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의비경천하>, <의소경성>천재 의학 박사인 원경릉이 시공간을 초월해 과거로 돌아가 초왕비가 된다. 그녀는 과거로 돌아가자마자 중증 환자를 만나게 되는데, 비록 시공간을 초월했지만 의사의 사명을 가지고 환자를 고쳐주다가 억울하게 오해를 사 하마터면 옥살이까지 할 뻔 한다.병에 걸려 위독한 태상황을 치료하려고 하다가 왕의 오해를 받게 되는데……시공간을 초월해 오게 된 과거에서 그녀는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인가?더 기가막힌건 그녀를 못살게 괴롭히는 왕이라는 남자가 그녀의 남편이라는 것이다!“너는 무슨 재주가 있어서 내가 너를 싫어하게 만드느냐? 본왕은 그냥 네 존재 자체가 증오스럽다.”원경릉은 이런 말을 듣고도 활짝 웃으면 말한다. “저라고 왜 왕야를 싫어하지 않겠어요? 다만 우린 모두 지식인이잖아요. 체면은 지켜야죠.”
View More태상황의 말은 즉 원경릉 배 속에 아이가 딸이란 소리로, 증손녀의 할아버지로서 여아홍을 땅에 묻었다가 우리 복덩이가 시집갈 때 파내서 마신다는 말이었다.원경릉이 돌연 호기심이 발동해서 물었다. “폐하는 여아홍을 묻을 거라고 어떻게 확신하세요?”“과인은 알아.” 태상황이 단정적으로 말했다.“어떻게 아시는데요?” “50년 전에 관상가가 그랬어. 과인이 올해 손녀를 하나 더 볼 거라고.”“그럼, 미색이 낳는 아이일 수도 있겠네요.”“그럼, 손녀 둘을 보는 거지!” 아주 여유만만이다.원경릉이 배시시 웃으며, “미색이 쌍둥이면요!”태상황은 눈동자를 굴리며 허둥지둥하더니, “그럼, 셋이 더 생기는 걸로!”“미색도 딸을 낳나 봐요?” 원경릉은 아주 장난기가 발동했다.태상황은 원경릉의 말에 아예 대꾸하지 않기로 했다. 관상가의 말을 안 믿다니 천벌받지.원경릉이 일어나 세 어르신을 안으로 불러 맥을 짚어 보았다.소요공의 건강은 여전했으며, 심폐기능은 젊은 사람보다 오히려 나을 정도로 손발이 민첩하고 허리가 튼튼했다. 소요공은 이에 자만해서 자신이 백 년은 너끈히 살 수 있다고 했다.태상황이 일부러 못되게 말했다. “보통 건강한 사람이 먼저 죽더라.”소요공이 태상황에게 눈을 흘기며, “먼저 죽으면 복 받은 거죠. 두 사람 다 죽고 나 혼자 남으면 너무 외로울 테니까요!”태상황과 주재상이 고개를 들어 소요공을 보는 눈동자에 무언가 천천히 떠오르더니 무거운 얼굴이 되었다. 그들은 모두 마음속으로 짐작하고 있는 게 있었다. 어느 날, 그리 멀지 않아 세 늙은이 중 하나가 먼저 죽고, 둘이 남았다가 마지막엔 결국 혼자 남을 것을 말이다.어릴 때부터 함께 늙어간다는 건 하늘이 내려 주신 복이자 귀한 인연이지만 그것도 결국 다하는 날이 오기 마련이다.청진기를 들고 있던 원경릉도 순간 먹먹했다.주재상이 곁에 있는 희상궁에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괜찮아, 다음 생이 또 있으니까. 희망이 언제나 있지.”희상궁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예, 다음 생이 또 있으
남자아이 셋은 다 부를 돌림자로 언청이인 아이는 최부진, 점이 있는 아이는 최부용, 실명한 아이는 최부생이라고 했다.원경릉은 정화 군주 집을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소월각으로 가자 아이들이 모두 쿨쿨 잠들어 있었다. 최근 애들이 서로 현대 할머니 쪽으로 가겠다며 앞다투어 기회를 노렸다. 원경릉은 피로해서 관자놀이를 주무르면서도 내심 기쁜 것이 주진이 얼른 결과를 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원경릉은 원숭이의 대뇌에 대해서는 홍엽에게 말해야 할지 사실 망설여졌다. 