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정화 군주는 손 왕비가 걱정됐다. 하지만 방금 몇 마디 말다툼한 정도로 둘 사이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정화 군주는 손 왕비의 손을 잡고 진심을 다해 말했다. “앞으로 가르쳐 달라고 할 일이 엄청 많으니까 꼭 와야 돼.”“당연히 가지!” 손 왕비가 정화 군주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그만 목소리로 사과했다. “미안해, 내가 방금 무슨 말을 지껄였는지 원, 마음에 두지 마.”그러자 정화 군주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동서가 뭐라고 했는지 난 다 까먹은지 오래야.”나아진 분위기에 모두 서로 마주 보며 웃으며 기뻐했다. 그리고 여자들이 한참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계집종이 와서 위왕이 정화 군주를 보러 왔다고 고했다.손 왕비가 벌떡 일어나 깔보며 소리쳤다. “안 본다고, 꺼지라고 해!”요 부인이 매섭게 노려보았다. “지금 찢어진 입이라고 함부로 놀린다? 볼지 말지 네가 정해?”손 왕비가 뚜껑이 열려서 대꾸했다. “아니 이 상황에 오긴 왜 와? 분란만 일으키는 거 아닌가요?”“난 괜찮아, 오면 오는 거지. 나도 할 말이 있고.”그리고 정화 군주가 고개를 돌려 계집종에게 말했다. “위왕 전하께 편청에서 기다리시라고 해, 내가 금방 가겠다고!”“예!” 그러자 옆에 있던 원경릉이 정화 군주에게 물었다. “정말 만나려고요?”정화 군주가 찻잔을 받쳐 들고 천천히 한 모금 마시더니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그 사람은 내려놓을 필요가 있어요. 앞으로 살아가야 하니까요. 전 지금 괜찮으니까 염려할 필요 없어요.”정화 군주는 잔을 내려놓고 일어났다. 사람들의 걱정 어린 시선을 받고 헛웃음을 지었다. “제 걱정 마세요. 전 지금 희망을 전부 내려놨잖아요. 그런데도 여전히 다들 저 때문에 걱정하시면 너무 모순 아닌가요? 차 드세요. 이 차 진짜 좋은 거예요. 사촌 오빠가 대흥에서 절 위해 가지고 오신 거니까 남기지 말고 다 드셔야 해요!”그녀는 말을 마치고 치마에 떨어진 차 가루를 떨고 일어서 나갔다.위왕은 계집종이 이끄는 대로 우선 편청으로 갔
위왕은 편청에 앉았지만 여전히 머리가 답답해 무거웠다. 오겠다고 굳이 고집을 부린 건 불안해서였다.문 입구에 옷자락이 슬쩍 보이는가 싶어 얼른 고개를 들자, 정화 군주의 순결한 얼굴이 눈동자에 맺히고 위왕은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정화 군주가 걸어와 위왕 앞에 서서 그를 바라보며 작게 속삭였다. “앉으세요!”위왕은 앉아 두 손을 무릎위에 올려 정중한 자세를 취했다. 위왕은 정화 군주에게 늘 진중한 모습을 보였다. 정화 군주가 위왕 맞은 편에 앉아서 물었다. “저에게 하실 말씀 있으세요?”“당신……” 위왕이 입을 뗐으나 목이 메였다. “왜 이렇게까지 자신을 괴롭히는 거야? 정말 누군가에게 시집을 가는 거면 나도 말릴 생각 없고, 난처하게 하지도 않아.”정화 군주가 고개를 저었다. “전 이게 정말 좋아요.”위왕이 정화를 보니 눈동자에서 평안이 느껴져 마치 예전 같이 느껴졌지만 이건 거짓일거라고 생각했다. “난 안 믿어!”“믿던 안 믿던 다 좋아요. 전 이미 이렇게 했으니까,” 정화 군주가 위왕을 바라보며 시원하고 투명한 목소리로 위로했다. “전 새로운 삶을 살 거고 당신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래요. 