔 혼자 죽든 살든 알아서 하라고 합시다, 우리는 상관하지 말아요.”“상관은 무슨? 앞으로 만약 우리집에 와서 돈 달라고 하거든 일체 줘선 안돼.” 생각해보니 전에 원경릉에게 돈을 주고 병부(兵部)에 뇌물을 주게 한 게 떠올랐으나 그 돈은 이미 떼인 돈이나 다름 없다 생각하니 속이 쓰렸다.정후 부인은 덩달아 “알겠어요.” 대답했다.정후가 차를 한 잔 마시며 계속 생각에 잠겼다. 원경릉이 초왕의 총애를 얻지 못하면 왕비의 지위도 믿을 게 못되니 다음 수를 잘 두는 수밖에 없다. 정후는 병부 시랑(侍郎)을 몇 년간 역임하며 상서(尚書) 자리가 3명째 바뀌는 것을 봤지만, 그가 승진할 기회는 오지 않고,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다.주씨 집안 쪽은 조정에 이미 적지 않은 사람이 앞자리에 몰려 있다는 소문이 돌고, 제왕이 태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서, 만약 주씨 집안 쪽에 돈을 써서 줄을 대면 어쩌면 일이 성사될 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가 쓸 수 있는 은자가 얼마나 되는가?” 정후가 부인에게 물었다.“2만 2천냥쯤 됩니다.” 정후 부인이 대답했다.“가서 3천냥만 좀 가져 오구려. 주씨 집에 좀 다녀와야 겠어.”정후 부인은 어리둥절해 하며, “주씨 집이요? 거긴 아닌 거 같아요. 주씨 집 큰 딸 주명취가 원래 초왕한테 시집가려던 걸 경릉이 때문에 깨졌잖아요. 주씨 집안이 우리를 원망해도 모자를 판에 우리를 상대나 하겠어요?”정후 부인은 주부인(周夫人, 주명취의 어머니)
주명취의 계략과 태상황에게 불려간 원경릉주명취는 할아버지의 걱정이 지나치다는 생각에: “할아버지 걱정 마세요, 원경릉은 죄목에서 못 벗어나요, 할바마마의 병이 원래 위중하셨는데, 지금 독에 중독 돼서 혼수상태 시니 어떻게 버텨요? 할바마마가 붕어하시면 무엇때문에 붕어하셨든, 원경릉은 제멋대로 치료하여 할바마마의 병을 악화시킨 죄로 더더군다나 공을 따질 여지가 없지요.”왕실의 일은 파란만장 변화무쌍해서 주명취도 아직 꿰뚫어보지 못하는 게 태반이다. 하물며 원경릉은 말할 것도 없다.상황이 이렇게 복잡하고, 초왕이 연루되어 위기 일발이라 이대로면 초왕부도 끝장인 셈이다.우문호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큰 일을 위해선 작은 희생은 어쩔 수 없다. 이게 우문호의 운명일지도 모른다. “너무 자만하지 말아라, 매사에 마지막 한 발자국이란 변수가 있게 마련이다.” 주 재상은 갑자기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태상황께 독을 쓴 게, 너희들 짓은 아니겠지?” 주명취는 깜짝 놀라, “정말 저희가 한 짓이 아니어요, 손녀가 제 아무리 담이 크기로 소니 감히 할바마마를 시해할 리가요.”주 재상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나이 들어 늘어진 눈꺼풀로, “너희들이 한 짓이 아니면 됐다. 원경릉이 어째서 의술을 알고 있지는 알아보마. 너는 그만 나가보거라.”주명취는 일어나 인사를 드리고 밖으로 나왔다.서재 문을 나서자 밖은 땅거미가 지고 초왕을 생각하니 마음이 여전히 달갑지가 않다.원래 초왕은 줄곧 주명취를 못 잊었는데, 문창탑에서 대화로 주명취는 초왕의 마음이 떠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초왕의 마음에 원경릉이 있는 걸까? 그 천박한 여자가, 초왕에 걸맞을 리가 있어?원경릉이 태상황의 병구완을 한 걸 추측해 보자, 초왕부에 가서 우문호의 상처를 보고 온 제왕이 말하길 우문호의 상태를 완전히 원경릉에게 맡겼다고 했다. 주명취는 이리 저리 머리를 굴려보니, 태상황이 그날 갑자기 호전되신 게 원경릉이 손을 쓴게 틀림없다는데 이르렀다. 애초에 주명취가 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