원숭이에 정이 깊은 홍엽은 원숭이가 다른 몸 또는 의식으로 다른 시공에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 기뻐할 게 틀림없지만 고집스러운 개성으로 보건대 찾으러 갈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아무런 방향성 없이 찾으면 어떤 결과도 얻지 못한다. 원숭이가 과연 어느 시공에 있는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으며 존재 여부 자체도 미지수기 때문이다.그래서 심사숙고 끝에 원경릉은 일단 홍엽에게 알리지 않고 주진 쪽에서 연구를 계속하다가 결과가 나왔을 때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다음날 희상궁이 궁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원경릉이 식구들을 이끌고 희상궁과 같이 궁으로 갔다. 희상궁은 며칠 동안 궁에서 시중을 들었다. 아이들이 궁에 없으니 애들이 보고싶어 초왕부로 돌아오고 싶어 했다. 결국 희상궁이 다시 초왕부로 돌아오자 궁중에 세 어르신들이 앞다투어 희상궁을 궁으로 돌려보내라고 난리셨다.희상궁은 자기를 둘로 쪼갤 수 없음이 안타까웠다. 하나는 궁에 하나는 초왕부에 있으면 좋을 텐데. 애들도 어르신들도 도통 신경이 쓰여서 어쩔 줄 모르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궁으로 가는 길에 희상궁은 구시렁거렸다. “앞으로 양쪽을 왔다 갔다 할까 봐요. 열흘은 궁에 있고 또 열흘은 초왕부에 있고.”“희상궁, 그렇게 애쓸 필요 없어요. 우리가 보고 싶을 때마다 우리가 궁으로 만나러 갈게요!” 만두가 귀염을 떨며 말했다.희상궁이 만두를 와락 안더니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우리 황태손은 정말 착하기도 하시지. 벌써 철이 다 들었어
이틀 뒤 명월암이 철거 되자 원경릉은 사람을 정화 군주 집으로 보내고 자신도 가서 아이들이 오기를 기다렸다.아이들은 전부 13살으로 남자 아이는 셋, 여자 아이는 총 열명이었다. 제일 나이가 많은 아이가 한 살 반, 제일 어린 아이가 막 2달을 지났다.남자아이 셋은 전부 장애가 있었는데 하나는 청각장애였고, 또 하나는 얼굴에 큰 반점이 거의 얼굴 절반을 덮었는데 신기하게 나머지 절반은 아주 잘생겼다. 세번째 남자아이는 눈이 보이지 않았는데 이 아이가 한 살 반으로 제일 나이가 많았다.같이 따라온 비구니가 모두에게 얘기했다. “여자는 버려진 애들로 가난한 집에 딸을 많이 낳다 보니 다 키울 수 없어서 몰래 암자 앞에 버리고 간 겁니다. 남자는 보통 차마 못 버리고 아무리 힘들어도 키우지만 셋은 장애가 있어서 차마 죽게 두지는 못하겠으니 암자 앞에 버리고 간 거겠지요. 나무아미타불, 군주님께서 얘들을 거둬 주셨기 망정이지 소승도 얘들을 어떻게 할지 몰랐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비구니가 이 말을 하며 정화 군주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정화 군주는 언청이인 아이를 안고 황급히 답례했다. “감사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아이들이 좋아서 그런걸요!”비구니가 말했다. “군주께서 아이들을 잘 대해 주실 것을 알지만 노파심에 한 말씀만 올리겠습니다. 