당신이 아내를 맞으셔야 한다면 제가 어떻게 느낄까 고민하실 필요 없어요. 과거는 다 지난 일인 걸요. 우린 다 내려놔야 해요. 살아가려면,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언제 까지고 과거 일에 연연해서는 안돼요. 안 그러면 앞으로 길고 긴 여생을 어떻게 버틸 수가 있겠어요?”위왕의 눈가가 조금 붉어졌고 살짝 내려간 눈꼬리가 한없이 고집스러웠다. “난 이미 왕비가 있고, 이 생에 다른 사람과 혼인 안 해!”정화 군주가 위왕에게 말했다. “그럼 가서 당신이 하셔야 할 일을 하세요. 왕야는 황제 폐하의 아들이시라 당신 인생에 남녀 문제가 다가 아닙니다. 어깨에 무거운 책임을 지고 계세요. 그래서 감히 제가 한 말씀 드리자면 내려놓아야 할 것은 내려놓으시고 해야 할 일은 하시길 바래요.”“그게 당신이 원하는 건가?” 위왕의 목소리가 떨려왔다.정화 군주가 말
정화 군주는 이 말을 마치자마자 집사를 불러 위왕을 환송해 드리라고 명했다. 위왕은 두어 걸음 걷다가 자꾸 뒤를 돌아서 정화 군주가 사라진 복도 쪽을 보고 또 보더니 미련을 잔뜩 남긴 채 떠났다.본관으로 돌아오니 모두 정화 군주에게 눈길이 쏠렸다. 그녀가 서서히 웃으며 다가왔다. “우리 안 싸웠어요!”정화 군주가 아직 웃고 있는 것을 보고 모두 안심이 됐다. 요 부인이 얼른 화제를 옮겼다. “제가 가져온 배냇저고리 좀 볼래요? 이웃 사람들과 같이 사흘에 걸쳐 만들었는데 정말 예뻐요!”“네, 보고 싶어요!” 미색은 배냇저고리를 본 적이 거의 없어서 얼른 대꾸했다.상자가 열리고 배냇저고리가 한 벌 씩 펼쳐지자 각양각색에 앙증맞고 귀엽다. 정화 군주는 그중 하나를 들어 옷감을 만져보고 요 부인을 칭찬했다. “옷감이 정말 부드러워요. 애들 피부에 딱 이네요.”“순면이라 입기 딱 좋지!” 요 부인이 말했다.“아직 부족하죠?”“서두르고 있으니 안심해요. 나중에 애들 오면 바꿔 입힐 거니까요.” 요 부인은 역시 일을 빈틈없이 처리했다.정화 군주의 눈빛에 자애로운 느낌이 돌았다. “그럼 됐네요.” 원경릉이 말했다. “저기 우리집에도 입던 배냇저고리가 있는데 드릴 수 있어요.”“뱃속에 아기를 위해서 남겨두지 않고요?”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그렇게나 많이 못 입어요. 형이 다섯 명인데 어디 다 입어 보기나 하겠어요?” 원경릉이 웃으며 답했다.“그리고 아가가 물려받지 못할 수도 있을 걸요? 공주님일 수도 있잖아요.” 원용의가 웃으며 말했다. 원용의는 태자의 마음을 잘 알아서 원 언니가 이번에 가진 아이가 딸이기를 바랬다. 그래야 태자가 자기 집에 와서 딸을 납치해가자는 생각을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태자는 남의 집 딸을 볼 때마다 자기 집에 못 데리고 가는 게 한이란 표정이었다. 정화 군주가 기뻐하며 답했다. “그거 정말 잘 됐네요. 제가 같이 가서 가져올게요.”“왔다 갔다 하실 필요 없어요. 사람을 시켜서 보내면 되니깐요.” 원경릉이 말했다.“
이틀 뒤 명월암이 철거 되자 원경릉은 사람을 정화 군주 집으로 보내고 자신도 가서 아이들이 오기를 기다렸다.아이들은 전부 13살으로 남자 아이는 셋, 여자 아이는 총 열명이었다. 제일 나이가 많은 아이가 한 살 반, 제일 어린 아이가 막 2달을 지났다.남자아이 셋은 전부 장애가 있었는데 하나는 청각장애였고, 또 하나는 얼굴에 큰 반점이 거의 얼굴 절반을 덮었는데 신기하게 나머지 절반은 아주 잘생겼다. 세번째 남자아이는 눈이 보이지 않았는데 이 아이가 한 살 반으로 제일 나이가 많았다.같이 따라온 비구니가 모두에게 얘기했다. “여자는 버려진 애들로 가난한 집에 딸을 많이 낳다 보니 다 키울 수 없어서 몰래 암자 앞에 버리고 간 겁니다. 