이렇게 선한 인연을 맺으셨으니 군주께서는 부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아이들을 나 몰라라 내버리시는 일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절대로 애들을 버릴 리는 없습니다!” 정화 군주가 살살 언청이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속삭였다.비구니가 합장하고 다시 한번 감사인사를 했다.그리고 원경릉은 아이들의 건강상태를 점검하며 질병이 있는지 살폈다. 여자 애들은 별 문제 없고 단지 쇠약했을 뿐으로, 비구니 암자다 보니 제대로 먹을 게 없어서 몸짓이 다 작았다. 다른 건 못 먹고 멀건 미음만 먹었기 때문이다. 비구니들은 채소만 먹으니 당연히 고기가 들어간 음식은 먹지 못했던 것이다. 원경릉은 실명한 남자 아이의 실명 원인을 바로
정화 군주는 이 말을 마치자마자 집사를 불러 위왕을 환송해 드리라고 명했다. 위왕은 두어 걸음 걷다가 자꾸 뒤를 돌아서 정화 군주가 사라진 복도 쪽을 보고 또 보더니 미련을 잔뜩 남긴 채 떠났다.본관으로 돌아오니 모두 정화 군주에게 눈길이 쏠렸다. 그녀가 서서히 웃으며 다가왔다. “우리 안 싸웠어요!”정화 군주가 아직 웃고 있는 것을 보고 모두 안심이 됐다. 요 부인이 얼른 화제를 옮겼다. “제가 가져온 배냇저고리 좀 볼래요? 이웃 사람들과 같이 사흘에 걸쳐 만들었는데 정말 예뻐요!”“네, 보고 싶어요!” 미색은 배냇저고리를 본 적이 거의 없어서 얼른 대꾸했다.상자가 열리고 배냇저고리가 한 벌 씩 펼쳐지자 각양각색에 앙증맞고 귀엽다. 정화 군주는 그중 하나를 들어 옷감을 만져보고 요 부인을 칭찬했다. “옷감이 정말 부드러워요. 애들 피부에 딱 이네요.”“순면이라 입기 딱 좋지!” 요 부인이 말했다.“아직 부족하죠?”“서두르고 있으니 안심해요. 나중에 애들 오면 바꿔 입힐 거니까요.” 요 부인은 역시 일을 빈틈없이 처리했다.정화 군주의 눈빛에 자애로운 느낌이 돌았다. “그럼 됐네요.” 원경릉이 말했다. “저기 우리집에도 입던 배냇저고리가 있는데 드릴 수 있어요.”“뱃속에 아기를 위해서 남겨두지 않고요?”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그렇게나 많이 못 입어요. 형이 다섯 명인데 어디 다 입어 보기나 하겠어요?” 원경릉이 웃으며 답했다.“그리고 아가가 물려받지 못할 수도 있을 걸요? 공주님일 수도 있잖아요.” 원용의가 웃으며 말했다. 원용의는 태자의 마음을 잘 알아서 원 언니가 이번에 가진 아이가 딸이기를 바랬다. 그래야 태자가 자기 집에 와서 딸을 납치해가자는 생각을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태자는 남의 집 딸을 볼 때마다 자기 집에 못 데리고 가는 게 한이란 표정이었다. 정화 군주가 기뻐하며 답했다. “그거 정말 잘 됐네요. 제가 같이 가서 가져올게요.”“왔다 갔다 하실 필요 없어요. 사람을 시켜서 보내면 되니깐요.” 원경릉이 말했다.“
위왕은 편청에 앉았지만 여전히 머리가 답답해 무거웠다. 오겠다고 굳이 고집을 부린 건 불안해서였다.문 입구에 옷자락이 슬쩍 보이는가 싶어 얼른 고개를 들자, 정화 군주의 순결한 얼굴이 눈동자에 맺히고 위왕은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정화 군주가 걸어와 위왕 앞에 서서 그를 바라보며 작게 속삭였다. “앉으세요!”위왕은 앉아 두 손을 무릎위에 올려 정중한 자세를 취했다. 위왕은 정화 군주에게 늘 진중한 모습을 보였다. 정화 군주가 위왕 맞은 편에 앉아서 물었다. “저에게 하실 말씀 있으세요?”“당신……” 위왕이 입을 뗐으나 목이 메였다. “왜 이렇게까지 자신을 괴롭히는 거야? 정말 누군가에게 시집을 가는 거면 나도 말릴 생각 없고, 난처하게 하지도 않아.”