남자는 보통 차마 못 버리고 아무리 힘들어도 키우지만 셋은 장애가 있어서 차마 죽게 두지는 못하겠으니 암자 앞에 버리고 간 거겠지요. 나무아미타불, 군주님께서 얘들을 거둬 주셨기 망정이지 소승도 얘들을 어떻게 할지 몰랐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비구니가 이 말을 하며 정화 군주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정화 군주는 언청이인 아이를 안고 황급히 답례했다. “감사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아이들이 좋아서 그런걸요!”비구니가 말했다. “군주께서 아이들을 잘 대해 주실 것을 알지만 노파심에 한 말씀만 올리겠습니다. 이렇게 선한 인연을 맺으셨으니 군주께서는 부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아이들을 나 몰라라 내버리시는 일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절대로 애들을 버릴 리는 없습니다!” 정화 군주가 살살 언청이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속삭였다.비구니가 합장하고 다시 한번 감사인사를 했다.그리고 원경릉은 아이들의 건강상태를 점검하며 질병이 있는지 살폈다. 여자 애들은 별 문제 없고 단지 쇠약했을 뿐으로, 비구니 암자다 보니 제대로 먹을 게 없어서 몸짓이 다 작았다. 다른 건 못 먹고 멀건 미음만 먹었기 때문이다. 비구니들은 채소만 먹으니 당연히 고기가 들어간 음식은 먹지 못했던 것이다. 원경릉은 실명한 남자 아이의 실명 원인을 바로
남자아이 셋은 다 부를 돌림자로 언청이인 아이는 최부진, 점이 있는 아이는 최부용, 실명한 아이는 최부생이라고 했다.원경릉은 정화 군주 집을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소월각으로 가자 아이들이 모두 쿨쿨 잠들어 있었다. 최근 애들이 서로 현대 할머니 쪽으로 가겠다며 앞다투어 기회를 노렸다. 원경릉은 피로해서 관자놀이를 주무르면서도 내심 기쁜 것이 주진이 얼른 결과를 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원경릉은 원숭이의 대뇌에 대해서는 홍엽에게 말해야 할지 사실 망설여졌다. 원숭이에 정이 깊은 홍엽은 원숭이가 다른 몸 또는 의식으로 다른 시공에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 기뻐할 게 틀림없지만 고집스러운 개성으로 보건대 찾으러 갈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아무런 방향성 없이 찾으면 어떤 결과도 얻지 못한다. 원숭이가 과연 어느 시공에 있는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으며 존재 여부 자체도 미지수기 때문이다.그래서 심사숙고 끝에 원경릉은 일단 홍엽에게 알리지 않고 주진 쪽에서 연구를 계속하다가 결과가 나왔을 때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다음날 희상궁이 궁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원경릉이 식구들을 이끌고 희상궁과 같이 궁으로 갔다. 희상궁은 며칠 동안 궁에서 시중을 들었다. 아이들이 궁에 없으니 애들이 보고싶어 초왕부로 돌아오고 싶어 했다. 결국 희상궁이 다시 초왕부로 돌아오자 궁중에 세 어르신들이 앞다투어 희상궁을 궁으로 돌려보내라고 난리셨다.희상궁은 자기를 둘로 쪼갤 수 없음이 안타까웠다. 