정화 군주가 고개를 저었다. “전 이게 정말 좋아요.”위왕이 정화를 보니 눈동자에서 평안이 느껴져 마치 예전 같이 느껴졌지만 이건 거짓일거라고 생각했다. “난 안 믿어!”“믿던 안 믿던 다 좋아요. 전 이미 이렇게 했으니까,” 정화 군주가 위왕을 바라보며 시원하고 투명한 목소리로 위로했다. “전 새로운 삶을 살 거고 당신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래요. 당신이 아내를 맞으셔야 한다면 제가 어떻게 느낄까 고민하실 필요 없어요. 과거는 다 지난 일인 걸요. 우린 다 내려놔야 해요. 살아가려면,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언제 까지고 과거 일에 연연해서는 안돼요. 안 그러면 앞으로 길고 긴 여생을 어떻게 버틸 수가 있겠어요?”위왕의 눈가가 조금 붉어졌고 살짝 내려간 눈꼬리가 한없이 고집스러웠다. “난 이미 왕비가 있고, 이 생에 다른 사람과 혼인 안 해!”정화 군주가 위왕에게 말했다. “그럼 가서 당신이 하셔야 할 일을 하세요. 왕야는 황제 폐하의 아들이시라 당신 인생에 남녀 문제가 다가 아닙니다. 어깨에 무거운 책임을 지고 계세요. 그래서 감히 제가 한 말씀 드리자면 내려놓아야 할 것은 내려놓으시고 해야 할 일은 하시길 바래요.”“그게 당신이 원하는 건가?” 위왕의 목소리가 떨려왔다.정화 군주가 말
한편, 정화 군주는 손 왕비가 걱정됐다. 하지만 방금 몇 마디 말다툼한 정도로 둘 사이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정화 군주는 손 왕비의 손을 잡고 진심을 다해 말했다. “앞으로 가르쳐 달라고 할 일이 엄청 많으니까 꼭 와야 돼.”“당연히 가지!” 손 왕비가 정화 군주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그만 목소리로 사과했다. “미안해, 내가 방금 무슨 말을 지껄였는지 원, 마음에 두지 마.”그러자 정화 군주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동서가 뭐라고 했는지 난 다 까먹은지 오래야.”나아진 분위기에 모두 서로 마주 보며 웃으며 기뻐했다. 그리고 여자들이 한참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계집종이 와서 위왕이 정화 군주를 보러 왔다고 고했다.손 왕비가 벌떡 일어나 깔보며 소리쳤다. “안 본다고, 꺼지라고 해!”요 부인이 매섭게 노려보았다. “지금 찢어진 입이라고 함부로 놀린다? 볼지 말지 네가 정해?”손 왕비가 뚜껑이 열려서 대꾸했다. “아니 이 상황에 오긴 왜 와? 분란만 일으키는 거 아닌가요?”“난 괜찮아, 오면 오는 거지. 나도 할 말이 있고.”그리고 정화 군주가 고개를 돌려 계집종에게 말했다. “위왕 전하께 편청에서 기다리시라고 해, 내가 금방 가겠다고!”“예!” 그러자 옆에 있던 원경릉이 정화 군주에게 물었다. “정말 만나려고요?”정화 군주가 찻잔을 받쳐 들고 천천히 한 모금 마시더니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그 사람은 내려놓을 필요가 있어요. 앞으로 살아가야 하니까요. 전 지금 괜찮으니까 염려할 필요 없어요.”정화 군주는 잔을 내려놓고 일어났다. 사람들의 걱정 어린 시선을 받고 헛웃음을 지었다. “제 걱정 마세요. 전 지금 희망을 전부 내려놨잖아요. 그런데도 여전히 다들 저 때문에 걱정하시면 너무 모순 아닌가요? 차 드세요. 이 차 진짜 좋은 거예요. 사촌 오빠가 대흥에서 절 위해 가지고 오신 거니까 남기지 말고 다 드셔야 해요!”그녀는 말을 마치고 치마에 떨어진 차 가루를 떨고 일어서 나갔다.위왕은 계집종이 이끄는 대로 우선 편청으로 갔