하나는 궁에 하나는 초왕부에 있으면 좋을 텐데. 애들도 어르신들도 도통 신경이 쓰여서 어쩔 줄 모르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궁으로 가는 길에 희상궁은 구시렁거렸다. “앞으로 양쪽을 왔다 갔다 할까 봐요. 열흘은 궁에 있고 또 열흘은 초왕부에 있고.”“희상궁, 그렇게 애쓸 필요 없어요. 우리가 보고 싶을 때마다 우리가 궁으로 만나러 갈게요!” 만두가 귀염을 떨며 말했다.희상궁이 만두를 와락 안더니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우리 황태손은 정말 착하기도 하시지. 벌써 철이 다 들었어
태상황의 말은 즉 원경릉 배 속에 아이가 딸이란 소리로, 증손녀의 할아버지로서 여아홍을 땅에 묻었다가 우리 복덩이가 시집갈 때 파내서 마신다는 말이었다.원경릉이 돌연 호기심이 발동해서 물었다. “폐하는 여아홍을 묻을 거라고 어떻게 확신하세요?”“과인은 알아.” 태상황이 단정적으로 말했다.“어떻게 아시는데요?” “50년 전에 관상가가 그랬어. 과인이 올해 손녀를 하나 더 볼 거라고.”“그럼, 미색이 낳는 아이일 수도 있겠네요.”“그럼, 손녀 둘을 보는 거지!” 아주 여유만만이다.원경릉이 배시시 웃으며, “미색이 쌍둥이면요!”태상황은 눈동자를 굴리며 허둥지둥하더니, “그럼, 셋이 더 생기는 걸로!”“미색도 딸을 낳나 봐요?” 원경릉은 아주 장난기가 발동했다.태상황은 원경릉의 말에 아예 대꾸하지 않기로 했다. 관상가의 말을 안 믿다니 천벌받지.원경릉이 일어나 세 어르신을 안으로 불러 맥을 짚어 보았다.소요공의 건강은 여전했으며, 심폐기능은 젊은 사람보다 오히려 나을 정도로 손발이 민첩하고 허리가 튼튼했다. 소요공은 이에 자만해서 자신이 백 년은 너끈히 살 수 있다고 했다.태상황이 일부러 못되게 말했다. “보통 건강한 사람이 먼저 죽더라.”소요공이 태상황에게 눈을 흘기며, “먼저 죽으면 복 받은 거죠. 두 사람 다 죽고 나 혼자 남으면 너무 외로울 테니까요!”태상황과 주재상이 고개를 들어 소요공을 보는 눈동자에 무언가 천천히 떠오르더니 무거운 얼굴이 되었다. 그들은 모두 마음속으로 짐작하고 있는 게 있었다. 어느 날, 그리 멀지 않아 세 늙은이 중 하나가 먼저 죽고, 둘이 남았다가 마지막엔 결국 혼자 남을 것을 말이다.어릴 때부터 함께 늙어간다는 건 하늘이 내려 주신 복이자 귀한 인연이지만 그것도 결국 다하는 날이 오기 마련이다.청진기를 들고 있던 원경릉도 순간 먹먹했다.주재상이 곁에 있는 희상궁에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괜찮아, 다음 생이 또 있으니까. 희망이 언제나 있지.”희상궁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예, 다음 생이 또 있으
“선물은 너만 할 줄 아나 봐?” 태상황이 원경릉을 내려다보며 보며 말했다.원경릉은 아이들에게 또 금은보석을 주시려는 줄 알고 말을 서둘렀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지금 딱히 은자를 안 써요.”태상황은 아무 말 없이 궁인을 시켜 가져오라고 한 뒤 탁자에 깔아 놓았는데 이게 아무리 봐도…… 선물 같지 않았다.그저 돌멩이 4개였다.게다가 이 돌멩이들은 전부 평범하게 볼 수 있는 것으로 어화원 길가에 깔린 자갈만도 못한 게 진흙과 먼지투성이였다.단지 색은 다 달랐는데 그마저도 흔히 볼 수 있는 색이었다.애는 5인데 돌멩이가 4개면 어떻게 나누라는 거야?원경릉이 궁금해하던 참에 태상황이 만두에게 오라고 하더니 돌멩이 4개를 동생들에게 나눠주라고 하며, 어떤 동생에게 뭘 줄 건지는 만두가 스스로 정하라고 했다.