정화 군주가 당황해서 말을 더듬거렸다. “난……난 스스로를 괴롭히는 게 아니야, 왜 그런 생각을 해? 그게 나한테 무슨 괴로움이라고?”“너 지금 아이를 잃어서 이러는 거잖아?” 손 왕비가 똥 오줌을 못 가리고 흥분한 나머지 뒷일 생각없이 대놓고 질러버렸다.“형님!” 원경릉이 놀라 돌아보며 손 왕비를 꾸짖었다.손 왕비는 말을 뱉은 후 실언했다는 걸 알았지만 아예 무시하고 더 못된 말을 퍼부었다. “사실이 그런데, 말 못할 게 뭐 있어? 이미 지난 일인데 또 그 일때문에 평생 자신을 못 살게 굴어야 직성이 풀려? 네가 전신에게 시집간다고 하는 것도 네 선택을 존중하라고 태자비가 말려서 그래, 따지지 말자, 존중하자 하고 넘어갔어. 그런데 애들을 거둬서 키운다고? 그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행동이야? 그게 얼마나 책임이 큰 일인 줄 알기나 해? 애들로 너의 결핍을 채우려 하는 거면 애들을 망치고 네 자신도 망치는 길이야.”“됐어요, 형님 그만하세요. 정화 군주 얘기부터 좀 듣자고요!” 원경릉이 못 참고 손 왕비를 끌어당겨 의자에 앉히고 차를 한 잔 건넸다. “진정해요, 진정!”손 왕비는 차를 받고 고개를 돌리더니 몰래 눈물을 훔쳤다.그렇게 잠시 정적이 흘렀다.모두 정화 군주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손 왕비의 말이 너무 직설적이어서 다들 무슨 말로 위로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정화 군주가 한숨을 쉬고 조금 화난 얼굴로 말했다. “어떻게 제가 뭘 하려고만 하면 전부 이전 일을 끌고 들어오는 거죠? 도대체 제가 새 삶을 살기 싫어하는 건가요, 아니면 그럴 기회를 안 주는 건가요? 아이를 잃은 경험이 있다고 해서 제 아쉬움을 채우기 위해 얘들을 키운다는 건 어불성설이에요. 그저 제가 가서 봤을 때 아이들이 가여웠어요. 명월암이 철거된 뒤 대부분의 아이들은 보안당에 보내질 텐데 아직 너무나도 어린 아기들이라 반드시 따로 돌봐야 해요. 그런데 마침 전 그런 능력도 있고 돈도 있죠. 유모를 고용할 수 있고, 걔들을 돌볼 능력이 있어요. 제 자신도
“흥분하긴 했죠. 정화 군주를 찾아가겠다고 고집을 피우는데.. 말리느라 죽을뻔 했습니다. 최씨 집안에서 잡아다가 아주 가죽을 홀랑 벗기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구사가 어이없어했다.우문호는 구사가 밤새 위왕을 돌보느라 피곤함에 지친 것을 보고 말했다. “됐어, 가봐. 이 일은 나한테 맡기고.”“예, 전 갑니다!” 구사가 하품을 하며 나갔다.원경릉도 옷을 걸치며 상황을 묻더니 약간 걱정스레 말했다. “탕양한테 가서 며칠 지내며 지켜보라고 하자.”“그래도 되겠군!” 우문호가 사람을 시켜 탕양에게 가서 짐을 꾸려 위왕부에서 며칠 묵으며 위왕이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도록 돌보도록 했다.초왕부는 당분간은 큰 일이 없으니 탕양이 며칠 자리를 비워도 별문제 없다고 했다. 우문호의 분부를 받고 탕양은 바로 짐을 싸 말을 달려 위왕부로 갔다.한편 정화 군주는 결정을 마치자마자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결국 별다른 의식도 없이최씨 집을 나왔다. 그녀는 심지어 사람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혼사를 마친 뒤 바로 새집으로 이사한 뒤에야 각 왕부에 사람을 보내 새 집에 차 마시러 오라고 했다.그러자 요 부인이 오늘도 상자 몇 개에 담긴 물건을 가지고 왔다. 