만두는 돌멩이를 별로 대단하게 여기지 않아서 손에 들고 좀 까부르다가 순서대로 나눠줬다.삼대 거두는 이 모습을 상당히 진지하게 엄숙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만두가 돌멩이를 전부 나눠주자 태상황이 주재상에게 물었다. "기억했지?”주재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기억했습니다!”“그럼 됐어!” 태상황은 한시름 놓고 말했다. “남은 한 개는 배 속에 있는 아이에게 주지 뭐.”원경릉은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고작 돌멩이 몇 개를 뭐라도 되는 것처럼 어찌나 애지중지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무슨 비취라도 되는 줄 알겠다.만두는 돌멩이에 그다지 흥미가 없었지만, 동생 넷이 다 가졌고 하나 더 있는 거는 뱃속에 여동생에게 준다니까, 자기만 없는 게 좀 기분 나빠서 태상황에게 매달려 물었다. “태조부, 이건 어떤 보물인데 왜 전 안 주세요?”태상황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만두에게 말했다. “그건 말이다. 넌 이런 돌멩이를 아주 많이 가질 수 있고, 동생들 손에 있는 것도 네 것이거든. 언젠가 동생들은 이 돌멩이에 의지해서 먹고 살게 될 거다. 그때는 더 이상 밥 한 그릇가지고 서로 싸우지 않아도 되는 거야.”만두가 이번에도 잘 이해를 하지 못해서 어리둥절해
원경릉이 겸연쩍어하며 말했다. “전 그냥 지금 분봉하시는 게 조금 이른 게 아닌가 싶었던 거예요 .”태상황이 말했다. “지금 분봉하는 게 좀 이르다고 볼 수 있지만 과인은 단지 쟤들이 나중에 서로 싸울까 봐 그런 게 아니야. 다섯 아이는 분명 앞으로 크게 될 인물들이야. 다섯 도시를 쟤들에게 준 건 북당과 북막이 정전 협정을 체결했기 때문에 아마 20년 못 가서 북막은 조약을 파기하려 들겠지. 그리고 이 다섯 도시는 우리 북당의 변경에 접해 있으니 우리에겐 가장 좋은 방어선인 셈이야. 쟤들이 다 자란 뒤에 저들의 능력이라면 다섯 도시를 전부 북당화시켜 놓을 뿐 아니라 북막을 방어하는 최고의 방패로 만들 수 있어. 이게 바로 과인이 세운 북당 20년 계획이네. 저 다섯 도시의 백성들은 지금부터 자신들의 왕이 누군지 알아야 해.”주재상이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그래서 군사를 이끌고 조정으로 돌아오기 전에 이미 호 대장군에게 명을 내려 준비해 두도록 했습니다. 강북부 수주부 일부 백성을 다섯 도시로 이주시키는 것에 대해서요. 이주한 사람들이 현지 사람들과 통혼하고, 내륙 사람들이 계속 그쪽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장려해 다섯 도시에서 우리 북당의 인구를 늘려가는 거죠. 하여 다섯 도시에 북당의 뿌리를 깊이 박아 꽉 쥐고 놓지 않도록.”원경릉은 이 얘기에 조금 감동해 버렸다. 삼대 거두가 이처럼 멀리 내다볼 줄 몰랐기 때문이다. 20년 후 천하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계획을 세우는 순간 앞으로의 길을 어떻게 가야 할지 알 수 있어 변수를 최대한 제어할 수 있다.삼대 거두가 이미 결정을 내렸다는 말에 원경릉도 왈가왈부하기 불편했다. 말이 분봉이지 아이들이 지금 갈 수 없으므로 사람을 보내 관리하는 수밖에 없었다.원경릉이 출궁해 우문호에게 이 일을 얘기했다.그런데 우문호가 벌써 알고 있었을 줄이야. 경축연 당일 태상황이 태자의 의사를 묻길래 괜찮겠다고 답했다는 것이다.원경릉이 서운해했다. “미리 알았으면서도 나한테 얘기 안 했던 거네.”“잊어