다들 선물을 가지고 왔지만 요 부인처럼 이렇게 거대하지는 않았다.정화 군주 집은 혜민문대가 뒤쪽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는데 규모가 작지 않은 것이 어찌 됐든 군주라는 봉호에 걸맞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집은 조금은 어수선한 분위기로 주변에 많은 빈민들이 사는 데다가 집값도 싼 게 원래 상인의 집으로 낮은 가격에 내놓은 것을 얼른 사들인 것이기 때문이다. 손 왕비는 집 주변을 쓰윽 보더니 마음에 안 든 듯한 말투로 말했다. “이 집은 크기만 너무 크고 썰렁해. 게다가 주변이 이렇게나 정신이 없는데, 너 대체 여기서 어떻게 살려고 그래?”“여기 좋아, 널찍하니!” 정화 군주가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집 안을 정돈하고 장식을 더하니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보기에도 확실히 위엄이 있고 마당이 3개에 사랑채가 2
위왕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얼굴에 간신히 미소를 지으며 버티고 있었지만 귀가 윙윙 울리는 게 아무것도 똑똑히 들리지 않았다.그가 줄곧 두려워하던 일이 드디어 터져 버린 것이다.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단 사실이었다. 어느 날 라라가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려고 할 때 자신이 어떤 태도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수도 없이 상상해 왔다.“셋째 형, 아바마마께서 축배를 드셨어요!” 한참 뒤 귓가에 우문호의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우문호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위왕은 기계적으로 잔을 들고 아바마마를 바라봤다.아바마마가 환희로 가득 찬 미소를 지으며 얘기하자 위왕도 따라 웃었다. 아바마마께서 잔을 들고 다 마시자, 위왕도 잔을 비웠다. 술은 더할 나위 없이 쓰고 독했는데 목구멍을 타고 지나가자 그게 또 더할 나위 없이 통쾌했다.모두 웃고 기뻐했다. 위왕이 정화를 보니 그녀도 입술에 미소를 띤 채 역시 즐거워하고 있다.오늘은 기쁜 날이기에 이례적으로 신하들과 아녀자들이 궁 안에서 한자리에 앉을 수도 있었다. 그 중 특히나 정화 군주는 정말 기뻐 보였다. 웃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녀는 더 웃으며 지내야 했다. 앞으로 그 사람이 정화 군주와 혼인하고 그녀를 늘 기쁘게 해 줄 수 있기를 바랐다.난 왜 전장에서 죽지 않았을까? 위왕은 자신이 적의 손에 난도질 되어 죽었어야 했다고 생각했다.머릿속은 어지러웠고 생각 없이 술을 한 잔 두 잔 들이켰다. 주량이 꽤 되는데 몇 잔 마시니 취기가 올라 더는 마시지 않았다. 실수할까 두려워서였다. 위왕은 자신을 통제하지 못해 실패한 전적이 있으니 이제 자신을 제대로 통제해야 겠다고 결심했다.다행히도 위왕은 이 장면을 수천 번을 예상했기에 받아들일 수 있었다.우문호는 줄곧 위왕을 지켜보며 사고라도 치지 않나 주목했으나 다행히 태산처럼 묵묵히 앉아 있기만 하고 술을 들이붓지도 않았다. 그저 한 모금씩 천천히 마시는 게 정말 성숙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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